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대 인공지능 키우기-11화 (11/183)

< 1. 문명의 그림자 (5) >

***

자이칸은 자기 앞에 주저앉은 남성에게 권총을 겨누었다.

“죽기 전에 하고 싶은 말은?”

“······비결이 뭐야?”

“비결?”

“그 총들은 다 어디서 났고. 우리 애들 움직임은 어떻게 매번 다 꿰차고 있었냐고.”

“곧 죽을 놈한테 알려줘서 뭐 하겠어.”

“······꼭 이렇게까지 해야 되나?”

“원래 너 같은 머리는 다 따야 하는 거야. 후환이 되잖아.”

방안에 총상을 입은 시신이 가득하다. 자이칸의 뒤에는 무장한 레드샤크 조직원들이 늘어서 있다.

“씨발! 항복하겠다고 했잖아!”

“여기 있는 네 식구들 다 뒈지고 나서 항복했잖아. 내가 처음에 제안했을 때 받아들였어야지.”

“뭐? 네 밑으로 알아서 기어들어오라는 그거? 이런 미친놈이! 그런 것도 제안이라고 하나?! 한 번은 붙어보고! 그러고 내가 졌으니까 이렇게 항복하는 거잖아! 이제 레드샤크 밑으로, 내가 네 밑으로 기어들어가겠다니까!!!?”

“그 결정이 너무 늦었어.”

“진짜 사이코패스 새끼가···!”

탕!

단 한 번의 총성이 또 하나의 우두머리를 자이칸 앞에 쓰러뜨렸다.

***

- 어제 오전 한 시경, 올림푸스 UN 26번 산업지역 토로스 구역에서 연쇄 폭발사고가 발생했습니다.

뉴스 화면은 처참하게 전소된 공장으로 전환되었다. 공중에는 소방 드론이 날아다니고 있으며 지상은 현장을 조사하러 온 기자와 경관들로 북적인다. 또한 올림푸스 UN에서 급히 파견된 치안유지로봇들이 근처 시민들의 접근을 통제하고 있다.

- 불길이 사그라든 직후, 현장의 출동 인원들이 폭발 원인을 조사한 결과는 그야말로 충격적이었습니다.

전소된 공장 내부에 까만 가루가 가득했다.

- 감식반은 이번 연쇄 폭발사고의 원인이 잘못된 화학작용인 것으로 판단하고 있으며, 현장에서는 연소된 마약 성분이 무더기로 검출되었습니다. 이에 관련해 출동한 감식반의 노스 경관님을 모셔봤습니다. 안녕하세요?

뉴스 화면은 앵커의 옆에 앉은 남성에게 옮겨졌다.

- 안녕하십니까. 이번 현장의 감식반 반장을 맡은 노스라고 합니다.

그의 말투는 마치 교과서라도 읽는 것처럼 기계적이었다.

- 이번 사건에 대해 해명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데요. 여러 공장을 연쇄적으로 전소시킬 만큼의 마약이 발견되었으니, 26번 산업지역에서 버젓이 마약 유통이 이루어지고 있던 게 아니냐는 물음이 많았습니다. 이에 대해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 우선, 26번 산업지역의 토로스 구역은 과거 화성 정부가 추진한 무인 산업화 프로젝트로 구획화된 구역이었습니다. 때문에 토로스 구역의 공장설비는 비교적 최근에 형성된 산업지역들에 비해 낙후된 면이 있었습니다. 치안을 관리하는 시스템 및 인력이 상대적으로 부족하게 배치되었고요. 이로 인하여 감시망을 피해 대규모 마약 생산이 가능했던 것으로···. 저희는 그렇게 판단하고 있습니다.

- 네. 26번 토로스 구역은 거주지로 분류되지 않았는데요. 그럼에도 엄연히 선량한 시민들이 살아가는 터전이었습니다. 뒤늦게 들려온 소식에 따르면 26번 산업지역의 토로스 구역은 폭력조직이 자리 잡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데요?

- 예. 그만한 마약이 생산되고 있었으니 그것을 관리하는 집단의 존재 또한 수면 위로 드러난 것입니다.

- 26번 산업지역의 안보를 위해 토로스 구역에 특수부대나 진압조를 투입해 시민들을 보호하자는 목소리가 지배적인 상황입니다. 혹시 감식반이 얻은 마약을 증거로 영장 없이 체포 및 진압을 추진할 수 있지는 않을까요?

- 아직 상부에서 논의 중에 있어 제가 말씀드릴 수 없는 사항입니다. ···하지만 이거 하나는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 네.

- 중범죄가 만연하는 구역이 이렇게 낱낱이 드러난 이상, 이전처럼 아무런 대처도 없이 방치되진 않을 것입니다.

리무진에서 홀로그램으로 이 뉴스를 보고 있던 페이치는 반대편 시트에 앉은 비서에게 물었다.

“저만한 마약은 어디서 구했냐?”

“타이탄 시에서 밀수해왔습니다.”

“토성까지? 우리 애들이 고생 꽤나 했겠군.”

“네. 그리고 회장님, 화이트맨스터의 작업인력들을 토로스 구역의 인근에 머물도록 조치했습니다.”

“잘했어. 그···. 누구였냐, 갑자기 연락이 끊겼다는 작업자 녀석.”

“네비안입니다.”

“아직도 못찾았어?”

“그렇습니다. 네비안의 행적은 토로스 구역에서 사라졌습니다만···. 조사 과정에 한 가지 특이사항이 발견되었습니다.”

“뭔데?”

“정보를 모아본 결과, 26번 산업지역은 다섯의 갱단이 점거하고 있었습니다. 그라이아이, 베세네스크, 리틀보이, 레드샤크, 하드픽셀입니다.”

“유치한 이름들이군.”

“그중에 토로스 구역의 북쪽과 서쪽을 놓고 경쟁하던 그라이아이와 레드샤크가 무력 충돌한 끝에, 레드샤크가 그 일대를 점거했다고 합니다.”

“그게 이번 일이랑 무슨 상관인데?”

얼핏 들어선 시답잖은 조직들의 이야기였다. 어차피 갱단이라고 해봤자 화이트홀의 사설군수업체나 페이치의 작업자들에 비하면 애들 장난에 그치는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제부터는 레드샤크가 토로스 구역의 동쪽을 노리기 시작했습니다. 지금까지 확인된 바로는 하드픽셀과 리틀보이가 점거하던 동쪽을 레드샤크 조직원들이 장악했다고 합니다.”

“······.”

페이치는 그제야 무엇이 문제인지 알게 되었다.

“레드샤크는 이미 세 방위의 갱단을 흡수했습니다. 머지않아 토로스 구역 남쪽의 베세네스크 갱단까지 흡수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수상합니다.”

하필이면 트랜센던서가 유출된 이 시기에.

하필이면 로페즈가 도망쳤을 토로스 구역에.

하필이면 토로스 구역에 있던 한 조직이.

레드샤크가 구역 전체를 장악하기 직전이라는 것이다.

페이치는 허공에 손짓해 뉴스를 꺼버렸다. 바퀴 없이 반중력 장치로 부양하는 고급 리무진의 차내가 급격히 고요해졌다.

“레드샤크?”

“그렇습니다.”

“거기에 우리 팀장님이 들어가 계셨구나? 그러니까 그 작업자···. 네비안도 그 구역에서 연락이 끊기지.”

비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조용히 긍정했다.

“네비안이 로페즈 팀장과 닿은 거야. 그래서 그쪽 조직원들이 네비안을 작업해버린 거라고. 그리고 팀장은 토로스 구역이 전쟁터가 되기 전에 레드샤크에 줄을 댄 거지. 그 결과로 레드샤크가 엄청난 기세를 보이고 있고. 그래! 이보다 가능성 있는 시나리오 있나?”

“제 생각엔 없는 것 같습니다.”

“트랜센던서···. 정말 놀라운 힘이야. 봐, 토로스라는 작은 연못의 균형이 순식간에 무너졌잖아.”

아직 완전히 학습을 끝낸 단계도 아닐 것이다. 로페즈가 제아무리 능력이 좋은 사람일지라도 벌써부터 연구소에 필적하는 병렬 양자컴퓨터와 최신식 설비를 갖추고 있을 리가 없다.

그러니 지금의 트랜센던서는 높게 평가해봐야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수준이라고 볼 수 있다.

“그 인공지능은 그릇에 맞는 사람이 가져야 해.”

“권한자가 로페즈 팀장으로 등록되었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된 이상, 그를 생포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그래야지. 걔 말곤 권한자 기능에 손댈 수 있는 사람이 없으니깐. 어차피 경찰들이 다 체포할 거야. 경찰이 수갑 채워서 데려오든, 작업자가 기회를 보다가 납치해오든, 아무 쪽에나 잡히면 결국 내 손에 흘러들어오게 되어있어.”

애초부터 로페즈에게 극도로 불리한 구도였다. 아무리 능력이 뛰어난 연구원이라고 해도 결국 개인이다. 시스템에 추적당할 것을 염려해 사회적인 서비스를 이용할 수도 없다. 심지어 트랜센던서는 초기 버전이라 학습이 필요한데 그 학습조차 대규모 설비가 없으면 완료할 수 없다.

그리고 이제는 로페즈의 위치까지 특정하게 되었다. 따라서 화이트홀 그룹, 페이치 회장에게 압도적으로 유리한 상황이 된 것이다.

한쪽에선 경찰들의 포위망이,

다른 한쪽에선 작업자들의 포위망이 좁혀진다.

로페즈가 빠져나갈 길은 어디에도 없다. 압도적인 힘의 격차 앞에 저항조차 무의미하다. 따라서 페이치는 확신한다. 곧 좋은 소식이 들려올 것이라고.

“그 좁은 땅 안에서 도망쳐봐야 소용없지.”

***

“도망칠 수 없는 상황이 됐어.”

빠져나갈 길이 없다. 그동안 줄곧 우려했던 화이트홀의 공권력 개입이 시작될 징조가 보인다.

지난밤에 이 구역에서 폭발 사고가 발생했다. 폭발 현장이 된 공장에서 대량의 마약 성분이 검출되었다고 한다.

사실 이런 범죄구역을 내버려둔 정부의 입장에서 생각해봤을 때, 이런 경우엔 쉬쉬하고 조용히 넘어가는 것이 좋다.

하지만 그런 사건을 굳이 언론에 노출시켰다는 것은 역시 화이트홀의 입김이 있었다는 것으로 추측된다. 무언가 일을 벌이기 위한 명분이다.

그리고 자이칸의 주장에 따르면,

“거기는 어느 조직의 작업장도 아니었대. 이쪽 세계의 사람들 입장에서는 갑자기 엉뚱한 곳에서 마약이 발견된 거야.”

- 정황상 연쇄 폭발사고와 마약 발견은 화이트홀의 조작극일 가능성이 큽니다.

기계적인 음성이 로페즈의 귀 안에서 울렸다.

- 발생 가능성이 높은 변수를 계산한 결과가 있습니다. 관리자님은 화성 정부의 공권력 개입뿐만 아니라 화이트홀의 개별적인 청부업자들까지 경계하셔야 합니다.

귀 안에서 울리는 음성은 ‘생각’이라는 것을 할 수 있게 된 초고도의 인공지능이며, 사람처럼 말을 할 수 있게 된 트랜센던서였다.

“근미래 예측 연산은 아직 멀었어?”

- 본 컴퓨터의 자원과 취약점 있는 네트워크의 분산 자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내부 인피니티 데이터의 기술적 한계로 예상 소요 시간은 8시간 39분 15초입니다. 또한 할당된 데이터 표본이 충분하지 않아 정확한 예측은 불가능하며, 논리적인 방향성과 확률 높은 사건만 나열할 수 있음을 인지해주시길 바랍니다.

어렵다. 뭐든지 쉽지가 않다.

“하···.”

로페즈는 트랜센던서의 말을 귀로 들으며 냉장고로 향했다. 답답한 속을 냉수로 가라앉힌 후 차근차근 생각을 정리했다.

‘근미래 예측 연산은 레드샤크가 조직적으로 붕괴되었을 때···. 내가 화이트홀에게 맞설 수 있는 방법론을 제시하는 것.’

그러니까 이미 레드샤크가 붕괴할 경우라는 최악의 사태까지 상정해둔 것이다.

“트랜센던서. 지금 네 능력으로 경찰 네트워크에 흔적 없이 침입할 수 있겠어?”

- 침입은 가능하나 역탐지를 차단할 기술적 근거가 아직 제게 없습니다.

“그것부터 학습해. 근미래 예측은 조금 늦어도 되니까.”

- 알겠습니다.

“그리고 이 근방에서 사용되는 휴대전화. 전화든 문자든 세션 잡아서 하이재킹하고 싶은데.”

즉, 이 근방의 휴대전화 사용을 엿보고 싶다는 뜻이다.

- 에어 패킷을 송수신할 수 있는 추가 패널이 필요합니다.

“뭐? 말을 좀 쉽게 해봐.”

- 공기 중으로 전송되는 전파 데이터에 간섭할 별도의 단말기가 필요합니다.

“아······.”

트랜센던서는 할 수 있는 게 많은 만큼 언제나 필요로 하는 것도 많았다.

물론 그런 제약도 없이 뭐든지 이루어준다면 그거야말로 인공지능이 아닌 신이겠지만.

어쨌거나 로페즈는 늘 현실적으로 막히는 부분에서 창의력을 발휘했다.

“알겠어. 그럼 로보버그가 보는 화면들을 항상 실시간으로 분석해줘. 특정한 색깔의 복장으로 통일된 세 사람 이상이 같은 거리에서 나타나면 나에게 즉시 경고해.”

트랜센던서가 경고한 것을 눈으로 보고 경찰인지 특수부대인지 형사인지 파악하는 것은 로페즈의 몫이다.

- 조건을 재확인하겠습니다. 현재 로보버그로 감시 중인 영역에 특정 색상을 착용한 인원이 셋 이상 동시간에 식별된다면 관리자님께 경고를 보내드리는 것이 맞습니까?

아무래도 트랜센던서의 말이 너무 길다. 소통도 매끄럽지 못한 것 같다. 여전히 학습이 부족하다는 증거다.

“그래, 맞아.”

- 알겠습니다. 현 시간부로 거리의 인원식별작업과 근미래 예측 연산과 역탐지 회피 학습을 동시에 진행하겠습니다.

그로부터 3일 뒤.

트랜센던서는 토로스 구역의 경찰 네트워크에 성공적으로 침입했다. 트랜센던서는 역탐지 자체가 불가능한, 경로와 시스템에 남는 모든 기록을 없애거나 가짜 데이터를 씌우는 방식으로 애초에 들키지 않는 경이로운 해킹 기술을 구사했다.

비록 기술적인 한계로 주요 데이터가 저장된 경찰 서버나 고위들의 별도 회선까지 침입하진 못했지만, 토로스 구역 내에서의 경찰 활동은 손바닥 위에 올려놓은 것처럼 훤히 보였다.

그리고 거리마다 날벌레처럼 숨겨둔 로보버그들은 로페즈의 눈이 되어주었다.

예정대로 자이칸은 토로스 구역의 모든 조직을 레드샤크의 이름으로 제압했다. 이제는 우두머리를 잃고 와해된 조직들을 흡수하는 일만 남았다고 한다.

자이칸은 여러 작업장을 다시 고쳐 불법 사업을 재개했다. 경찰로 보이는 자들이 거리마다 간혹 나타났지만 로페즈가 그들의 모든 움직임을 자이칸에게 전달해주었다.

덕분에 조직원이 현장에서 체포되거나 작업장의 위치를 들키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그리고 또 하루가 흘렀다.

오늘도 어김없이 로페즈의 통신기기로 전화가 왔다.

“네. 자이칸 씨.”

- 로페즈 씨 맞으시죠?!

순간 심장이 철렁했다.

자이칸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누구세요?”

평소 로페즈의 통신기기로 전화를 걸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자이칸뿐이었다.

“로페즈 씨! 저희 형님이···!”

일단 다급한 목소리다.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는 목소리 같기도 하다.

“···.”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는 자다.

형님이라는 단어를 쓰는 자다.

그렇다면 아마도 레드샤크의 내부인이다.

“······누구시죠?”

“저, 로노입니다!”

레드샤크의 서열 1위는 자이칸이다. 로페즈는 서열 없이 자이칸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동업자라는 위치였고,

로노(Rono)는 서열 2위로 자이칸의 오른팔인 조직원이다.

“이 단말기 번호는 어떻게 아시고 전화 거셨어요?”

“형님이 혹시 모른다며 제게만 몰래 알려주셨습니다! 아니 그보다 지금 일이 터졌습니다!”

“네?”

무엇이 로노를 이렇게까지 몰아세우고 있다는 말인가. 레드샤크를 위협할 조직은 사라졌으며 경찰의 움직임은 모조리 꿰뚫어보고 있는데.

‘설마······.’

적대 조직과 경찰의 위협을 배제하면 남는 가능성은 단 하나다. 곧이어 통신기기 너머로 들려오는 소식은,

“개조인 새끼들이 자이칸 형님을 차로 납치했습니다!!”

그것은 처음에 가정했던 ‘최악의 사태’였다.

< 1. 문명의 그림자 (5) > 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