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화. 걱정은 걱정을 부른다
“이길 수 있겠지요?”
경기 시작 때부터 안절부절못하던 사장이 결국 참지 못하고 불쑥 말을 내뱉고 말았다.
“하핫. 애초에 오늘 경기는 별로 걱정하지 않았지 않습니까?”
윌리스 단장이 가볍게 웃으면 놀리듯 말을 받았다. 태연한 것처럼 말을 했지만 초조한 것은 단장도 마찬가지였다. 하루 종일 일이 손에 잡히질 않아 사무실에서 멍하니 시간을 보내다 경기 시간이 되자 큰 스크린이 있는 회의실로 모였다. 요즘 들어 해리스 사장은 겨우 다시 조금씩 경기를 보고 있었다.
“허헛. 그랬었죠. 제가 너무 안달을 했나요? 좀 부끄럽네요. 이래저래 많이 피곤한 시즌입니다. 좀 느긋하게 봐야 하는데 어떻게 해도 마음이 편하질 않아서…”
이번 시즌 16승 5패 ERA 1.85와 18승 5패 ERA 2.24를 기록한 최정상급 투수들의 대결이었다. 근래에 보기 힘든 명품 투수전이라고 불릴만한 경기는 점점 더 열을 더해 가고 있었다. 6회까지 0의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제럴드가 다음 이닝에 나오긴 힘들겠죠. 득점을 하진 못했지만, 타자들이 차근차근 공격을 잘 풀어냈어요. 곧 변화가 생기겠죠. 오늘 So의 컨디션이 아주 좋은 것 같은데 실점은 크게 염려하지 않아도 괜찮을 겁니다.”
“다저스가 이렇게 맞붙어줘서 고맙긴 한데… 역시 만만치가 않네요. 헌트는 기대만 못한 것 같기도 하고…”
이번 시즌 해리스 사장은 점점 더 현실에 부정적인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조나단 헌트의 트레이드는 카스트로와 계약이 불발되면서 고려했던 몇 가지 대안 중에는 가장 나은 옵션이었다. 최선은 아니었지만 차선 정도는 되는 영입이었다.
“그가 최고의 타자는 아니지만, 그때 우리의 선택지 중 가장 나은 타자이기는 했었죠. 브렛과 알폰소 정도로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한 겁니다. 라드 감독이 고생했죠. 알폰소를 그렇게 써야 했으니까.”
“뭐… 그거야… 음. 넘어가자고요. 가서 잘하겠죠. 화이트삭스도 헌트를 좋은 마음으로 보낸 건 아니지 않겠어요. 빠른 패스트볼에 대한 약점이 두드러지고, 에이징 커브가 오는 것 같은데 남은 계약 기간도 부담스럽고… 하긴 그게 아니면 화이트삭스가 넘길 리가 없었겠죠.”
대답 대신 해리스 사장의 혼잣말 같은 중얼거림이 이어졌다.
“그때도 말씀드렸지만, 97마일 이상의 패스트볼에 약점이 있다 이건 크게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빠른 볼을 잘 못 치는 건 어느 타자나 비슷합니다. 헌트의 경우가 좀 극단적이긴 합니다만, 생각하기 따라서 아주 큰 결함은 아니지요. 지난 시즌 전체 리그를 통틀어도 평속 97마일을 넘긴 투수는 50명밖에 안 됩니다. 그 대부분은 불펜 투수구요.”
메이저리그 30개 팀마다 12~13명으로 투수진을 구성한다. 대체 선수까지 포함하면 약 450~500명의 투수 중 50명에게 갖는 약점은 그리 비중이 크지 않다는 게 자이언츠 스카우트 팀의 판단이었다.
“그건 평속이지 않습니까. 오늘 제럴드도 그렇고 마음먹으면 그 이상 던질 수 있는 투수는 더 많잖아요.”
“그건 그렇습니다만, 투수들이 더 빠른 공을 던질 수 있음에도 왜 구속 낮춰 던질까요? 빠르게 던지면 타자를 상대하기 더 유리한데 왜 그러는 걸까요?”
“그건…”
“답은 분명하죠. 체력 조절 차원이든 제구를 잡기 위해서든 구속을 높이면 어떤 식으로든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에 그런 거죠. 특정 타자를 상대로 평소보다 구속을 올리는 건 양날의 칼이라고 생각합니다. 언제일지 모르겠지만 한 번은 스스로 베이고 말 겁니다.”
윌리스 단장은 그렇게 믿고 있었다.
“헌트를 영입하고 난 후부터 실제로 우리 팀 승률은 급격하게 상승했습니다. 그의 영입은 성공적이라고 봐야겠죠.”
전반기의 자이언츠는 지난 시즌에 비해 팀 득점은 감소하고 팀 실점은 늘어났다. 여러 가지 유기적으로 얽힌 부분이 있었지만 잘 못 이기는 가장 큰 문제는 그것이었다.
팀 전력을 평가하는 대표적 지표로 세이버메트릭스의 창시자라고 불리는 빌 제임스가 1980년대 제안한 피타고리안 기대 승률이란 게 있다. 승률=득점²÷(득점²+실점²)이라는 공식이 a²+b²=c² 피타고라스 정리와 비슷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팀의 득점과 실점을 가지고 계산하기 때문에 아주 직관적으로 이해하기가 쉽다. 만약, 득점이 실점의 2배라면 피타고리안 기대 승률은 정확히 8할이 되고, 득실차이가 0이면 승률은 5할이다.
“헌트가 라인업에 오르면서 득점이 실점의 1.33배가 되었습니다. 승률은 0.64에 근접했지요. 이렇게 딱 맞아떨어지기가 쉽지 않은데 그건 다행스럽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에 대해서는 해리스 사장도 만족하고 있었다. 그러나 하나가 채워지면 또 다른 하나가 아쉬워지는 법이다.
“제가 세이버메트릭스를 절대적으로 신용하는 건 아니지만 이번 경우에는 문제점이 너무 확실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아주 만족스럽진 않습니다만 지금의 상황이 그 결과죠.”
피타고리안 기대 승률은 득점과 실점으로 계산하는 공식이기 때문에 점수로 계산하는 다른 스포츠 종목에도 응용 가능하다. 그러나 그 정확도는 야구가 가장 높다고 알려져 있다.
야구는 시즌 중에 전력의 변화가 아주 적다. 타자는 타율과 출루율 등 검증된 지표를 가지고 출전하고 투수 역시 마찬가지다. 그리고 점수가 적지 않게 나는 종목이며 공격과 수비에 시간제한 없이 아웃카운트 세 개를 잡아야 이닝이 끝난다. 이러한 점들이 통계치를 적용하기 용이하다. 괜히 야구가 통계의 스포츠라 불리는 것이 아니다.
“예상한 대로 후반기가 흘러가서 다행스럽습니다.”
“그건 너무 이른 말씀 아닌가요? 이번 시리즈가 끝나고 나서 할 이야기 같은데…”
“아뇨. 만약 이번 시리즈 결과가 원하는 대로 나오지 않는다고 해도 전 실망하지 않겠습니다. 선수와 코칭 스탭은 자기 역할을 충분히 해냈습니다. 우리가 전반기 헌트를 영입하기 전까지 어떻게든 5할 승률을 만들어낸 건 그들의 공이죠. 그게 없었다면 후반기 이런 반격은 꿈도 못 꿨을 겁니다. 저는 팀 케미스트리가 어려운 상황을 이겨내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들이 자랑스럽습니다.”
이것에는 해리스 사장도 동의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건 그렇습니다. 결과가 나쁜 건 우리 책임이죠. 아니, 제 책임입니다. 시즌 시작도 하기 전에 제가 헛발질을 해서… 이상한 상황을 초래한 거죠. 우리 팀이 5할 승률을 유지한 것에는 저도 감명받았습니다.”
자이언츠의 전반기는 피타고리안 기대 승률 공식을 대입해보면 5할 이상의 승리가 불가능했다.
“그 이유에 대한 분석은 나왔나요?”
“그것에 대해서는 전력분석팀에서 여러 의견이 나왔는데 가장 지지를 많이 받은 의견은 공식의 특성 때문에 승률 계산에 오류가 있었다는 겁니다. 같은 점수 차로 이기더라도 5할 승률 부근에서는 피타고리안의 증가폭과 감소폭이 커진다는데… 사실 저는 이게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했습니다.”
“아! 그렇겠네요. 0.450~0.550 정도의 승률에서는 그렇게 되겠군요.”
해리스 사장은 바로 알아들었다. 윌리스 단장은 좀 머쓱했지만 내색하지 않고 바로 말을 이어갔다.
“또 하나 지지를 많이 받은 의견은 운이 좋았다는 겁니다.”
“예?”
“전반기 우리 팀의 실점 분포가 퍼져 있고, 득점의 분포는 꾸준해 신승(辛勝)하는 경기가 아쉬운 패배보다 많았다는 겁니다. 전 그게 운의 영역인지 모르겠는데 아무튼 전력분석팀은 그렇다고 하더군요.”
“음. 그건 매 경기마다 평균치에 가까운 득점을 만들어냈고 실점은 이길 때는 2점 질 때는 6점 같은 식으로 평균치와 차이가 많았다는 의미죠. 이것은 버릴 경기는 버리고 이길 경기에 전력을 기울인 결과로 생각할 수 있겠네요. So와 소르카라는 확실한 투수를 보유한 영향도 있을 것 같고요.”
윌리스 단장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전 요즘 라드 감독의 역량을 다시 평가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피타고리안 기대 승률이 실제 나타날 승률의 가능성을 잘 반영하는 예측에 유용한 지표임을 부인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피타고리안 기대 승률은 일종의 후행지표이지 않습니까. 결과에 원인을 끼워 맞춘 것 같은 느낌이…”
“그런 측면이 있기는 하죠.”
“어쨌든 전반기 지표상 안 좋을 것이 예상되었던 시기에도 5할 이상의 승률을 유지해냈고 후반기에는 지표가 예측하는 대로 팀을 이끈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피타고리안이 감독의 역량과의 연관을 부인하는 지표라는 것은 들었습니다. 그러나, 단순히 운이 좋아서 이렇게 되었다고 하기엔 그것도 좀 이상하게 느껴지네요.”
올 시즌이 라드 감독 계약의 마지막 해였다.
“그걸 판단하기에는 좀 이른 것 같습니다. 피타고리안 기대 승률이 완전무결한 지표는 아니지만, 단순 승률을 가지고 다음 시즌 예측을 하는 것보다는 훨씬 명확한 면이 있죠. 그리고 올 시즌 상황이 우리가 짐작할 수 없는 다른 변수로 인해 일어난 것일 수도 있으니까요.”
“당장 계약은 어쩔 생각이신가요?”
“솔직한 심정은 갖춰진 전력을 가지고 운용하게 되는 내년 시즌 정도는 더 보고 나서 하고 싶은데… 피타고리안 기대 승률이 변수에 의해 2년 연속으로 달라지는 경우는 거의 없죠. 한 시즌 정도는 기대 승률과 실제 승률과의 차이가 많이 있을 수는 있지만 대개 그다음 시즌에는 거의 비슷하게 승률이 나타납니다.”
“그런가요? 그 말씀은…”
단장에게 내심 라드 감독이 서운해할 것 같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계약은 해야죠. 하지만 장기 계약은 내키지가 않네요. 기간은 2+1 정도면 어떨까요? 연봉은 글쎄…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 문제에 대해서는 저도 생각을 다시 좀 해보겠습니다. 지금 생각으로는 라드 감독이 그 정도 조건에 별로 내켜 할 것 같지는 않네요.”
“자기 위치에 만족하는 사람은 드물지요. 우린 그것을 잘 달래봐야 하는 사람이고요. 어쨌든 저도… 아직 시즌이 남았으니 결과를 봐야겠지요.”
이야기가 길어지던 사이 7회 다저스의 투수는 교체되었다. 그렇지만 자이언츠의 득점은 여전히 나오고 있지 않다.
“So가 한 이닝 더 던지겠지요?”
7회까지 89구를 던지는 빅게임 피처다운 퍼포먼스를 보여주고 마운드에서 더그아웃으로 향하는 뒷모습이 좀 쓸쓸해 보인다.
“아마도 그렇겠죠.”
8회 초 자이언츠의 공격이 시작되었지만 특별한 모습은 여전히 나오지 않고 있었다.
“르블론부터 시작이라서 기대를 좀 했더니… 이거… 헌트는 어렵겠죠?”
“음. 아마도 지금은…”
르블론의 외야플라이에 이어 5번 타자 헌트가 타석에 나섰다. 다저스의 투수는 평균 구속 96.5 마일의 프라이머리 셋업맨.
“6번 필이 한 방 날리는 걸… 어?”
“아아악, 이거지!”
TV에서는 관중석의 탄식을 배경으로 조용히 다이아몬드를 돌고 있는 헌트의 모습만 비치고 있었다.
“아아…”
해리스 사장이 거의 누울 듯 의자에 몸을 기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