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0
그림 그리는 마법사 - 140회
김 대리와 인턴 김 군이 다른 두 개의 작품도 포장을 제거해 벽에 걸어 놓았다.
“수고했어. 두 분은 올라가서 일 보세요.”
“네. 그럼.”
두 사람이 밖으로 나가고 바로 박윤재 관장이 안으로 들어왔다.
“김 실장, 작품 제목은 어떻게 되나?”
“여기부터 팔랑리 마을의 봄, 시골 마을의 만추, 졸업반 아이들입니다.”
“어디 보자.”
박윤재 관장이 강수의 그림을 유심하게 살펴본 고개를 끄덕였다.
“으음, 좋군. 역시 기대 이상이야. 한국적인 정서와 풍경을 담았어. 팔랑리의 마을의 봄은 생동감이 넘쳐. 산골 마을의 만추는 색채의 향연이 아닌가?”
박윤재가 졸업반 아이들로 시선을 돌렸다. 졸업반 아이들을 살펴보던 박윤재가 별안간 배꼽을 잡고 폭소를 터트렸다.
“으하하. 천덕꾸러기 같은 아이들 좀 봐. 죄다 웃고 있는 얼굴이 정말 웃기지 않나?”
“정말... 저 익살스런 얼굴 좀 봐요. 깔깔.”
기회라고 생각한 김이라도 졸업반 아이들을 다시 보며 참았던 웃음을 마음껏 터트렸다.
한바탕 웃고 나서 진정한 박윤재가 물었다.
“이 작가는 그림값을 얼마로 책정했지?”
“졸업반 아이들은 이천, 나머지 두 작품은 이천오백만 원 정도 받으면 된다고 했습니다.”
“이천? 하하. 그건 너무 낮은 가격이야. 그래도 시작가는 이강수가 얘기한 대로 해. 어차피 상당히 높은 가격에 낙찰될 것 같은데 얼마쯤에 낙찰될지 궁금해지는군.”
“이천만 원도 기존 작품 호당 가격과 비교하면 센 편인데 더 높은 가격에 낙찰되면 이강수의 기존 작품 가격도 상당히 오르겠네요.”
“물론이지. 한 번 뜨면 그림값은 몇 배로 오르지. 이강수 그림의 호당 가격은 이제 별 의미 없어질 거야. 앞으로 이강수가 개인전 열면 무조건 마음에 드는 작품을 사야겠어. 김 실장도 여유 되면 몇 점 사놔. 저번 전시 때도 관람객이 몰리는 거 봤지? 그림 보러 갔든 캐리커처 받으러 갔든 사람이 몰리고 언론에서 기사화했다는 사실이 중요해. 이강수처럼 하루아침에 뜨는 작가가 드물다는 건 김 실장도 잘 알고 있잖아. 게다가 일회성으로 반짝 뜬 것도 아니고 탄탄한 실력이 받쳐주고 있으니 거품도 아니라네.”
“이강수 그림은 보는 사람의 정서를 건드리는 마력이 있어요. 그래서 저도 11월에 개최하는 단체전에 가서 한 점 사려고요.”
“이강수가 11월에 단체전에 참여하고, 12월엔 또 개인전 개최한다고 했지?”
“네. 그렇습니다.”
“쉽게 그리는 팝아트도 아니고 아이디어로 승부하는 개념미술도 아닌 순수 회화를 그렇게 빠르게 그린다는 건 놀라운 생산력이야. 이 왕성한 창작열이 언제까지 지속할지 궁금하군. 프리뷰 전시 디스플레이하게 윤 팀장한테 그림 보내.”
“네, 알겠습니다.”
*
와이옥션의 홍콩경매는 몇몇 언론사에서 기사로 다루었다. 기사 말미에는 신진작가인 박해나와 이강수의 경매 출품을 언급했다. 포털 사이트 메인 뉴스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미술 관계자나 미술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은 와이옥션 홍콩경매 기사를 접했고, 이강수의 출품을 눈여겨보았다.
-와이옥션 홍콩경매 서울 프리뷰 열려
-와이옥션의 홍콩경매 김환기 점화 출품, 추정가 약 60억 원
<와이옥션은 “오는 10월 17일 홍콩에서 여는 제16회 홍콩세일에 김환기가 1972년에 그린 전면점화가 추정가 약 60억 원에 나왔다”고 30일 밝혔다.
김환기가 미국 뉴욕에서 생활할 때 완성한 ‘27-XXI-72 #2xx’(가로 146.2㎝·세로 196.3㎝)는 파란색, 노란색, 흰색 등 다양한 색상을 사용한 점이 특징이며, 반복적으로 교차하는 점들이 운율감을 준다고 와이옥션은 설명했다.
김환기의 붉은색 전면점화 ‘3-Ⅱ-72 #220’은 2018년 홍콩에서 열린 서울옥션 경매에서 85억 2,996만 원(6,200만 홍콩달러)에 낙찰된 바 있다. 이는 한국 미술품 경매 사상 최고가이다. 김환기 ‘점화’의 최고가를 경신했던 홍콩경매 시장은 국내 미술품 가치의 상승을 견인하고 있다.
이우환 작품은 모두 3점이 출품됐다. 그 가운데 1981년에 그린 '선으로부터'는 시작가 4억 원, 1991년 작 '바람과 함께'는 시작가 2억 2,000만 원이다.
고미술 부분에서는 일본과 미국에 흩어져 있던 한국 고미술품 8점이 새 주인을 찾는다. 달항아리로 불리는 48cm 백자대호(白磁大壺)가 9억 원에 경매에 오른다.
한국 중견작가 중에서는 서도호, 이수경, 최우람, 최소영 등의 작품이 홍콩 미술시장의 문을 두드린다. 떠오르는 신진작가 박해나의 혈맥 시리즈도 120호 2점이 시작가 5천만 원에 출품된다. 특이하게 신인작가 이강수의 작품 3점이 출품된다.
이밖에 야요이 구사마, 로버트 인디애나, 줄리언 오피, 루이스 부르주아 같은 외국 작가 작품도 출품된다.
경매 출품작은 모두 67점이며, 추정가 합계는 약 220억 원으로 추산된다. 서울 프리뷰는 와이옥션 삼청동 전시장에서 7일까지 진행된다.
<‘리얼타임 뉴스’ 아시아경제 김만우 기자 [email protected]>
-와이(Y)옥션 17일 홍콩경매 실시
단색화, 고미술 등 총 67점 220억 규모 출품, 1~7일 삼청동 전시장에서 프리뷰
<[연지현 기자] 와이옥션은 오는 10월 17일 오후 6시, 홍콩 르네상스 블루뷰 호텔에서 개최하는 ‘제16회 홍콩경매’에 한국 근현대 작품 총 67점, 약 220억 원 어치를 출품한다.
출품작은 1일부터 7일까지 와이옥션 삼청동 본사에서 선보인 뒤 홍콩 현지에서는 10월 13일부터 16일까지 스카이 블루뷰 호텔에서 전시한다.
와이옥션 측은 “이번 경매는 한국미술의 대표 작가와 국내 중견 작가의 최고 작품으로 구성했으며 글로벌 미술계에 한국미술의 관심을 확산시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김환기, 박수근, 권진규 등 한국 대표 작가 작품은 물론 이우환을 비롯해 정상화, 정창섭 등 단색화 대표 작가의 작품이 다양하게 출격한다.
김환기의 점화 ‘27-XXI-72 #2xx’는 시작가 47억 원이고 추정가는 60억 원이다.
정상화의 단색화 ‘빨강에서 검정으로’도 주목된다. 200호 사이즈의 작품으로 시작가는 4억 원이다.
한국 중견작가 중에서는 서도호, 이수경, 최우람, 최소영, 정영주 등의 작품이 홍콩 미술시장에 선보인다.
글로벌 미술계에 떠오르는 신예작가 박해나의 혈맥 시리즈도 120호 2점이 출품된다. 그리고 작년 한국 미술계에 등장한 신인작가 이강수의 작품 3점이 출품된다. 이강수는 신인작가임에도 불구하고 50호 ‘졸업반 아이들’ 시작가는 2천만 원이다.
<저작권자ⓒ 공감뉴스, 데일리경제>
삼청로에 위치한 와이옥션 본사 전시장에서 10월 1일 홍콩경매 프리뷰 전시가 오픈했다.
다수의 언론사에서 기사를 내보냈고, 컬렉터와 갤러리스트, 호기심 많은 일반 관람객이 전시장을 찾았다.
와이옥션 홍콩경매는 한국 최고 작가의 작품 위주로 출품되어 개별 작품 추정가도 보통 억대가 넘는 고가였다. 그 가운데 두 명의 신진작가, 박해나와 이강수가 눈길을 끌었다. 박해나는 갤러리윤 전속작가로 해외 활동을 활발하게 하고 있어서 홍콩경매 진출은 당연시했다.
하지만 무명이나 다름없는 이강수의 와이옥션 홍콩경매 출품은 대부분 갤러리스트나 미술 관계자가 이례적인 일로 여겼다. 하지만 최소영처럼 무명의 신인작가가 경매를 통해 가치를 인정받는 경우가 가끔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이강수의 프로필을 찾아보고 주목했다.
10월 2일 10시 30분경.
회색의 고급 슈트를 입은 50대 중반의 사내가 와이옥션 본사 전시장에 들어섰다. 팸플릿을 집어 살펴보던 사내의 눈에서 이채가 반짝였다.
‘이강수? 이강수가 누구지?’
럭셔리한 슈트를 입은 중년 사내는 가인갤러리 관장 지석원이다. 그는 준재벌급인 몇몇 대기업 관계자에게 미술품을 추천하거나 구매대행해주고 있다. 이번에도 명성그룹 안주인으로부터 손자 선물로 적당한 1억 원대의 미술품을 추천해 달라는 오더를 받고, 와이옥션 홍콩경매 출품작을 살펴보기 위해 전시장에 방문했다.
안주인에게는 자식이 이남 일녀고, 손자와 손녀가 여럿 있다. 안주인은 손자, 손녀의 생일이나 학교 입학, 졸업 선물로 항상 그림을 선물했다. 그림은 세금 한 푼 안 내고 재산을 증여할 수 있는 합법적인 수단이다. 더구나 구매한 그림이 몇 년 뒤 가격까지 오르면 이보다 더 좋은 증여 수단은 없을 것이다. 지석원은 그림값이 오를 가능성이 높은 그림을 찾아서 추천했고, 다행히 추천한 작품 대부분 그림값이 오르는 성적을 내서 신임 받고 있었다.
‘이름을 어디서 들어본 것 같긴 한데? 아, 개인전에서 캐리커처 사인회 했다는 그 친구로군.’
인터넷에서 한 번 접한 기억이 났다. 박해나, 김이연과 신인화가 여러 명이 캐리커처 행사에 참여해서 많은 관람객이 몰렸다는 기사였다. 그때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흘려버린 기사였다.
미술계에 종사하긴 하지만 모든 화가를 알 수는 없었다. 매년 전국의 미대에서 수천 명이 졸업하고 수백 명이 예술판에 진출한다. 안타깝지만 그들 대부분 무명으로 도태되고, 미술계에서 주목하는 신인예술가는 잘해야 이십여 명에 불과하다.
지석원은 신인화가에게 거의 관심 두지 않았기 때문에 박해나, 김이연, 장동운, 심오균, 윤병기, 남호용, 심준영 등 이미 재능을 인정받은 특출난 신예작가들 외에는 알지 못했다.
‘박 관장이 이강수를 홍콩경매에 진출시킬 정도면 이강수가 박해나 못지않은 잠재력의 소유자라는 얘기인데....’
지석원은 허리에 찬 폴더블 스마트폰을 꺼내 이강수를 검색해보았다.
이강수에 관한 기사가 생각보다 많았다.
‘올해 두 번의 개인전을 열었어? 더구나 전시 작품이 모두 완판됐고? 어라, 박 관장이 구매까지 했어? 박 관장이 이강수를 인정했다는 얘기인데 이런 친구가 어디 있다가 갑자기 나타난 거지?’
몇 개의 기사를 더 읽어본 지석원은 이강수가 일러스트레이터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일러스트하다 화가로? 이거 참, 믿기지 않는군. 이번에 3점을 출품했지.’
지석원이 팸플릿을 펼쳐 이강수 작품을 찾아보았다.
‘흠, 정감 있는 그림이긴 한데 소재가 너무 평범하지 않나? 직접 보면 어떤 작품인지 알겠지.’
지석원은 약간의 기대감과 함께 천천히 전시 작품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오전이어서 그런지 전시장은 몇몇 관람객만 보일 뿐 한산한 편이었다. 유명 작가의 작품을 전부 살펴본 지석원은 전시장 가장 안쪽에서 박해나와 이강수의 작품을 찾을 수 있었다. 그림 앞에는 젊은 남녀 세 명이 있었는데 킥킥거리며 웃고 있었다.
“큭큭, 이 작품 뭔가 유니크하지 않냐?”
“킥킥. 시골 아이들이라 저렇게 웃지 서울 얘들은 인상 팍팍 쓰고 있을 텐데 말이야.”
“서울 애들은 졸업이 즐거울 리 없겠지. 중학교 올라가 봐야 공부하느라 골치만 아플 테니까.”
“이런 작품은 돈만 있으면 사서 거실에 걸어놓고 싶다.”
“시작가가 이천이야. 네가 사고 싶을 정도인데 경쟁 붙으면 오천 정도 올라가지 않겠냐?”
“그러게. 이 작품은 가격이 저렴해서 경쟁이 심할지도 모르겠다.”
‘웃어? 쯧쯧. 불량한 관람 태도하고는.’
그림 앞에서 웃으며 떠들고 있는 젊은이들의 모습에 혀를 찬 지석원이 ‘졸업반 아이들’ 앞으로 다가갔다.
작품 ‘졸업반 아이들’은 웃고 있는 시골 아이들의 얼굴 그림이다. 열여섯 명 모두 웃고 있다. 팸플릿을 볼 때는 웃는 아이들 그림일 뿐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시골 아이들이 순진무구하게 웃는 얼굴을 가까이 다가가서 보고 있으니 괜히 허파가 간질거렸다. 실물처럼 섬세하게 그린 촌스러운 얼굴, 익살스러운 표정, 한 명 한 명 각자의 개성이 확연하게 드러나는 밝은 웃음. 그런 웃음이 발산하는 행복한 기운.
“큭큭큭!”
청년들을 탓했던 그도 간질거리는 허파를 참지 못하고 작게 웃음을 짓고 말았다.
‘잘됐다. 손자가 초등학교 6학년이라고 했으니 요 그림이 딱 좋겠다.’
지석원은 그림 옆에 붙은 라벨을 확인했다.
2021년 작. 시작가 2천만 원, 추정가 2~5천만 원.
출품작 가운데 가장 저렴한 가격이었다. 청년들 말처럼 경쟁 붙으면 가격이 꽤 올라갈 수 있다. 작품 퀄리티에 비해 작품가가 저평가된 경우 시작가의 4, 5배도 우습게 올라간다.
그림을 보고 나서야 박 관장이 이강수를 홍콩경매에 내보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이강수가 비록 신인지만 거칠고 섬세한 붓 터치가 조화롭고, 전체적인 색감이 입체적인 느낌을 주듯 독특했다. 구도와 캐릭터를 제대로 표현해준다고나 할까? 어쨌든 3점 모두 놀라운 완성도의 작품이었다.
지석원은 최고 해상도인 8k로 ‘졸업반 아이들’과 옆에 붙은 라벨을 찍은 후 이강수의 프로필을 간략하게 적어서 안주인에게 전송했다.
이강수의 다른 두 작품과 박해나의 혈맥 시리즈의 감상이 끝나갈 때 안주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지석원은 통화를 연결했다.
“사모님, 지 관장입니다.”
[지 관장, 보내준 그림 보니까 건이 생일 선물로 적당한 것 같네. 이 그림 사야겠어. 전화 응찰을 할 테니 관장이 홍콩에 가서 수고 좀 해주게.]
“예, 사모님. 티켓팅하고 15일 출국하기 전에 전화를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하게나.]
더 용건이 없는지 전화가 끊겼다. 폴더블 스마트 폰을 허리에 찬 지석원은 전시장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선물할 작품을 결정했으니 ‘졸업반 아이들’은 안주인의 소유가 됐다고 봐도 무방하다. 설사 경합이 붙어도 가진 것이 돈밖에 없는 여인이다.
안주인은 자기가 찍은 작품은 아무에게도 내주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