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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그리는 마법사-31화 (31/197)

# 31

그림 그리는 마법사 - 31회

*

신음을 흘리며 강수가 눈을 떴을 때 사위는 환한 대낮이었다. 바닥에 엎어져 있던 강수가 몸을 일으켰다.

온 몸이 쑤시고 결렸다.

“으갸갸, 죽겠네. 뭐야, 날이 밝았어? 밤새 여기서 잤다는 거야?”

강수는 어이없는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다 어제 일을 떠올렸다. 삼연속 블링크 시전 중에 심장을 쥐어짜는 듯한 고통을 느끼고 정신을 잃었다.

“으음, 마나고갈이었어.”

마나가 바닥날 때까지 마법을 사용한 것이다. 마나가 고갈난 줄도 모르고 블링크를 펼치는 바람에 마나 부족 현상으로 인해 심장에 쇼크를 받고 그 충격으로 정신을 잃은 것이다.

“겨울에 이런 꼴을 당했으면 동사했겠다. 여름이라 얼마나 다행이야. 하하, 운이 좋았구나.”

운이 좋았다는 것에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꼬르르륵!

배에서 밥달라는 신호를 보내왔다. 시간을 확인해보니 오전 11시가 넘었다.

‘허기가 지긴 하지만 일단 몸부터 풀자.’

강수는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두두둑!

뼈마디 맞춰지는 소리가 났다.

몸을 풀고 쿠션방석에 앉아 마나회로 수련을 하려던 강수는 깜짝 놀라 자신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마나하트에 마나가 쥐꼬리만큼 밖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아, 마나가 고갈 됐지···.”

어제 마법의 재미에 빠져 4시간을 거의 쉬지도 않고 마법을 캐스팅했다. 마나가 완전히 고갈된 상태에서 자동축적에 의해 마나가 쥐꼬리만큼 있었다.

“후아. 마나의 잔량을 확인하면서 마법을 사용해야 하는구나. 그나저나 마나하트를 가득 채우려면 얼마나 걸리려나?”

강수는 허탈한 심정으로 자리에 앉으면서도 한 가지 사실을 더 알게 되어 그나마 위안을 삼았다. 바로 마나하트에 마나를 가득 채울 때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 확인할 수 있게 된 것이다.

5시간에 걸친 마나회로 수련을 마치고 식당에서 허기진 배를 채운 후, 오후 5시 경 아파트로 돌아온 강수는 마침 걸려온 종대의 전화를 받았다.

[강수야, 모자 추락 뉴스 봤지?]

“모자 추락?”

[그래. 그 모자가 추락한 아파트가 첨엔 몰랐는데 알고 보니까 네가 살고 있는 아파트더라. 우울증이 아무리 심해도 그렇지 어떻게 갓난아기하고 같이 죽을 생각을 하냐?]

어제 발코니에서 갓난아기를 안고 추락한 여자가 뉴스에 나온 모양이었다.

“그걸 말하려고 전화 했어?”

[그것보다도 신기한 현상 때문에 그래. 10층에서 추락했는데 모자가 다친 곳이 한 군데도 없다고 하더라. 그거 말이 되냐?]

“글쎄? 뉴스 보면 고층 아파트에서 추락한 아이가 멀쩡하다든지 하는 그런 신기한 현상이 있었잖아. 이번에도 그랬던 모양이지.”

[아니라니까. 추락하는 영상을 봤는데 이번엔 뭔가 이상한 현상이 발생한 게 틀림없더라.]

“추락하는 영상? 그런 게 있어?”

강수가 살짝 놀라서 물었다.

[그게 아파트 방범CCTV에 찍혔는데 방송사로 유출된 거야. 모자를 구한 돌개바람이라고 검색어에 올랐고, 그 영상도 퍼지고 있어. 우울증 여자보다도 별안간 나타난 돌개바람이 더 관심을 끌고 있지.]

CCTV에 자신이 찍혔을지도 몰라 강수는 가슴이 뜨끔했다.

“그, 그러냐? 사실 그런 비과학적인 현상은 가끔 일어나던데 사람들이 왜 관심을 갖지?”

[관심 가질만하니까 관심을 갖지. 추락 영상을 아직 안 본거 같은데 직접 봐봐. 그럼 알거다. 참, 작품은 다 완성했냐?]

“거의.”

[완성 했으면 디스플레이 같이 하려고 했는데 어떻냐?]

“30일 전에 끝내면 내가 연락하마. 연락 안 가면 먼저 디스플레이 해라.”

[크크. 알았다. 연락해라. 끊는다.]

“그래, 들어가.”

전화를 끊은 강수는 컴퓨터부터 켰다.

‘모자 추락 영상이라고?’

포털 사이트에 접속해 보니 돌개바람, 우울증, 모자추락 영상, 돌개바람의 정체 등이 검색어 하위권을 차지하고 있었다.

모자추락 영상을 클릭해서 링크된 곳으로 접속했다.

3분쯤 되는 추락 영상은 조회수 10만이 넘고 있었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영상을 끝까지 본 강수는 내심 안도했다.

자신의 모습이 나무에 가려져서 뒷모습의 일부분 밖에 보이지 않았고, 현장에서 빠져나올 때도 얼굴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또한 고해상도가 아니어서 얼굴이 거의 찍히지 않은 영상만으로는 자신을 찾아내는 일은 쉽지 않을 것 같았다.

“휴우, 다행이다.”

안도의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영상의 돌개바람은 확실히 비현실적이고, 신비한 현상이 분명해서 의문을 제기할만했다.

3층에서 바람의 영향으로 여인의 추락 속도가 크게 줄어들었고, 1층에서는 돌개바람이 추락하는 여자를 받치고 있는 것이 확실하게 영상에 잡혔기 때문이다.

돌개바람이 화단에서 생겼다는 것부터 이미 상식을 벗어난 현상이었다.

영상에 달린 댓글을 보니 나무에 가려진 남자를 초능력자로 추측하는 네티즌도 있었다.

하지만 진실이 밝혀지기 전까지는 모든 주장이 루머에 불과할 뿐이다. 강수가 사실을 밝히지 않는 이상 이 영상은 초현실적인 현상으로 남을 것이다.

인터넷 특성상 흥미위주의 기사는 빠르게 소비되고 빠르게 잊혀진다. 과거 고층 아파트에서 추락한 아이가 찰과상이나 간단한 골절 정도만 입은 사건처럼 모자 추락 사건도 금방 다른 사건에 묻힐 가능성이 농후했다.

강수는 컴퓨터를 끄고 캔버스 앞으로 다가갔다.

마법에 대한 과열된 흥분과 폭주는 마나 고갈로 인해 정신을 잃고 쓰러진 충격으로 어느 정도 진정이 되었다.

전시회 개막일이 코앞에 닥쳤다.

작품 디스플레이는 개막일 전날인 6월 30일에 해야 한다. 남은 시간이라고 해봐야 29일과 30일 오전 정도다.

강수는 씻을 생각은 하지도 못하고 옷만 갈아입고 마무리 작업에 돌입했다.

강수는 마무리 하는 이틀 동안 얼굴만 씻었고, 식사는 중국 요리, 피자, 치킨 등으로 때웠다.

강수의 초췌한 몰골은 겉보기에는 폐인에 가까웠다.

엉클어진 머리칼, 물감이 묻은 꾸깃꾸깃한 옷차림, 수염이 거뭇거뭇하게 자란 얼굴, 하지만 두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눈빛은 호수처럼 깊었고, 명경처럼 명료하게 빛났다.

강수가 ‘도시의 일몰’을 끝내고 붓을 내려놓은 때는 전시회 오픈 전날인 6월 30일 오전 12시 경이다.

채색 작업을 끝낸 강수는 발코니에 우두커니 앉아 창밖의 익숙한 풍경에 시선을 주고 있었다.

디스플레이를 하고 한국청년화가 12인전이 오픈하면 관객과 만나게 된다는 기대와 설렘으로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

눈물, 초대, 도시의 일몰은 객관적으로 과거의 작품과는 비교할 수 없는 뛰어난 작품들이다.

관람객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또 일반인에겐 결코 작은 금액이 아닌 자신의 작품을 구입하는 관람객이 있을지 궁금했다.

한국에서 상업예술이 아닌 순수예술을 지향하는 예술가의 삶은 순탄하지 않다. 아니 고난의 가시밭길이다.

순수예술을 하려면 집안이 부자거나 와이프가 돈을 잘 벌거나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나야 한다. 안타깝지만 대부분의 예술가는 세 가지 범주에 들지 않는다. 괜히 배고픈 예술가라는 말이 나왔겠는가?

‘후후, 이제 배고픈 예술가 대열에 합류하는 건가?’

작가로서 명성을 쌓고 그림이 팔리기 전까지는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을 지도 몰랐다.

그 기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아무도 모른다.

수십 년을 무명작가로 남을 수도 있고, 천부적인 재능으로 대중과 평단의 인정을 받아 순식간에 명성과 돈을 얻을 수도 있다.

영국에는 키어런 윌리엄스라는 천재 화가가 있다.

미술계의 모짜르트라고 해도 좋을 키어런은 5세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키어런은 야회로 나가 자연의 모습을 화폭에 담는 풍경화를 주로 그렸다. 어린아이가 그린 풍경화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수준의 그림은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사람들은 키어런의 그림을 모네의 환생이라며 높게 평가했고, 당연히 그의 그림은 높은 가격으로 팔렸다.

키어런은 2011년, 9세 때 첫 전시회를 열었고, 33점의 그림이 2억 7천만 원에 몽땅 팔려나갔다.

그 이후의 행보는 언급할 필요가 없다.

이제 겨우 17세에 불과한 키어런은 연간 수십억 원을 버는 정상급 화가가 되었다.

강수가 키어런의 기사를 접했을 때는 대입을 준비하고 있었던 고2 때였다. 그 당시 키어런이 그린 풍경화를 보고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비록 원화를 보지는 못했지만 9살짜리 키어런이 그린 풍경화 한 점이 2011년 화폐 가치로 칠팔백만 원이나 하는 것에 이해가 되지 않았다.

세상에는 화가가 참 많다.

하지만 명성과 부를 얻어 성공한 작가보다는 작품 몇 점 팔지 못하는 무명작가가 절대 다수를 차지한다.

그림은 팔리지 않는 무명이지만 그들이 키어런보다 실력이 뒤떨어진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자신만 해도 카이런의 풍경화와 비슷하게 그릴 자신이 있었다. 자신마저 그런 자신감을 갖고 있는데 무명작가들이라고 자신보다 못 할 리가 없다.

무엇이 문제인가?

키어런의 기사를 읽고 그런 고민을 참 많이 했었다.

고 2때의 고민은 미대에 입학해서도 계속 되었고, 대학2학년을 마치고 나서야 근본적으로 천부적인 재능의 차이라고 인정을 했다.

재능의 차이는 그 간격을 도저히 메울 수가 없다. 천재의 노력과 범재의 노력은 아예 비교대상이 아니다.

똑같은 정물을 놓고 그리더라도 누가 그리느냐에 따라 가치가 달라지는 이치와 같다.

작가마다 역량이 다른 것은 물론이고, 세계관에 따라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과 부여하는 의미가 다르기 때문이다.

특히 포트폴리오를 준비하며 예전의 작품을 살펴보고 그 차이를 확연하게 느꼈다.

테크닉 외에 채색과 구도, 조형미는 물론이고 많은 부분에서 미숙한 그림이었다.

등산로에서 머리를 다쳐 정신을 잃고, 투팍탈이란 마법사가 상처를 치료해준 이후 사물에 내재한 본질과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배경과 조형성, 빛의 변화가 주는 색감과 명도의 차이가 자연스럽게 읽혔다.

이전에는 결코 느낄 수도 없었고, 눈에 보이지도 않은 감각이었다.

그런 변화는 그림에 대한 시각을 변화시켰다.

강수가 일러스트 작가로서 쌓아온 경력과 안정된 수입을 포기하고 예술가의 길로 방향을 튼 결정적인 이유는 자신에게 찾아온 이런 놀라운 변화와 그림에 대한 자신감에 기인한다.

하지만 자신의 그림이 아무리 뛰어나고, 완성도가 높아도 당장 대중에게 인정받고 팔릴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미술계에서는 인지도가 손톱만큼도 없는 처지이니 당연한 일이다.

우우웅!

스마트폰이 진동했다. 친구 종대였다.

“여보세요.”

[강수야. 전시장에 보이지 않아서 전화해 봤다. 작업은 어떻게 됐냐?]

“조금 전에 끝났어. 넌 지금 전시장에 있구나. 다른 작가들도 많이 왔냐?”

[자식이, 그래도 마감에 맞췄구나. 축하한다. 절반은 디스플레이 끝내고 끼리끼리 나갔고, 다른 작가들도 디스플레이 하고 있다.]

“너도 디스플레이 끝냈어?”

[그래, 임마. 그러니까 전화했지. 언제 올 거야?]

“물감이 조금 더 마르면 출발 할 거다. 기다리지 마라. 어차피 내일 볼 거잖냐.”

[알았다. 내일 보자. 들어가라.]

통화를 끝냈다.

좀 늦긴 했지만 어쨌든 오늘 안으로 전시장에 가져가 디스플레이 하면 된다.

종대 말마따나 마감은 지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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