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문명의 그림자 (1) >
***
부하들과 자이칸을 험담하는 것은 켈빈의 일상이다.
“아··· 하여간 그 새끼 마음에 안 들어.”
“자이칸이요?”
“어제도 조직을 위한 일이니 뭐니 개염병 떨면서 참견하다가 형님한테 깨졌잖아.”
켈빈은 탁자 위에 올려둔 권총을 손에 들었다. 현장에 나가지 않는 그는 방아쇠를 한 번도 당겨본 적이 없다. 그래도 총을 만지는 것 자체는 익숙했다.
“화성에서는 주먹보다 머리 아니겠습니까.”
“내 말이. 누구 멱따는 것밖에 할 줄 모르는 사이코 새끼가 꼴이 아주···. 같은 식구인데도 죽여버리고 싶다니깐. 아주 옛날부터 마음에 안 들었어.”
켈빈은 권총을 벨트에 끼우고 문으로 향했다. 낡은 소리를 내는 나무문을 밀치고 나가니 콘크리트 복도에 부하들이 늘어서 있다.
“그동안 작업장에서 만든 물건들 좀 가지러 가자.”
***
- 오셨습니까! 형님!
“오늘은 표정이 좋네? 로페즈 씨.”
“네.”
“이 일에 적응이라도 했나 봐?”
“···그런 것 같습니다.”
“좋은 일이잖냐. 넌 우리한테 보호받을 수 있고, 우리는 보호비라는 명분으로 수당 없이 널 굴릴 수 있으니까.”
로페즈는 늘 그래왔듯 이번에도 굽신대며 웃어 보였다.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하.”
“새끼···. 입에 발린 소리는 잘하네.”
켈빈은 자기 부하들을 시켜서 공장의 한쪽 구석에 쌓여있는 상자들을 바깥으로 옮기게 했다.
한창 작업 중이던 로페즈는 켈빈 쪽으로 고개만 돌리며 물었다.
“이제 수거하시는 건가요?”
자연스럽게 뻔한 질문을 날렸다.
“보면 모르냐?”
“아···. 그게···.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어서요.”
“뭔데?”
설계의 첫 단추다.
“저번에 이 프린터에 남는 재료를 다 소모하도록 하라고···. 그렇게 전달받았는데요.”
“어. 그랬었지.”
“아직 재료가 조금 남아서···. 특히 화약이 많이 남았는데 혹시 제가 구상한 걸 좀 만들어봐도 될까 싶어서요.”
“구상? 뭐 생각한 거라도 있냐?”
로페즈는 켈빈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침을 꿀꺽 삼켰다.
“폭발물입니다. 사제폭탄이요.”
“···수류탄 같은 거라도 만들겠다는 말이야?”
“네. 남은 재료로 비슷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많이는 못 만들겠지만···.”
말끝을 흐려서 상대방의 질문을 유도했다.
“그럼 몇 개나 만들 수 있는데?”
로페즈는 앞으로 만들어질 폭발물의 개수를 강조하기 위해 한 박자를 쉬고 말했다.
“정확히 스무 개입니다.”
“좋지. 당장 만들어.”
그리고 몇 시간 뒤, 본거지에 도착한 레드샤크 조직원들은 베네다 앞에 무기상자를 차곡차곡 쌓았다.
“대충 이 정도인가.”
켈빈은 어깨를 으쓱하며 자신의 공로를 자랑했다.
“웬만한 애들한테 다 나눠주고도 남을 겁니다. 그리고 재료가 남길래 폭발물도 좀 만들어보라고 시켜봤죠.”
“오! 역시 켈빈이야.”
그러는 와중에 자이칸은 켈빈의 부하들이 가져온 폭발물 하나를 꺼내 보았다. 그 형태가 검은 테이프를 감은 벽돌과 굉장히 흡사하다. 다만 무게는 벽돌보다 훨씬 가볍다.
“이건 어떻게 터뜨리는 건데? 버튼도 없고···.”
“그걸 질문이라고 하냐? 불이 붙거나 강한 충격을 받으면 터지는 거지. 위험한 거니까 함부로 만지지 마.”
“···.”
자이칸은 눈가를 한 번 꿈틀대며 켈빈을 노려보고는 폭발물을 도로 상자 속에 집어넣었다. 이에 켈빈은 그에게만 냉소적으로 웃어주며 고개를 돌렸다.
“아무튼 형님, 이제 준비는 끝났습니다. 기껏해야 권총 몇 자루밖에 없는 그라이아이 새끼들, 빨리 쓸어버리죠?”
베네다는 흡족한 얼굴로 켈빈의 어깨를 두드렸다.
“오래 끌 거 있나. 내일 날이 밝으면 사냥을 시작하자고. 애들 전부 이쪽 본거지로 오라고 해.”
***
로페즈는 이번 새벽에도 컴퓨터를 붙들고 있다. 화면에는 로보버그가 송출하는 폐공장의 모습이 나타나고 있었다.
‘관찰 3일째···. 계속 같은 패턴이다.’
켈빈의 프린터 작업장은 별도의 야간 경비가 없었다. 특히 오늘은 주변을 배회하는 조직원 무리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 오래 끌 거 있나. 내일 날이 밝으면 사냥을 시작하자고. 애들 전부 이쪽 본거지로 오라고 해.
도청한 정보에 따르면 이번 새벽이 지나고 해가 뜨자마자 전쟁을 시작할 것 같다. 그래서 여러 장소에 포진해있던 조직원들이 본거지로 몰려간 것이다.
‘절호의 기회다.’
「3번 로보버그 화면 출력 중...」
>3번 로보버그 화면에 관리자 이외의 인원이 감지될 경우, 4번 로보버그로 신호를 보내. 타입은 진동.
「명령을 해석했습니다.」
「알겠습니다.」
로페즈는 로보버그 하나를 자기 목덜미에 붙였다. 이게 4번 로보버그다.
아까 집으로 돌아오면서 거리에 버려진 비닐봉지와 옷가지를 주워왔다. 그는 비닐봉지에 폭발물 다섯 개를 집어넣고 찢어진 옷가지를 몸에 걸쳤다.
나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화장실 거울을 보니 딱 노숙자 행색이다.
그는 절뚝이는 걸음걸이로 폐공장까지 왔다. 목덜미에 붙은 4번 로보버그는 아직 잠잠하다.
녹슨 쇠지레.
평소에 눈여겨보았던 도구가 폐공장 근처에 며칠째 떨어져 있었다. 다행히 아직도 누가 주워가진 않았다.
끼기긱··· 캉!
공장의 철문을 억지로 열고 들어왔다.
그는 이 작은 공간을 이루는 기둥 네 개에 폭발물을 하나씩 붙였다. 그리고 남은 하나는 프린터 위에 올렸다.
이대로 빠져나가서 폭발시키면 그건 초짜다. 아직 이 상황에서 이득 볼 일이 더 남아있다.
위이이잉···
프린터의 전원을 올려 능숙하게 조작한다. 설계도가 담긴 칩을 프린터에 삽입한다.
그대로 물건들을 뽑아냈다.
소음기, 사제 권총, 총알, 급조한 휴대전화, 추가로 로보버그 5기까지 출력시켰다.
소음기는 원리가 간단해 시중에서 판매되는 모델과 비슷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사제 권총은 공개된 설계도가 없어서 이론적으로 만들었다. 복잡한 원리도 아니니 아마 잘 작동할 것이다. 총알과 로보버그는 기존의 설계도로 뽑아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급조한 휴대전화.
사실 휴대전화라고 하기에도 부족함이 많은 통신기기다. 직접 손가락에 힘을 주어 눌러야 하는 원시적인 버튼이 면적의 70%를 차지하며, 나머지 30%를 작은 화면이 차지하는 물건이다. 그마저도 투명한 재질의 형상기억합금과 플라스틱을 섞어 만든 화면이라 깨끗하지 못하다.
‘···그래도 이 정도면 됐어.’
하드웨어가 이래도 소프트웨어는 트랜센던서가 될 것이다. 방 밖에서 트랜센던서를 활용할 수 있다는 이점은 무궁무진할 테니.
20분도 전원을 유지하지 못하는 통신기기를 켜보았다. 아직 설치된 시스템이 없어 전기가 통하는 고물이나 마찬가지지만, 일단 제대로 불이 들어오긴 한다.
그는 폐공장의 철문을 활짝 열어놓고 밖으로 나왔다. 이어서 급조 권총을 공장 안에 겨누었다.
그대로 방아쇠를 당겨보았다.
투확···.
팅!
프린터 위에 있는 폭발물을 맞추려고 했는데 역시 쉽지 않다. 한쪽 눈을 실명해서 더 어려운 감도 있다.
투확···.
에너지 계열의 화기가 상용화된 오늘날, 소음기가 달린 화약 무기의 소리는 현실에서 접하기 어렵다.
‘퓩퓩, 이런 소리가 날 줄 알았는데.’
소음기가 내는 소리는 게임이나 영화에서 듣던 것과 달리 깔끔하지 않았다. 굳이 표현하자면 누군가 곡물 주머니를 강하게 내려치는 듯한, 그런 이상한 소리가 났다. 그리고 생각보다 소리가 크기도 하다.
아무튼 총알은 많다. 비닐봉지에 가득 채워놨다.
투확···.
투확···.
로페즈는 정자세로 일곱 발을 쏘고 나서야 프린터 위의 폭발물을 맞췄다.
콰아아아앙!!!!!!!!
그 즉시 폭발이 일어났다. 눈앞에서 파괴가 벌어지는 상황에 저절로 다리가 떨렸다.
‘움직여···. 움직여···!’
그는 미리 외워둔 도주 경로를 통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전력 질주했다.
다행히 목덜미에 달라붙은 4번 로보버그는 로페즈가 자기 방의 문고리를 잡았을 때가 돼서야 진동했다.
「음성이 감지되었습니다.」
>Y
- 그라이아이 새끼들이 분명합니다!
- 맞아요! 얍삽하게 기술자나 작업장만 노리는 꼬라지가 딱 그렇습니다!
- 아주 개새끼들입니다! 한두 번도 아니고···!
오늘 있었던 일은 영원히, 그 누구도 모를 것이다.
***
모든 것이 침울하게 가라앉은 새벽.
콰앙!!!!!!
아무도 없는 폐공장이 폭발했다. 곧이어 붉은 복장으로 통일된 조직원들이 어디선가 헐레벌떡 뛰쳐나왔다.
그들은 모두 날붙이나 기관단총을 손에 들고 있었다. 적대 조직의 기습이라고 여겼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