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대 인공지능 키우기-13화 (13/183)

< 2. 가시 돋친 열매 (2) >

***

26번 산업지역의 의원은 주먹을 들어보이며 주장했다.

- 개정된 법안으로 토로스 구역의 조직적 범죄를 소탕하겠습니다. 영장 없이 체포할 것입니다. 이에 불응하거나 총기소지의 염려가 있을 경우 현장 인원의 개별 판단하에 즉각 사살 조치를···

요즘 화제로 대두되고 있는 26번 산업지역의 토로스 구역.

그곳을 구시대의 잔재와도 같은 폭력조직들이 점거하고 있다. 화성 정부는 이를 오랜 기간 방치했다. 그러다 폐공장의 연쇄 폭발사고로 대량의 마약이 검출되고 나서야 뒤늦게 움직이고 있다는 실정이다.

기자는 언제나 진실을 알려야 한다. 경찰 인력들이 토로스 구역의 진입로를 봉쇄하여 외부인의 접근을 금하고 있지만, 어차피 들어가려고 마음먹은 사람은 들어갈 수 있다.

하나의 지역을 둘러싸고 정부 차원에서 대규모 작전이 강행되고 있다.

다른 방송국과 기자들이 앞다투어 잠입했을 것이다. 간혹 보이는 차량과 드론에 여론의 카메라가 숨겨져 있을 것이다. 공식적으로 촬영 허가를 받은 방송국 헬기들도 모조리 경쟁 상대다.

하지만 기자라는 게 무엇인가. 드론이나 헬기나 거대한 방송국 따위 없어도 된다. 카메라 하나로 현장만 담을 수 있다면 특종을 찍을 기회가 있는 것은 매한가지다.

이번 사건은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다. 치안을 유지하는 각종 시스템으로 범죄율이 0에 수렴하는 오늘날이다. 인류의 중심 행성인 화성에서 이런 일이 터졌다는 것은 거대한 특종을 잡을 기회다.

‘뭐라도 하나 건지고 싶었는데···.’

그는 총에 맞을 위험을 무릅쓰고 이곳까지 왔다.

일반인으로 위장한 기자는 건물 옥상에 올랐다. 가방 속에 숨겨두었던 고성능 카메라로 다섯 블록 밖에 있는 현장을 촬영할 수 있다. 건물들의 높이가 낮아서 다행이다.

‘···운이 좋았어.’

밝은 대낮.

치안유지로봇과 경찰 드론이 현장을 봉쇄하고 있다. 전신을 방탄 장비로 무장한 경찰들이 지원병력을 기다리며 쩔쩔매고 있다.

어쨌든 그들은 공권력을 이길 수 없다. 범죄자들은 순식간에 제압당할 것이며 토로스 구역은 청소될 것이다. 거창하게 갱단이라고 해봤자 재래식 기관단총이 최고 수준의 무장인 녀석들이다.

하지만 바로 이 순간, 저 경찰들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다. 상황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 저건 장비와 인력의 격차로 밀어붙일 수 있는 그런 종류의 상황이 아니다.

하필이면 인질극이 벌어지고 있던 것이다.

‘흉악한 문신이 주부를 인질로···. 괜찮은 그림이야.’

어딘가의 조직원으로 보이는 남성이 30대 주부를 인질로 삼고 있었다. 어설프게 인질을 붙잡고 관자놀이에 총을 겨누는 형태가 아니다.

인질의 뒤에 숨어서, 인질의 등에 기관단총을 겨누고 있는 형태다. 몸의 면적 대부분을 인질의 뒤에 숨긴 채, 배후에는 건물 벽이 있어서 저격으로도 사살하는 게 쉽지 않은 상황이다. 애당초 저격수나 저격이 가능한 드론이 도착하기엔 시간이 좀 남기도 했다.

인질극 현장 앞에는 경찰차들이, 경찰차들의 뒤에는 경찰들이, 경찰들의 뒤에는 경찰 휴머노이드들이, 휴머노이드들 뒤에는 구경꾼들이 있었다.

“물러나세요! 이쪽으로 오지 마세요!”

“아이구···. 저걸 어쩌나···.”

“인질극이야?”

“저 여자 뒤에 숨어있대.”

“어디, 어디?”

상식이 부족한 건지 토로스 구역의 시민들은 경찰들의 통제에 말을 듣지 않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인질극을 벌이고 있는 남성은 혼자서만 목에 핏대를 세웠다.

“에이 씨발···! 다 안 꺼져?!”

카메라에는 얼굴 전체가 문신으로 도배된 남성이 잡혔다. 그의 이마에는 큼지막한 눈 문신이 있었다.

‘눈 문신이면···. 그라이아이··· 맞나?’

기자는 숨을 죽인 채 상대적으로 안전한 옥상에서 인질극을 화면에 담았다.

화면에 담긴 영상은 실시간으로 방송국에 송출되고 있다. 위험한 사건 현장으로 일반인의 접근을 제한할 수는 있어도, 이미 잠입한 기자들의 촬영과 방송국의 생방송은 막을 수 없는 게 법의 구멍이었다.

그런 구멍을 잘 활용한 방송국들은 대박을 터뜨릴 것이고, 좋은 현장을 카메라에 담은 기자들은 상당한 성과를 올리게 된다.

저 인질극의 불행이 누군가의 행복을 낳는 것이다. 저 불행이 끝내 비극으로 치닫는다면 더 좋다. 그만큼 조회수가 나올 테니.

심지어 인질이 된 주부는 배가 살짝 나온 임산부로 보인다.

‘다들 내 카메라만 보고 있어···. 다들 내가 찍는 화면만 보고 있을 거라고···!’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기자는 두근거림이 멈추질 않았다. 굉장히 자극적인 상황이다.

- 인질을 보내주고 당장 투항해! 넌 포위되었다!

“다 알고 있어!!! 너희 짭새들 수법은 다 알고 있다고!!!”

조직원은 바락바락 소리를 질러댔다.

“수면 가스를 던지거나 유도탄으로 날 저격하겠지! 그렇지?! 안 그래?!”

- 알고 있으면 당장 투항해! 의미 없는 저항은 그만두고 형량이라도 줄이라고!

“그런데 왜 그렇게 하지 않고 있냐?! 앙?! 아직 시간이 있다는 거야! 지원이 도착하기 전까지는 내게 시간이 있다는 거라고!! 나, 나는 다 알고 있어! 앞으로 길어야 5분, 5분 안에 무슨 일이 벌어지게 될지, 다, 다 알고 있다고!!!”

“제발 이러지 마세요···. 배 속에 아이가 있어요···. 제발······.”

“닥쳐, 씨발년아! 등짝에 갈겨버리기 전에···!”

- 총 버려!

“이 새끼들아!! 그, 그래···! 어차피 도망도 못 가는 거 그냥···! 이년도 죽이고 너희들 쪽으로 갈겨보는 거지···!”

경찰은 초조함에 어금니를 갈았다.

2차 피해가 우려된다. 인질이 죽는 것도 모자라서 이쪽으로 총알이 날아오면 뒤에서 구경하는 시민들까지 위험해진다.

위험한 현장을 구경하는 시민들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 자신들에게 비판적인 화살이 날아들 것이다. 경찰들이 버젓이 지켜보는 가운데, 임산부가 범죄자에게 죽었다는 충격적인 소식에 몇 사람이 책임지고 옷을 벗게 되리라.

“반장님! 저 새끼 눈 돌아갔습니다···!”

“도대체 어쩌라는 거냐고···.”

구경하는 사람들을 억지로 내쫓는 것도 어렵다. 혐의가 없는 시민들의 몸에 함부로 손을 댈 수 없다. 과잉진압이니 뭐니 하면서. 그렇다고 인간이 아닌 휴머노이드를 시켜 강제로 쫓아내는 것은 더 논란이 거세진다. 기계의 폭력이니 뭐니 하면서.

그렇다고 이대로 엄폐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경찰들을 뒤로 보낼 수도 없다. 그랬다간 녀석이 인질을 붙잡은 채 도망칠 가능성이 있다.

“못 해 먹겠네! 진짜, 이 짓거리도 때려치우든가 해야지···.”

이쯤 되면 자신이 경찰인지 호구인지 알 수가 없어 억울할 지경이다. 화성의 법이 이런 걸 일개 반장인 자신이 어쩌라는 말인가.

“이러다 잘못되면 욕은 우리가 다 처먹고 씨발···.”

“반장님···!”

“드론은 아직도 멀었어?!”

“이제 막 산업지역에 들어왔다고 합니다. 1분이면 되는데···.”

앞으로 1분.

1분만 이 상황을 유지하면 된다.

그러면 드론이 날아와 유도탄을 쏠 것이다. 인공지능이 탑재된 작은 탄두가 저 임신한 주부의 뒤로 유연하게 꺾이며 범죄자를 즉살할 것이다.

하지만 늘 그렇듯 급박한 현장에서는 1분이라는 시간조차 사치였다.

일반인들에겐 정말 짧은 순간이지만, 훈련된 경찰들의 눈에는 마치 정지된 사진처럼 보였다.

범죄자가 인질의 겨드랑이 사이로 총구를 내민 것이다.

그 순간, 경찰들의 머릿속에는 오만가지 생각이 교차했다.

저대로 방아쇠를 당기면 이쪽으로 총알이 날아든다. 전신을 방탄 장비로 무장하고 있는 경찰들은 다치지도 않을 것이다. 하지만 뒤에서 구경하고 있는 사람들은 맨몸이다.

만에 하나, 단 한 발이라도 어딘가에 도탄 되어 총알의 궤적이 어긋난다면.

누군가 다치거나 죽을 수도 있다.

정지된 사진처럼 보였던 그 짧은 순간은 무참히 재개된다.

“다 뒈져버려!!!!!!!”

타타타타타타탕!!!

총알이 빗발치며 경찰차의 장갑을 때리는 소리가 살벌하다.

부우웅!

그 순간 이변이 일어났다.

경찰차 사이를 승용차 한 대가 교묘하게 질주해오는 것이다.

“어, 어?!”

콰직!

승용차는 엄청난 운전실력으로 인질의 배후에 있던 조직원을 그대로 쳐 날려버렸다.

“반장님! 저거···!”

“야, 야! 빨리 잡아!!”

“차량 운전자를요?”

절박했던 상황을 해결해준 승용차는 인질 옆에 그대로 멈춰있다.

“아니 저 새끼! 도로에 떨어진 저 쓰레기 새끼 잡으라고!”

“알파기동팀! 체포해! 당장!”

그 즉시 휴머노이드들이 경찰차를 뛰어넘어 내달렸다. 아스팔트 도로 위에 쓰러진 조직원은 바닥에 얼굴을 처박은 채로도 기관단총을 난사해댔다.

티티티팅!!!

인공지능 기계들은 총알을 정면으로 받아내며 조직원을 제압하는 데 성공했다. 다음엔 경찰들이 뛰어들어 그에게 수갑을 채우는 것으로 상황이 일단락되었다.

제압된 범죄자는 고통에 신음했다.

“아아아···. 허리···. 허리뼈가 끊어졌어···! 이 씨발놈들···! 전부 고소할 거야···! 씨발, 구급차랑 변호사 불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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