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화. 어지럽다
5할 승률을 올리고 있는 팀을 두고 부진하다란 표현은 어울리지 않지만, 지난 시즌 우리 팀이 너무 잘나간 게 문제였다. 게다가 지난 시즌 역대 최다승을 올린 지구 2위라는 불명예 아닌 불명예 타이틀을 가져간 다저스가 이번 시즌 초반부터 질주 중이다.
‘작년 전력도 괜찮았는데 카스트로까지 데려가 타선을 강화했지. 충분히 예상 가능한 일이긴 했어.’
이러니 비교가 안 될 수가 없다. 지난 시즌 지구 2위 팀이 선두를 달리고 그때 절대적 강자였던 우리 팀은 초반이지만 3위로 처졌다. 큰 변화라고 할 수 있는 건 주력 타자 딱 한 명이 팀을 옮긴 것이지만, 그 단 하나의 사실이 너무 부각된다.
‘이건 마치 2029시즌으로 돌아가 버린 꼴이잖아.’
그랬다. 그 시즌을 앞두고 내가 트레이드를 통해 팀에 합류했었다. 생각해보면 그때 내 영입 목적이 불펜 강화였다. 원래 우리 팀은 불펜의 뎁스가 그렇게 두터운 팀이 아니었다.
야심 차게 추진한 내 영입은 엉뚱한 결과를 낳았다. 난 불펜이 아닌 선발로 자리 잡았다.
그 시즌에 기대하던 불펜요원 체이스가 팀에서 바라는 대로 성장해 젊고 든든한 마무리 재목이 되는 성과가 있긴 했다. 그렇지만 2029시즌 30세이브 이상을 올린 앙드레를 자이언츠는 붙잡지 않고 팀을 떠나보냈다. 하나를 더하고 하나를 빼내 0이 된 꼴이다.
실제로 불펜에 별다른 전력보강이 이루어졌다고 생각하기 어렵다. 자리바꿈이 착시를 만들었다. 애덤을 합류시키면서 잠시 그 사실을 간과하고 말았다.
‘하긴 내가 생각하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뭘 할 수 있느냐마는… 그래도 이렇게 일찍 불펜에 문제가 생길 줄이야.’
아무리 상황이 그렇게 흘러갔다지만, 어느 정도의 부담은 견뎌낼 줄 알았다. 그러나 생각보다 불펜의 뎁스가 얇아도 너무 얇았다.
‘지난 시즌이 맥스(MAX)였던 거야. 프런트가 애덤의 노쇠화를 대비했어야 하는 거였는데 너무 안일하게 대처했어. 정말 나이 들면 한 해 한 해가 다르다더니…’
타선 약화로 득점력이 저조하고 불펜의 붕괴 조짐이 느껴지는 지금 선발진만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작년에 비해 승수가 적어졌을 뿐 평균자책 등의 세부지표가 전혀 하락하지 않았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지난 두 시즌 동안 선발진은 꾸준히 질과 양이 강화되어 왔다. 재작년에는 나와 드로이넨이 합류했고 작년엔 존슨이 새로 5선발이 되었다.
‘그리고… 어? 그렇다면 선발진은 2029시즌에 비해 많이 강해진 거잖아. 타선이 약화되었다지만, 잘 생각해보면 그것 역시 2029시즌보다는 나은 것 같은데. 불펜도 최소한 2029시즌 수준 정도는 돼. 그런데 승률이 왜 이렇지? 그때는 이것보다 못한 전력을 가지고도 5할은 유지했었는데…’
지금 우리 팀이 15승 15패를 거두고 있다는 건 어딘가 말이 안 되는 것 같다.
‘무엇이 문제지?’
점점 머리가 복잡해진다.
지난 4월은 분명히 즐거워야 하는 달이었다.
‘어떤 유명한 감독이 시즌 종료일이 세상에서 제일 슬픈 날이라고 했다는데 반대로 이야기하면 시즌 개막일은 제일 즐거운 날이 되어야 하는 거잖아.’
유감스럽게도 그러지 못했다. 팀의 부진이 모든 즐거움을 삼켜버렸다.
홈구장에서 월드 시리즈 우승 반지 수여식이 있었고, MVP에 사이영 상과 신인상 수상자도 우리 팀에서 나와 시상식도 열렸다. 하지만 모두 마냥 웃을 수가 없었다. 나부터도 염원하던 사이영 상을 품에 안았지만 마음 한구석이 무거웠다.
팬들의 분위기도 딱히 나쁘지 않았다 정도지 열렬히 환호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지금 부진한 것에 정신이 팔려 지나간 영광의 확인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것 같았다. 승리가 간절했다. 이미 눈이 높아진 팬들에게 5할 승률 정도가 마음에 찰 리 없다.
‘하아! 이것저것 생각할 것 없이 홈런 30개에 2할 7푼대 이상 칠 수 있는 타자만 영입하면 다 해결될 문제잖아. 거기에 불펜 자원 한둘 더 데리고 올 수 있으면 되고…’
알폰소는 도저히 안 될 것 같다. 아무리 좋게 봐주려 해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다. 여긴 친목 모임이 아닌 프로야구단이다. 우린 빅마켓 팀이다. 자금이 없어 선수를 못 데려오는 팀이 아니란 말이다. 더군다나 지금은 카스트로와의 FA계약을 위해 준비한 자금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결국 7월까지 기다려야 하나?’
문제는 지금 그렇게 괜찮은 선수를 내줄 팀이 없다. 적어도 포스트 시즌 진출 윤곽이 나타나는 7월은 되어야 강력한 리빌딩을 원하는 구단이 트레이드 시장에 주축 선수들을 내놓는다.
‘유망주를 대거 영입해서… 음. 그런데 여름 트레이드는 돈이 문제가 아니잖아. 우리 팜에 트레이드에 제시할만한 유망주가 남아 있나? 카스트로 영입 때 다 쓸어 준 거 아니었어?’
이래도 문제 저래도 문제다. 정말 헛발질 한 번에 이게 무슨 꼴인지 모르겠다.
‘프런트가 무슨 방법을 생각해 내겠지. 이제 5월 초니까 최소 두 달은 이대로 버텨내야 하네.’
아마 지금 가장 속 타는 건 그들일 수도 있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걸 가장 절실하게 느끼는 것도 그들일 것이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시간을 보내는 사이 우리 팀의 3회 말 공격이 힘없이 끝났다. 오늘 8번 타자로 출전한 알폰소는 어김없이 첫 타석부터 삼진이다.
글러브를 챙겨 다시 마운드에 올랐다.
***
“윌리스. 어떻게 되어가고 있습니까?”
“이제 막 4회 초가 시작되었고 아직 득점과 실점 다 없습니다. 하핫. 이러실 거면 그냥 중계를 보는 게 낫지 않나요.”
해리스 사장이 과거의 자신과 같은 증상을 보이고 있는 것에 윌리스 단장은 쓰게 웃었다. 그래도 자신보다는 중증은 아닌 것 같았다. 자신은 이렇게 경기 중간에 물어보지도 못했었다. 항상 경기가 끝나고 영상이 아닌 활자물로 결과를 확인했었다.
“그러려고 해봤는데 선수들 플레이를 보는 순간 가슴이 뛰고 식은땀이 나는 게 영 상태가 안 좋아지더라구요. 스트라이크 볼 판정 하나에 그러는데 홈런이라도 맞으면 심장마비라도 올 것 같아 두렵습니다.”
“아직 젊으신데 그럴 리가요. 경기장을 못 가던 제 병을 치료해주신 분이 이러니 느낌이 새롭군요.”
시즌 개막이 일주일 정도 지났을 무렵부터 사장에게 이상 증세가 시작되었다. 처음엔 평소보다 긴장감이 좀 높아지는 정도의 가벼운 증상이었는데 지난 한 달 사이 점점 심해져 지금은 아예 야구 중계조차 보지 않으려 하고 있었다.
“윌리엄이라면 이런 제 사정을 이해할 것 같아 이렇게 터놓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정말 어디 소문이라도 날까 봐 저도 답답합니다. 더군다나 요사이 시상식이니 뭐니 해서 꼭 참석해야 하는 일이 많았지 않았습니까. 지난주에는 하도 답답해서 정신과 상담을… 흠흠.”
일반적으로 구단의 사장은 구단의 살림살이를 총괄하는 경영자의 위치다. 하지만 해리스 사장은 일반 직원으로 출발해 단장으로 커리어를 쌓은 사람이었다. 아직도 선수 영입과 트레이드 등에 깊이 관여하고 있었다.
“마음 편하게 가지세요. 하루 이틀 만에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요즘도 계속 생각이 떠올라요. 그냥 잔재주 피우지 말고 카스트로를 잡았어야 하는 게 아닌지 정말 후회스럽습니다. 전력 보강보다는 전력 누출을 막는다는 생각을 했던 그 자체가 잘못된 것 같기도 하고…”
야구 감독의 스트레스에 대해서는 좀 알려져 있는 편이다. 농담처럼 오래 살려면 피해야 할 직업군에 야구 감독이 올라 있기도 하다. 일 년의 절반은 승부에 대한 스트레스로 그 나머지 절반은 그 승부를 준비하며 스트레스를 받는다.
단기 계약직은 숙명처럼 성적에 목을 맬 수밖에 없다. 커리어를 이어나가기 위해선 이겨야 한다. 성적 부진을 참아주는 프런트는 없다. 시즌 중 성적이 떨어지면 어마어마한 팬들의 비난에 시달리고 프런트의 압박을 받아야 한다. 위장병과 불면증은 기본이고 신경안정제는 옵션으로 복용한다.
선수들도 만만치 않다. 거액을 받는 만큼 그에 대한 부담감이 역시 크다. 보통 3~4시간 진행되는 경기 내내 초긴장 상태다. 수비 때는 수 싸움을 위해 불규칙적으로 계속 나오게 되는 벤치의 사인에 신경 써야 하고 내 타석이 돌아오기 전부터 어떻게 쳐내야 할까를 끊임없이 궁리한다.
구단 차원에서 스트레스의 완화를 위해 심리치료사를 고용해 정기적인 상담을 하기도 하지만 별로 효과는 없다. 병이나 증상의 치료나 호전을 위해서는 그 원인을 제거해야 하는데 그 원인이 게임이다. 게임을 안 할 수는 없다.
선수나 코칭 스탭을 정규시즌이라는 바다에서 항해를 하는 배의 선장과 선원들이라고 생각하면 프런트는 선주의 대리인이다. 책임의 범위가 다르다.
선장과 선원들은 계약으로 정해진 기간 동안 받기로 한 급여 정도가 책임의 한도다. 한시적이고 제한적이다. 그러나 선주는 배를 팔기 전까지는 책임의 범위가 무한하다. 이 때문에 그의 대리인인 프런트가 받는 스트레스는 굉장히 광범위할 수밖에 없다.
감독이나 선수는 받는 스트레스가 감당할 수 있는 한도를 초과하면 슬럼프 등으로 티가 난다. 이것은 거의 성적 부진으로 연결된다. 그래서 그런 징조가 보이면 프런트가 개입해 사태를 수습하게 된다. 큰 권한을 가졌지만, 그에 따른 책임 역시 크다.
하지만, 프런트는 외부로 잘 드러나지 않는다. 티를 낼 수도 없다. 티를 내서는 아무런 득이 생기지 않는다. 경영자로서 경쟁자들에게 약점을 드러내는 일은 결격사유다. 그 순간부터 타깃이 될 뿐이다.
“몹시 불필요한 생각을 하셨네요. 잘 아실만한 분이 그러시다니 아무래도… 음. 말 그대로입니다. 별다른 뜻이 있는 건 아닙니다. 오해 없으시길…”
해리스 사장의 말에 대답을 하다 무엇인가 이상한 뜻으로 비칠 수도 있을 것 같았는지 윌리스 단장은 말을 멈추고 급하게 해명의 말을 덧붙였다.
“너무 그렇게 의식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신 말씀이 팩트죠. 제가 요즘 좀 이상했지만, 아직 사리판단은 제대로 합니다. 오해할 일 없습니다.”
“예. 그럼 경기에 변화가 생기면 먼저 말씀드리죠.”
쫓기듯 전화를 끊고 윌리스 단장은 흐트러진 머리를 다듬었다. 산을 높이 오르면 떨어질 골짜기 역시 깊다. 해리스의 사장은 취임 몇 년 만에 우승이라는 영광의 열매를 내놓았지만, 그 무게를 제대로 지탱하지 못했다. 언제나 있을 수 있는 실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허우적대고 있었다.
“라드 감독은 괜찮은 건지 모르겠군.”
감독 역시 지금 취하고 있는 스탠스가 어정쩡해 보였다. 과거 지금보다 못한 전력으로도 5할 승률을 기록했었다. 그때의 라드 감독은 지는 경기는 버리고 이기는 경기에 철저히 집중하는 결단력을 보여 주었다.
하지만, 이번 시즌의 라드 감독은 버려야 하는 경기를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 역시 아직 지난 시즌 영광에 취해있다.
“나라도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해. 감독은 좀 더 두고 보고 트레이드 대상은…아! 일단…”
윌리스 단장은 연신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운영팀장을 호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