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림 그리는 마법사-185화 (185/197)

그림 그리는 마법사 - 18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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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에게 세계미술 시장을 향한 도전의 해가 될 2022년이 힘차게 솟아올랐다.

시골 부모님 집을 다녀온 강수는 북한산에서 마나수련을 마치고 작업실로 출근했다.

작업실에는 고원철과 서혁중이 어김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문 열리는 소리를 듣고 자리에서 일어난 고원철과 서혁중이 큰 목소리로 강수에게 새해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선배님, 올해는 뉴욕 개인전을 시작으로 세계에 명성을 떨치는 원년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하. 고맙다. 두 사람도 새해 복 많이 받고, 뜻하는바 모두 이루고, 성공적인 작품 활동하길 바란다.”

“감사합니다, 형님. 올해도 잘 부탁드립니다.”

통통한 몸집의 서혁중이 조폭처럼 어깨를 숙이며 대답했다.

고원철이 어깨를 숙인 서혁중의 뒤통수를 손바닥으로 갈겼다.

빡!

“니가 조폭이냐? 왜 새해부터 인사를 그따위로 하냐.”

“앗! 이 자식은 유머가 없어.”

“유머도 유머 나름이지. 다른 걸 개발하든지 해라. 조폭 코드를 언제까지 우려먹을 생각이냐?”

“임마, 내가 덩치가 좀 있어서 이게 어울린다고.”

피식 실소한 강수가 투덕거리는 두 후배를 두고 옷장 앞으로 갔다. 오늘부터 본격적으로 뉴욕 전시를 위한 작품 구상에 돌입할 생각이었다.

서혁중이 강수를 따라와 말했다.

“선배님, 시리즈물 검토 좀 해주세요. 드디어 다 끝냈습니다.”

“연말에 놀지 않고 작업한 모양이다?”

“강 팀장님이 3, 4권을 빨리 출간해야 한다면서 년 초에 출간 계획을 잡아놔서 놀 틈이 없었죠.”

“연말에 놀지도 못하고 수고했다.”

“놀지는 못했지만 증쇄하면서 인세 들어오니까 기분은 좋더라고요.”

“그랬냐?”

인세는 자기 몫이 크지 않아서 강수는 얼마가 입금되는지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작업복으로 갈아입은 강수가 책상으로 가며 말했다.

“그림 검토할 테니까 그림 가져와라.”

“옙!”

서혁중이 자기가 맡은 멸종동물을 지켜라 시리즈 3편 ‘사향노루’ 원화를 강수에게 건네주었다. 고원철도 작업을 끝냈는지 4편 ‘여우’를 강수에게 가져왔다.

사향노루와 여우 원화를 검토한 강수는 절로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자기가 채색한다면 전체적인 분위기가 달라지겠지만 두 후배가 작업한 그림도 각각의 개성적인 색깔이 빛나고 있었다. 서혁중은 주인공 캐릭터인 사향노루를 간결하고 대담한 붓 터치로 그렸는데 단순한 선에서 역동적인 느낌이 났다. 자기가 그렸던 ‘숲속 다람쥐 가족’ 같은 분위기가 났다. 그에 반해 고원철의 여우 캐릭터는 치밀하고 섬세한 붓 터치로 여우의 감정을 풍부하게 담아냈다.

자기가 수정하면 전체적으로 채색을 다시 해야 할 정도로 두 작품 다 개정석인 그림이었다.

‘손 볼 데가 없군. 강 팀장님에게 전화해서 인세를 변경해야겠다.’

강수는 원화를 돌려주었다.

“잘 봤다. 작품은 아주 좋아. 수정할 곳 없이 이대로 출간하면 되겠다. 그리고 인세를 조금 바꿀 생각이다.”

“네? 어떻게요?”

“고생은 너희랑 편집기획팀에서 하는데 공동저자라는 명목으로 내 인세가 과다한 것 같거든. 너희에게 8%, 편집기획팀에 8% 나눠주고 나는 9%만 받으려고 한다.”

“어, 정말이요? 우와. 감사합니다. 새해 선물 받는 것 같은데요?”

서혁중이 탄성을 터트리며 기뻐하는 데 반해 고원철은 우려의 목소리로 물었다.

“저희야 고맙지만 선배님 인세가 9%면 너무 적지 않습니까?”

“아냐. 공동저자 타이틀로 25%나 받을 수는 없어. 지금이라도 적당하게 줄여야지. 인세 문제는 내가 강 팀장님과 얘기할 테니까 너희는 퀵 불러서 편집기획부로 원화 보내라.”

“선배님 생각이 확고하면 어쩔 수 없겠네요. 알겠습니다.”

강수는 작업실로 걸어가며 강승호에게 전화했다.

신호가 끊기고 스마트폰에서 강승호의 활력 넘치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 작가님, 반갑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감사합니다. 강 팀장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편집기획팀 팀원에게 계획한 대로 모두 이루기를 바란다고 전해 주십시오.”

[하하. 알겠습니다. 이 작가님, 올해는 뉴욕에서 개인전 연다는 뉴스 보았습니다. 미리 축하드립니다.]

“이제 준비하려고 하는데 잘 될지 모르겠네요. 시리즈물 사향노루, 여우 편은 방금 검토 끝냈습니다. 퀵으로 바로 보내드리죠.”

[아, 그렇지 않아도 기다리고 있었는데 잘됐습니다. 일정에 맞춰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한 게 뭐 있어야죠. 전부 고원철, 서혁중 두 후배 작가가 열심히 한 덕분이죠. 강 팀장님, 멸종동물을 지켜라 시리즈물 인세와 관련해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오늘 시간 되시는지요?”

[시리즈물 인세요?]

“네. 계약서에 추가할 사항이 있어서요. 실은....”

강수는 좀 전에 고원철과 서혁중에게 했던 얘기를 강승호에게 해주었다.

“.... 그래서 저는 3, 4권부터 9%만 받겠습니다. 계약서를 수정할 수 있게 시간 좀 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건 저희가 너무 미안해서....]

강승호가 약간의 여운을 주며 말끝을 흐렸다.

“강 팀장님도 아시다시피 저는 인세 받지 않아도 지장 없습니다. 솔직히 저는 9%도 많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공동저자로 출간되어서 어쩔 수 없이 9% 정도는 받는 겁니다.”

[휴, 그렇게 말씀하시면 할 수 없네요. 마침 오늘 시간 있습니다. 제가 돈암동 작업실 쪽으로 가겠습니다. 언제가 좋을까요?]

“아무 때나 괜찮습니다. 오후 여덟 시 전까지 작업실로 오시면 됩니다.”

[그럼 조금 후에 출발하겠습니다. 도착해서 연락드리지요.]

“네.”

전화를 끊은 강수는 이젤을 창가에 옮겨놓고 스케치북을 가져와 이젤에 걸었다.

네 번째 개인전은 현대 문명과 도시, 도시인을 소재로 하고 초인상주의의 개념을 그림에 표현한다는 컨셉을 잡았었다. 초인상주의를 떠올리자 투팍탈을 만났던 순간과 지난 과거가 뇌리를 스쳤다.

북한산에서 하산하던 중 머리에 입은 상처를 투팍탈이 치료해 준 다음에 색채 표현에 있어 새로운 경지가 열렸다. 그 후 자기가 그린 그림은 미술 관계자와 관람객에게 호평받았고, 전시 작품은 완판되는 놀라운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첫 번째 개인전 ‘서울의 삶, 그 인상’ 전에서 서울 생활을 바탕으로 한 소시민의 삶, 인생, 희망을 작품화했다. 그때의 작품은 전체적으로 소박하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성향의 작품들이었다. 그에 반해 두 번째 개인전에서는 환상적인 요소와 초현실적인 요소가 가미되면서 색채의 표현이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띠었다. 세 번째 개인전에서는 후배와 친구들이 초인상주의라는 평가를 할 정도로 자기만의 색채를 지속해서 형성해 왔다.

세 번째 개인전 ‘기억이 들려주는 이야기’ 전이 과거에 대한 점검과 그 토대에서 새로운 방향을 찾았다면 네 번째 개인전은 현대문명의 총아 도시 문명과 도시인을 다룰 계획이었다.

네 번째 개인전 작품을 구상하기 전에 강수는 현대 미술의 흐름을 되짚어보았다.

현대 미술은 거대한 나무에서 갈라진 수많은 가지처럼 다양한 장르가 생성되어 발전해왔다.

잠깐 살펴보면 1860년대 인상주의, 신인상주의를 거처 1880년대 후기 인상주의 이후 1888년 나비파가 등장했고, 1891년 오리에가 처음으로 상징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1897년 클림트가 인간 내면을 파헤친다는 빈 분리파를 결성했고, 1905년 현실의 색 체계를 깨뜨린 야수파가 등장한다. 20세기 표현주의의 효시가 된 미술 그룹인 다리파는 1905년 드레스덴에서 E.키르히너, E.헤켈이 중심이 되어 조직하였으며, 당시 국제적으로 고조되고 있던 혁명정신을 회화상 실현하는 다리가 되고자 하는 의미에서 다리파라고 명명하였다.

1907년에는 피카소가 입체적인 여인들인 ‘아비뇽의 처녀들’을 발표하고 뜻을 같이한 브라크와 입체파를 결성한다. 1909년 마리네티가 미래주의 선언했고, 1912년 이탈리아에서 미래파가 '미래주의 선언'을 하고 정치·사회적 색채를 띤 전위예술 운동을 전개한다. 1910년 칸딘스키가 형체가 없는 추상미술을 들고나왔으며, 1911년 칸딘스키를 중심으로 청기사파가 결성된다. 1913년에는 러시아에서 기하학적 미술인 구축주의가 등장했고, 1916년 1차 세계대전으로 세상에 환멸을 느낀 화가들이 다다 운동을 전개한다. 1917년 순수 추상의 몬드리안이 반 도에스부르크, 리트펠트, 오우트(J.Oud)등과 함께 데 스틸 그룹을 창립, 신조형주의를 주창했고, 1925년엔 마송, 만 레이, 에른스트, 아르프 등이 참여한 최초의 초현실주의 전시회가 파리에서 개최되었다. 초현실주의 이후에도 추상표현주의, 모노크롬, 앵포르멜(비정형 미술) 등 수많은 장르가 현대 미술이라는 거대한 테두리 안에서 융합되어 새로운 양식의 탄생에 밑거름이 되었다.

이렇듯 미술을 비롯해 모든 예술은 시대를 관통하며 새로운 것을 추구하며 발전해 왔다. 작금의 미술은 설치 미술과 조형 미술이 주류로 각광받고 있으나 한편으로는 한동안 등한시한 전통 회화가 다시 힘을 얻고 있었다.

미술품경매 시장을 살펴보더라도 최고 경매가를 갈아치우는 작품은 여전히 전통 회화다. 2017년 11월 미국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사상 최고가인 4억 달러에 낙찰된 그림은 예수의 초상화 ‘살바토르 문디(Salvator Mundi,구세주)’다.

살바토르 문디는 경매 시작가가 1억 달러였고,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화가이자 과학자인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렸다고 알려진 작품이다.

‘살바토르 문디’가 아니어도 세계경매 역사상 최고 경매가를 기록한 작품은 대부분 회화 작품이다.

변화가 있다면 2000년을 기점으로 컬렉터들의 작품 선호도가 인상주의 작품이나 피카소와 같은 모던 페인팅 계열에서 현대미술 중심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점이다. 근대 회화와 현대 미술의 중간에 위치한 프랜시스 베이컨이나 로크 로스코, 루치안 프로이트, 이브 클레인 등의 작품은 물론이고 앤디 워홀, 잭슨 폴록, 바스키아, 게르하르트 리히터, 데이비드 호크니 등의 작가 작품 주축으로 높은 낙찰가를 형성하고 있다. 특히 데미언 허스트, 제프 쿤스, 로이 리히텐슈타인, 쩡판즈 등 현대미술 작가들이 경매 시장에서 새로운 강자로 부상하고 있다. 그들이 향후 세계 미술 시장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러한 변화의 근간에는 미술품이 감상의 차원보다는 투자 대상으로 조명되면서 수요가 급증한 데 있다. 또한 예술적 측면에서 분석한다면 그림을 눈으로 감상하는 차원에서 한발 더 나아가 촉각적인 만족감까지 얻으려는 데 있다.

한 예로 2008년 5월 크리스티 뉴욕 경매에서 약 8,600만 달러에 낙찰된 프랜시스 베이컨의 작품 는 머리로 분석하고 이해하기 전에 몸으로 느끼게 하는 촉각적인 요소를 지닌 작품이며 그러한 장치를 화폭에 배열해 놓고 있다.

어쨌든 현대 미술, 현대 예술을 선도하는 세계적인 예술가들은 작가 고유의 색깔을 작품에 융합해 자기만의 예술 세계를 창조하고 있다. 현대 미술의 흐름을 잠시 되새겨본 강수는 자기의 작품 성향이 현대 미술 흐름과는 거리감이 있다는 것을 인식했다.

그런 사실이 새삼스럽지는 않았다.

자기는 본래 전통에 충실한 회화 작법으로 작업하고 있었다. 앞으로 설치미술을 할 수도 있고, 조각을 할 수도 있지만, 당장은 아니었다. 때가 되면 다른 예술 양식을 섭렵할지도 모른다. 설치미술이나 조각, 사진도 매력 있는 예술의 한 형태가 분명하기 때문이다.

‘당분간은 물감으로 승부를 본다. 어쩌면 평생 물감을 사용할지도 모르고.’

강수는 물감을 이용해 다채로운 색채를 마음껏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좋았다. 각각의 물감을 섞어서 새로운 색깔과 감정과 의미를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투팍탈이 머리를 치료해준 이후 머릿속에서 형상화한 형태와 그것을 나타내는 색깔을 물감으로 완벽하게 표현할 수 있었다. 물감은 마치 마법의 세상으로 안내하는 재료와 같았다.

강수가 물감을 고집하는 이유였다.

네 번째 개인전은 뉴욕에서 개최한다. 뉴욕은 절대 만만한 곳이 아니다. 지금까지 자기가 해온 작업으로 뉴욕에 몰려있는 컬렉터의 관심을 끌 수 있을 지부터 의문이었다.

강수는 얼마 전에 읽었던 기사가 떠올랐다.

어느 인터뷰 기사에서 기자가 홍콩에서 열리는 아트바젤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KAM갤러리 이사에게 물었다.

-현대 미술의 트렌드는 무엇인가?

<요즘은 컬렉터 개인의 취향을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이를 중심으로 작품을 구매한다. 관람객이나 컬렉터 모두 자신만의 니즈를 탐색하는 게 유행이다. 앞으로는 이러한 경향이 두드러질 것으로 본다. 이에 따라 작품도 더욱 다양해지고 컬렉터도 시장 동향보다 자기의 주관에 따라 작품을 선택할 것으로 본다.>고 했다.

물론 미술 시장의 흐름에 대한 이러한 해석도 미술 시장의 한 단면을 얘기한 것에 불과하다.

강수는 자기 그림이 현대 미술의 주류에서 동떨어져 있다고 생각했지만 개의치 않기로 했다. 굳이 유행이나 트렌드를 따라갈 필요는 없었다. 자기 방식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이 무가치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고흐 생전에 그림이 팔리지 않았지만, 그의 그림이 무가치하지 않은 것처럼.

강수는 지금까지 방식대로 뉴욕 전시 작품을 창작하자는 결론에 다다랐다.

‘다만 한 가지. 뉴욕 전시 작품은 캔버스에 직접 물감을 칠해서 그려봐야겠어. 물감을 섞어서 만든 색을 칠하는 것하고는 채색이나 발색이 달라지겠지? 일단 작품 구상부터 해야지.’

생각을 정리한 강수는 틈틈이 구상해 놓은 몇 가지 장면을 스케치하기 시작했다.

우웅!

두 번째 스케치를 끝냈을 때 스마트폰이 진동했다.

강승호 팀장이 지하주차장에서 작업실로 올라온다는 문자였다.

‘빨리 왔네.’

강수는 연필을 내려놓고 건너편으로 갔다.

계약 당사자인 고원철과 서혁중도 자리를 지키고 있기 때문에 곧바로 계약서에 추가 사항만 삽입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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