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대 인공지능 키우기-14화 (14/183)

< 2. 가시 돋친 열매 (3) >

***

“그럼 지금까지 로페즈 씨가 거주하고 계셨던 곳이 토로스 구역이었다는 말씀이시죠?”

로페즈는 환하게 뚫린 경찰서에서 간단한 조사를 받고 있다. 그리고 경찰서 밖에는 로페즈를 인터뷰하기 위해 몰려든 기자들로 북적거렸다.

“네. 해고당하고 방황하다가 거기까지 발이 닿았어요. 굳이 그 위험한 곳으로 간 이유는 기업 비밀이라 말씀드리기가 좀 곤란하네요···.”

어차피 말해봐야 소용없다. 경찰에 목숨 걸고 신고해서 잘 해결될 일이었으면 진작 그렇게 했을 것이다.

“아, 거기까진 조사하지 않습니다. 딱히 죄를 저지르신 것도 아니고. 좋은 일하신 건데요 뭐.”

“잘 해결된 것 같아 다행입니다.”

“차는 현장에서 빌리셨고···. 차로 쳐서 죽일 의도는 당연히 없었고. 정의로운 동기로 그렇게 행동하신 거고. ···음. 됐네요. 차에 치인 놈은 응급실에서 무사히 치료받고 있습니다.”

“네.”

“분실하신 휴대전화부터 해결해주세요. 연락이 갈지도 모릅니다.”

“무슨 연락이요?”

“뭐, 그 26번 지역대표이신 의원님이랑···. 이번 작전 담당하신 산업지역경찰청장님께서 감사패를 전달하신다고 하셨던 것 같은데요.”

“높으신 분들인가 보네요.”

“의원님은 잘 모르겠지만 산업지역경찰청장님은 치안정감이세요.”

경찰계급의 꼭대기. 치안총감의 바로 아래에 있는 계급이 치안정감이다. 화성의 치안정감은 다섯 명밖에 없다. 그중에 산업지역을 총괄하는 사람이 직접 감사패를 전달한다니 이번 일이 얼마나 큰 이슈였는지 느껴지는 대목이다.

‘혹은 이번 일로 추락한 산업지역의 경찰 이미지를 반전시키려는 의도거나···.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로페즈는 어느 쪽이든 괜찮았다. 만약 화이트홀이 치안총감이라는 꼭대기까지 줄을 대고 있는 게 아니라면, 치안정감을 통해 간접적인 보호를 받는 형태가 될 수도 있다.

‘지역대표 의원이라는 사람도 신경 쓰이고···.’

어쨌든 그런 의미에서 로페즈 자신은 경찰의 이미지 반전에 핵심 인물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화이트홀의 비리 경찰들이 쉽사리 손을 댈 수 없게 되니까.

“수고하셨습니다. 조사는 끝났고요. 나가셔서 휴대전화부터···.”

문밖에서 기웃거리는 기자들이 경찰의 말문을 막히게 했다.

“예! 나갑니다! 나가요! 들어오지 마세요!”

“하하···.”

“아무튼 제 말은, 인터뷰 끝나시면 바로 휴대전화부터 복구하세요. 소지하지 않는 게 불법은 아니지만 여러모로 불편하잖아요.”

“알겠습니다.”

집 문, 자동차 키, 거래, 사인, 신분증, 사원증, 전자명함, 각종 결제, 세금. 무슨 단어를 꺼내든 문명의 갖가지 서비스를 휴대전화 하나로 해결하는 오늘날이다.

“이제 가보셔도 좋습니다. 그리고 저기···. 용기를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로페즈는 경찰들의 보호를 받으며 밖으로 나왔다. 그러자 카메라와 마이크를 든 사람들이 파도처럼 몰려들었다.

“시민영웅이 되신 소감이 어떠신가요?”

“공식적인 인터뷰 자리를 마련하실 생각이 있으신가요?”

“서에서 어떤 조사를 받고 나오셨죠?”

“이제부터 어디로 가실 예정이신가요?”

“화이트홀에서 무슨 일이 있었죠?”

쏟아지는 질문 중 마지막 말이 귓가를 맴돌았다. 이미 인터넷에 공개된 자신의 정보를 기자들이 찾아보고 있는 것이다.

‘잘된 일이야.’

그리고 기자들이 이렇게나 모여들어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한마디도 안 하고 간다는 건 너무 매정한 것 같다.

이쯤에서 폭탄을 하나 던져줄 때다.

“저는 화이트홀에서 해고당한 사람입니다. 제가 이제 그쪽과는 관련이 없어서···.”

그가 입을 열자 기자들은 입을 닫았다. 시민영웅이 내뱉는 말을 한 글자라도 더 마이크에 담기 위해, 경찰서 앞이 일순간에 고요해졌다.

“무슨 일이 있긴 있었죠. 있었는데, 그게 전부 기업 비밀이라서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그 순간만큼은 온 세상이 정적에 휩싸이는 착각마저 들었다. 이어서 로페즈가 다시 발걸음을 떼는 순간이었다.

“최근의 실종 사건과 연관이 있나요?!”

그 지하연구소에서 지워진 사람들.

그들에게도 지인이 있고 가족이 있었을 것이다. 기록을 지우고 데이터를 조작해도 그들과 인연을 쌓은 사람들의 기억까지 지울 수는 없다.

실종 신고가 꽤 많이 접수되었을 것이다. 지하연구소에서 비밀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는 것은 외부로 발설해선 안 되는 사항이지만, 모든 사람들이 다 입이 무겁지는 않다.

그 지하에서 일하던 사람들 중 누군가는 자신의 주변인에게 넌지시 알렸을 것이다. 사실은 화이트홀의 비밀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며, 월급이 엄청나다며 자랑을 했을 것이다.

그러니 최근에 수십 명이 실종된 일과 화이트홀의 연관성을 모두가 모른다고 단정 지을 수 없다.

이 질문을 날린 기자는 나름대로 조사를 철저히 한 모양이다.

“로페스 씨! 혹시 화이트홀이···!”

“죄송합니다.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로페즈는 단칼에 잘라내며 잠시 카메라 하나를 골라서 노려보았다.

이 중의적인 발언으로 모두에게 해석의 여지를 줄 것이다.

“저는 그곳에서 위험한 일을 겪었지만···”

그곳이란 토로스 구역이 아니라 화이트홀의 지하연구소를 암시한다.

“그냥 몸이 멋대로 움직여서···. 일단은 눈앞의 사람들을 살려야겠다고 판단했습니다.”

‘사람’이 아니라 ‘사람들’이라고 말한 것은, ‘인질’이 아니라 ‘연구팀’의 직원들을 암시한다.

“지금도 그 일을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어쨌든 저는 살아남았으니 앞으로도 제 삶에 정진할 것 같습니다.”

인멸 작업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어쨌든 자신은 살아남았으니 앞으로도 살아갈 길을 모색할 것이다. 트랜센던서를 손에 쥐고.

“말을 아끼겠습니다. 인터뷰에 성실히 응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따로 자리를 마련하도록 하겠습니다.”

모든 것이 밝혀졌을 때 지금의 발언은 강력한 복선으로 재해석될 것이다. 그리고 모든 매체에서 그렇듯, 복선은 반드시 설득력을 내포하는 법이다.

***

- ···죄송합니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따로 자리를 마련하도록 하겠습니다.

화이트홀 그룹의 페이치 회장은 화면 속의 로페즈와 눈싸움을 했다. 그의 비서는 커다란 전자노트를 확인하더니 회장에게 다가갔다.

“회장님? 회장님 라인을 통해 산업지역경찰청장의 일정을 확인했습니다.”

“어떻든?”

페이치의 얼굴에 보기 드문 긴장감이 어려있다. 덩달아 비서도 긴장한 얼굴로 그에게 나쁜 소식을 전달했다.

“하메네스 클레릭(Hamenes Cleric) 의원과 접선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잘 풀리는 일이 하나도 없군. 클레릭? 걔는 어디서 구르는 놈이야?”

“26번 산업지역의 지역대표, 자유지구당 소속 2선 의원입니다.”

“하필이면 자유지구당 소속이야? 진짜 더럽게 꼬였네···.”

일리노이 페이치. 화이트홀 그룹의 회장인 그가 줄을 대고 있는 당은 자유지구당의 반대 세력인 통합공화당이었다.

“보나 마나 의원은 소탕 작전을 함께 검토했으니 참여한다는 명분이겠고. 그보다 이번 소탕 작전 지시한 게 산입지역경찰청장라고 들었는데···. 그쪽으로는 돈을 못 먹였단 말이지. 정부와는 독립된 기관이기도 하고···. 내 밑에 놈들 실수라 윗선 도움을 받기엔 또 애매한데···.”

“그 두 분께서 로페즈 씨의 감사패를 준비하신다고 합니다. 산업지역경찰청장은 떨어진 경찰 이미지의 회복을 위해, 클레릭 의원은 다가오는 3선을 앞두고 마케팅을 하려는 의도로 파악됩니다.”

“그렇겠지. 그게 아니고서야 서로 만날 이유가 없으니깐.”

정말 모든 상황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 토로스 구역의 범죄가 공공연하게 드러나며 시민들이 언성을 높이자, 국가적 차원에서 급히 소탕 작전을 지시했다. 로페즈는 그러는 와중에 카메라 앞에 출연해서 보란 듯이 인질을 구출해냈다.

심지어 이제부터 로페즈가 만날 경찰은 이쪽과 이어지지 않은 사람이고, 의원은 화이트홀이 줄을 대지 않은 쪽의 정당이었다.

“···우연이 아니야.”

“네?”

“로페즈가···. 아니, 그 트랜센던서가 이런 상황이 되도록 설계한 거야.”

초월적인 인공지능이 미래를 계산한 것이다. 자신의 주인인 로페즈를 위해.

“일전에 체포한 자이칸은 끝까지 입을 열지 않아서 형사에게 넘겼습니다. 거기에 이번 상황까지 겹쳐버렸으니, 로페즈 씨를 범죄자로 몰아가는 것은 곤란합니다. 회장님.”

“그래. 그게 딱 저 새끼의 의도였던 거지.”

뉴스 화면 속의 로페즈가 가증스럽다. 한쪽 눈은 새하얗게 변해서 머리칼이 듬성듬성 빠진 꼬락서니가 얄미운 쥐새끼 같다. 얼굴과 목선에도 화상 자국이 가득하니, 그가 화학처리된 하수도를 기어이 빠져나왔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이제 경찰의 손은 빌리기 어려워.”

“그를 어떻게 처리하실 건지요?”

“어디에 돈 먹이고 부탁할 필요도 없어. 뭔가 계획할 필요도 없고.”

“그런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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