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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성한 이레귤러의 커브가 드러남-179화 (179/200)

179화.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딴따딴- 딴 딴따딴- 딴

‘하루를 알람으로 시작하는 건 좀 아니지 않나?’

이상하게 노곤해서 알람이 계속 울리는데도 꼼짝하지 않고 누워 있었다. 어젯밤 자기 전 맞춰놓은 알람이다.

‘아! 맞다. 나 어제 등판했었지. 흐흣. 1승 추가해서 6승 1패라… 괜찮네.’

등판 다음 날인데 이 정도면 아주 상쾌하게 깬 거다. 알람 소리가 조금 거슬리기 시작했다. 천천히 폰으로 손을 뻗어 알람을 껐다.

‘에구구, 좀 뻐근하네. 그래도 원정 경기에 이게 어디야.’

이곳 애리조나 피닉스는 샌프란시스코와 시차가 없다. 우리 근거지인 샌프란시스코와 많이 멀지도 않고 원정지 중에서는 가장 편한 곳이다.

원정지 중에서 샌프란시스코와 시차가 가장 큰 곳은 뉴욕이다. 이동 거리가 약 4,000km가 넘고 3시간의 시차가 있다, 이 정도는 큰 지장이 없을 것 같지만, 시차로 인한 피로도가 경기력에 부정적으로 작용한다는 연구가 있다.

메이저리그에는 승리를 위해 별별 연구 자료를 다 활용한다. 1992년부터 2011년까지 20년에 걸쳐 메이저리그에서 벌어진 총 46,535경기 중 어느 한 팀이 2시간 이상의 시차를 가진 지역에서 이동 후 벌인 경기가 4,919경기였다고 한다. 이것을 비교 분석한 자료가 있다.

이 분석 중 가장 흔히 인용되는 것은 서부에서 동부로 향하는 이동이 동부에서 서부로 향하는 것에 비해 하루의 길이가 더 짧아지기 때문에 경기력에 더 큰 악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항공을 이용하여 뉴욕에서 밤 11시에 출발해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하면 새벽 1시다. 약 5시간 정도의 비행시간을 생각하면 새벽 4시가 되어야 하지만 시차 때문에 새벽 1시가 된다. 똑같은 코스를 반대로 이동하면 샌프란시스코에서 밤 11시에 출발해 뉴욕에 도착하면 시차 때문에 아침 7시가 된다.

‘시차 적응은 하루가 짧아질 때보다 길어질 때 더 쉽다고 해. 그것 때문에 동부에서 서부로 넘어가는 경우 상대적으로 선수들의 경기력 저하가 덜하다고 하더라고. 일단 시차 문제로 피곤하면 선수들의 주루가 소극적으로 변한대. 순간적인 반응능력 즉, 민첩성과 판단력이 떨어지는 거야. 덕분에 이렇게 벌어진 게임에선 도루와 2루타가 적었다고 해.’

여기에 조금 웃기는 분석도 있다. 타자들의 경우 원정 경기에서 홈에서보다 지표가 상승하기도 하는데 그건 아마도 생활 습관 때문일 것으로 추정되었다. 원정 후 홈으로 돌아오면 대개 집에서 가족과 시간을 보내게 되는데 그것이 충분한 휴식을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해서 그렇단다. 이래저래 유부남은 좀 불편함을 각오하고 살아야 하는가 보다.

시차로 인한 피로는 투수들에게 좀 더 많은 홈런을 허용하게 했으며 이런 분석이 등판 순서에 따라 원정지로 투수를 먼저 이동시키는 경우를 만들어 냈다. 메이저리그 사무국과 선수노조도 이러한 부분을 감안해 2018년부터 3∼4연전의 마지막 날은 낮 경기로 하자는 노사 협약을 하기도 했다.

이 분석은 여러 가지로 증명되는데 LA 다저스의 경우 2014시즌부터 16시즌까지 기록한 평균 승률은 0.570이었다, 같은 기간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높은 승률을 기록했다. 그러나 2시간 이상의 시차를 겪은 뒤 벌어진 첫 경기 성적은 16승 25패, 승률 0.390이었다.

특히, 그 경기 중 쉬는 날 없이 곧바로 동부지역으로 원정을 간 6경기에서는 1승 5패로 0.167의 승률을 올렸고, 반대로 동부에서 홈으로 돌아온 후 바로 치른 경기에선 8승 9패(승률 0.471)를 거두어 동부로 갔을 때보다는 나은 성적을 보여주었다.

‘다저스가 월드 시리즈에서 우승을 하는 데 분명히 이것 때문에 불리한데도 말을 못하는 이유가 비슷한 처지의 우리가 2010시즌, 12시즌, 14시즌 월드 시리즈 우승을 했기 때문이라는 조크가 있지.’

사실은 이 문제로 가장 크게 손해를 보고 있는 팀은 매리너스다. 시애틀은 미국 북서부 끝에 위치한다. 대부분의 원정이 동쪽으로 아주 먼 거리다. 연간 총 76,772km를 원정 때문에 이동해야 한다. 메이저리그 30개 팀 중 가장 멀리 움직여야 하는 팀이다. 대부분의 원정지가 2시간 이상의 시차가 있고 심지어 같은 지구인 애스트로스와 레인저스 원정도 시차가 2시간이 난다. 가장 이동 거리가 짧은 팀인 컵스의 39,060km의 거의 두 배에 가깝다.

원래 나보다 상황이 나쁜 사람을 보면서 현재 처지를 긍정하기보다는 나은 사람을 보면서 질시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시애틀 같은 데를 연고지로 삼으니까 그렇게 되지. 자이언츠가 뉴욕에서 떠난 게 실수였나? 괜히 서부로 연고지 이전을 해서… 그냥 있었으면 양키즈만큼 우승할 수 있지 않았을까?’

흔히 하는 사돈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 강 건너 불구경 등의 말이 현실에 이런 불편함이 은근히 숨어있다는 방증이다. 자리에 누워 무작위로 떠오르는 이런저런 생각을 몽롱한 정신으로 따라가다 보니 잠이 달아난다. 천천히 의식이 명료해졌다.

‘만약에 어제 졌으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네. 이렇게라도 일어나지 못했을 것 같은데… 음. 그리고 좀 전에 메시지 온 것 있지 않았었나?’

알람을 끄면서 메시지 수신 표시를 봤던 것 같다.

‘아침부터 무슨 일이 있다고 이렇게…’

베그웰에게서 온 메시지였는데 별다른 말 없이 주소 하나가 떠 있었다.

‘얘도 기분 좋아서 일찍 깼나 보네. 안 하던 짓을 하고 있어. 심심했었나? 헉! 이게 무슨…’

무심코 주소를 눌렀더니 어떤 기사로 바로 연결되었다.

『자이언츠와 화이트삭스가 조나단 헌트가 포함된 1대 4 트레이드에 합의했다. 2025시즌을 앞두고 12년 총액 3억4천만 달러의 초장기 계약을 화이트삭스와 맺었던 헌트는… 화이트삭스 구단 역사상 최고액과 최장기의 계약자였지만 결국 계약 기간이 절반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트레이드… 화이트삭스는 헌트의 올시즌 잔여 연봉을 자이언츠에게 부담시키고 즉시 전력감인 브렛이라는 내야 자원과 최상급의 포텐을 지닌 알폰소라는 유망주를 얻어냈다. 자이언츠로서는…』

좀 아는 선수다. 트윈스에 있을 때 같은 지구여서 꽤 많이 상대해본 경험이 있었다. 그때는 아메리칸 리그 최고의 2루수로 불렸었다. 이르게 메이저 무대에 데뷔해 나이도 아직 32살이다. 이런 선수를 어떻게 데리고 올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1대 4였지만 현재로선 무게추가 많이 기우는 것 같은 느낌이다.

‘이건 2루수를 바꾼 격인데 솔직히 브렛과는 비교가 안 되잖아.’

나머지 세 선수가 무게추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

2할 중후반의 타율과 홈런 수를 생각하면 우리 타선에 힘을 실을 수 있을 만한 거물급 타자다. 다만, 화이트삭스가 이 정도 조건에 헌트를 왜 보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타율은 비슷하다고 봐줄 수 있지만, 매 시즌 몇 개 정도의 홈런을 기록했던 브렛과 20~30개를 꾸준히 쳐 왔던 헌트는 비교하기조차 미안하다.

‘알폰소는… 어휴! 혹시 마이너에서 넘어간 선수 둘이 화이트삭스의 구미를 당길만한 뭐가 있었나? 그런 선수가 아직 남았을 것 같지는 않은데…’

휴대폰을 찾아 베그웰에게 바로 전화를 걸었다.

“아침부터 이게 무슨 일이야?”

“문득 눈이 떠져 일어났는데 이 난리가 나 있더라고. 생각보다 일찍 일어났네.‘

베그웰은 느긋하게 전화를 받았다.

“남는 장사를 한 것 같기는 한데 뭔가 문제가 있는 거 아냐? 아무리 생각해도 화이트삭스가 왜 이런 선수를 트레이드하는지 이해가 안 되네. 혹시, 무슨 문제 있는 것 아냐? 부상이라든지 외부적으로 알려져 있지 않은… 너무 찜찜해.”

“왜? 브렛이 어디가 어때서?”

정말 기가 막힌 이야기가 나온다. 정말 말도 아닌 이야기를 태연하게 하고 있다.

“아니… 그가 잘못되었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도 나름대로 훌륭하지만 아메리칸 리그 최고 2루수인 조나단 헌트와 비교하기는 어렵지 않겠냐는 거지. 그렇잖아!”

“타격으로만 보면 그럴 수 있지만, 헌트는 지금 반쪽이잖아. 아니 반쪽에 가깝지. 그리고 계속 반쪽선수에 접근하고 있고. 이건 어느 정도 양 팀의 모자라는 곳을 잘 메워줄 좋은 트레이드인 것 같은데…”

생각해 보지도 않은 말이 나왔다.

“아니! 무슨 말이… 응? 반쪽이라고?”

“맞아. 지난 몇 년 사이에 헌트의 수비 지표는 꾸준히 하락했어. 아직도 2루수를 맡고 있긴 하지만 더 이상은 도저히 어려운 지경이야. 몸이 불면서 2루수 수비에 필요한 운동능력의 상당 부분을 상실했지. 그 대가로 홈런 수가 20개에서 30개 정도로 늘어나긴 했지만 2루수로는 망조를 탔어. 고비용 저효율 선수가 된 거지.”

“그래?”

화이트삭스도 굳이 분류하자면 빅마켓 팀이긴 하지만, 전통적으로 선수단에게 아주 적극적으로 투자하는 팀은 아니었다. 장기 계약을 할 당시 헌트의 가치에 지금은 못 미쳐 화이트삭스가 나가는 연봉을 아까워한다는 노골적인 말이다.

“화이트삭스는 공격으로 유명한 팀이잖아. 타선에서 헌트의 비중은 그렇게 높지 않다고. 브렛이 타격에서 헌트만은 못하겠지만, 그 모자라는 점을 2루 수비로 보충해 줄 수 있겠다 판단했겠지. 그리고 알폰소를 데려갔잖아. 그쪽도 남는 장사라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몰라.”

“난데없이 알폰소 이야기는 뭐야? 어제만 해도 넌 알폰소가 잘 안될 것 같다고 했었잖아.”

“그거야 내 생각이고. 다르게 보는 사람이 있을 수 있잖아. 벤치에서 왜 그렇게 알폰소를 많이 기용했는지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해. 일종의 쇼케이스가 아니었을까 싶어. 어차피 지명타자 자리에 누굴 기용해도 애매했었는데 그럴듯해 보이는 유망주 하나를… 흠. 이건 그냥 내 생각이야.”

좀 고약한 생각이다. 지금 베그웰의 말은 우리 프런트가 의도적으로 일종의 착시를 만든 게 아니냐는 뜻을 내포하고 있었다. 듣고 보니 그럴듯하다.

‘트레이드용으로 쓸 만한 선수를 만들었다는 거네. 포텐이 아주 커 보이는 선수로… 허! 이걸 당한 놈이 바보라고 생각해야 하나? 정말 화이트삭스가 몰라서 당한 걸까?’

나로서는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오묘한 세계다.

“화이트삭스 입장에서 이 트레이드를 생각해 보면 브렛으로 최소한의 안전판을 만들었고 알폰소는 로또처럼 생각할 거야. 안 위험한 유망주가 어디 있냐고. 위험하지 않으면 이미 유망주가 아니지.”

그럴듯한 해석인 것 같다. 어찌 되었든 외견상 보기에 알폰소는 타율은 낮지만 홈런 숫자도 꽤 된다. 마이너에서 좀 묵히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을 것 같다.

“언제나 수비능력에 대한 평가는 박했어. 현대야구로 오면서 그 중요도에 대한 비중이 늘어났다고 말을 해도 난 근본적인 부분이 바뀌었다고 생각하지 않아. 아마 세이버메트릭스 상으로 브렛과 헌트는 큰 차이가 없을 거야. 그리고 어쩌면 브렛은 이게 잘 풀린 걸지도 몰라.”

그 말에는 동의한다. 우리 팀에서 애매한 선수로 취급받느니 좋은 수비가 좀 더 인정을 받을 수 있는 화이트삭스 같은 환경이 나을 수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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