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대 인공지능 키우기-3화 (3/183)

< 0. Prolog. 결실을 품고 도주하다 (3) >

***

낙후된 지역에 내려앉은 새벽의 고요함이 음산하다. 낮은 건물들은 하나같이 허름하고 거리에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 이따금 시야 한편으로 스치는 골목길에는 노숙자나 무언가의 중독자로 보이는 부랑자들이 드문드문 있다.

로페즈의 초췌한 몰골도 거리에 내앉은 그들과 별반 다를 바 없었다. 부분적으로 드러난 두피, 흉하게 벗겨진 피부, 하얗게 변한 왼쪽 눈, 피딱지, 역한 냄새. 그의 몸을 표현하는 것들이다.

“계십니까···.”

이윽고 그는 낡은 가게의 철문을 두드렸다. 온몸에 힘이 없어 목소리를 내는 것도 벅차다.

“계십니까······.”

불 꺼진 가게의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것은 잡동사니들이다. 산업현장에서 쓰이는 도구나 작은 기계들이 진열되어있다.

로페즈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지나가는 차량도 사람도 없는 거리에 감시카메라조차 없다. 홀로그램 표지판도 없고 빛을 내는 신호등도 없다. 드론도 없고 치안유지로봇도 없다. 원시적인 가로등, 신호등, 불 꺼진 건물들.

정말 이곳이 인류의 중심 행성, 화성이란 말인가.

“계십니까···.”

그렇게 한참을 문 앞에 서성이고 있으니 자다 깬 노인이 나타났다.

“누구셔? 이 새벽에···.”

“죄송합니다···. 부탁이 좀···”

아마 노인에겐 최악의 첫인상이었을 것이다.

“웬 약쟁이 놈이···. 저리 안 꺼져?”

노인은 로페즈의 몰골을 확인하고는 마음의 문과 가게의 문을 닫으려 했다.

“자, 잠시만요···. 제발···.”

로페즈는 닫히던 문틈에 팔을 밀어 넣었다. 그는 절박했다.

“이놈! 총 맞고 싶어? 네놈도 내가 늙었다고 얕잡아보는 거지?”

“아닙니다···. 그게 아닙니다···.”

털썩···!

끝내 로페즈는 처음 보는 노인 앞에서 무릎을 꿇고 말았다. 한평생 노력하며 대기업의 연구팀 팀장이라는 위치에 올라 나름 성공했던, 단 한 번도 누군가의 앞에 무릎 꿇어본 적이 없는 그였다.

비굴하게 저자세로 나오는 그의 모습에 노인의 고집이 한풀 꺾이고 말았다.

“약이 필요하면 약국이라도 털어보든가, 왜 이 시간에 내 가게에서 행패질이여?”

“저는 마약중독자가 아닙니다.”

“그럼? 알코올이여? 나이도 제법 있어 보이는 사람이···”

“그것도 아닙니다···. 저는 그냥···. 물건이 좀 필요해서 그렇습니다.”

‘물건’이라는 단어에 노인은 경계심을 높였다.

“······양아치 갱단이여?”

로페즈는 무릎을 꿇은 채 손사래를 쳤다.

“아닙니다···! 저는 올림푸스 UN, 수, 수도에서 온 사람입니다. 여기 사람이 아닙니다.”

몰골은 이래도 상류층이라는 뜻이었다. 노인은 미심쩍은 눈초리로 대하면서도 마지못해 물러났다.

“···들어와. 허튼짓하면 모가지를 따버리겠어.”

***

로페즈는 노인의 집에 있던 의약품으로 몸을 치료했다. 그래봤자 벗겨진 상처에 조직재생제와 소독제를 뿌리고 필요한 알약 몇 개를 삼킨 것이 전부지만.

“이런 동네엔 왜 왔어? 어쩌다 그렇게 다쳐서는, 사연이나 좀 들어보자. 쌈박질로 생기는 상처는 아닌데.”

“···죄송합니다. 자세한 건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총 맞고 싶어?”

“···.”

로페즈는 일단 지갑을 꺼냈다. 그대로 신분증을 보여주려다 멈칫했다.

‘···난 지금 쫓기는 몸이다.’

그래서 신분증 대신 카드를 꺼내어 노인에게 보여주었다. 로페즈의 온라인 계좌와 분리된 잔금이 카드에 표시되어 있었다.

「오프라인 카드」

「21만 1200크레트」

중소기업의 신입사원 월급이 20만 크레트 정도다. 노인은 오프라인 카드에 어울리지 않는 엄청난 액수를 보고 살짝 놀라더니,

“젊은 사람이 카드도 들고 다녀? 요즘엔 다 휴대전화로 한다더니만.”

다른 쪽으로 꼬투리를 잡았다.

“휴대전화 분실을 대비해서 평소에 하나 들고 다녔습니다. ···지금처럼요.”

“휴대전화는 잃어버렸어?”

“예···.”

“어쩌다가?”

도망치다가 하수도에 빠뜨렸다.

“그것도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숙이자, 노인은 어째선지 숙연해졌다. 로페즈의 초라한 몰골은 노인은커녕 어린아이도 제대로 못이길 것 같은 불쌍한 행색이다.

“···쯧쯔. 이 얼마나 흉흉한 세상이여. 어쩜 시간이 흐를수록···.”

노인의 선심을 얻어낸 것 같다는 생각에 로페즈는 다음 부탁을 입에 올렸다.

“가게의 물건들과 컴퓨터를 좀 쓰고 싶습니다. 이용비는 지불하겠습니다. 만약 제가 수상한 짓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면 총을 쏘시든 경찰을 부르시든, 보시다시피 저는 어르신께 저항할 힘이 없는 몸입니다. 그러니까···.”

“물건 훔쳐 갈 생각이었으면 문 앞에서 사람 찾지도 않았겠지. 나는 잘 테니 알아서 해봐요. 계산은 내일 아침에 하고, 잠은?”

“감사합니다. 잠자리는 괜찮습니다.”

“그러던지. 그리고 보면 알겠지만, 나 잠귀가 밝은 사람이야. 자네한테 뭔가 아픈 사연이 있다는 건 알겠는데, 선심 써주는 늙은이한테 허튼짓은 하지 말라고.”

“네. 정말 감사합니다.”

노인이 방에 들어간 직후 로페즈는 카운터 위에 설치된 컴퓨터를 켰다. 본체, 마우스, 키보드, 모니터가 전부 유선으로 연결된 구식 컴퓨터였다.

그다음엔 자잘한 작업을 진행했다. 가게에 있는 잡동사니 중 필요한 것을 가져와서 새로운 물건을 만드는 것이다.

전자석, 구리 선, 연산장치 등을 카드 리더기에 땜질로 연결했다. 인터넷에서 코딩 프로그램을 내려받아 즉석에서 프로그래밍했다. 두 시간에 걸쳐 열심히 손가락을 놀린 결과, 리더기 위에 올려둔 카드의 정보가 조작되었다.

로페즈는 조작한 카드를 한 번 떼었다가 다시 리더기 위에 올렸다. 그러자 모니터로 카드 정보가 출력됐다.

「고객명: (null) 고객ID: (null)」

「업체명: (null) 업체ID: (null)」

「결제금액: 1만 크레트」

「마지막 결제일: (null)」

「오류: 고객 정보를 불러올 수 없습니다.」

「오프라인으로 설정된 카드입니다.」

‘기록이 남지 않는 유령 카드···.’

고등학생 때 호기심에 손장난했던 경험이 이런 식으로 도움이 되었다.

‘화이트홀이라면 공권력을 대동할 수도 있다. 내 전화, 인터넷 활동, 얼굴이나 걸음걸이까지 추적할 수 있다.’

거대한 집단의 눈을 피하기 위해선 그들의 눈이 되는 모든 것들을 조심해야 한다. 모든 카메라, 모든 감지 장치, 모든 사람을 조심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렇게 기술적으로 낙후된 지역에 들어온 것은 그나마 다행일지도 모르겠다.

로페즈는 실명된 왼쪽 눈을 연신 비벼댔다. 몸은 피로를 호소하는데 잠이 오지 않는다. 긴장 상태에서 분비된 도파민이 온몸의 신경을 깨우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혹여나 지금 눈을 붙이면, 내일이 오지 않을 것만 같다.

‘지금 쓸 수 있는 돈은 20만 1200크레트.’

‘카드를 온라인으로 전환하면 계좌에 있는 5800만 크레트를 연동할 수 있겠지만···.’

대기업의 연구팀 팀장이었던 그의 거액은 이제 눈앞에 아른거리는 보기 좋은 숫자일 뿐이다. 화성 도심이 내려다보이는 260㎡ 넓이의 아파트와 두 대의 고급 승용차가 그립다.

자신이 잘못한 것도 아닌데, 사람이 하루아침에 이렇게까지 밑바닥으로 추락할 수 있다는 말인가.

“하······.”

무거운 한숨을 내쉬어도 울분은 풀리지 않는다. 쌓여만 가는 부정한 감정이 나쁜 충동이라도 일으킬 것만 같다. 그나마 창밖의 시원한 새벽 공기가 답답한 속을 달래준다.

기사를 찾아보았다. 화이트홀에 관련된 새로운 소식은 없다. 지난밤의 일을 제대로 묻어버린 것이다. 평소에도 비밀연구소와 프로젝트에 대해선 입단속을 철저히 했으니, 연구팀은 처음부터 함정에 걸려든 셈이다.

대충 상황 파악은 끝났다.

“좋아, 해보자···. 해보자고.”

로페즈는 자기 암시를 하며 작은 칩을 꺼내든다. 그대로 트랜센던서를 구식 컴퓨터에 연결했다. 이내 커다란 명령창이 덩그러니 떠올랐다.

「트랜센던서 버전 알파 1.0」

「발견된 오류: 311건.」

“씨발 진짜···.”

기껏 고쳐놓은 버그가 무더기로 재발했다. 역시 하수도에 들어갔다 나오면서 연쇄적인 문제가 생긴 것이다. 이걸 고치려고 밤낮을 노력한 팀원들을 떠올리고 있으니 저절로 주먹이 쥐어진다.

‘하자. 해야 해. 내가 살 방법은 이것뿐이야.’

트랜센던서는 초월적인 인공지능이다. 절대적인 권한자를 따르며 권한자가 내리는 명령이라면 무엇이든지 수행한다. 그리고 무엇이든지 배울 수 있다.

그 뒤는 생각하지 않는다. 화이트홀에 복수하거나, 화이트홀을 고발하거나, 자신의 신원정보를 세상에서 지워버리거나, 아무튼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을 것이다.

「발견된 오류: 285건.」

부서진 현재에 유일한 희망이라면 트랜센던서를 키우는 것 말고 없다.

「발견된 오류: 260건.」

지금의 트랜센던서를 인간으로 따지자면 갓난아기, 혹은 그 이하일 것이다.

로페즈는 가게로 햇살이 쏟아지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코드 속에 모든 의식을 집중했다. 수억 줄의 코드지만, 이미 완성된 형태가 그의 머릿속에 있다. 3년간 몇 번이고 다뤘던 내용이다. 3년간 대부분의 시간을 이 코드 속에서 보냈다.

가난했다. 힘이 없었다. 그래서 순수함도 없이 공부했다. 청춘도 없이 노력했다. 밤낮도 없이 일했다. 자아도 없이 연구했다. 죽을까 생각도 했고 스스로 미쳐버리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인생을 달려왔다. 그 모든 인고의 시간이 결실을 보기를 희망하며 그저 삶을 투자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30대 초반에 남부럽지 않은 부유함과 고개 숙일 필요 없는 위치를 손에 쥐고 있었다. 그리고 끝내 대기업 팀장의 자리에서 경이로운 인공지능을 완성했다.

그런 막강한 인공지능을 다루는 연구팀 팀장으로서, 화려하게 성공해서, 자랑스럽게 살 수 있겠거니 생각했다. 여유롭게 펼쳐진 인생을 즐기며 30대에 여행도 가보고, 투자도 해보고, 사랑도 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이 무너졌다.

꽃이 피는 그 순간 무참히 짓밟혔다.

「트랜센던서 버전 알파 1.0」

「권한자 데이터가 필요합니다.」

- 권한자 등록은 나중에 회장님 쪽에서 알아서 하시겠지. 일단 트랜센던서를 메모리칩으로 완전히 분리해줄래?

‘좆까라 그래.’

트랜센던서를 온라인으로 전환하기 전, 오프라인으로 입력할 수 있는 ‘로페즈’의 모든 정보를 입력한다. 이름, 나이, 성별, 주소지, 심지어 그의 타자속도와 그가 자주 표현하는 문법의 미묘한 변화까지 트랜센던서는 자동으로 학습했다.

그는 모든 입력 작업을 끝낸 후 기지개를 켰다. 어깨 근육과 척추가 침대를, 뻑뻑한 안구가 어둠을 원한다.

“안 잤어?”

노인이 나왔다.

“네.”

“어이구···. 자네, 한쪽 눈이 안 보였나?”

“실명한 것 같아요.”

“병원 가봐야 하지 않겠어? 돈만 있으면 금방 고쳐줄 텐데.”

망가진 몸은 나중에 고쳐도 된다. 지금은 문명의 혜택을 제대로 이용할 수 없는 상태다. 공적인 시설과 온라인 서비스 이용은 무조건 피해야 한다.

로페즈는 다시 키보드에 손을 올렸다. 밤새 혹사당한 손가락 관절이 삐걱대는 소리를 낸다. 그리고 검지 손톱도 살짝 들려있다.

“···언제 가려고?”

“잠깐 검색해봤는데 이 근처에는 호텔이 없더라고요.”

“호텔? 이런 동네에서 뭔 호텔을 찾고 있어?”

“어디 지낼만한 곳이 없을까요?”

“···몰래?”

노인이 눈을 게슴츠레 뜨며 물었다. 로페즈는 씁쓸한 미소로 대답한다.

“네. 숨어 지낼만한 곳이요.”

“이 앞에 나가면 사거리가 있을 거여. 거기서 ‘토로스’ 길로 조금 가다 보면 오래된 연립주택 단지가 있긴 한데. 거기엔 양아치 갱단 놈들이 많아서···. 이를 어쩌냐. 이 동네가 원체 그런 동네라 지낼 곳이 그런데 말고는 마땅치 않은데.”

‘조직폭력이 점거한 지역인가. 그냥 도태된 산업지역인 줄 알았는데···.’

가까이서 보기 전까지는 몰랐다. 가끔 도시의 높은 창에서 멀찍이 내다본 산업지역의 실상을.

“이만 가보겠습니다. 몇 가지 물건을 좀 썼어요. 넉넉하게 1만 크레트 계산해놨고요.”

“올림푸스로 안 돌아가는 거여? 자네는 원래 거기 사는 사람이라며?”

“네. 그건 좀···.”

“안 돌아가? 험한 동네인데.”

“괜찮아요. 아무쪼록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몸조심해. 여기 진짜로 총 맞는 동네니까는. ···내 아들이 살아있었으면 딱 자네 나이였겠어. 총 조심해. 진짜로 하는 말이야.”

‘선심 써주신 이유가 그거였나. 얼마나 위험한 동네길래···.’

“네. 조심하겠습니다. 어르신도 건강하세요.”

그러면서 로페즈는 컴퓨터 본체에 손을 뻗었다. 그가 메모리 칩을 뽑기 직전, 화면에는 새 출발을 알리는 문구가 있었다.

「트랜센던서 버전 알파 1.0」

「발견된 오류: 0건.」

「권한자 등록 완료.」

「내부 배열 출력:

반갑습니다. 관리자님.

현재 트랜센던서는 오프라인 상태입니다.

첫 번째 초기 기능이 탐색되었습니다.

...네트워크 활보를 허용하시겠습니까?

>bp f ‘대기해’ -1;

??문자열을 확인했습니다.

??내장된 사전을 열람합니다.

########...

미등록 명령을 해석했습니다.

미등록 명령을 학습했습니다.

초기 상태로 대기하겠습니다.

...

반갑습니다. 관리자님.」

로페즈는 노인과 작별 인사를 하며 가게를 나왔다.

‘일단 지낼 곳을 찾고, 그곳에 트랜센던서를 제대로 안착시켜야 한다.’

모자를 푹 눌러쓰고 칙칙한 색의 겉옷을 걸쳤다. 그리고 고개를 떨군 채 절뚝이며 걸었다. 비참한 몰골이지만 이런 상황에, 이런 환경에 이보다 적합한 위장 방식이 없을 것이다.

초월적인 인공지능.

가장 기초적인 준비는 끝났다.

‘근데 처음엔 뭐부터 가르쳐야 할까···.’

< 0. Prolog. 결실을 품고 도주하다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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