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림 그리는 마법사-30화 (30/197)

# 30

그림 그리는 마법사 - 30회

6월도 막바지를 향해 치달았다.

북한산은 무성하게 자란 녹음이 짙고 푸르게 펼쳐져 있었다.

그 짙고 푸른 녹음의 한 곳.

알람 소리에 눈을 든 강수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어느새 마나시드가 거의 호두알 크기로 성장한 것이다.

“오늘은 성공할 수 있을까?”

며칠 전부터 파이어볼을 캐스팅하면 커다란 사과 크기의 불그스름한 볼이 나타났지만 거기까지였다. 그것은 파이어볼을 이루지 못하고 마지막에 형태가 무너졌다.

며칠 째 진전이 없었다.

마나하트가 거의 완성됐음을 느끼고 있었지만 실제로 완벽한 마법이 실현되지 않아 고민이었다.

‘왜 형태를 유지하지 못할까? 역시 마나하트가 완성되지 않은 걸까? 일단 캐스팅을 해보자.’

1서클 마법 파이어볼의 마나수식을 속으로 영창하고, 구현어 파이어볼을 캐스팅했다.

“파이어볼”

손바닥 위에서 열기와 함께 커다란 사과 크기의 구체가 소용돌이치며 나타났다. 그리고 구체는 소용돌이와 함께 사방으로 흩어지며 소멸했다.

‘파이어볼은 오늘도 실패군. 홀드마법은 조금 되는 편이니까 홀드마법을 해보자.’

강수는 메론 만한 돌을 집어 공중으로 던졌다. 떨어지는 돌을 향해 홀드마법을 캐스팅했다.

“홀드.”

낙하하던 돌이 3미터 위에서 1초 정도 멈추더니 땅바닥에 떨어졌다.

“앗싸!”

강수가 승리의 어퍼컷을 먹였다.

정지시간이 0.5초에서 1초로 늘어난 것이다

완전한 마법은 아니지만 강수의 가슴은 실망보다는 기쁨이 샘솟듯 가득 차올랐다. 어쨌든 마법 비슷한 효력이 나타나고 있는데 실망할 이유가 없었다.

‘이제 곧 마법사다.’

강수는 흥에 겨워 회오리를 만드는 윈드 계열 마법을 비롯해 1서클 마법을 캐스팅하기 시작했다.

*

강수는 마나회로 수련을 마치고 아파트 후문으로 들어섰다.

7동 근처를 지나갈 때 강수는 위를 올려보며 혀를 차는 할머니를 볼 수 있었다.

‘할머니가 또 저러시네.’

같은 장소에서 지팡이 짚고 있는 할머니를 서너 번 보았다. 강수 역시 마나회로 수련을 마치고 비슷한 시간에 아파트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할머니를 볼 때마다 별 관심 없이 지나치곤 했다.

“쯧쯧, 저 새댁이 또 베란다에 또 나와 있네. 저긴 왜 나와서 서성이는 게야?”

할머니가 투덜거리는 소리를 듣고 아파트를 올려보았다.

10층의 발코니 창문은 열려 있었고, 그 앞에 여자가 있었는데 품에 뭔가를 안고 있었다.

할머니가 새댁이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 갓난아기 같았다.

강수는 할머니가 왜 걱정스럽게 위를 쳐다보는지 궁금해서 이번엔 걸음을 멈추고 물어보았다.

“할머니, 베란다에 있는데 왜 그렇게 걱정하세요?”

“응?”

강수를 쳐다본 할머니가 답답하다는 듯이 갈라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기 서 있는 걸 내가 본 것만 해도 몇 번이여. 저렇게 창문에 가까이 서 있으니까 보는 사람 불안하잔혀.”

“갓난아기라 밖에 못나가니까 햇볕도 쬐고 바깥공기도 쇨 겸 베란다에 나오나 보죠.”

“아니, 저기 서 있는 걸 보고 있으면 안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아서 괜히 걱정이 된다니까.”

“안 좋은 일이라뇨?”

흠칫 놀란 강수가 강하게 부정했다.

“에이, 할머니. 젊은 여자분 같은데요. 그리고 갓난아기까지 안고 있는데 그럴 리가 있어요?”

“그렇지? 늙은이라 걱정이 많아서 그런가벼. 그래서 늙으면 얼른 죽어야 하는데 말이여.”

강수는 할머니의 말에 이상한 기분이 들어 발코니에 서 있는 여성을 자세히 바라보았다.

신경을 집중하고 보자 여성의 얼굴이 뚜렷하게 보였다. 3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여성은 넋을 놓고 있는 듯이 멍한 표정을 하고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

문득 정신을 차린 강수가 고개를 갸웃 했다.

‘뭐지? 저렇게 멀리 있는 여자의 얼굴이 가까이서 보는 것처럼 보이네?’

강수는 근래 들어 오감이 예민해진 것을 느끼고 있었다. 눈도 예전보다 훨씬 좋아졌다. 시력검사를 해봐야 하겠지만 2.0은 훌쩍 넘은 게 틀림없었다.

“어이쿠, 내 저럴 줄 알았다니까. 저걸 어째, 저걸!”

할머니의 놀란 목소리에 강수가 다시 고개를 들어 발코니를 쳐다보았다. 여성이 난간 밖으로 상체를 내밀고 있었다. 자칫하면 떨어질 수도 있었다.

‘떨어진다!’

직감이었다. 강수가 여자가 있는 라인의 화단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아이고, 떨어지네!”

여자가 있는 아파트 라인까지 약 5여 미터가 남았을 때 할머니가 비명을 질렀다.

비명소리에 그 자리에 멈춰서 위를 올려보았다.

아이를 안은 여자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추락하고 있었다.

생각이고 뭐고 할 겨를 없이 강수의 입에서 캐스팅이 터져나왔다.

“사이클론윈드!”

강수는 윈드마법의 하나인 사이클론윈드를 5미터 앞 추락지점의 3층에 캐스팅했다.

강수가 캐스팅한 회오리바람의 규모는 매우 작았음에도 불구하고 낙하지점 바로 아래에서 구현되었기 때문에 지면을 향해 무서운 속도로 직하하던 여인의 몸이 풍압에 의해 떨어지는 속도가 약간 줄었다.

회오리바람은 곧 소멸되었고, 여인이 다시 추락하기 시작했다. 3층에서 추락해도 재수 없으면 죽는다.

강수는 추락지점에 다시 사이클론윈드를 캐스팅했다.

마른 나뭇잎과 잡초가 풍압과 함께 위로 솟구쳤다. 아이를 안은 여인은 다시 생겨난 풍압에 의해 2층에 이르러서는 낙하 속도가 크게 줄었다.

강수는 초인적인 집중력을 발휘해 사이클론윈드를 유지했다.

아이를 품은 여인은 천천히 바닥에 떨어졌다.

털석!

“으아앙!”

여인은 1미터 높이에서 실이 끊어진 것처럼 바닥에 떨어졌고 아이가 우렁차게 울음을 터트렸다.

“아!”

강수가 재빨리 여인에게 달려갔다.

“괜찮습니까? 다치지 않았나요?”

얼굴이 창백해진 여인은 충격 때문인지 쓰러진 채 잠시 움직이지 않았다.

주위에서 아이의 울음소리를 듣고 몇 명의 주민들이 다가왔다.

“아이고, 새댁은 어때? 살았능가?”

할머니가 득달처럼 달려오며 소리쳤다.

“예, 할머니. 크게 다친 것 같지는 않지만 119에 연락을 해야 할 것 같아요.”

“오메, 하늘이 도왔구먼. 하늘이 도왔어.”

감탄사를 연발하던 할머니가 강수에게 빽, 하고 소리를 질렀다.

“뭐여, 빨리 전화하지 않고!”

“아, 예.”

강수가 스마트폰을 꺼내는데 뒤에서 다가온 아주머니가 다급하게 말했다.

“안 해도 돼요. 방금 제가 했어요.”

“그려? 잘했어.”

이때,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쓰러져 있던 여자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주민들이 몰려들자 강수는 슬금슬금 뒤로 물러났다.

여자는 크게 다친 것 같지 않았기 때문에 굳이 소란스러운 자리를 지키고 있을 필요가 없었다. 여자가 무슨 이유로 발코니에서 추락했는지는 몰라도 뒤처리는 아파트 주민들이 알아서 해 줄 것이다.

“당신들 뭐야! 저리 가, 날 내버려두란 말야.”

사람들 속에서 여자가 날카로운 칼로 쇠를 긁는 듯한 히스테리컬한 목소리를 질러댔다.

뒤를 힐끔 쳐다본 강수는 신경을 끊고 조금 전 펼쳤던 마법을 생각했다.

‘완벽한 사이클론윈드 마법이 구현되었다!’

그랬다.

며칠 동안 될 듯 말 듯 하던 1서클 마법이 완벽하게 펼쳐졌다. 강수의 머릿속은 조금 전 캐스팅했던 순간의 느낌으로 가득 차 있었다.

‘잡념과 사념이 간섭할 틈이 없는, 무아지경에 이르는 순간적인 집중!’

그 느낌이 사라지기 전에 다시 마법을 캐스팅해봐야 했다.

주체할 수 없는 흥분에 휩싸인 강수는 서둘러 아파트로 올라갔다.

꽝!

자신도 모르게 부술 듯이 현관문을 닫은 강수는 일단 심호흡을 몇 번 하면서 흥분을 가라 앉혔다.

‘해보자!’

모든 것이 소거된 뇌리에 오직 하나의 마법수식만을 떠올렸다. 습관처럼 파이어볼을 캐스팅했다.

“파이어볼!”

손에서 둥그런 불덩이가 타올랐다.

비록 투팍탈과 비교하면 크기는 작았지만 사과 크기의 파이어볼이 손바닥 위에서 구현되었다.

황홀한 눈으로 파이어볼을 바라보던 강수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앗뜨뜨뜨.”

부리나케 부엌으로 달린 강수가 파이어볼을 개수대에 조심스럼게 내려놓았다.

팍!

파이어볼이 가볍게 터지면서 불꽃이 일렁이며 소멸했다.

“완성했다.”

강수의 입에서 무심한 듯 나지막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러나 곧 감격에 겨운 격한 외침과 함께 팔짝팔짝 뛰기 시작했다.

“완성이다! 완성했어! 드디어 완성이다아. 으하하하하.”

성취감에 도취된 강수는 미친 듯이 웃었다.

잠시 후, 정신을 차린 강수는 흥분을 가라앉혔다.

'도시의 일몰'을 작업 중인 캔버스가 눈에 들어왔다.

‘흠, 전시회 개막일이 며칠 남지 않았지.’

강수는 일단 샤워를 하고 나와 붓을 들었다. 전시회 개막이 4일 앞으로 닥친 것이다.

붓을 들었으나 정신이 마법에 팔려 있어 도무지 물감을 칠할 수가 없었다.

“안 되겠다.”

머리가 온통 마법수식으로 꽉 차 있는 지금 상태로는 오히려 그림을 망칠 것 같았다.

강수는 다시 등산복으로 갈아입고 배낭을 멨다.

‘작업은 거의 끝났으니까 오늘은 마법수련에 올인이다.’

밖으로 나온 강수는 수련장소로 바람처럼 달려갔다.

헉헉!

수련장소에 도착한 강수는 뜨거운 숨을 내뱉으며 수건으로 땀을 닦았다.

잠시 숨을 고른 강수는 자신이 익힌 1서클 마법을 차례차례 캐스팅하기 시작했다.

우선 작은 돌덩이를 하나 집어 들었다.

“프리즈”

돌덩이의 표면에 하얀 서리가 나타났다. 프리즈는 무엇이든 얼리는 마법이었다.

얼어붙은 돌덩이를 바위에 가볍게 던지자 파삭 깨져나갔다.

“파이어볼.”

사과 크기의 불덩이가 구현되었다.

“홀드.”

날아가던 돌이 멈추었다. 약 2초 후 홀드가 풀렸다.

“라이트!”

야구공 크기의 구체에서 어둠을 밝히는 빛이 뿜어져 나왔다.

“라이트닝쇼크!”

한 가닥의 빛줄기가 목표로 했던 나무를 강타했다. 생명체에 명중하면 전기쇼크를 일으킨다.

“아이스애로우.”

15센티 길이의 얼음화살이 구현되었다. 목표지점을 마법수식에 추가해서 영창하면 구현되자마자 발출된다.

“파이어애로우.”

15센티 길이의 불화살이 구현되었다.

“블링크!”

순간이동마법이었다. 강수는 1미터를 순간이동할 수 있었다. 한 걸음밖에 되지 않는 이동에 불과했지만 놀라운 마법이 분명했다.

블링크는 물체도 이동시킬 수 있었다. 작은 물체는 꽤 멀리까지 이동이 가능했다. 이동 경로에 장애물이 있으면 당연히 충돌했다. 투과는 불가능한 것이다. 투과마법은 따로 있었다. 물체를 투과하는 마법은 2서클 마법이었다.

“실드!”

전신에 푸른 기가 도는 방어막이 펼쳐졌다. 경도(硬度)는 얼마나 강한지 몰라도 1서클 마법사의 방어막은 2서클 마법까지 막아낼 수 있다고 했다.

“사이클론윈드”

추락하는 여인에게 사용했던 회오리바람이었다.

직경 1미터의 회오리바람은 상대의 균형을 무너뜨리거나 공중으로 날려버린다.

추락하는 여자의 경우 밑에서 회오리바람을 일으켰기 때문에 솟구치는 풍압에 의해 추락 속도를 줄일 수 있었다.

마법수식을 영창할 수 있는 1서클 마법을 빠짐없이 시전할 수 있었다. 나머지 10여 개의 마나수식은 아직 시간에 맞게 영창을 할 수 없었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는 최저 속도 이상으로 달려야 하듯이 각 마나수식은 영창을 끝내야 하는 기준 시간이 존재했다. 빠른 것은 상관이 없지만 기준 시간을 초과하는 영창은 마법이 구현되지 않는다.

마법이라는 마력에 정신줄을 놓은 강수는 날이 저무는지도 모르고 마법수련에 열을 올렸다. 급기야 2연속 블링크를 시전하는가 하면 얼음화살을 연속으로 3개씩 날리기도 했다.

팍! 팍! 팍!

연속으로 바위에 명중한 3개의 얼음화살이 산산이 부셔지며 사방으로 비산했다.

“으하하. 3연속 얼음화살 쏘기 성공! 이번엔 3연속 블링크에 도전이다.”

“브링··· 크억!”

3연속 브링크를 시전하려 했던 강수는 갑자기 가슴을 부여잡고 푸들푸들 떨더니 땅바닥에 고꾸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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