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
그림 그리는 마법사 - 10회
‘외국인인가? 한데 어느 나라 사람이지?’
세계공통어라고 할 수 있는 영어는 알지도 몰라서 짧은 회화실력으로 물어보았다.
“웨어 아 유 컴 프럼?”
영어를 알아들을 리 없는 투팍탈이 고개를 저으며 입맛을 다셨다.
‘으음, 어쩔 수 없이 언령마법을 써야 하나? 어차피 얼마 살지 못한다. 조금 일찍 죽는다고 무슨 대순가?’
마나를 아껴야 하지만 대화가 통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투팍탈이 어떻게 할지 고민 하는 동안 강수도 외진 산속에서 만난 거구의 외국인 때문에 고민에 빠졌다.
처음에는 외국인이라고 생각했지만 보면 볼수록 사람 같지가 않았다.
사람이라고 하기엔 체격이 너무 컸고 이목구비는 서양인과 비슷했지만 뭔가 위화감이 들었다.
‘사람이 아니면? 설마 외계인?’
순간적으로 뇌리에 떠오른 단어였는데 어쩌면 진짜로 외계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등산로는 주로 서울시민이 주말에 가볍게 등산하는 곳이지 외국인 혼자 찾아올 정도로 유명한 관광지가 아니다. 또한 상대방은 배낭도 없이 옷만 입고 있었다.
더구나 머리뼈가 깨져 흘린 피로 떡이 져 있는 머리가 멀쩡하게 나은 것은 현대의 의료과학으로도 치료 불가능한 일이 아닌가? 외계인이라는 생각이 들자 알 수 없는 존대에 대한 미지의 두려움이 등골에 엄습했다.
‘서, 설마 외계인이 내 머리를 치료해 주었나? 이거 꿈은 아닌 거 같은데?’
강수는 두려움을 떨쳐버리기라도 하듯 볼을 잡고 있는 힘껏 비틀어 보았다.
“윽!”
엄청 아팠다.
비현실적인 상황이라 꿈인지 생시인지 아직도 분간이 잘 안 됐지만 꿈이라면 감각이 이렇게 생생할 리는 없었다.
하지만 눈을 크게 뜨고 주위를 둘러보아도 외계인이 타고 온 UFO는 보이지 않았다.
‘음, 본선은 달 뒤에 있고 소형 UFO로 왔나? 아니면 광학미체처럼 투명화 기술을 쓰는 건가?’
강수가 하는 꼴을 가만히 지켜보던 투팍탈이 손가락으로 자신의 가슴을 찌르면서 말했다.
“나는 투팍탈이다. 투.팍.탈.”
투팍탈 석자를 한 자 한 자 힘주어 말했다.
‘손가락이 여섯 개!’
기형인 육손으로 태어나는 사람이 가끔 있지만 기형이라면 눈앞의 거한처럼 완벽한 조형미를 가진 손이 될 수 없다. 아직 확실하지는 않지만 외국인보다는 외계인 쪽으로 무게가 쏠렸다.
강수는 심호흡을 크게 했다.
“투, 투팍탈?”
강수가 자신의 이름을 말하자 투팍탈이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강수를 가리켰다.
“이강수입니다. 이.강.수.”
고개를 끄덕인 투팍탈이 옆에 있는 바위에 앉으라는 손짓을 했다.
투팍탈이 하는 손짓의 의미를 짐작한 강수는 잠시 갈등했다.
상대방은 외계인일 가능성이 아주 농후했다.
외계인과의 접촉은 인류학적으로 엄청난 의미를 가진 일대 사건이다.
외계인과의 접촉 시 벌어질 수 있는 상황에 대해 비관적으로 보는 과학자들이 많다.
‘시간의 역사’ 저자 스티븐 호킹 박사가 대표적인 비관론자이다.
천재 과학자인 그에 따르면, 외계인의 방문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아메리카대륙을 방문한 것과 같으며, 콜럼버스의 방문이 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 좋은 결과를 가져다주지 않은 점을 지적했다.
즉, 유럽인이 원주민에게 저지른 정복과 학살의 역사를 상기하며 외계인이 비우호적일 가능성을 경고한 것이다.
그에 반해 외계인과의 접촉에 대해 강수는 낙관론 쪽이다.
UFO를 만들어 항성여행이 가능한 존재라면 과학문명이 고도로 발달해 궁극의 경지까지 이른 인종이다.
과학문명만 그렇게 발전했을까? 필히 정신문명도 과학문명만큼이나 고도로 발전했다고 추측하는 것이 타당하다. 그런 고등한 정신세계를 가진 지적 생명체가 이계의 하위문명을 파괴, 정복, 학살할 것 같지는 않았다.
반대로 인간이 항성 간 여행이 가능한 우주선을 만들어 이계에 도착해 원주민을 접촉하면 어떨까?
현실적으로 인간이 항성 간 여행을 하려면 수백 년 혹은 수천 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때쯤이면 세계는 하나의 국가나 연방체로 통일이 될 것이고, 인간의 정신세계나 인간성, 도덕성은 경쟁, 정복, 파괴가 아닌 상호공존과 평화를 추구할 것이다.
때문에 이계의 원주민을 만나도 그들을 학살하지 않고 공존을 추구하지 않을까?
눈앞의 외계인도 마찬가지다.
만약 외계인이 적의를 가졌다면 지구인의 신체구조를 파악하기 위해 해부를 하면 했지 부상을 입고 정신을 잃은 자신을 치료해 줄 이유가 없을 것이다.
나름 결론을 내린 강수는 투팍탈이 가리키는 바위에 순순히 앉았다. 비록 자리에 앉기는 했지만 가슴이 떨리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투팍탈은 언령마법을 전개했다.
투팍탈과 강수가 있는 주위는 짙은 어둠으로 물들어 사물을 분간하기 어려웠다.
컴컴한 어둠 속에서 투팍탈의 머리는 흐릿하지만 형광물체처럼 푸르른 빛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허공에 두둥실 떠 있는 것 같은 푸른빛은 으스스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투팍탈의 머리에서 일어난 괴이한 현상에 강수는 섬뜩한 느낌이 들었지만 어떤 이유가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두려움을 떨쳐냈다.
투팍탈의 머리에서 흐릿하게 빛나는 푸른색의 기운이 한 마리의 뱀처럼 꿈틀거리며 강수의 머리로 뻗어왔다.
‘저게 뭘까?’
의식은 우호적인 외계인이라는 판단을 내리고 두려움을 떨쳐냈지만 심장은 본능적으로 빠르게 뛰며 강수를 초긴장 상태로 몰고 갔다.
푸른색의 기운이 감수의 이마에 닿았고, 머리로 스며들었다. 순간 강수의 몸이 경련을 하며 한차례 진저리를 쳤다.
동시에 강수의 머리에 저음의 둔탁한 목소리가 들렸다.
“너를 해칠 생각이 없으니 두려워하지 마라. 내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느냐?”
마치 텔레파시처럼 상대의 소리가 뇌리에 들려왔다. 본능적으로 두려움에 떨던 강수는 한국어처럼 거한의 목소리가 들리자 깜짝 놀라 말을 더듬었다.
“그, 그렇습니다.”
“나는 자랄 행성의 마법사 투팍탈이다.”
“자, 자랄 행성의 마법사요?”
눈앞의 거한은 자신이 추측한대로 외계인이었다. 거한의 정체를 알게 된 강수는 추측했을 때와는 달리 충격에 휩싸였다.
강수의 심장이 다시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그렇다. 내가 살았던 곳이지. 이곳의 이름은 무엇이냐?”
“이, 이 행성은 지구라고 합니다. 이곳은 지구에서 북반부에 위치한 대한민국입니다.”
“지구? 대한민국?”
오한이라도 들린 것처럼 강수의 몸에 소름이 돋고 전신이 부들부들 떨렸다. 강수의 상태를 눈치 챈 투팍탈이 부드럽게 말했다.
“두려워하지 말고 진정해라. 너를 해칠 생각이었다면 네 머리를 치유할 이유가 없지 않느냐?”
맞는 말이었다. 따지고 보면 죽어가던 자신을 거한, 아니 투팍탈이 살려주지 않았는가? 혼란스러웠던 정신이 빠르게 안정되었다.
“예, 알겠습니다. 한데 당신은 자랄 행성에서 무엇을 타고 여기까지 왔습니까?”
“무얼 타고 왔냐고?”
비행기나 우주선과 같은 첨단과학, 기계문명과는 거리가 먼 자랄 행성이다. 투팍탈은 질문의 요지를 이해할 수 없었다.
투팍탈은 의문은 뒤로하고 대답했다.
“차원이동마법진을 만들어서 포탈을 열고 차원이동을 해왔다.”
“예에? 우주선을 타고 온 것이 아니라 차원이동을 해서 왔다구요?”
강수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판타지 소설에나 나올법한 이야기였다.
불신 가득한 강수의 마음을 읽은 투팍탈이 쓴웃음을 지었다.
“믿지 않는군. 믿든 말든 상관없고, 죽기 전에 네게 마법을 전수해주기로 마음먹었다. 마법을 배우고 싶은 마음이 있느냐?”
“마법이요?”
뜬금없이 마법이라니!
이것 역시 판타지 소설에나 나오는 이야기였다.
“주문을 외면 불을 만들고 바람을 일으키고, 공간을 이동하는 그런 마법 말입니까?”
강수의 얼굴은 불신의 표정이 여실했다.
‘이 놈이! 으음, 역시 여긴 마법과 거리가 먼 세계인가보군.’
마법을 믿지 못하는 이계인에게 성질을 부릴 필요가 없었다.
“마법은 아무나 배우지 못한다. 자랄 행성에서도 소수의 선택 받은 자만이 마법사가 될 수 있지. 네 놈이 관심 없다면 굳이 강요하지는 않겠다. 내 앞에서 사라져라.”
상대방이 싫다는 데야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마법을 가르쳐주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투팍탈의 냉담한 태도에 강수는 순간적으로 찬물을 뒤집어 쓴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자신의 깨진 머리가 멀쩡하게 나았고, 외계인인 투팍탈과 자연스럽게 대화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고정관념에 젖어 마술도 아니고 마법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발로 차버리는 우매한 짓을 할 뻔했다.
물론 진짜로 마법을 배울 수 있는지는 확신할 수는 없다. 하지만 마법이라는 환상적인 수법을 배울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면 배울 가치는 차고도 넘친다.
강수가 흠칫 놀라서 엎드려 절을 하며 외쳤다.
“아닙니다. 배우고 싶습니다. 가르쳐 주십시오.”
“으잉?”
갑자기 땅바닥에 엎드려 간청을 하는 강수의 태도에 냉담해진 마음이 조금 움직였다.
“너는 마법을 믿지 못하는 것 같은데?”
강수는 자신의 잘못을 순순히 시인했다.
“우리 세상에는 마법이 존재하지 않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다친 머리를 말끔하게 치료해 주시고, 이계인인 당신과 이렇게 대화를 할 수 있는 것은 마법이 아니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마법을 배우고 싶습니다. 가르쳐 주십시오.”
경직되었던 투팍탈의 표정이 약간 누그러졌다.
“흠, 마법이 없는 세상이면 그런 생각을 할만도 하지. 좋다. 마법을 배우려면 서둘러야 할 것이다. 이곳은 불편하니 우선 적당한 장소부터 찾아보자.”
땅바닥에 누어있다 일어난 강수는 오한을 느끼고 있었다.
몸을 한차례 부르르 떤 강수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 마법사님. 날씨가 추운데 제 집으로 가서 하면 안 될까요?”
“춥다고?”
“예, 산은 기온이 낮습니다. 좀 있으면 더 추워집니다. 다만.”
강수는 2.2m에 이르는 거구의 투팍탈을 새삼스럽게 살폈다.
‘엄청난 거구다.’
키는 하승진보다 좀 작을지 몰라도 덩치는 2배가 될 정도로 우람했고, 복장은 마법사가 입는다는 로브 같았는데 밤이라 별로 문제될 것 같지는 않았다.
“우리 인간에 비하면 체구가 크지만 키 큰 사람이 없는 건 아니니까 모자를 쓰고 인적이 드문 골목으로 가면 사람들의 이목을 피할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투팍탈이 의외라는 목소리로 물었다.
“난 널 보고 신체가 왜소한 드워프 종인 줄 알았다. 한데 지구인 가운데 나처럼 키 큰 자가 있단 말이냐?”
강수를 드워프 취급하는 투팍탈이었다.
졸지에 드워프가 된 강수가 쓴웃음을 지었다.
“지구인의 체구는 일반적으로 나 정도입니다만 간혹 당신처럼 큰 인간도 있지요.”
“흐음, 우리도 간혹 키가 작은 변종이 태어나긴 하지. 그런 종자는 드워프로 낙인 찍혀 드워프 부락으로 쫓겨나고 만다.”
판타지 소설에서 드워프는 난장이고 힘이 세서 대장장이 일을 주로 한다.
“자랄 행성에 나처럼 생긴 드워프가 있습니까?”
“있지. 주로 대장장이나 건축공사, 광물 캐는 고된 일을 하는데 키는 너보다 좀 작지만 생김새도 비슷하다. 하지만 근육질이라 덩치는 두 배쯤 되겠군.”
‘허, 완전 드워프네. 자랄 행성은 판타지에 나오는 그런 세상일까?’
강수는 판타지에 등장하는 미의 여신처럼 극강의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종족을 떠올렸다.
‘판타지 세상도 아닌데 설마 엘프가 있는 건 아니겠지?’
스스로 생각해도 어이가 없지만 한번 물어보았다.
“자랄 행성에는 엘프라는 종족도 있습니까? 귀가 뾰족하고 미의 여신처럼 아름답게 생긴 종족인데요.”
“엘프?”
투팍탈이 고개를 저었다.
“그딴 종족은 없지만 더럽고 흉악하게 생긴 오크라는 종족은 있지. 이놈들은 성정도 흉폭해서 사냥할 수 있는 모든 생명체를 먹잇감으로 여기고 잡아먹는다. 자랄 행성의 골치덩어리야.”
역시 엘프는 없지만 오크가 있다는 대답에 강수의 입이 벌어졌다.
“아, 오크가 있군요.”
판타지 소설에 등장하는 오크는 투팍탈이 말한 오크와 생김새나 성정 등 대부분이 비슷한 것 같았다.
놀라는 강수를 보고 힐끗 보더니 이어 말했다.
“오크만이 아니다. 오크보다 강하고 난폭한 온갖 괴수들이 대륙에 가득하다.”
모자를 뒤집어 쓴 투팍탈이 강수에게 말했다.
“지금 이런 잡담 나눌 때가 아니다. 마법을 제대로 전수해주고 싶어도 내가 살 수 있는 시간은 얼마 없다. 심령마법을 쓰고 있는 지금도 생명줄이나 다름없는 마나가 조금씩 소모되고 있지. 네 집까지 갈 필요가 없어.”
강수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살 수 있는 시간이 없다고요?”
“보호회로가 없는 포탈로 차원이동을 해서 그렇게 됐다.”
자세한 설명 없이 간단히 대답하고 주위를 두리번거린 투팍탈이 아래를 가리켰다.
“저 아래 평평한 곳이 있으니 저기서 마나시드를 시술하면 되겠다. 따라 와라.”
투팍탈이 성큼성큼 아래로 내려갔고 강수가 뒤를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