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림 그리는 마법사-166화 (166/197)

그림 그리는 마법사 - 166회

강수가 이 상황을 피해갈 틈도 주지 않고 주하가 강수의 손을 잡고 대청으로 올라갔다. 난감해진 강수는 주하의 손에 이끌려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TV를 시청하는 듯 안방에서 방송 소리가 들렸다.

“외할머니, 잠깐 들어가 봐도 돼요?

“주하니, 들어오너라.”

강수는 주하와 함께 안방으로 들어갔다.

실내는 문갑이나 병풍, 서화 등 고가구와 고서화가 벽에 걸려 있었는데 덕분에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풍겼다.

“외할아버지. 아까 안마받고 좀 좋아지셨어요?”

“지압하고 안마받으면 움직이는 게 부드럽지. 저리는 것도 덜하고.”

“그럼 지압 한 번 더 받아보실래요?”

“응? 그게 무슨 소리냐?”

“헤헤. 강수오빠가 대학 때 지압을 좀 배웠데요. 그래서 가볍게 지압해드릴 수 있대요.

자기에게 지압해주겠다는 말이 뜻밖이라 주완제가 강수를 쳐다보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허허, 지압이 간단한 것이 아닌데 할 수 있겠는가?”

“제가 전문가는 아니라 잘하지는 못합니다. 다만 편히 주무실 수 있게 머리와 어깨의 혈만 지압해드리려고요.”

치유마법을 사용하면 치유하는 동안 마나 모인 손이 푸르스름해지는 것을 알아볼 수 있다. 1, 2초가 아니라 치유마법을 펼치는 동안 손이 옅은 푸른색을 띤다. 그 장면을 주하와 할머니가 보면 이상하게 여길 것이다.

‘정확한 혈도를 지압하기 위해 어르신의 상의를 벗어야 한다고 해야겠다. 그럼 주하하고 할머니한테 잠깐 밖에 나가 있으라고 할 수 있겠지.’

순간적으로 생각해 낸 구실이지만, 그럴듯한 것 같았다. 강수는 적절한 이유를 찾아낸 자기가 대견스러워 속으로 흐뭇해했다.

“낮에 지압을 받긴 했지만 잠자리에 들기 전에 지압 받으면 좋긴 하겠지? 한번 받아볼까?”

“어르신. 죄송하지만 상의를 벗으셔야 제가 정확한 혈도 위치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잠시 상의를 벗으실 수 있는지요?”

“상의를? 상의 벗는 거야 어렵지 않네만....”

예상대로 주완제가 김주하를 쳐다보았다.

성백희 여사가 주름진 얼굴에 포근한 미소 지으며 말했다.

“주하야, 이 군이 편하게 지압할 수 있게 우리는 잠깐 나가 있을까?”

주하가 아쉬운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헤헤. 오빠가 지압하는 거 보고 싶었는데. 외할머니, 우리 나가요.”

성백희 여사와 김주하가 밖으로 나갔고, 주완제가 상의를 벗었다. 색이 바래고 얼룩진 오래된 벽지처럼 윤기 잃고 탄력 없는 쭈글쭈글한 피부가 드러났다.

주완제의 생기 잃은 피부를 본 강수가 속으로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화려하고 탐스러운 꽃이 지듯 나이 들면 인간도 속절없이 한 줌 재로 변해 자연의 일부로 돌아간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독재자도, 포브스에서 선정한 세계 제일의 부자도, 세계적인 인기연예인도, 세계 최고의 스포츠 선수도 예외는 없다. 우주의 그 모든 생명체는 시간을 거스를 수 없다.

현대를 살아가는 인간에게 주어진 시간은 보편적으로 90년.

90년의 세월은 굉장히 긴 시간이지만, 어떻게 흘렀는지 모르게 10대가 지나고, 학업과 취업을 위해 정신없이 보낸 20대가 지나면 직장 생활과 아이 키우며 30, 40대가 훌쩍 흘러가고 만다. 문득 삶을 뒤돌아보는 50대가 되면 어느덧 인생의 반환점을 지나있다. 그리고 황혼길에 서 있는 자신을 본다.

‘그래서 요즘은 젊어서 여행 가고, 아예 직장 포기하고 자유스러운 삶을 사는 친구들이 늘어나고 있는 거지. 진짜 내 삶을 살기 위해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돈을 버는 1인 크리에이터를 추구하는 것이고.’

작년 초중고 학생의 장래 희망하는 직업 설문에서 유튜버가 중학생 10위권에 올라왔다. 2018년 초등학생에 이어 중학생도 장래 직업으로 유튜버를 순위권에 올린 것이다. 아마도 해가 갈수록 1인 크리에이터를 직업으로 꿈꾸는 사람이 늘어날 것이다.

“됐는가?”

잠시 잡념에 빠져있던 강수가 대답했다.

“예, 어르신. 눈 감고 잠시 편안한 마음으로 계시면 됩니다.”

“알았네.”

머리에는 정중앙 독맥을 따라 전정, 백회, 후정, 강간, 뇌호, 풍부, 아문의 혈이 목까지 내려온다. 독맥 옆으로 족태양방광경맥을 따라 미충, 곡차, 오처, 승광, 통천, 낙각, 옥침, 천주혈 등이 분포해 있고, 족소양담경맥을 따라 정영, 승령, 뇌공, 풍지혈 등이 자리해 있다. 두통이 있을 때 눈 옆 관자놀이(태양혈)이나 정수리(백회혈), 풍지혈, 풍부혈을 지압하면 효과를 본다고 되어 있었다.

강수는 인터넷을 뒤져 알아낸 혈도 위치를 떠올린 후 백회혈부터 두피 마사지 하듯 가볍게 지압을 시작했다.

강수의 목적은 치유마법을 펼치는 동안 시간 버는 것.

강수는 두피를 마사지하며 치유마법을 캐스팅했다.

“치유.”

강수의 입에서 모기소리만한 작은 목소리가 흘러나왔고, 강수의 손에 모인 푸르스름한 마나가 주완제의 머리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치유마법을 지속한지 3분.

마나하트에 가득 찬 마나가 급속하게 빠져나갔다. 마나가 10% 이하로 떨어지면 심장에 무리가 간다. 그 상태가 되면 심장이 떨리며 욱신거려 서 있을 수조차 없다. 2분이 더 지나 5분이 흘렀을 때 강수는 치유를 중단했다. 심장이 욱씬거리며 마나하트에 마나가 10% 이하로 떨어졌다는 위험신호가 왔다.

강수가 치유마법을 중단했다.

‘휴- 완전히 치료하지는 못했지만 거의 치료를 한 것 같으니까 이쯤에서 끝내자.’

치유마법을 중단 강수는 진짜 지압한 것처럼 보이기 위해 어깨와 등을 약 5분 정도 정성껏 지압했다.

이정도면 됐다고 판단한 강수가 뒤에서 물러나며 말했다.

“어르신, 지압 끝났습니다. 옷 입으셔도 됩니다.”

“그래? 수고했네.”

주완제가 팔과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스트레칭 하더니 옷을 입으며 고개를 갸웃했다.

“한데 이상하군?”

“예? 어떤 점이 이상한지요?”

“항상 머리가 무겁고 목이 뻐근했는데 자네가 지압하고 나서 머리가 아주 시원하고 개운해. 자네 손이 무슨 약손 같아. 정말 신기하구먼.”

“별말씀을요. 제가 한 지압은 머리에 있는 중요한 혈도를 자극해서 혈행이 원활하게 해줍니다. 그래서 그런 기분이 드는 거죠. 어르신. 지압 효과가 좋다고 하시니까 제가 간단한 머리 마사지를 알려드릴까요? 매일 머리 마사지를 하면 지금처럼 효과를 볼 수 있을 겁니다.”

“마사지해도 효과를 볼 수 있다고?”

“네. 그렇습니다. 간단한 마사지라서 어르신도 할 수 있습니다. 손을 이렇게 펴 보실래요?”

강수는 치유마법으로 행한 머리의 치료를 감추기 위해 마사지를 매일 하면 효과가 있는 것처럼 말했다.

머리가 맑고 몸이 개운해진 효과를 체험한 주완제가 강수가 하라는 마사지를 거부할 리 없었다. 강수를 따라 손가락을 갈고리처럼 편 주완제는 강수가 알려주는 대로 머리와 목을 가볍게 두드렸다.

토토토톡! 토토토톡!

“잘하시네요. 이렇게 한 번에 오 분씩, 하루에 열 번만 머리와 목 전체를 마사지해주세요.”

“오 분씩 하라고? 더 하면 안 되는가?”

“오육 분이 적당합니다. 그 이상하면 혈도에 무리가 가니까 한 번 할 때 꼭 오육 분만 하셔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지금처럼 머리가 개운하고 몸도 편안해질 겁니다.”

“허허. 알겠네. 머리가 이렇게 시원한데 꼭 해야지.”

강수는 일부러 마시지 시간을 5, 6분으로 한정했다. 마사지 시간을 정해줌으로 인해 치유 효과가 생기는 것처럼 심리적으로 유도한 것이다. 이렇게 열심히 마사지하면 자기가 해준 지압이 아니라 매일 한 머리 마사지 때문에 몸이 좋아졌다고 여길 것이다.

주완제는 주름진 얼굴에 환한 미소를 지으며 열심히 머리를 마사지했다.

완벽하게 치유하지는 못했지만 치유마법을 끝낸 강수가 흥이 나서 마사지하는 주완제의 모습을 지켜보며 머리를 긁적였다.

치유마법을 사용하고 나니 복지법인 ‘희망나무’가 생각났다.

‘서류상으로 문제없어서 허가날 것이 틀림없다고 장담하셨으니 열흘 안에 법인 허가가 나겠구나.’

법인을 설립해도 복지사업을 하려면 돈이 필요하다.

‘양 교수님이 복지사업을 하고 싶어도 돈이 없어서야 무슨 일을 할 수 있겠어? 병들어 죽어가는 재력가를 본격적으로 알아봐야겠구나.’

강수는 ‘희망나무’가 튼튼한 재원을 바탕으로 고아와 사회 약자를 지원할 수 있도록 돈 많은 환자를 찾아보기로 마음먹었다.

*

11월 21일 일요일 밤.

용산 고층 아파트 단지의 한 곳.

미술품 컬렉터이자 아트딜러 임유경은 오랜만에 남편과 아이들이 없는 한가하고 여유 있는 저녁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남편과 두 아이들은 춘천 시골집에 놀러갔다. 저녁 먹고 출발한다고 했으니 밤 10시나 돼야 도착할 것이다.

집안 구석구석 청소하고, 정리정돈을 끝낸 임유경은 노트북을 펼쳐놓고 인터넷을 검색하던 중 특이한 제목의 기사를 발견하고 클릭했다.

기사의 제목은 ‘2억 원의 차익을 노려라’였다.

<30, 40대 직장인 재테크, 어떻게 해야 할까?

21세기는 과학기술과 의료기술이 고도로 발전하면서 우리나라 평균 수명이 높아졌고, 노령화가 진행되면서 예전보다 이른 나이에 노후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 한데 요즘 각종 경기지표가 하락하고, 실물 경기도 하강국면에 접어들어 목돈을 모아도 마땅한 투자처를 찾기 어렵다. 경기가 하강하는 국면에서는 부동산, 주식, 채권, 펀드, 경매 등 전반적으로 재테크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근래 들어 새로운 투자처로 떠오르고 있는 분야가 있다. 바로 아트테크다. 아트테크는 예술가들의 그림이나 조각, 판화, 공예품처럼 비교적 접근이 쉬운 예술 작품에 투자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중에서 국내 시장에서는 보통

미술품에 대한 투자가 많이 이뤄진다.

예술품은 시간이 지날수록 가치가 오르는 경우가 많아서 아트테크가 각광받고 있는 것이다. 지난 10년간 국내 미술품의 수익률은 14.54%로 주식 수익률 4.9%의 약 3배이고, 은행 금리 2%의 7배가 넘는다. 아트테크의 연평균 예상 수익률은 8~15%다. 아트테크는 제대로 투자하면 안정적인 수익을 낼 수 있기 때문에 아트테크를 시작하는 30, 40대 직장인이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아트테크가 수익을 담보하지는 않는다. 언제나 투자에는 리스크가 따른다. 아트테크는 잘못 투자하면 장기간 돈이 묶일 뿐만 아니라 그림값이 오르지 않으면 오히려 큰 손해를 입는다.

아트테크의 판단은 오로지 개인의 몫이다.

요즘 이강수 화가의 그림이 핫하다. 그는 두 번의 개인전을 열었고, 개인전 출품작은 전부 완판되었다. 또한 그가 참여하는 전시회마다 그의 작품이 완판되었다.

이강수가 가장 최근에 참여한 지난 11월 10일에 열렸던 ‘한국 청년예술가들이여, 희망을 던져라’ 전에서는 호당 280만 원(신인화가의 경우 호당 5만 원~10만 원선)에 출품했는데 출품작 50점이 전부 완판되었고, 총 판매가는 약 18억에 달한다.

이와 같은 와중에 온라인 옥션에 그의 그림 2점, ‘갈림길’과 ‘DNA 남녀’가 경매에 등록되었다. 갈림길은 시작가 5천만 원에 DNA 남녀는 시작가 8천만 원에 올라왔다.

‘한국 청년예술가들이여, 희망을 던져라’ 전에서 팔린 호당 280만 원에 비교하면 무척 저렴한 가격이라고 볼 수 있다. DNA 남녀의 경우 100호이기 때문에 단순히 계산하면 2억8천만 원짜리 그림이다. 이번 경매에서 DNA 남녀를 8천만 원에 낙찰받으면 차액이 2억 원에 이른다. 물론 경쟁이 붙으면 얼마나 올라갈지 예측할 수 없다.

하지만 DNA 남녀가 8천만 원에도 낙찰되지 않으면 홍콩에서 7억 원에 낙찰된 ‘졸업반 아이들’처럼 다시 거품 논란에 휘말릴 수도 있다. 갈림길과 DNA 남녀의 경매기한은 22일 22시 경이다. 두 그림이 어떤 결과를 받아들일지 귀추가 주목된다.>

머니이코노미 이규오 기자([email protected]) 저작권자 ©머니이코노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에는 댓글 수백 개가 달려 있었다.

몇 개의 댓글을 훑어본 임유경이 미간을 찡그렸다.

“입찰자가 한 명도 없어? 거품이 꺼진다고? 킥!”

무지한 네티즌의 댓글은 무책임하게 배설해 놓은 더러운 배설물과 같았다. 읽어봐야 눈만 버린다. 이강수 그림에 관해 무지한 네티즌의 댓글을 무시한 임유경이 서둘러 옥션 사이트에 접속했다.

이규오 기사의 지적처럼 요즘 이강수 화가의 그림은 핫할 뿐만 아니라 컬렉터 사이에서 컬렉팅 대상으로 급부상하고 있었다. 이강수의 그림값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었고, 그림을 사고 싶어도 너무 빨리 팔려서 살 수 없었다.

임유경도 ‘한국 청년예술가들이여, 희망을 던져라’ 전에 갔었고, 호당 280만 원이나 하는 그림을 구매하려 했으나 너무 빨리 완판되는 바람에 고배를 마셨다. 임유경은 12월에 열리는 이강수의 세 번째 개인전 작품은 사전 구매를 고려하고 있었다.

옥션에 접속한 임유경은 DNA 남녀를 검색했다. DNA 남녀가 결과물 창에 떴다. 실제로 DNA 남녀가 경매로 올라온 것을 확인한 임유경은 가슴이 살짝 떨림을 느꼈다.

임유경이 DNA 남녀를 클릭했고, 모니터에 DNA 남녀 경매 화면이 나타났다.

‘아직도 입찰자가 없구나.’

임유경은 갈림길도 확인했다.

두 작품 모두 입찰자가 없었다.

흥분한 임유경은 옥션 계정에 돈을 넉넉하게 이체하고 당장 입찰하려다 손을 멈추고 경매기한을 확인했다.

‘갈림길은 22일 22시 23분. DNA 남녀는 22일 22시 31분. 내일 밤 10시까지 여유가 있는데 언제 입찰하는 것이 좋을까?’

임유경은 경매 정보가 알려지지 않기를 바랐지만 컬렉터 가운데 누군가는 자기처럼 기사를 읽고 찾아올 가능성이 있었다.

‘입찰자가 없어서 시작가에 낙찰 받으면 대박인데.... 어차피 경쟁해야 한다면 지금 입찰해 놓는 게 속편하겠지?’

결론을 내린 임유경은 각각의 작품에 입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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