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대 인공지능 키우기-12화 (12/183)

< 2. 가시 돋친 열매 (1) >

***

“고문?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어.”

어딘가의 지하실. 바닥과 벽이 온통 새하얗다. 천장 전체를 밝은 조명이 채우고 있는 폐쇄적인 공간이다.

자이칸은 케이블 타이로 의자에 구속당한 채 프레드릭을 노려보았다.

“경찰인 줄 알고 쫄았는데! 으흐흐···! 너희들, 화이트홀이지?”

“그것도 알고 있었어? 우리 로페즈 팀장님 생각보다 입이 가벼운 사람이었네.”

“내가 진짜 놀랐잖냐. 모두의 사랑을 받고 있는 대기업이 이딴 더러운 짓을 뒤에서 벌이고 있었다니까, 정말 충격적이야. 너희들도 우리랑 별반 다를 게 없어.”

“골목길 깡패 새끼가 어딜 맞먹으려고 해?”

“하는 짓은 우리랑 똑같잖냐! 말끔하게 정장 빼입으면 우리랑 수준이 좀 다른 것 같아? 응?”

프레드릭은 한 손에 주사기를 들어보였다.

“고문 같은 저급한 짓은 안 해. 의료기록이 남으면 회장님께서 곤란해지시거든. 우리 인맥이 그렇게 여유롭진 않아서.”

“그러냐?”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한쪽만 투명한 유리창 너머로 누군가 지켜보고 있었다.

“물어볼 거 다 물어보시고 이따가 연락해주십시오.”

경찰복을 입고 있는 남성, 화이트맨스터의 사장과 부사장이 함께 있었다.

“아, 영 답답한데. 살짝만 칼을 대면 다 불지 않겠어요? 깡패 새끼 조금 다친다고 누가 신경이나 쓰려나···.”

부사장이 그러면서 하품하자 옆에 있던 사장이 핀잔을 주었다.

“형사님이 그러라고 하시잖아. 이것도 다 공무원분들 성과인데. 기껏 잡은 고기 몸을 씹창내서 보내드리면 되겠어, 안 되겠어?”

“그래도 저놈은···. 저희가 잡은 고기인데요···.”

기어들어가는 부사장의 반론에 형사가 눈빛으로 경고했다. 이를 어렴풋이 인지한 사장은 하하 웃으며 부사장의 목덜미를 움켜쥐었다.

“이 녀석아. 우리가 저 고기를 잡고 심문하는 것도 불법이라고. 알아?”

“···.”

“자백제를 가지고 있다는 것도 범죄야. 조직 간부라는 놈을 상처 없이 경찰의 공로로 넘기는 게 조건이고, 그걸로 눈감아주는 거라고. 알겠나?”

“죄송합니다.”

“죄송하면 제발 닥치고 있어. 애당초 연구소에서 깔끔하게 처리했으면 이런 귀찮은 일도 없었을 것을···. 쯧.”

이제 심문이 시작된다.

프레드릭은 주사기 실린더를 손톱으로 몇 번 쳤다. 실린더에 든 자백제는 거짓 없는 물처럼 투명하게 찰랑거렸다.

“이거 맞으면 불기 싫어도 다 불게 될 거다. 속으로 생각하고 싶어도 입 밖으로 막 튀어나오는 약물이거든.”

“어디 멋대로 해봐 새끼야. 난 아무것도 말 안 해줄 거야.”

“배짱 좋네. 약 맞고도 계속 그러는지 한번 보자고, 칼 자이칸.”

프레드릭은 자이칸의 팔뚝에 자백제를 찔러 넣었다.

“으, 으으으···! 크으으으으윽···!”

만들고 소지하는 것 자체가 불법인 약물이 자이칸의 혈류를 타고 맴돌기 시작한다.

정신이 몽롱해진다.

현실감각이 없어져서 몸이 꿈속을 유영하는 것 같은 이상한 기분이 된다.

그것이 ‘이상한 기분’이라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한 채, 자이칸은 고개를 떨구고 중얼거렸다.

“여기 어디야···. 이···. 이 개새끼들···. 이거 풀어···. 이거 풀라고···.”

“로페즈는 어디에 있지?”

“로페즈···. 누구야···. 너 누군데···.”

“로페즈는 어디에 있을까? 화이트맨스터의 공동사업추진부서 연구팀 팀장. 로페즈 씨는 어디에 있을까? 몰라?”

“그 사람···. 숨겨놨는데···.”

“어디에? 주소는?”

“우리···. 레드샤크는 26번 산업지역···. 아···! 토로스 구역을 장악했다···! 아하하하···! 드디어······.”

“토로스 구역. 로페즈는 어디에 있지?”

“거기에···. 내 건물···. 안전한 연립주택에···. 아마···.”

“주소는?”

“주소는 없는데···. 그거, 버려진 건물인데···. 나랑 형님이랑 켈빈이랑···. 그때는 그렇게···. 있었는데······. 흑···. 흐으으···.”

자이칸은 눈물을 보이기 시작했다.

“토로스 구역의 연립주택. 주소가 없는 버려진 건물이라고 했지. 거기에 로페즈가 있다고?”

“잘 숨겨놨는데···. 이제부터 시작이었는데 왜···.”

“좋아. 그럼 로페즈가 너한테 무슨 이야기는 안 했어? 자기 컴퓨터가 대단하다거나, 인공지능이 있다거나, 뭐 그런 의미심장한 말들 있잖아. 듣고도 믿기 힘든 판타지 같은 이야기. 뭐 생각나는 거 없어?”

“여기 어디야···. 나 왜 여기에 있어···. 네가 뭔데···.”

“자이칸. 너 감옥에 안 보내줄 거야. 네 몸에 자백제를 투여한 흔적이 있어서 보내줄 수가 없다고. 어차피 죽을 몸인데 그냥 다 말하고 편해지는 게 어때?”

이건 거짓말이다. 밖에서 그를 넘겨받을 비리 경찰들이 기다리고 있다.

“아, 안돼! 나···. 나 여기서 죽을 수 없어···. 난 아직···. 난 아직 못한 일이 많아서···. 아···. 이제부터 진짜, 시작이었는데···.”

“어휴, 이 멍청한 새끼.”

“로페즈···. 그 사람만 있으면···. 그 사람만 있으면 다 할 수 있어···. 저, 절대···. 절대 포기 못 해···.”

그때 프레드릭의 귀에 꽂힌 이어폰으로 부사장의 목소리가 흘러들어왔다.

- 계획을 변경한다.

“네?”

- 로페즈 팀장이 범죄행위를 저질렀다는 자백을 받아내.

“진짜 그래도 돼요?”

로페즈를 범죄자로 만들어서 세상에 공개하려는 계획이었다.

- 그러면 로페즈가 언젠가는 잡힐 테지. 일단 잡아둔 먹잇감을 도중에 빼돌리든 요리하든 그러는 편이 더 빠르니까. 포위망을 화성 전역으로 확대하자는 말이야. 회장님께서 그렇게 오더하셨다.

그야말로 완벽하면서도 가혹한 전략이었다. 프레드릭은 회장의 술수에 내심 감탄하며 말을 이었다.

“어이, 자이칸.”

“너 누구야···. 여기 어디야···.”

“로페즈가 너에게 어떤 도움을 줬지?”

“···.”

“로페즈는 너희 레드샤크 조직의 일원이었나?”

“···.”

“대답해.”

자이칸은 자기 허벅지를 내려다보았다. 그러면서 추위에 떠는 사람처럼 고개를 이상하게 떨었다.

“아니야···.”

“아니긴 뭐가 아니야? 그럼 네가 로페즈를 왜 알고 있는 건데?”

“아···. 나는, 몰라······.”

“아니, 넌 알고 있어. 로페즈가 레드샤크의 일원이라는 것을. 그리고 로페즈가 너와 네놈의 조직을 위해 범죄행위에 일조했다는 것을 넌 알고 있어. 맞지? 틀리면 틀렸다고 말해.”

“그건······. 나는···.”

이 순간 화이트맨스터의 사장과 부사장은 유리창 너머의 자이칸을 보며 숨을 죽였다.

또한 프레드릭은 눈썹을 살짝 올리며 자이칸의 대답을 기대했다.

모두가 기다리던 그 순간,

“나는, 말 안 해···. 씨, 씨발새끼야······. 킥···! 키키키킥···!”

자이칸은 자백제를 맞은 상태에서 손가락으로 욕을 했다.

“하···!”

- 실장. 그 새끼 말할 때까지 같은 질문을 반복해. 무의식중에 저항하는 것 같은데, 이유가 있겠지.

“알겠습니다.”

“나 너 몰라···. 어지러워···. 이 느낌···. 아···. 그때 초록색 가루···. 그거 빨았을 때랑 비슷한···? 그런 거···?”

자백제를 맞았을 때와 비슷한 감각을 자이칸은 이미 경험한 모양이다.

“로페즈는 폭력조직, 레드샤크의 일원이 맞나?”

“나는 안, 안 알려줄 거라고 못난 새끼야······. 히히, 이히히히힉···!!!”

“뭐라고 씨부리는···”

“너 진짜 좆같이 생겼다···. 빠, 빨리 거울 좀 봐···!”

“뭐?”

“너, 너 눈깔이 여섯 개야···! 이힉···!”

- 저 새끼 마약 했나?

“이히힛···. 히힛···! 아···. 기분이 좋아···. 진짜 오, 오랜만인데 이거···.”

“로페즈는 레드샤크의 일원이야. 로페즈는 범죄행위에 가담했어. 맞지? 아니어도 그냥 그렇다고 대답만 해. 그럼 다 끝내고 편하게 해줄게.”

줄곧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자이칸이 마침내 프레드릭과 눈을 마주쳤다.

이상하게도 자백제를 맞은 그의 표정은 몽롱하다기보다는 어딘가 살벌해 보였다.

“로페즈 씨가···. 우리 식구를 도왔다고?”

“그래! 맞지?”

하지만,

“하···. 하하···. 이이잉 씨, 씨발놈아···! 난 이런 거 안 통해! 내, 내가 절대 안, 안 말해줄 거라고 했잖아! 이히힉···!”

그는 구속된 그대로 양손의 중지를 올리며 또다시 손가락 욕을 했다.

- 마약 했네, 저거.

“···어떡하죠?”

- 뭘 어떡해? 될 때까지 반복해야지. 다시 질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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