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림 그리는 마법사-152화 (152/197)

그림 그리는 마법사 - 152회

“선배님. 무지개출판사에서 인세가 들어왔는데요.”

스마트폰을 보며 서혁중이 강수 옆으로 다가와 말을 걸었다.

뉴욕경매에 출품할 ‘카카오나무의 아이들’을 스케치하고 있던 강수가 서혁중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뭔가 이상해서요. 초판 삼천부에 대한 인세 5%면 백팔십만 원이잖아요?”

“세금 떼면 그것보다 조금 적겠지.”

“그런데 통장에 오백육십이만 이천 원이 입금됐는데요. 돈을 잘못 보낸 걸까요?”

“오백육십이만 이천 원? 그건... 만 부에 대한 인세인데.”

“그러게요. 전화해봐야겠죠?”

고원철이 강수 옆으로 다가와 말했다.

“저도 혁중이 하고 같은 금액이 입금됐는데요.”

“너도? 설마 초판을 만 부나 인쇄했나? 그럴 리는 없는데? 확인해봐야겠다.”

연필을 내려놓은 강수가 책상이 있는 건너편으로 갔다. 책상 위에 둔 스마트폰을 집어 든 강수는 통장에 입금된 인세를 확인했다.

권당 12,000원, 삼천 부에 대한 인세면 90만 원에서 세금 뗀 87만 원 정도다. 강수는 1편 수달과 2편 반달가슴곰, 두 권에 대한 인세를 받는다.

통장에는 무지개출판사로부터 입금된 5,622,000원이 찍혀 있었다.

‘나도 똑같은 액수네. 설마 만 부나 찍었어?’

초판을 만 부나 찍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은 강수는 강승호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끊기고 활력 넘치는 강승호의 목소리가 스마트폰에서 흘러나왔다.

[이 작가님! 강승호입니다.]

“안녕하세요? 강 팀장님. 인세 때문에 물어볼 것이 있어 전화했습니다.”

[하하. 그렇지 않아도 전화하려는 참이었는데 전화 잘 주었습니다. 만 부에 해당하는 인세가 들어갔죠?]

“네. 알고 계셨네요. 이거 맞는 겁니까?”

[예. 맞습니다. 실은 2주 전부터 홍보 좀 했는데 일주일 전부터 갑자기 선주문이 칠천 부나 쏟아졌습니다. 그래서 황급하게 초판 1쇄 사천 부, 2쇄, 3쇄 각각 삼천 부씩 만 부를 인쇄하고 있습니다. 서점에 깔리자마자 베스트셀러 1위는 맡아놓은 셈입니다.]

“아, 선주문이 칠천 부나 들어왔군요. 얼마나 팔릴까 조금 걱정스러웠는데 다행입니다.”

[선주문이 들어온 건 순전히 이 작가님 덕분입니다. ‘졸업반 아이들’이 7억에 낙찰됐다는 소식이 알려지고, 기사가 나면서 주문이 쏟아지기 시작했거든요.]

강수가 멋적은 웃음을 지었다.

“하하. 그런가요? 알겠습니다. 수고하세요.”

[네. 이 작가님, 들어가십시오.]

전화를 끊은 강수가 서혁중과 고원철을 돌아보며 말했다.

“들었지? 선주문 철천 부 들어와서 만 부 찍는단다.”

“우와, 굉장한데요? 선주문이 칠천 부면 앞으로 얼마나 팔릴까요? 한 십만 부쯤 팔리면 좋겠네요.”

“십만 부?”

강수가 십만 부라는 말에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실소를 지었다.

“훗, 넌 그림동화책 고작 한 권 내고 꿈도 크다. 꿈 깨고, 선주문이 꽤 되서 그나마 베스트셀러에 오르긴 할 텐데 그러면 매달 이삼천 부는 팔리겠지. 일 년에 사만 부만 팔려도 인세가 사천팔백이고. 너희는 5%인세니까 이천사백이겠구나. 그리고 작품만 좋으면 플러스알파도 기대할 수 있으니까 그 정도만 돼도 대박이야.”

서혁중이 뒷머리를 긁적였다.

“헤헷. 저도 그냥 해본 말입니다. 정말 사만 부만 팔려도 감지덕지죠. 플러스알파면 벙어리 황구 죽돌이처럼 영화 판권 같은 거겠네요?”

“영화 판권이 팔리면 좋겠다만 그게 어디 쉽냐? 어쨌든 저작권이 있으니까 파생 콘텐츠에 따라 저작권료를 받을 수 있겠지. 해외 도서전에 출품해서 호평받으면 해외 출판될 수도 있고.”

강수가 그리고 있는 캔버스를 살펴보던 고원철이 말했다.

“선배님, 카카오닙스 조각 하나하나 언제 다 그리죠? 시간이 너무 많이 소모되지 않나요?”

“맞아. 카카오닙스 조각 그리는 게 시간을 너무 잡아먹는다. 알바 써야 할 것 같다.”

“제가 학교 후배 알아볼까요?”

“그럴래?”

“네. 선배님 작품 알바하라고 하면 서로 하겠다고 줄 설 겁니다. 그건 제가 알아 볼테니 알바비나 작업 시간은 어떻게 돼죠?”

고원철과 서혁중에게 내걸었던 조건을 떠올린 강수가 잠시 염두를 굴렸다.

‘음, 그때는 그림값을 이천으로 정해서 인센티브를 15%씩 책정했었지. 하지만 이번에는 낙찰가에 인센티브를 줘야 하니까....’

강수는 카카오나무의 아이들의 시작가로 8만 달러를 생각했고, 못 해도 ‘산골마을의 만추’ 가격에 낙찰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다.

‘유찰될 수도 있지만 인센티브는 낙찰가의 10%만 해도 충분하겠지?’

생각을 정리한 강수가 알바 조건을 제시했다.

“두 가지 가운데 하나 선택하라고 해라. 두 가지가 뭐냐 하면 첫 번째는 작업 시간은 하루 4시간, 주 6일 근무. 시급은 만 원, 인센티브는 낙찰가의 10%. 유찰되면 이백오십만 원 보상. 두 번째는 시간당 삼만 원. 인센티브 낙찰가의 2%. 유찰되면 백만 원 보상. 작업 기간은 12월 10일까지 완성할 것. 혼자서는 벅찰 테니까 두 명을 구하고, 카카오닙스로 완성한 사진을 줄 테니 그걸 보여주고 절반씩 그려야 한다고 해라.”

옆에서 듣고 있던 서혁중의 눈에서 불이 번쩍였다.

‘인센티브 10%라고! 일억에 낙찰되면 천만 원. 만약 오억에 낙찰되면 오천만 원!’

깜짝 놀란 서혁중이 대뜸 말했다.

“선배님! 알바 두 명 중 한 명은 제가 하고 싶습니다. 제가 하면 안 될까요?”

“응?”

강수가 욕심으로 가득한 서혁중의 얼굴을 보며 씨익 웃었다.

“네가 하면 나야 좋긴 한데 넌 단체전 끝나면 시리즈물에 전념해야 하는데 시간이 나겠냐? 무리하지 말고 후배테 기회를 주는 건 어떻냐?”

서혁중이 가슴을 쥐어뜯으며 괴로워했다.

“으윽! 시리즈물 해야죠? 알겠습니다. 어떤 놈들이 올지 몰라도 그 놈들 횡재했네요. 참! 원철아, 생각해 둔 후배는 있냐?”

“어. 3학년 안범진. 또 한 명은 누굴 할지 아직 모르겠다.”

“송다린 어떻냐? 걔 그림 잘 그리잖아.”

“얼짱 송다린?”

고원철이 의아한 얼굴로 서혁중을 쳐다보았다.

서혁중이 고원철의 눈길을 슬쩍 피하며 얼버무렸다.

“송다린이 좀 예쁘긴 하지만 얼짱 소릴 들을 정도는 아닌데? 어쨌든 색 감각도 탁월하고, 그림 보면 독창적이지 않냐? 내가 볼 땐 3학년 가운데 송다린 만큼 힙한 애도 없는 것 같거든.”

“그렇긴 한데 하고 다니는 거 보면 워낙 부티 나잖아? 보통 집안이 아닌 것 같은데 다린이가 카카오닙스 그리는 이런 단순 알바를 할까?”

“다린이가 할지 안 할지 네가 어떻게 아냐? 물어보고 안 하면 어쩔 수 없는 거지.”

“그러지 뭐.”

긴말하지 않고 대수롭지 않게 대답한 고원철이었지만, 속으로 혀를 찼다.

‘짜식. 못 오를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아야지 송다린 같은 애가 너한테 눈길 한 번 주겠냐? 설마 진짜로 송다린을 마음에 두고 있는 건 아니겠지? 음, 당연히 아니겠지.’

고원철은 깊게 생각할 것도 없이 아니라는 쪽으로 단정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연예인 뺨치는 몸매와 미모의 소유자인 송다린은 여자 연예인이나 걸그룹 같은 선망의 대상이지 평범한 남자가 접근할 수 있는 존재는 아니었다.

서혁중이 자기 주제를 파악하지 못해서 송다린을 추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친한 선후배 관계라도 맺고 싶은 건가?’

그런 마음을 가질 수 있다. 아무나 넘보기 힘든 여자와 만나 농담 따먹기할 수 있고, 선후배로서 친하게 지낸다는 것만으로도 남자의 자존감이 높아진다.

‘그것도 감당 안 될 텐데? 하여튼 걔가 단순 알바는 할 것 같지 않으니까 일단 물어나 보자.’

고원철은 자기 이젤 앞으로 걸어가며 서혁중의 속마음을 엿보려는 듯이 서혁중을 힐끔 훔쳐보았다.

*

꽈아아-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오른쪽입니다.”

전동차가 내는 소음과 기계적인 안내 멘트를 들으며 허상배는 속도를 줄이며 승강장으로 진입하는 창밖에 시선을 주고 있었다.

인쇄소에서 일을 마친 허상배는 지하철을 타고 회사로 복귀하고 있었다.

그의 머릿속은 다양한 사념으로 소용돌이쳤다.

‘초판 4천부에 2쇄, 3쇄까지 만 부 출간이라니! 이런 히트작은 드물잖아. 가만, 만 부 인세면 얼마야?’

12000원의 2.5% 인세를 계산해 본 허상배가 눈을 크게 떴다.

‘헉! 삼백만 원!’

시작부터 이런 폭발적인 기세면 1년에 5만 부는 거뜬하게 팔려나갈 것이다.

‘오만 부면 인세가 천오백이네. 수달, 반달가슴곰을 맡은 강 팀장하고 전 대리는 완전히 땡잡았구나. 젠장, 1, 2권은 짬밥에 밀려서 어쩔 수 없었지. 내가 3권 사향노루, 유가은 씨가 4권 여우인데 3, 4권은 아무래도 덜 팔리겠지?’

아쉽긴 했지만 대부분의 시리즈물이 1, 2권의 판매량을 따라잡지 못한다.

‘그래도 삼사만 권은 팔리겠지. 스무 권 가운데 내가 맡은 파트가 다섯 권....’

멸종동물을 지켜라 시리즈물 총 20권을 계획대로 출간하면 자기가 받을 다섯 권의 인세가 12.5%나 된다.

전동차가 멈추고 전동문이 열렸다. 승강장으로 나온 허상배는 사람이 얼마 없는 계단을 천천히 올라갔다.

‘스무 권도 긴 시리즈물이지만, 더 길게 만들면 인세를 더 많이 받을 수 있잖아?’

개찰구 밖으로 나온 허상배는 중구 방향의 출구로 걸어가며 시리즈물에 대한 생각을 이어나갔다.

‘이강수 그림이 칠억에 낙찰됐다는 기사가 뜨면서 책 주문이 쏟아졌으니 이강수란 사람도 대단하다. 이강수 효과에다 내용, 그림도 나무랄데 없으니 이제 멸종동물을 지켜라 시리즈물은 대박 칠 게 분명해. 이런 시리즈물은 스무 권으로 끝낼 게 아니라 사오십 권 내면 오히려 더 잘  팔릴 텐데....’

지상으로 올라온 허상배가 찬란하게 쏟아지는 늦가을의 햇살에 눈을 찡그리며 손으로 이마를 가렸다. 회사로 향하려던 허상배가 문득 그 자리에 섰다. 생각 하나가 뇌리를 관통한 것이다.

‘가만, 시리즈물을 늘리면 안 될까?’

우두커니 서서 멍한 얼굴로 생각에 잠긴 허상배가 갑자기 걸음을 빨리해 나는 듯이 회사를 향해 걸어갔다.

회사에 도착한 허상배는 3층 사무실로 한달음에 올라갔다.

강승호가 자기에게 다가오는 허상배에게 한 마디 던졌다.

“인쇄소는 잘 돌아가지?”

“네. 인쇄소는 정신없이 돌아갑니다. 저기, 팀장님!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응? 뭔데. 말해.”

“오다가 생각해 봤는데요, 멸종동물을 지켜라 세계 편의 기획을 확장해보는 건 어떨까요?”

“확장?”

서류를 검토하던 강승호가 고개를 들었다.

“동물 수를 더 늘리자는 말이냐?”

“예. 동물 수를 늘리되 제목을 세계 편으로 하지 말고 시베리아 편, 영국 편, 스리랑카 편, 마다가스타르 편 같이 지역이나 국가를 대상으로 하면 어떨까요?”

손으로 턱을 괴며 잠시 생각에 잠긴 강승호가 의자에서 일어섰다.

“그거 괜찮은데?”

강승호가 컴퓨터로 작업하고 있는 두 여직원을 불렀다.

“작업 잠깐 중지하고 주목하자.”

팀원의 눈길이 모이자 강승호가 허상배가 한 제안을 두 여직원에게 얘기해주었다.

“나는 상배 제안에 구미가 당긴다. 지역과 각 나라별로 멸종동물을 소개하는 거 어떻겠냐?”

“좋은데요?”

유가은이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이 대답했고, 전수민은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권당 2.5% 인세 받는데 당연히 해야죠. 지역이나 각 나라별로 기획하면 수십 권을 낼 수도 있겠네요?”

“물론이지. 관건은 판매량인데 기본만 팔려도 계속 낼 수 있지.”

“수달, 반달가슴곰 선주문이 칠천 부나 되잖아요. 집계하면 곧바로 베스트셀러 등극인데 판매량보다 이강수 씨가 공동 창작을 계속할지가 더 문제 아닐까요?”

“시리즈물로 인지도만 쌓으면 작화가보다 기획력으로 커버할 수도 있다. 한국 편으로 인기몰이하면 지역이나 국가별 시리즈물은 기본은 저절로 팔릴 거다. 이 작가가 공동 작업을 계속 해주면 고맙지만 그림 한 점에 칠억이나 하는데 그림동화를 계속하겠냐? 한국 편도 안 하려는 걸 후배 키워주려고 계약한 것 같은데 그것만 해도 감지덕지하고 있다.

허상배가 우려 깃든 목소리로 물었다.

“이강수 씨가 빠지면 일러스트하고 스토리, 인세는 어떻게 되는 거죠?”

“그건....”

잠시 염두를 굴린 강승호가 대답했다.

“일러스트는 서혁중, 고원철 작가가 그린다면 두 사람에게 맡기면 된다. 그럼 계약도 지금처럼 할 수 있을 테지. 두 사람이 회화한다고 고사하면 일러스트는 실력 있는 작가에게 매절로 넘기고, 스토리는 우리가 직접 써야겠지. 스토리를 우리가 쓴다는 전제하에 4% 인세를 우리에게 책정해 달라고 사장님에게 건의해보마. 어차피 스토리 작가에게 의뢰하면 4% 정도 인세는 줘야 하니까 허락해주시겠지.”

이강수의 참여가 불투명하고 시리즈물의 미래조차 이상한 쪽으로 흘러간다고 느낀 유가은이 시무룩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우리가 인세 받는 건 순전히 이강수 작가가 자기 몫을 배분해줘서 받는 거잖아요. 만약에 사장님이 월급 받으면서 무슨 인세냐고 하시면 뭐라고 해요?”

강승호가 미간을 찌푸렸다.

“사장님이 그럴 분 아니지만 만약에 인세를 허용하지 않으시면....”

강승호가 팀원을 한차례 훑었다.

“너희는 어떡할래? 회사에 사표내고 스토리작가로 나설 거냐?”

사표라는 단어에 급기야 실내 분위기가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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