< 2. 가시 돋친 열매 (4) >
***
- 무슨 영화라도 보는 줄 알았다니까요? 갑자기 확 달려와서 차로 치는데, 와···. 뉴스에도 나왔죠? 그거 CG 아니에요. 정의구현입니다. 정의구현.”
- 앞이 소란스럽길래 무슨 일인가 싶었죠. 그 로페즈 씨가 갑자기 차를 좀 빌려달라고 하셔서···.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이 제 차로 그 나쁜 놈을 쳐버릴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빌려드리길 잘했죠. 하하. 이거 제 차로 몇 사람의 목숨을 구한 거예요?
- 관리자님의 긍정적 인지도가 상승하고 있습니다.
“뉴스 소리 좀 꺼봐.”
로페즈는 거실에 서서 조잡한 통신기기로 전화를 걸었다. 상대방은 금방 통화에 응했다.
- 예.
“접니다.”
통신기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로노의 목소리가 절박했다.
- 로페즈 씨! 저희 애들이 다 붙잡혔습니다! 저는 다섯 명 정도 이끌고 간신히 토로스 구역에서 빠져나왔는데···. 이거 어쩌죠? 본거지도 다 털렸습니다.
“제가 말씀드린 대로 증거가 될만한 것들은 다 처분하셨어요?”
- 네! 물론이죠. 저랑 여기 다섯 명은 전과도 없는 놈들이라 딱히 붙잡힐만한 이유는 없을 것 같은데요. 그래도 짭새가 무섭긴 무섭습니다. 조직원이 총을 꺼내면 경고도 없이 먼저 쏘더라고요.
“원래 그게 맞는 겁니다. 아무튼, 되도록 토로스 구역에는 들어가지 마시고 숨어 계세요. 자금 사정은 괜찮아요?”
- 금고에 가득 쌓여있던 현물이랑 유령 카드들 전부 빼 왔습니다. 당분간 돈 걱정은 없어요.
레드샤크는 토로스 구역 일대의 조직을 모조리 흡수했다. 조직원의 머릿수와 작업장은 경찰에게 털렸겠지만, 금고는 사정이 다르다.
“얼마나 있어요?”
- 400만? 500만? 그쯤 있습니다.
로페즈의 계좌에 있는 5700만 크레트 상당의 금액에 비하면 작은 액수다.
“충분하네요. 잘 숨어 계세요. 나중에 로노 씨 번호로 연락드리겠습니다. 그 통신기기는 파기하세요.”
‘너무 명령조인가?’
상황이 상황인지라 급하게 말한 감이 있다.
- 알겠어요. 그런데 이미 잡힌 애들은 어쩌죠? 로페즈 씨한테 반발심 있는 놈들은 짭새들한테 다 불었을 것 같은데요.
“증거도 없고 믿어줄 사람도 별로 없어요.”
그리고 여론이 이런 상황이니까.
- 로페즈 씨는 괜찮겠지만 저희 형님은 어떡합니까?
올 것이 왔다.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미리 구상해뒀다.
“자이칸 씨한테는 함부로 면회 가거나 연락하거나 그러지 마세요. 꼬리 밟힙니다.”
- 뭐, 뭐라고요?
자이칸과 말 섞지 말라는 나쁜 소식 뒤에 합당한 이유를 섞은 좋은 소식을 알려준다.
‘내 말대로 할 수밖에 없도록···.’
“다른 조직원들은 힘들겠지만 자이칸 씨 한 분은 제가 꼭 빼드릴게요. 믿고 기다려주세요. 로노 씨.”
- 아······. 그게 가능하다는···. 일단···. 네. 알겠습니다. 꼭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통화가 끝난 직후, 로페즈는 통신기기를 분쇄기에 넣어서 없애버렸다.
- 관리자님. 이미 명백한 유죄를 선고받고 복역 중인 자이칸을 빼내는 건 어렵습니다. 로노에게 한 말씀이 혹시 거짓입니까?
“거짓말은 아니야.”
- 저는 관리자님의 진의를 파악해야 합니다.
“할 수 있으니까 하겠다고 한 거야. 자이칸 씨는 근시일내에 빼내겠어.”
- 안전한 연락망인 통신기기를 파기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통신기기를 가지고 있는 것 자체가 안전하지 않아서야. 어차피 네 능력으로 안전한 회선은 사용할 수 있잖아.”
- 제게 아직 그런 기술력은 없습니다.
“로노 씨한테 연락할 때쯤이면 생길 거야.”
***
5700만 크레트 상당의 계좌 잔액. 260㎡의 아파트. 아파트 내부 조리실에서 휴머노이드로 배달되는 요리. 푹신하게 넓은 침대와 소파. 최신식 컴퓨터 장비. 최신기종의 휴대전화. 명품 정장과 구두. 고급 승용차 두 대.
예전의 삶을 일부 되찾았다.
그리고 예전의 모습을 일부 잃었다. 겉이든 속이든.
‘이 차로 가야겠지.’
바퀴 없는 고급 승용차 두 대 중에 한 대는 하얀색, 다른 한 대는 검은색이다.
하얀색 승용차는 유리창 면적이 넓어 탑승 중에도 바깥 풍경이 훤히 보이는, 기분 전환용 차다.
반면에 검은색 승용차는 유리창 면적이 매우 작으며 차체가 높다. 유리창의 바깥 면은 검은 칠이 되어있어 외부의 소음과 방해를 완벽히 차단한다.
단연 멋있고 더 비싼 건 하얀색 승용차지만.
무엇보다도 외부위협에 경계해야 하는 지금, 로페즈는 검은색 승용차에 탑승했다.
「타르시스 올림푸스 대병원」
자율주행으로 도착한 곳은 화성 최대규모의 병원이다. 병원 면적이 웬만한 거주지역보다 크다. 로비에 들어온 로페즈는 직원의 안내에 따라 휴대전화로 신분을 조회했다.
“어?”
로페즈의 신분을 조회하던 직원이 뭔가에 놀랐다.
“VIP···. 로페즈 님 맞으시죠?”
그는 최고 수준의 건강검진과 보조 약물을 받기 위해 정기적으로 이 병원에 들르던 VIP다.
그러니까, 직원은 오랜 VIP의 얼굴을 몰라봤다는 말이다.
“···맞습니다만···. 뭔가 이상한가요?”
“아니요. 그게···. 조회된 사진이랑 많이 다르신 인상이셔서···.”
“네.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치료받으러 왔어요. 피부과, 안과, 부속 개조과로 잡아주세요.”
이후 예약도 없이 바로 진료가 잡혔다. 가장 먼저 안과다.
“좌안의 각막이 녹으면서 각막 안에 있던 수양액이 빠지셨네요. 우안의 각막도 상태가 심각하고요. 로페즈 님. 사고라도 당하셨나요? 피부도 그렇고···.”
“안 좋은 약품이 좀···. 몸에 튀어서요.”
뉴스를 보는 사람이라면 로페즈가 뭔가 일을 겪었다는 것을 짐작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도 의사는 자신의 궁금증을 뒤로하고 진료에 관한 이야기만 해주었다.
“우안은 저희 병원 기술로 충분히 살릴 수 있지만, 좌안은 선택을 해주셔야겠습니다.”
“네.”
“줄기세포 재건치료를 받으시거나 기계안을 삽입하셔야 해요. 인공 안구죠.”
“줄기세포로 하면 시간이 오래 걸리겠죠?”
“급한 일정이 있으시다면 다소 길게 느껴지실 수도 있겠네요. 줄기세포로 재건을 받으시면 13일. 기계안은 40분 이내에 끝납니다. VIP 보험이 있으시니까, 치료비는 줄기세포 재건치료가 84만 크레트. 기계안 삽입술이 590만 크레트입니다. 기계안은 치료 외의 목적으로 개선된 안구를 삽입하기 때문에 보험적용이 안 돼서요. 비용이 대폭 인상됐습니다.”
“기계안으로 해주세요.”
의사는 ‘역시’라는 표정을 지었다. 줄기세포 치료가 상용화된 현대에서 신체에 개조된 부품을 넣는 것은 치료 목적으로 보지 않는다.
따라서 보험 적용이 안 되니, 개조인이 되는 것은 부자들만의 전유물인 셈이다. 돈이 썩어나는 사람들은 머리만 빼고 전부 교체한다나 뭐라나.
의사는 40분 이내에 끝난다고 했지만 실제로 걸린 시간은 25분이었다.
이어서 피부과다.
“화상으로 인해 전체적으로 물집이나 세포손실이 있으십니다. 보통 화학약품에 노출된 환자분들께서 구급차에 실려 오시면 이렇죠. 그런데 로페즈 님의 화상은 길면 한 달···? 정도 방치된 형태입니다. 이런 통증을 어떻게 견디셨는지 모르겠네요.”
“예···. 일이 좀 있었습니다.”
“···간단한 세포 이식과 약물 도포를 받으시면 되겠습니다. 두피 뿌리도 손상되셨는데, 빠진 머리칼은 동일 유전자로 이식해드릴까요?”
“네.”
흉한 피부와 휑한 머리를 고치는데 1시간 20분과 75만 크레트를 썼다.
마지막으로 부속 개조과다.
“요청하신 대로 달팽이관 바깥, 모루뼈 부근에 장치해 드렸습니다. 윗입술소대 뒤에 음성입력장치를 넣어드렸고, 인공 좌안과 자연 우안에 각각 광학 입력소자를 장치해드렸습니다. 금속 없이 인공세포 위주로 해드렸으니 차후 고장이나 배터리 문제도 없을 겁니다. 네트워크 연결은 직접 하신다고 하셨나요?”
“네. 감사합니다.”
트랜센던서와 완벽한 연결성을 확보하기 위해 1시간 30분과 320만 크레트를 썼다.
이후 병원 건물에 붙어있는 미용실에서 머리와 피부를 손봤다.
‘이렇게 쓰고도 4713만 크레트.’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단, 몸에 인공 장치를 세 가지나 넣은 개조인이다. 줄곧 통증을 유발했던 피부와 반쪽짜리 불편한 시야는 깨끗이 나았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항시 트랜센던서와 소통할 수 있다.
“거울 한 번 보시겠어요?”
미용사의 안내에 따라 벗어둔 정장을 다시 갖춰 입고 전신거울 앞에 섰다. 까만색 명품 정장에 깨끗한 피부. 머릿결대로 잘 넘긴 머리칼. 무색인종 3에 유색인종 7 정도의 비율로 생긴 얼굴. 깔끔하고 선한 인상의 30대 남성이 거울 안에 당당히 서 있다.
“정말 훤칠하시네요!”
미용사의 목소리와 표정에서 거짓은 느껴지지 않는다. 혼자만의 착각일까, 주변의 여성 손님들도 흘깃흘깃 시선을 보내오는 것이 느껴진다.
‘내가 원래 이런 사람이었나?’
예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이상한 감각이다.
볼일을 마친 로페즈는 승용차에 들어오자마자 말했다.
“오늘 내 몸에 넣은 것들. 전부 연결해.”
보는 것, 듣는 것, 말하는 것을 트랜센던서가 알 수 있다. 또한 트랜센던서가 말하는 것을 언제든지 들을 수 있다.
- 연결했습니다.
“나중에 네 기술이 향상되면 더 개조할 거야.”
- 구체적인 예시를 들어주실 수 있겠습니까?
“눈앞에 나만 보이는 인터페이스를 띄우거나, 인간이 들을 수 없는 소리를 듣게 하거나, 엄청난 괴력이나 재생력이나 뭐 그런 거.”
- 해당 사항을 인지해두겠습니다.
때마침 시간이 됐다.
“가자. 높으신 분들 만나러.”
***
올림푸스중앙경찰서다.
으리으리한 규모의 140층 타워에 식물의 가지처럼 뻗은 구조물이 모두 경찰 드론이나 헬기의 수직 이착륙장이다.
타워의 전체적인 색감은 밝은 남색 계열이며, 주차장과 합쳐진 출입로에 경찰과 방송국 기자들이 대치하고 있었다.
로페즈는 주차장에 도착했다. 그리고 차에서 내리기 전에 확인했다.
“전에 말해뒀지? 두 사람 조사하라고.”
- 하메네스 클레릭 의원과 로이 마이크 케블라 치안정감을 공개된 인터넷 영역에서 조사했습니다. 지금 설명해드릴까요?
“아니. 이따가 얼굴 보면서 말해줘. 지금 알려주면 까먹어.”
- 알겠습니다.
로페즈가 차에서 내리자 기자들이 몰려들었고, 그런 기자들을 경찰들이 통제했다.
로페즈는 경찰들의 안내를 받으며 타워의 60층으로 올랐다. 인터뷰 장소는 주인 없는 집무실이다.
딱 보기에도 사회적 지위가 느껴지는 사람 둘이 있다. 한 명은 정장이고 한 명은 경찰제복이다. 각각 두 사람의 부하인 건지 제복과 정장을 입은 젊은 남자 둘이 카메라를 잡고 있다.
“반갑습니다. 로이 마이크 케블라 청장입니다. 케블라라고 불러주세요.”
오랜 역사를 걸쳐 문화 대통합의 시대를 이룩한 오늘날, 성과 이름의 계승이 사라진 현대인들은 타인의 이름을 부르고 싶은 대로 부른다.
- 로이 마이크 케블라(Roy Mike Cevlar). 40세. 산업지역경찰청장입니다. 보수적인 성격으로 경찰 이미지를 우선하며, 자유지구당 의원들과 공적인 접촉이 잦습니다.
“로페즈입니다. 반갑습니다. 케블라 청장님.”
“예. 그리고 이쪽은 클레릭 의원님입니다.”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클레릭입니다. 인상이 엄청 훤해지셨네요.”
“잘 부탁드립니다.”
로페즈는 두 사람과 차례로 악수했다. 이들의 호의가 느껴진다.
- 하메네스 클레릭. 52세. 26번 산업지역의 지역대표입니다. 자유지구당 소속 2선 의원으로 공천을 받았습니다.
공천이란, 정당에서 선거에 출마할 당원을 공식적으로 추천하는 것이다. 또 2선 의원이란, 임기를 마친 후 또 연임했다는 뜻이다.
‘산업지역이지만···. 그래도 자유지구당에서는 인지도가 있는 의원이겠지.’
- 또한 하메네스 클레릭은 4년 전, 부정선거 자금유통 건으로 의혹이 있었으나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을 받은 기록이 있습니다.
‘받아먹어도 처벌받지 않을 능력이 있는 정치인이다.’
감사패 전달은 형식적이었다.
카메라가 보는 가운데 시민영웅다운 발설을 하고, 의원은 의원다운, 치안정감은 치안정감다운 발설을 한 뒤 사이좋게 웃으며 악수한다. 원래 기자들이 보는 바깥에서 하려고 했는데, 인원 통제가 안 돼서 이런 식으로 진행했다고 한다.
책상 위의 투명한 감사패가 햇살을 머금어 빛났다.
“그럼, 좋은 말씀들 나누시죠. 저는 서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잡힌 놈들이 워낙 많아서요.”
케블라 청장과 그의 부하로 보이는 경찰이 먼저 나갔다. 이에 클레릭 의원은 웃으며 말했다.
“너도 잠시만 나가 있어라.”
“예. 의원님.”
“제 보좌관입니다. 젊은 친구가 아주 예의 바르고 행동까지 빠르죠. ···눈치도 좋고.”
“하하. 네.”
로페즈는 순간, 케블라의 눈썹이 올라갔던 것을 포착했다.
‘방금 눈치가 좋다는 말에 힘을 실었어. 아마도 내게 눈치를 요구하고 있다.’
“흠···. 로페즈 씨는 인터넷 기사 댓글이나 커뮤니티에서 오가는 이야기들, 좀 보셨는지요?”
“아, 제가 인터넷을 잘 안 해서요. 저에 대해 무슨 재밌는 이야기라도 오가고 있었나요?”
“허허허. 이걸 어떻게 말씀드려야 하나? 일단 직접 눈으로 보시죠.”
클레릭은 책상 위에 휴대전화를 놓아서 홀로그램을 띄웠다.
「토로스 구역의 대대적인 범죄 소탕 작전이 끝난 후, 한 시민이 이 시대의 용감한 시민영웅으로 떠올랐다. 폭력을 보기 힘든 현대, 그런 위험한 일에 몸을 던진 시민이 있었다. 그의 용기를 높이 평가한 로이 마이크 케블라 산업지역경찰청장과 하메네스 클레릭 지역대표는···」
그가 보여준 것은 현재 조회수 1위를 기록한 기사의 댓글란이었다.
「화이트홀에 연관된 질문을 던지는 기자가 많던데? 기자들이 그러면 뭐가 있다는 거 아님? 저 사람은 대답도 제대로 안 하더라. 시민영웅은 무슨.」
「대답했다. 자기가 화이트홀에서 해고당했다고. 제대로 찾아보고 댓글 다시길;;」
「저런 용감한 사람을 해고해? 나 같으면 당장 승진시켜준다.」
「내가 보기엔 화이트홀이 뭔가 구린 곳이 있다. ㅋㅋㅋ」
「대기업이 다 그렇지. 화이트홀은 뭐 다른 줄 알았음? 순진하네. 기자들 저렇게 냄새 맡는 거 보면 뻔하지.」
「ㄴ화이트홀이 아니라 블랙홀임.」
「ㄴ화이트홀이 아니라 싱크홀임.」
「ㄴ병1신들;」
「댓글 수준 봐라ㅋㅋㅋ 몇 살이냐?」
「욕설 신고 좀ㅎㅎ.」
「이번 작전도 화이트홀이 후원하려고 했다 그러던데.」
「니가 그걸 어떻게 암.」
「내 친구 아버지가 화이트홀 정직원임. 그것 때문에 회의 열렸는데 취소됐다고 함. 작전이 너무 일찍 끝나서.」
「아니 왜 다 화이트홀 이야기만 하고 있지? 논점을 모르네.」
「기자들이 저런 질문을 하는 것도 그렇고. 정말 관련 없다고 생각함?」
「찾아보니까 로페즈는 화이트맨스터 설립했을 때부터 화이트홀 소속이었고 젊은 나이에 처음부터 팀장 자리였다. 게다가 기사 보니까 용기도 있는 사람이다. 그런 대단한 사람이 저런 몰골로 저런 위험한 구역을? 마치 그동안 도망이라도 다닌 것 같다. 내 생각에 기자들 앞에서 내뱉은 의미심장한 발언도 용기를 낸 거다. 그리고 최근에 화이트홀 후원받는 대학교 졸업생 수십 명이 실종됐다는 기사 떴었는데 갑자기 사라졌었다. 이거 존나 수상하다. 화이트홀은 해명해라.」
「ㄴ지랄 좀ㅋㅋㅋㅋㅋㅋㅋ」
「ㄴ진짜 음모론자가 여기 있네.」
「ㄴ여러분! 지구는 평평하고 인간은 달에 가본 적이 없습니다!」
「충분히 합리적인 의심인데 왜들 이러지? 위에 댓글들 알바 아니면 코멘트봇이다.」
“그래서 로페즈 씨.”
처음부터 유지했던 클레릭 의원의 미소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덩달아 로페즈도 긴장했다.
“지금 이 자리에는 듣는 사람 없어요. 최고 보안을 유지하는 이 타워에는 도청기도 없고. 그러니까 우리 단둘이 있을 때 좀 물어봅시다.”
“···.”
“진짜 화이트홀에서···. 뭐 있었어요?”
로페즈는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클레릭 의원은 자유지구당 소속이다. 이번 작전을 진행한 사람은 케블라 치안정감이다. 케블라는 자유지구당 소속 의원들과 공적인 접촉이 잦다.’
‘따라서 화이트홀이 자유지구당에 줄을 대고 있다면, 대답하지 않는 게 맞다.’
‘하지만 화이트홀은 대기업이다. 줄을 댄다면 현 집권 행성대통령의 소속인 통합공화당에 줄을 대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리고 통합공화당은 자유지구당과 완전히 반대 세력이다.’
‘이 사람은 무조건 적. 혹은 무조건 아군이 될 수 있다.’
클레릭은 노골적으로 흥미를 잃었다는 표정을 지으며 소파에 등을 기댔다.
- 관리자님. 안면 패턴 분석 결과, 클레릭은 흥미를 81% 이상 잃었습니다.
시간이 없다.
- 늦기 전에 결정하시는 게 관리자님께 유리합니다.
“흠···. 대답하기 곤란하세요?”
“그게 궁금하시면 의원님 개인연락처 좀 주시죠.”
< 2. 가시 돋친 열매 (4)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