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대 인공지능 키우기-8화 (8/183)

< 1. 문명의 그림자 (2) >

***

“···그럼 저랑 같이 범인 좀 찾읍시다.”

뭔가 일을 함께하자는 자이칸의 말에 로페즈는 흔쾌히 물었다.

“여기 이렇게 만든 범인 말씀하시는 거죠?”

“예. 제 머리로는 도저히 어떻게 찾아야 할지를 모르겠습니다. 로페즈 씨는 뭐 생각나는 방법 있습니까?”

로페즈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적어도 자이칸은 대화라는 게 뭔지 아는 사람이었다.

“일단 좀 들어가 볼게요.”

그러면서 로페즈가 폐공장으로 향하자,

“애들아, 그 철문 좀 치워드려라.”

자이칸은 자기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이어서 그의 조직원들이 반쯤 찌그러진 철문을 억지로 떼어내 길을 열었다.

“···?”

익숙지 않은 배려에 로페즈는 의문스러운 눈길을 보냈다.

“왜요?”

“아, 아니요. 아무것도···.”

로페즈는 바닥에 떨어진 천장 파편을 밟고 올랐다. 깡통처럼 찌그러진 프린터 근처에 까만 알갱이가 어지러이 흩어져있다.

그는 알갱이를 손가락으로 만져보았다.

“이것저것 섞은 조잡한 화약이라 불완전연소 됐네요.”

“그런 어려운 말 모릅니다.”

“그러니까···. 이 화약 알갱이는 이 프린터에서 제조한 화약과 같은 종류인 것 같습니다.”

그 순간, 자이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럼···. 로페즈 씨가 만든 폭발물에도 그 화약이 들어간 겁니까?”

로페즈는 왜 그렇게 당연한 걸 물어보냐는 표정을 지었다.

“네? 네···. 다 여기서 만들었는걸요.”

“···폭발물은 스무 개를 만들었다고 들었는데, 사실입니까?”

“네. 스무 개 만들었더니 켈빈 씨가 다 들고 가시던데요.”

자이칸은 당장이라도 누굴 죽일 듯한 살기를 내뿜었다.

“씨발···. 그래···. 다 짜고 쳤다는 거지···. 처음부터 이번 일에 날 빠지게 하려고···.”

“···.”

자이칸의 부하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두 사람은 폐공장 앞으로 나왔다. 형언할 수 없는 심각한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었다.

자이칸은 타들어가는 속에 담배 연기를 또 집어넣으며 어렵게 입을 열었다.

“로페즈 씨.”

“네.”

“···형님은 그쪽이 황금알을 낳는 오리라고 하던데. 확실해요?”

“네?”

‘오리가 아니라 거위···.’

탄 냄새가 시선 사이를 누비며 두 사람의 간극을 좁혔다.

“로페즈 씨의 가치가 어느 정도냐고 묻는 겁니다. 지금.”

“그럼 과장 없이 말씀드릴게요.”

트랜센던서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저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습니다.”

“하···.”

그리고 자이칸은 담배 하나를 다 태울 때까지 말이 없었다. 무언가에 고뇌하는 모습이었다.

이번에는 로페즈가 먼저 입을 열었다.

“자이칸 씨. 저는 솔직히 베네다 씨나 켈빈 씨보다 자이칸 씨가 리더에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

“조직이라는 게 그렇잖아요. 무례한 발언일지도 모르겠지만, 솔직히 본인도 그렇게 생각하고 계시지 않았어요? 이 조직에서 일한 지 일주일 남짓한 제가 봐도 뭐가 문제인지 알겠는데요···.”

로페즈는 그렇게 말하며 자이칸의 부하들을 둘러보았다.

그들은 눈빛으로 동의했다.

자기 형님이 이런 꼴을 당해서 울분이 차오른다는 눈빛들이다.

즉, 계획대로 상황이 흘러가고 있다.

“제가 돕게 해주세요. 제 처우만 동등하게 바꿔주신다면, 자이칸 씨의 인생에 새로운 기회를 드릴 수 있어요. 진심입니다.”

“형님. 끼어들어서 죄송하지만 솔직히 이번 일은 큰형님도 켈빈 형님도 너무했습니다···.”

“맞습니다. 그리고 큰형님 성격상 제대로 해명해도 켈빈 형님이 하는 말만 들어줄 겁니다.”

“저번에 본거지에서 죽기 싫으면 제대로 해명할 준비나 하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이번 일은 진짜 형님 목숨이···”

“알았어. 알았다고. 좀 조용히 해봐.”

자이칸은 하늘을 올려다보고, 폭발 현장이 된 켈빈의 작업장을 보고, 자기 부하들을 둘러보고, 마지막으로 다시 로페즈를 보았다.

“알겠습니다. 난 그쪽이 황금알을 낳는 오리라고 믿겠습니다.”

자이칸은 더는 참을 수 없었다.

그리고 로페즈도 더는 참을 수 없었다.

“···오리가 아니라 거위입니다.”

“······그래요?”

“네.”

“···왜 그때는, 큰형님 앞에서는 아무 말도 안 했습니까?”

“그때는 죽을 것 같아서 닥치고 있었죠.”

“그럼 저는 안 무섭습니까?”

“···일단 자이칸 씨는 말이 통하는 사람이니까요. 무서운 사람과 위험한 짐승의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입과 주먹을 함부로 놀리는 양아치들. 그런 놈들 사이에서 매번 참기만 하는 진짜 무서운 사람은 다르다는 논리다. 로페즈는 이 발언으로 자이칸의 입장에 공감해주는 모습을 보이려 했다. 그리고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뭐, 로페즈 씨를 제 아래라고 생각한 적은 없습니다. 그냥 외부인 정도로 여겼지···. 제가 사람한테 사람대우는 해주는 스타일입니다.”

그런 말을 하는 본인도 폭력조직의 3인자로서 마약 제조와 살인을 일삼고 있는데, 도대체 짐승과 사람의 차이가 자이칸에겐 무엇이라는 걸까.

일단 로페즈는 사사로운 고민을 집어치웠다.

지금 자이칸이 손을 내밀었기 때문이다. 악수하자는 뜻이었다.

“이제부터는 저희끼리 동등하게 잘해봅시다. 로페즈 씨.”

동등하게.

그토록 원했던 말이다.

로페즈는 당당하게 악수에 응하며 물었다.

“좋아요. 그럼 이제부터 뭘 하시려고요?”

그때 자이칸의 인상이 사악하게 변했다.

“대충 알면서 물으시네.”

***

레드샤크의 조직원은 약 백 명이다. 반면에 그라이아이의 조직원은 이백 명 정도로 레드샤크의 두 배에 이른다.

서로가 서로의 숫자를 알고 있는 상황이다. 평소에는 사소한 영역 다툼으로 레드샤크가 밀리던 그림이 자주 나왔다. 하지만 이제는 수적으로 열세인 레드샤크가 아예 전쟁을 일으키고야 만 것이다.

부릉!

바퀴 달린 차량에 붉은 복장의 조직원들이 탑승해있다. 신호등도 없는 거리로 레드샤크의 차량이 들어섰다. 곳곳에 무리 지은 그라이아이의 조직원들이 보인다.

그들은 모두 이마에 파충류의 눈 같은 문신을 하고 있었다.

레드샤크 차량의 전 좌석에서 창문이 열렸다. 그들은 창밖으로 기관단총을 겨눴다.

“다 쓸어버려.”

타타타타타탕!!!

그라이아이의 조직원들은 갑작스레 쏟아지는 총알 세례에 쓰러져갔다. 엄폐물을 찾아 도망쳐도 쫓아오는 차량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다.

승용차의 급습 뒤에는 승합차가 도착했다. 차에서 내린 레드샤크 조직원들이 사방으로 퍼지며 이마에 눈 문신이 있는 자들을 무차별적으로 살해했다.

간혹 권총을 소지한 사람이 나타나 반격했지만, 레드샤크는 이미 모두가 기관단총으로 무장한 채였다.

탄피가 떨어질 때마다 시체가 쌓였으며 시체가 쌓일 때마다 피가 쏟아졌다.

그렇게 거리는 점차 레드샤크의 붉은색으로 물들어갔다.

그라이아이의 온갖 작업장은 총알 세례를 받아 제압당했으며 벽돌 모양의 폭발물에 의해 폐허가 되었다.

“그라이는 어디에 있지?”

“모릅니다···! 전 정말로 모른다고요!”

“모르면 죽어야지.”

타타타타탕!

켈빈은 제압한 작업장에서 적대 조직원들을 심문했다. 작업장의 가운데에 그라이아이 조직원들이 무릎 꿇은 채 모여있고, 그런 이들을 기관단총으로 무장한 레드샤크 조직원들이 둘러싸고 있는 형태다.

“정말 아는 사람 없어? 여기는 너무 말단인가?”

“저희는 여기서 약만 찍어내는 사람들이고요···! 두목이랑 접점은 거의 없는···”

타타타탕!!!

켈빈이 자비 없이 방아쇠를 당기면 앞에 무릎 꿇은 사람의 전면이 총알에 터져나갔다. 그 모습이 마치 사람으로 고기를 다지는 것 같기도 했다.

시끄러운 총성과 함께 고깃덩이가 된 시체는 견딜 수 없는 공포감을 조성했다.

철컥!

켈빈은 기관단총을 재장전했다.

“마지막이다. 아는 놈이 정말 하나도 없으면···. 더는 이러고 있을 필요가 없지.”

이번에는 다 죽일 것이라는 협박이었다.

그러나 기다리고 기다려도,

끝내 대답하는 사람은 없었다.

“제발 쏘지 말아주세요···!”

“내가 왜?”

그는 빗자루 쓸 듯, 기관단총을 좌우로 움직이며 방아쇠를 꾹 당겼다.

그 뒤에 남은 것은 처참한 시체 더미와 피 웅덩이 위에 굴러다니는 탄피뿐이었다.

“첫날부터 제대로야 아주.”

“그런 것 같습니다.”

“가자. 오늘은 이쯤 하면 됐겠지.”

오후 8시 40분.

가로등도 별로 없는 거리는 어둑어둑했다. 켈빈과 부하들은 차량 세 대를 끌고 레드샤크의 본거지를 향해 출발한다.

그런 차량 행렬을 가로등 위의 로보버그가 지켜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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