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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그리는 마법사-8화 (8/197)

# 8

그림 그리는 마법사 - 8회

파지지지지!

등산로를 내려가던 강수는 갑자기 전방 우측에서 이상한 소음을 듣고 멈춰 섰다.

‘무슨 소리지?’

주위를 살피던 강수는 등산로에서 우측으로 약 20미터 정도 벗어난 곳에서 이상 현상을 발견했다.

‘어? 저게 뭐야?’

강수의 시선이 닿은 곳에서는 기음을 발출하면서 공간이 아지랑이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호기심이 발동한 강수는 소리가 나는 곳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물결처럼 일렁이는 공간 앞에서 주위를 살펴본 강수는 진기한 현상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신기루 현상도 아닌데 괴상하군.”

이때, 일렁이던 공간이 소용돌이치며 축구공 크기의 검푸른 구체로 변해갔다.

“엇!”

깜짝 놀란 강수는 뭔가 불길한 느낌이 엄습하자 재빨리 옆으로 물러나려 했다.

강수가 두어 걸음 움직였을 때 압축된 공기가 폭발하듯 검푸른 구체가 급격하게 확장되었다.

강맹한 파장이 강수를 덮쳤다.

“우앗!”

강수는 갑작스럽게 몸을 때리는 충격파에 휩쓸려 비탈로 튕겨나갔다.

잠시 후 3미터가 넘는 크기로 커진 검푸른 구체에서 거대한 물체 하나가 튀어나왔다.

땅바닥에 나뒹군 물체가 꿈틀거리며 일어났다.

‘으으, 성공한 것인가?’

신음을 내며 움직이는 물체는 츄나순 왕국에서 차원이동마법진을 가동해 차원이동을 감행한 8서클 마법사 투팍탈이었다.

혼미한 정신을 추스른 투팍탈은 심호흡을 크게 했다.

“살았다. 다행히 공기가 있구나. 안전한 장소에서 마나부터 보충해야 한다. 당연히 마나는 있겠지?”

투팍탈은 마나의 존재 유무를 확인하기 위해 마나회로를 가동해 보았다. 점점 투팍탈의 얼굴이 일그러지면서 사색으로 변했다.

‘뭐냐? 마나가 별로 없어?’

고대 마법서에 따르면 마나는 우주를 가득 채우고 있다고 했다. 마나는 우주를 이루고 있는 가장 근원적인 원소였다.

한데 이 행성은 마나가 자랄 행성에 비하면 턱없이 적었다.

차원이동마법진은 제국군의 공격으로 인해 가장 중요한 요소인 보호회로를 완성하지 못한 상태였다.

보호회로는 차원이동 중에 육체에 걸린 과부하를 보호해주는 회로다. 보호회로가 적용되지 않은 차원이동마법진은 차원이동이 성공하더라도 육체의 붕괴를 초래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투팍탈의 신체에서는 그 증상이 나타나고 있었다.

육체의 붕괴를 막을 유일한 마법은 환원마법이다.

환원마법은 붕괴하는 육체를 정상으로 복원할 수 있다. 다만 환원마법을 펼치려면 보유 마나 전부가 필요하다. 하지만 마나를 이미 절반 이상 소모한 상태라 마나가 부족했다.

자랄 행성처럼 마나가 풍부한 행성이라면 치유마법으로 시간을 벌고, 부족한 마나를 보충해서 환원마법으로 육체를 정상으로 회복할 수 있지만 뜻밖에도 이계는 마나가 풍부하지 않았다.

소모된 마나를 보충하기 전에 육신이 붕괴하고 만다.

투팍탈은 재빨리 치유마법으로 붕괴해 가는 육신을 회복시켰다.

하지만 치유마법은 임시방편일 뿐이다. 붕괴하는 육체의 속도를 치유마법이 따라가지 못한다.

‘이래서는 마나가 바닥나 결국 소멸하고 만다. 방법이 없을까?’

머리를 아무리 쥐어짜 봐도 결국에는 마나가 문제였다.

아무리 머리를 쥐어 짜봐도 결국에는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으아아, 뭐 이런 거지 같은 곳이 있단 말인가!”

절망에 빠진 투팍탈이 양팔로 머리를 부여잡고 고통에 찬 신음을 토했다.

절망에 빠져 넋을 놓고 앉아 있던 투팍탈이 비탈 아래 쓰러져 있는 물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미약하지만 생명체의 존재를 느낀 것이다.

“저건 뭐야? 드워프 종인가?”

투팍탈은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는 강수에게 다가갔다.

강수는 비탈을 구르며 튀어나온 바위에 머리를 부딪쳤는지 머리가 온통 피범벅이었다.

강수를 이리저리 살핀 투팍탈이 고개를 저었다.

“드워프와 비슷하긴 한데 드워프 종은 아니군. 하긴 외계 행성에 드워프와 똑같은 종이 있을 리가 없지.”

투팍탈은 눈앞의 외계인종이 머리의 부상 때문에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대로 두면 서너 시간 안에 목숨이 끊어질 것이다.

이계 종족을 걱정할 때가 아니었다.

보호회로가 미완성인 차원이동마법진을 통해 차원이동을 한 자신 역시 죽음을 피할 수는 없었다.

“젠장, 마나의 농도가 자랄의 절반만 됐어도 어떻게든 살 수 있으련만 뭐 이따위 행성이 다 있어···.”

어떻게 된 것이 이놈의 행성은 자랄 행성에 비해 대기 중 마나가 삼분지 일 정도였다. 제국기사단의 추격을 피해 차원이동을 해왔건만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죽음이었다.

‘이렇게 허망하게 죽어야 하나?’

현재의 위기를 타개할 방법이 무엇인지 골몰해보아도 환원마법과 흑마법의 비전인 영혼전이마법 외에는 아무런 수단이 없었다. 하지만 두 마법 모두 현재는 무용지물이었다.

환원마법은 시전할 수 있는 마나가 부족했고, 금단의 흑마법인 영혼전이마법은 시전 하는데 필요한 마정석과 마법진을 만들 시간이 없었다.

‘결국 죽음을 피할 수 없단 말인가?’

“크아아, 젠장!”

투팍탈은 굉음 같은 고함을 지르며 옆의 바위를 주먹으로 내리쳤다.

꽝! 꽝! 꽝!

믿기지 않게도 투팍탈의 주먹에 바위가 산산이 부셔졌다.

“8서클 대마법사인 내가 이계에서 이렇게 허망하게 드워프 같은 놈과 저승길 길동무를 해야 하냔 말이다.”

자신의 키보다 커다란 바위 하나를 박살내고 바닥에 주저앉은 투팍탈은 참담한 심정으로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밤이 깊지 않아서인지 몇 개의 별들이 밤하늘에서 흐릿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저 밤하늘 어딘가에 자랄 행성이 있을 것이다.

쿵!

털석!

이때 투팍탈이 빠져 나온 차원공간에서 새로운 물체들이 튕겨 나오며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어리석은 자들. 역시 나를 쫓아왔군.’

투팍탈이 차원공간에서 빠져 나온 자들을 응시하며 눈살을 찌푸렸다.

“젠장. 정찰조인가? 로캬롭퓨는 오지 않았군. 응? 저 놈은 큐랴토퍄.”

차원공간에서 나온 자들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고 있었다.

‘당장 돌아가서 환원마법으로 치료하지 않으면 육체는 먼지로 화해 버리지···.’

투팍탈의 중얼거림과 함께 제국의 기사들이 다급한 목소리를 토해냈다.

“이, 이게 뭐지?”

“몸, 몸이 이상하다!”

“마나가 사라진다!”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살피던 큐랴토퍄는 몸을 더듬으며 혼란스러워 하는 부하들을 보며 뭔가 크게 잘못됐다는 것을 알았다.

자신의 몸도 정상이 아니었다. 수하의 외침대로 이미 크게 줄어든 마나가 빠르게 소진하고 있었다.

‘괴이한 곳이다. 투팍탈이 경고가 진짜였어. 복귀해야겠다.’

큐라토퍄는 복귀하기 전에 조금이라도 정보를 얻기 위해 주변을 살폈다.

그는 비탈 아래에서 투팍탈과 그의 앞에 쓰러져 있는 고블린처럼 작은 물체를 발견했다.

그리고 자신을 보고 있는 투팍탈과 눈이 마주쳤다.

“투팍탈!”

큐라토퍄가 고함을 질렀다.

투팍탈이 팔을 휘휘 저었다.

“빨리 복귀해라. 운이 좋으면 너는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뭐야!”

당장 달려가 단칼에 목을 치고 싶었지만 직감이 행동을 제지했다. 마나를 사용해 공격하면 팔다리가 분리될 지도 모른다고.

“으아아! 손, 손가락이 분해된다!”

“우왓, 발, 내 발이 어디로 간 것이냐?”

수하의 비명에 고개를 돌려 살펴보니 수하들이 변화하는 자신의 신체를 보며 경악해서 허둥댔다.

어떤 수하는 손가락이 사라지며 손가락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흘러내린 피는 땅을 적시기 무섭게 기화되듯 공기 중으로 흩어졌다.

다른 수하는 발을 부여잡고 흐르는 피를 막고 있었다.

‘어떻게 이런 괴이한 일이···.’

기괴한 광경에 크게 놀란 큐라토퍄는 더 생각할 것도 없이 고함을 질렀다.

“복귀한다. 전원 이동마법진으로 진입해라.”

복귀명령을 내린 큐라토퍄는 이동마법진을 넘어온 수하를 살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한데 어째서 수하들이 절반도 되지 않지? 다른 공간으로 빠진 것인가? 설마 저렇게 소멸된 것은 아니겠지?’

제3대의 기사들이 부상당한 동료를 부축해서 미친 듯이 차원의 공간으로 달려갔다.

부족한 수하에 대한 의문을 뇌리에 담아 둔 큐라토퍄는 투팍탈을 노려보며 외쳤다.

“투팍탈, 기다려라. 제국의 기사단은 결코 네 놈을 포기하지 않는다.”

마나하트에서 마나가 급격하게 소멸해 가고 있었다.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다고 판단을 내린 큐라토퍄는 포탈로 뛰어들었다.

서늘한 기운이 몸을 덮쳤고, 소용돌이치는 거대한 흡인력에 끌려 어디론가 빨려갔다.

코탼 영지의 포탈로 귀환한 큐라토퍄는 몸의 중심을 잃고 나동그라졌다.

초조한 표정으로 마법진 밖에서 서성이던 로캬롭퓨는 갑자기 포탈에서 튀어 나온 물체를 확인하고 크게 놀라서 부르짖었다.

“큐라토퍄!”

큐라토퍄가 포탈에 진입하고 채 2분도 지나지 않았다.

로캬롭퓨가 쓰러진 큐라토퍄에게 달려갔다. 주위에서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던 기사들도 깜짝 놀라며 큐라토퍄에게 다가갔다.

“아니 이게 무슨 꼴이냐?”

로캬롭퓨는 팔, 다리가 사라지고 있는 큐라토퍄의 모습을 보고 대경실색했다.

“키칼쵸, 키칼쵸 어디 있느냐?”

주위에 몰려든 수하들에게 외쳤다.

기사들을 헤집고 로브를 입은 자가 앞으로 나왔다.

“부르셨습니까?”

“뭐 하는가? 당장, 당장 치료해!”

“에~ 예. 옛.”

큐라토퍄의 얼굴과 피부는 죽음의 색인 회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더구나 팔은 팔뚝까지만 남았고, 다리는 허벅지만 조금 남아 있었는데 그 마저 먼지처럼 분해되고 있었다.

큐라토퍄의 괴이한 모습에 황당한 얼굴의 키칼쵸가 혼란한 정신을 수습하며 치유마법을 캐스팅했다.

그의 양손에 하얀빛이 모여들었다.

“ (치유)”

외침과 함께 그의 양손에서 흘러나온 흰빛이 큐라토퍄의 몸을 휘감았고, 서서히 육체 안으로 스며들었다. 회색으로 물들어 있던 큐라토퍄의 피부가 조금씩 살색으로 돌아왔다.

“으음···.”

큐라토퍄가 가늘게 신음을 흘렸다.

“큐라토퍄, 큐라토퍄!”

큐라토퍄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더니 눈을 떴다.

“로, 로캬롭퓨님?”

“그래. 나다. 정신이 드느냐?”

큐라토퍄가 상체를 일으켰다. 로캬롭류가 부축해주었다.

“수하들은 복귀했는지요?”

“너 혼자만 복귀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이냐? 수하들은 어떻게 됐지?”

“나 혼자만 복귀했단 말입니까?”

충격을 받았는지 큐라토퍄가 멍한 얼굴로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팔다리가 사라져 폐인이 되어버린 수하를 바라보는 로캬롭퓨가 얼굴을 찡그렸다.

“일단 안정을 취한 후 다시 얘기하자. 쇼마갈.”

“옛, 단장님.”

“큐라토퍄를 영주 저택으로 옮겨라. 그리고 키칼쵸는 큐라토파의 곁에서 항시 대기하며 상태를 지켜보도록 한다.”

“알겠습니다.”

큐라토파는 들것을 가져온 기사들에 의해 영주 저택의 방으로 옮겨졌다.

*

투팍탈은 차원의 공간으로 사라지는 큐라토퍄를 묵묵히 지켜보았다. 잠시 후 차원의 공간마저 흐릿해지며 소멸되었다.

육신이 먼지처럼 소멸해가는 제국의 기사들을 보니 자신의 처지가 생각났다.

자신도 저들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휴우—“

투팍탈의 입에서 절로 한숨이 새어 나왔다.

수십 번의 죽음을 이겨내고, 온갖 역경을 극복해서 8서클 마법사라는 위대한 경지에 도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대한 포부를 이루기는커녕 흑마법사로 몰려 제국기사단의 추격을 피해 다녀야만 했다. 기사단의 감시망을 피해 20년 전 제국의 변방인 코탼으로 숨어들었고, 마법진을 연구하며 말년을 조용히 지내려고 했지만 결국은 그마저도 실패했다.

11년 전, 괴수를 사냥하러 다니던 츠랴 산맥 깊은 곳에서 우연히 산림과 흙더미에 묻힌 고대도시를 발견했다. 고대도시를 발굴하던 중 그나마 원형을 어느 정도 유지하고 있는 신전에서 마법진에 관한 서적이 다수 출토되었다.

고대서적 가운데 하나가 거대한 마법진에 관해 쓰여 있었다.

흥미를 느끼고 연구를 하던 중 거대한 마법진이 차원이동마법진일지도 모른다는 판단을 내렸다.

우주 공간을 이동해 다른 행성으로 여행을 할 수 있는 차원이동마법진이라니!

전설로만 내려오던 마법진이었다. 투팍탈은 흥분했고, 강렬한 호기심에 휩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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