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림 그리는 마법사-112화 (112/197)

# 112

그림 그리는 마법사 - 112회

강수는 황상오의 주먹 따위는 무시하고 주먹을 날렸다.

퍽!

빡!

황상오의 주먹은 실드에 막혀 강수에게 조금도 충격을 주지 못했다. 반면 강수의 주먹은 황상오의 안면을 정확하게 가격했다.

강수가 격투기나 무술을 익히지는 않았지만 183cm의 신장과 단단한 체격에서 분출하는 힘은 결코 약하지 않았다. 더구나 실드로 감싼 주먹으로 가격했기 때문에 벽돌로 얼굴을 가격한 것 같은 위력을 가졌다.

“큭!”

황상오는 외마디 신음을 토하며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목이 짧아 생긴 대로 맷집이 셌다.

퍽!

박일모가 그 틈에 강수의 얼굴에 주먹을 번개같이 꽂았다.

“윽!”

하지만 신음은 오히려 강수의 얼굴을 가격한 박일모의 입에서 새어 나왔다. 아까와는 달리, 마치 벽을 친 것처럼 둔탁한 반탄력이 전해지며 주먹이 부서지는 듯한 통증이 팔을 타고 어깨를 지나 뒷골을 강타한 것이다.

즉시 강수가 반격했다.

빠박!

강수의 주먹이 박일모의 얼굴에 작열했다. 평상시라면 강수의 주먹에 맞을 리 없는 박일모였지만 벽을 친 것 같은 충격을 받고 몸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아 연타를 허용하고 말았다.

뒷걸음질하던 박일모가 돌부리에 걸려 균형을 잃고 뒤로 발라당 넘어졌다. 박일모는 뒤로 넘어지면서도 잽싸게 몸을 뒤집어 낙법으로 충격을 줄였다.

“우왁!”

황상오가 외마디 기합을 넣으며 강수의 허리를 붙잡으려고 달려들었다.

“홀드”

조금 전 일어서며 메모라이즈 해 놓았던 홀드마법을 캐스팅했다. 순간 100키로가 넘는 덩치의 황상오가 투명한 벽에 막힌 것처럼 그 자리에서 멈추었다.

강수는 인정사정없이 황상오의 사타구니를 걷어찼다. 홀드가 풀린 황상오가 눈을 까뒤집으며 앞으로 꼬꾸라져 입에 게거품을 물었다.

황상오를 처리한 강수는 땅바닥에서 일어서는 박일모에게도 홀드를 걸었다.

땅바닥에서 얼어서다 엉거주춤한 자세로 멈춘 박일모의 얼굴에 경악이 서렸다. 놀라는 것도 잠시, 강수의 오른발이 박일모의 턱을 후려갈겼다.

덜컥!

박일모의 고개가 옆으로 홱 돌아가며 그 자리에 풀썩 엎어졌다. 터진 입에서 피가 꾸역꾸역 흘러나왔다.

강수는 사타구니를 잡고 새우처럼 웅크려 숨조차 못 쉬며 괴로워하는 황상오와 정신 못 차리고 엎어져 있는 박일모를 번갈아 가며 구타했다.

퍼퍼퍼퍽!

“크윽!”

“때릴 때는 기분 좋았지? 너희들도 맞아봐라. 이렇게 맞으니까 기분이 어때?”

퍼퍼퍼퍽!

“커억!”

강수는 자기가 맞은 만큼 박일모와 황상오를 짓밟았다. 비록 뼈가 부러질 정도로 세게 차지는 않았지만, 매질에는 장사가 없는 법이다. 박일모와 황상오는 신음을 흘리며 새우처럼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맞으면서도 자세를 유지하고 있는 것을 보면 정신을 잃지는 않았지만 거의 실신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발길질을 멈춘 강수는 여전히 실드마법을 유지한 채 두 사내의 목덜미를 잡고 등산로 옆 산비탈로 짐짝처럼 질질 끌고 갔다. 등산객의 왕래가 적은 등산로지만 사람의 눈에 띄면 번거로울 수 있었다.

등산로에서 웬만큼 벗어나자 강수는 두 사내의 목덜미를 놓고 근처 바위에 앉았다.

강수는 배낭에서 수건을 꺼내 피로 범벅된 얼굴을 한번 훔치고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내가 누구한테 원한산 일이 있었나? 그런 일 없잖아?’

마법사는 아무도 모르는 신분일 뿐이고, 자기는 누가 봐도 소시민에 불과하지 않은가? 폭력배와 연관될 일이 없었다.

‘대체 누가 사주한 거야? 앞 사무실의 떡대?’

떡대와 다툼이 있고 난 뒤에 몇 번 마주쳤으나 서로 인상만 찡그릴 뿐 못 본 척 지나치기만 했다. 그 일도 몇 개월 전에 벌어졌다. 지금 와서 새삼스럽게 그때 일을 들출 이유가 없었다.

‘떡대가 아니면 누구지?’

끄응!

이때 정신이 돌아오는지 신음을 토하며 땅바닥에 엎어져 있는 황상오와 박일모가 꿈틀거렸다.

“정신이 드냐?”

박일모가 힘겹게 일어나 앉아서 주위를 천천히 살폈다. 황상오는 옆에서 일어나려고 바둥거렸고, 손을 봤어야 할 사내는 바위에 걸터앉아 여유 있는 모습으로 자기를 내려보고 있었다.

일개 그림쟁이에게 처참하게 박살 난 자기의 처지를 파악한 박일모가 피식 실소를 지었다.

“대체 당신의 정체가 뭐요? 초능력자라도 되는 거요?”

“정체?”

“일어나는데 갑자기 몸이 움직이지 않더군. 이유 없이 그런 괴상한 현상이 생길 리 없지 않소?”

이들을 상대하며 실드마법과 홀드마법을 썼다. 이유는 몰라도 자기가 보통 사람과는 다르다는 사실을 느꼈을 것이다. 이유를 숨겨 온갖 추측을 하는 것보다 있을 법한 능력으로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것이 더 나았다.

“정신력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다. 그건 중요하지 않아. 내가 알고 싶은 건 누가 당신을 보냈느냐이다.”

박일모가 고개를 끄덕였다.

“긴가민가했는데 그런 능력이 실재하는군. 하긴 그렇게 맞고 멀쩡한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지.”

본래는 몇 달 병원 신세질 정도로 패고 끝낼 계획이었다. 한데 오히려 그림쟁이한테 얻어터질 줄은 감히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일반인에게 깨진 것이 아니라 초능력자라니 그나마 위안이 되기는 했다.

“누가 시켰는지 말해주면 어쩌려고 그러시오? 설마 혼자서 찾아가기라도 하겠다는 거요?”

“그것까지 당신이 알 필요는 없다.”

“당신의 그 정신력이 대단하긴 하지만 한 손으로 여러 손 당할 수 있을 것 같소?”

“내가 알아서 할 일이다. 당신은 누가 시켰는지만 말하면 돼. 당신 같은 하수인하고 해결할 문제가 아니니까.”

박일모가 미간을 좁혀 강수를 바라보다 말했다.

“당신 재주가 아까워서 하는 말이오. 서로 주고받았으니 이쯤에서 끝내는 것이 어떻소? 조직하고 엮여봐야 당신만 피곤할 거요.”

상식적으로 따져보면 사내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

조직이라고 얘기한 것으로 미루어보면 조직폭력배 집단이 틀림없을 것이다. 막장 인생을 사는 자들과 엮이고 싶진 않지만 지금은 조폭 따위 간단하게 쓸어버릴 정도로 막강한 힘이 있다.

힘이 있는데 참을 이유가 있는가?

그것은 단순하게 생각할 문제는 아니었다. 조폭과 자신만의 문제라면 두려울 것이 손톱만큼도 없지만, 부모님이나 주하, 친구에게 피해가 간다면 천추의 한이 된다.

강수가 박일모를 지긋이 노려보았다.

‘조폭 따위는 두렵지 않지만 나 혼자가 아니니 이대로 끝내야 하나? 한데 조폭 말을 믿을 수 있을까?’

사내 말이 맞기는 했으나 입 닦고 얼마든지 뒤통수 칠 수 있는 조폭이었다. 강수가 질문을 던졌다.

“당신 이름은 뭐지?”

“박일모요.”

사내는 망설이지도 않고 이름을 밝혔다.

‘박일모. 믿을 만한 사람인지 확인해보지.’

이센셜아이가 상대방의 속마음을 읽는 마법은 아니었으나 사물의 본질, 인간에게 사용하면 인간 본연의 인간성, 본성을 분석해준다. 상대방의 본성을 꿰뚫으면 어떤 상황에 대처하는 행동이나 생각을 유추할 수 있다.

강수는 박일모를 향해 이센셜아이를 캐스팅했다.

“이센셜아이,”

강수의 뇌리에 박일모의 정보가 들어왔다.

<1992년생··· 의리적··· 과감함··· 신중함··· 합리적··· 파괴적··· 반골··· 충성적···.>

박일모의 정보로 판단하면 의외로 신의를 지킬만한 인성의 소유자였다.

‘음, 이자는 믿을 만 하군.’

강수는 황상오에게도 이센셜아이를 캐스팅했다. 굵은 목의 사내가 얼마든지 배신을 때릴 수 있기 때문이다.

<1997년생··· 단순함··· 저돌적··· 과격함··· 잔인함··· 복종적···.>

두 사내 모두 야비하거나 음모적이거나 기회주의적인 성향은 없었다.

특히 박일모의 본성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조폭이 아니라 군대에 투신했으면 지휘관으로 부족함이 없는 성격 같았다. 오히려 강직한 성격이 탈이라면 탈일 것이다.

박일모를 믿을 수 있는 사내라는 판단을 내렸으나 자기를 노리는 배후를 모른 채 이대로 끝내기에는 뒤끝이 찜찜했다.

“누가 사주했는지 모르는데 당신이 나라면 이쯤에서 끝내고 싶겠나?”

“물론이오. 깊이 파고 들어봐야 당신 혼자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지 않소? 더구나 폭력을 쓰면 법적인 문제도 있으니 말이오,”

강수가 눈살을 찡그렸다.

웃기는 일이지만 요즘은 어떻게 된 게 폭력배가 폭력을 당했다고 우기는 경우도 있다. 일이 벌어진 원인 파악은 뒷전이고 결과적으로 누가 더 폭력적이었는가를 법으로 재단하려는 것이다. 법의 맹점을 노리는 수작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신은 배후를 모르는 것 같고 누가 지시했는지나 말하시오.”

“정말 끝낼 생각 없는 거요?”

“내가 끝낸다고 끝나는 문제는 아니지. 나보다 사주한 자가 이번으로 끝낸다는 보장이 없으니까. 무슨 말인지 알겠소?”

박일모가 고개를 꺄웃하고 나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또 그렇군. 나는 윗선에서 당신을 손봐주라는 지시를 받았소. 윗선 역시 누군가의 청탁을 받았겠지. 당신이 조직과 맞서겠다는 건데 내가 단언하지만 당신 혼자 조직을 상대할 순 없소.”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안다고들 하지.”

강수의 굳은 얼굴에서 배후를 알아야겠다는 의지를 읽은 박일모가 짤막하게 한숨짓고 말했다.

“이렇게 합시다. 내가 배후를 알아볼 테니 당신은 나서지 않는 걸로. 어떻소?”

뜻밖의 제안에 강수가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다.

“당신이? 무엇 때문에?”

“내가 몸담은 조직이오. 나름대로 조직의 안위를 염두에 두고 있으니까.”

“....”

“우리 둘을 간단하게 제압한 것으로 미루어 보면 당신의 능력은 생각보다 강력한 것 같소. 당신이 나서면 우리와 충돌할 수밖에 없는데 사소한 일로 조직이 흔들릴 필요는 없기 때문이오.”

일리 있는 제안이었지만 강수가 어깨를 으쓱 올렸다.

“말은 그럴듯한데 당신 말을 믿을 수 있나?”

“우릴 죽여 땅에 묻을 것이 아니면 믿든 안 믿든 상관없지 않은가?”

“음, 당신 둘을 생매장할 수는 없으니 당신 말을 믿어보지. 그 대신 일주일 후에도 배후를 밝히지 못하면 다시 생각해보겠다.”

“일주일이면 충분할 거요.”

이때 황상오의 몸에서 전화벨이 울렸다.

“전화? 이리 줘봐.”

강수가 황상오에게 팔을 내밀었다.

반쯤 죽었다 살아난 황상오가 어떻게 하면 좋겠냐는 표정으로 박일모를 쳐다보았다. 박일모가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박일모의 허락이 떨어지자 황상오는 망설이지 않고 강수에게 스마트폰을 주었다. 황상오가 건네준 스마트폰을 살핀 강수가 물었다.

“백상어? 이 자가 당신의 보스인가?”

박일모가 순순히 시인했다.

“그렇다.”

“이 자가 시켰냐?”

이번에는 침묵했다.

강수는 백상어란 자의 전화번호를 외우고 스마트폰을 황상오에게 돌려주었다.

“통화해봐. 스피커폰 켜고.”

황상오가 통화를 연결하고 스피커폰 아이콘을 터치했다.

즉각 스마트폰에서 굵고 거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야, 일모 이 자식 왜 전활 안 받아! 당장 일모 바꿔.”

“예, 부장님.”

“전화 바꿨습니다. 일몹니다.”

“야, 새꺄. 왜 전화가 안 돼?”

아마도 이강수의 발길질에 맞아 스마트폰이 박살 났을 것이다.

박일모는 대충 둘러댔다.

“산에서 핸드폰을 떨어뜨려서 먹통이 됐습니다.”

“뭐? 참나, 무슨 짓거릴 하다 핸드폰을 박살 내? 그 새낀 어떻게 했어?”

“조금 전에 처리했습니다.”

“그 갓 일 가지고 며칠이나 걸린 거야? 하찮은 일로 꾸물적 거릴래?”

“이 친구가 약간 이름 있는 화가라 잡음 나지 않게 등산 가는 오늘, 인적 없는 산에서 시비를 걸어 처리한 겁니다.”

“흠, 하여튼 말은. 알았다. 끝났으면 복귀해. 참, 작살내고 사진은 찍었지?”

“예. 찍었습니다.”

“이따 저녁에 술이나 한잔 하자.”

“예. 알겠습니다.”

박일모가 전화를 끊자 강수가 자기의 전화번호를 불러주고 전화를 걸게 했다.

우웅!

신호 온 것을 확인한 강수가 바위에서 일어났다.

“연락 기다리지.”

강수는 박일모와 그의 똘마니를 뒤로하고 빠르게 산에서 내려갔다.

산 아래로 멀어져 가는 강수의 뒷모습을 노려보던 황상호가 씩씩대며 이를 갈았다.

“으드득! 씨팔, 쪽팔려 죽겠네. 형님, 저 새끼 진짜 초능력잡니까?”

“넌 왜 당했냐?”

황상오가 뒷머리를 긁적였다.

“허리를 잡아채 넘어드리려고 달려들었는데 갑자기 누가 몸을 잡고 있는 것처럼 꼼짝할 수 없었죠. 그 틈에 사타구니를 맞고 죽는 줄 알았습니다. 개새끼. 사타구니를 쳐. 크아, 생각하니 열 받네.”

“처음 방심했을 때 얼굴에 한 방 제대로 맞은 것 말고는 데미지가 한 번도 들어가지 않았다. 초능력이 아니고는 설명이 안 돼. 저런 자하고 붙어봐야 좋을 거 없어. 조용히 끝내는 게 서로 이득이야.”

“초능력은 다 구라인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네요?”

“초능력자라.... 내가 겪지 않았으면 믿지 않았을 거다. 내려가자.”

“윽!”

일어서던 황상오가 오만상을 찡그렸다.

“아프냐?”

“움직이니까 으으, 아랫배가 끊어지는 것 같습니다. 알이 터졌으면 초능력이고 뭐고 지옥 끝까지 쫓아가서 사생결단 냈을 겁니다.”

“헛소리 말고 부랄 안 터진 걸 신께 감사해라.”

“신 같은 거 안 믿습니다. 신이 있으면 저 같은 놈을 그냥 놔둘 리 없으니까요.”

“맞는 말이군.”

황상오는 어기적어기적 힘겹게 박일모의 뒤를 쫓아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