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림 그리는 마법사-168화 (168/197)

그림 그리는 마법사 - 168회

삑삑삑삑!

작업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온 서혁중이 강수에게 걸어가며 소리쳤다.

“선배님, 선배님. 기사 봤습니까?”

작업에 열중하고 있던 강수와 고원철, 안범진이 요란을 떨며 들어오는 서혁중을 의아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어디서 불났냐? 웬 호들갑이야?”

“무슨 일인데 그러세요?”

“무슨 기사?”

“아직 못 보았군요. 저도 지하철 타고 오면서 기사 보고 알았는데 선배 그림이 온라인 경매에 나와서 낙찰됐더라고요.”

“온라인 경매? 그게 무슨 소리냐?”

“누군지는 모르지만, 선배 그림을 온라인 옥션 사이트 경매에 내놨는데 그게 낙찰된 거죠.”

“그런 일이 있었어? 어떤 그림이 경매에 나왔냐?”

“갈림길하고 DNA 남녀요.”

문득 서혁중이 눈빛을 반짝이며 세 사람을 훑으며 말했다.

“선배 그림이 얼마에 낙찰됐을 것 같습니까? 아, 참. 시작가는 갈림길이 오천만 원, DNA 남녀가 팔천만 원이었습니다.”

“이야, 시작가도 엄청나네요.”

안범진은 탄성을 질렀고, 고원철은 눈을 둥그렇게 떴다.

강수가 빙긋 미소 지으며 물었다.

“글쎄? 얼마에 낙찰됐냐?”“한번 맞춰볼래요.”

고원철이 인상을 썼다.

“야, 우리가 점쟁이도 아닌데 그걸 어떻게 알아. 그냥 말하면 되지.”

안범진이 킥킥대며 서혁중에게 응해주었다.

“큭큭. 혁중 선배님은 장난스러운 데가 있어서 그냥은 말 안 하죠. 제가 맞춰보죠. 갈림길은 일억오천, DNA 남녀 같은 경우 한 이억은 되지 않았을까요?”

고원철이 마지못한 얼굴로 서혁중의 장단에 맞췄다.

“저번 전시회에서 호당 이백팔십만 원이었고, DNA 남녀는 100호니까 범진이 말대로 이억 정도는 받을 만한 것 같다.”

“이억?”

서혁중이 고원철의 어깨에 손을 턱 하니 올리더니 별안간 한숨을 푹 내쉬었다.

“어휴- 우리가 실수했지.”

“우리가 실수? 뭔 소리냐?”

“알바비를 작품으로 받을 걸 괜히 돈으로 받아서 너무 아쉽네. 아니, 전시 오픈했을 때 한 점이라도 사 놓는 건데 아무 생각 없었으니 우리가 미련했다고.”

“그, 그래?”

“원철아, DNA 남녀는 삼억이천이백, 갈림길은 이억구천삼백에 낙찰됐다. DNA 남녀는 이천만 원에 불과했는데....”

“헉! 정말이냐?”

“와, 그러면 저번 단체전에서 팔렸던 그림보다 호당 가격이 더 높아졌네요?”

“물론이지. 선배님, 갈림길은 몇 호짜리 그림인지 기억나세요?”

“음, 아마 50호일 거야.”

“그러면 갈림길은 호당 오백팔십 정도네요.”

안범진이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 DNA 남녀는 호당 삼백이십. 갈림길 호당 오백팔십. DNA 남녀하고 갈림길 호당 가격 차이가 상당히 큰데요. 무슨 이유로 이렇게 많이 차이 나는 거죠?”

서혁중이 혀를 차며 그 차이를 설명해 주었다.

“인마, 같은 작가 작품도 여러 요인 때문에 가격은 천차만별이란 걸 뻔히 알면서 묻냐? DNA 남녀 같은 경우 실크스크린 인쇄로 15개를 복제해서 그림은 똑같고 채색만 달라. 아마 그래서 가격이 좀 낮은 거 같다.”

안범진이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 에디션처럼 똑같은 그림이 15점이라 100호 대작인데도 갈림길보다 낙찰가가 훨씬 낮은 거군요.”

“에디션 요소가 있긴 하지만 채색이 달라서 에디션 작품은 아냐. 어쨌든 그림이 같아서 가격에 영향을 미치긴 하겠지.”

서혁중이 팔을 들어 이젤을 가리키며 강수에게 물었다.

“선배님. 범진이하고 다린이가 어시스트하고 있는 저 작품, 뉴욕 경매에 출품할 예정이죠?”

“어, 그래.”

“출품가는 정했고요? 얼마에 내놓을 건가요?”

강수는 서혁중이 출품가 묻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온라인 경매에서 두 작품이 높은 가격에 낙찰된 만큼 크리스티 뉴욕경매에 출품할 작품 가격도 그 수준에 맞춰야 한다는 뜻일 것이다. 일단 강수는 얼마 전에 생각해 두었던 출품가를 말해주었다.

“십만 불 정도 예정하고 있는데 너희들이 생각하기엔 어떤 거 같냐?”

“네? 십만 불이요?”

고원철이 미간을 좁혔다.

“시작가 십만 불이면 우리 돈으로 일억천칠백. 선배 그림이 경매회사도 아니고 온라인 경매에서 삼억 대에 낙찰됐는데 이건 너무 낮은 시작가 아닌가요?”

서혁중은 아예 펄쩍 뛰면서 반론을 폈다.

“선배님, 정말 십만 불은 너무 낮은 가격입니다. 뉴요커가 선배님을 아는 것도 아니고, 그러다 십만 불에 낙찰되면 엄청 손해 아닙니까? 사실 금전적인 손해만 입으면 오히려 괜찮죠. 문제는 강수 선배님이 홍콩과 우리 미술계에서 쌓아 올린 명성이 무너질 수도 있고, 지금까지 형성된 그림값이 급락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러면 상당히 심각하죠.”

“정말 그런 상황이 발생하면 혁중이 말대로 그림값이 급락할 수 있죠. 선배님, 뉴욕 미술계에 서둘러 진출할 게 아니라 개인전을 먼저 열고, 인지도를 쌓아서 단계적으로 진출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요?”

고원철의 말에 강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두 후배의 의견을 냉철하게 생각해 보았다.

단체전을 열 때 호당 가격에 대해 장영봉에게 문의한 적이 있었다. 그때 기존 컬렉터를 배려해야 한다는 장영봉의 조언이 떠올랐다.

뉴욕은 세계 미술시장을 선도하는 도시다. 소더비와 크리스티는 뉴욕에 본사를 둔 세계 최고의 경매회사다. 크리스티에서 개최하는 뉴욕경매에 작품을 출품하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하지만 이번 단체전에서 호당 280만 원에 판매했고, 온라인 경매의 낙찰가로 판단할 때 장영봉의 조언처럼 자기 그림을 소장하고 있는 컬렉터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더구나 작품 활동 기간으로 치면 자기는 미술계에 명함도 내밀지 못하는 신인이다. 실력이 받쳐주긴 했지만, 어떻게 보면 억세게 운이 좋아 단시간에 주목받는 작가가 되었고, 막대한 수입을 올렸다.

또한 자기 그림을 인정해 준 곳은 한국과 홍콩이지 미국이 아니다. 서혁중과 고원철의 말처럼 뉴욕 컬렉터가 자기를 알 리 없다. 단색화의 열풍과 함께 한국 화가의 위상이 높아지기는 했지만, 세계 미술계를 선도하는 뉴욕에서 자기는 무명화가일 뿐이다.

홍콩경매처럼 뉴욕의 컬렉터가 자기 작품을 낙찰받겠다고 경쟁한다는 것은 헛된 기대다.

크리스티 측의 경매 제안을 받았을 때는 딱히 잃을 것이 없었기 때문에 흔쾌하게 수락했다.

하지만 이번 단체전의 판매가와 온라인 경매로 인해 상황이 바뀐 것 같았다. 강수는 크리스티 뉴욕경매에 관해 정영봉을 비롯해 전문가의 조언을 구해서 재고해야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

-이강수 연타석 홈런 행진

-이강수 그림값의 거침없는 상승세는 어디까지인가?

<몇 년 전 경매에서 이중섭의 ‘아이들’이라는 2호 크기의 작품이 3억1천만 원, 박수근의 ‘노상’이라는 3호 크기가 5억2천만 원에 낙찰되었다. 이 소식을 접한 사람들은 무슨 그림값이 저렇게 비싸냐고 경악했고, 그림의 가치가 어떻게 형성되는지 잘 모르는 일반인들은 작품 가격이 너무 비싸지 않으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일반인의 이런 반응을 접하면서 과거에 읽은 어느 작가의 에세이 한 구절이 떠올랐다.

“우리 사회가 어려웠던 시절에도 그림 사는 사람이 있었다. 지금은 풍요로운 시절인데도 그림 사는 사람이 많지 않다.” 이 말은 그림값이 비싸고 싸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림을 꼭 소유하겠다는 사람에게는 가격이 그다지 문제 되지 않다는 얘기이다.

대부분 예술가는 돈을 목적으로 예술의 길을 걷지는 않는다. 만약 돈을 인생의 목표로 삼았다면 미래가 불투명한 예술가의 삶을 포기하고 다른 길을 갔을 것이다. 하지만 젊음과 열정을 투자해서 평생 창작 활동에 매진해도 일부 작가 말고는 금전적인 보상을 받지 못한다. 그것이 현대를 살아가는 예술가의 열악한 현실이다. 특히 젊은 예술가는 어느 정도 이름이 알려질 때까지 무명의 긴 세월을 견뎌내야 한다.

하지만 젊은 화가 이강수는 우리 사회의 열악한 현실을 초월한 듯한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9월에 열렸던 두 번째 개인전에서는 75점의 작품이 완판되는가 하면 11월에 열린 단체전 ‘희망을 던져라’ 전에 출품한 그림 50점도 순식간에 팔려나갔다. 그림 50점의 판매액은 18억 원에 이른다. 그리고 며칠 전 온라인 경매에서 그의 작품 갈림길, DNA 남녀가 각각 2억9천3백만 원, 3억2천2백만 원에 낙찰되었다.

갈림길 같은 경우 호당 가격으로 계산하면 약 580만 원인데 이는 한국의 생존 화가들 가운데 거의 최고 수준이다.

이강수 그림의 가격 상승세를 보고 있으면 한국 미술 시장이 좁다고 느껴진다. 이제 이강수 화가의 세 번째 개인전 ‘기억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12월 8일, 인사동 선암갤러리에서 개최된다. 이번  ‘기억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전시하는 출품작의 호당 가격은 6백만 원이다. 이강수 화가의 그림값이 얼마나 더 오를지 궁금할 지경이다.

어린 시절 개울에서 잡아 유리그릇에 옮겨놓았던 물고기, 들녘 어딘가에서 날아온 씨앗이 깨진 항아리 화분에서 핀 꽃, 처마의 둥지에서 우는 새끼 제비 등 그가 그림을 통해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궁금한 독자는 선암갤러리에서 확인해보자.>

김화영([email protected]) 저작권자 © 예술저널21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강수의 갈림길과 DNA 남녀 두 작품이 온라인 옥션에서 3억 원 대에 낙찰됐다는 소식은 인터넷 매체를 통해 빠르게 기사화되었다. 두 번째 개인전 이후 이강수에 대한 관심이 사그라질 즈음 터진 새로운 소식은 이강수를 다시 실검에 등장시켰고, 덩달아 12월에 열리는 세 번째 개인전이 인터넷상에서 핫이슈로 떠올랐다.

이슈에 민감한 기자들은 이강수의 세 번째 개인전이 12월 8일 선암갤러리에서 열리며 호당 그림 가격이 6백만 원이라는 사실을 알렸다.

이강수의 세 번째 개인전과 호당 6백만 원이라는 그림 가격은 네티즌에게 ‘졸업반 아이들’ 7억 낙찰가 못지않은 관심과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호당 그림 가격 6백만 원은 한국의 생존 작가 가운데 수위를 다투는 높은 가격이었다. 이강수의 놀라운 그림 가격이 기사로 공개되자 그림에 관심 없는 네티즌까지 호기심을 보이고 기사에 댓글을 달았다.

-비설: 이강수 그림, 11월 10일에 열린 ‘희망을 던져라’ 전에서 호당 280만 원이었음. 세 번째 개인전에서는 그림값이 오를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2배가 넘게 오를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센토리얼: 한 달 전에 호당 가격이 280만 원? 한 달 만에 그림값이 2배 넘게 오르는 건 무슨 경우?

┗윤봉익: ㅋㅋ. 갤러리를 끼면 비싸진다. 상식이야.

┗Logan: 이강수면 7억의 사나이네. 생각하기에 따라서 쌀 수도 비쌀 수도 있겠어.

┗one2III: 옥션에서 낙찰된 갈림길 호당 가격은 5백80만 원이다. 호당 6백만 원이면 갈림길보다 비싼데 선암갤러리 측에서 과용을 부리는 거 같음.

┗마음창고: 미술품 전문 경매 사이트인 서울옥션, 와이옥션도 아니고 일반 온라인 옥션에서 유찰 안 되고 호당 5백80만 원 받았으면 개인전에서 호당 6백만 원 받을만하다.

┗zupunk: 하여튼 비싸긴 졸라 비싸다. 신인화가인 것 같은데 호당 6백만 원. 진정 실화냐?

┗parisre: 이해하려고 하지 마. 미술판이 본래 상식과 거리가 먼 그들만의 리그거든.

-체리누스: 이강수는 그림동화책 일러스트하다 작년에 미술판에 뛰어들어 바스키아처럼 단시간에 성공을 거머쥐었다. 아마 천재인 듯.

┗UltraP: 거품이 부글부글 끓는데 천재 같은 소리 하고 있네. 거품은 언젠가 폭삭 꺼지기 마련, 거품에 휘말리면 개털 된다. 개털 되서 후회하지 말고 이강수 그림은 멀리해라.

┗파란곰팅이: 웃기고 있네. 당신이 그림에 대해 뭘 알아? 스스로 무식하다고 광고하고 있어.

-bloodguy: 이거 미친 가격 아님? 작년에 미술판에 나왔으면 초신인인데 어떻게 그림값이 한국 최정상 작가인 정상화, 박서보, 김동유, 김창열 등과 비슷하냐?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

┗시리우스z: 그림은 1백만 원이든 1억 원이든 사겠다는 사람이 있어야 팔린다. 그 가격에도 살 사람이 있다는 자신이 넘치는 것이다.

-pure777: 팸플릿 보면 시골 풍경을 소재로 한 그림이 많고, 굉장히 평범하고 서정적인 그림인데 10호 그림이 6천만 원이라고?

┗혜주: 팸플릿에 실린 그림 보고 평가하지 마세요. 이강수 작가 그림은 원화를 봐야 진가가 드러납니다. 전시장 가서 두 눈으로 작품 감상하고 댓글 좀 다세요.

┗KKryan: 직접 보면 팸플릿에 실린 그림하고 뭐 다른 게 있냐?

┗구르미: 다르다. 다르거든. 미술관에 한 번도 가 본 적 없으면 잠자 코나 있어라. 그럼 중간이라도 가니까.

┗마음창고: 전시장 가서 보면 정말 뭐라고 말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느낌과 감동을 선사한다. 기회 되면 관람해 보길.

┗DrHerLock: 아직 개인전 열리지 않았다. 호당 6백에 팔릴지 안 팔릴지 미지수. 안 팔리면 완전히 거품인 거고, 만약 팔리면 대형 작가가 탄생하는 거겠지.

댓글에서 거품 논쟁이 재점화되었고, 네티즌은 115점이나 되는 전시 출품작 가운데 몇 점이나 팔릴지 그 결과를 궁금해했다.

수많은 사람의 관심이 12월 8일 선암갤러리에서 열리는 이강수의 ‘기억이 들려주는 이야기’ 전시회로 쏠렸고, 조용했던 미술계가 격랑을 일으키며 술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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