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각성한 이레귤러의 커브가 드러남-170화 (170/200)

170화. 경쟁은 계속된다 (2)

“불안요소가 많다는 거야?”

별로 길게 말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지만, 여기서 멈추는 걸 내 궁금증이 허락하지 않았다.

“타율과 출루율은 점차 떨어질 거라고 생각해. 그걸 어느 정도 막아낼 수 있냐가 관건이겠지. 그리고 지금 타율은 2할에 못 미치는데 홈런 3개 친 루키가 하나 있거든. 그 친구가 만약 타율 올리기에 성공한다면 위험할 수도 있어.”

파워 히터는 많다. 그렇지 않은 타자를 찾기가 더 힘들 정도다. 삼진에 구애받지 않고 모두들 배트를 거침없이 돌린다. 그게 추세다.

문제는 유행을 따르는 게 아니라 루키급의 투수를 상대로 2할 타율이 채 안되었다면 콜업이 된다고 하더라도 정규시즌에서는 허수아비로 전락할 가능성이 99%다. 힘이 아무리 좋아도 공을 못 맞히면 아무 소용없다.

“그래? 그건 좀 어렵지 않을까? 어떻게 타율이 한 번에 그렇게 오를 수가 있겠어. 한 게임 정도는 몰아칠 수 있다고 해도 아직 15게임이나 더 남았는데…”

시험해 보던 루키들이 마이너 리그 팀으로 보내지고, 예열을 끝낸 각 팀의 주력 투수들이 본격적으로 던지기 시작하면 그런 수준 정도의 타자는 감당이 안 된다. 몇 타석 농락당하고 나면 완전히 감각을 잃어버리고 만다.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거의 안 되지. 하지만, 루키잖아. 금방 무너질 수도 있고, 성장하기 시작하면 금방 바뀔 수도 있다고. 만약 시범 경기 후반 몇 경기에서 제 스윙을 하면서 2할대 초반이라도 칠 수 있으면 코칭 스탭은 그 친구를 선택하리라고 봐.”

그건 누구라도 그렇게 한다. 2할 5푼대를 치면서 장타력이 떨어지고 더 이상의 성장을 기대하기 힘든 중견 선수보다는 2할을 쳐도 펀치력이 있고 성장을 기대할 수 있는 루키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 더 미래지향적이라 생각한다.

그 생각에는 나도 대체적으로 동의하지만, 단 하나 나이가 들면 성장이 끝났다는 고정관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부터 20대 중반 이후에 기량의 급성장을 경험했고 베그웰의 기량 향상을 바로 가까이서 목격했다. 심지어 베그웰은 나보다 나이가 더 많았다. 준비된 자에게 어떤 계기가 주어지면 기량 향상은 나이와 상관없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믿는다.

브렛의 상황은 나보다는 베그웰이 처했던 상황과 비슷하다. 나는 아예 바닥이었고 베그웰은 어찌 되었든 25인 로스터에 들어갈 수 있었다. 과연 브렛이 그 계기를 만날 수 있을는지 모르겠다.

‘월드시리즈에서의 트리플 플레이가 그 계기가 되진 않았을까 싶긴 한데…’

요즘 성적이 나온다는 걸 보면 지옥을 헤치고 나온 경험이 자신의 야구 인생에서 새로운 자산이 되었을 것 같긴 하다.

자주 보던 브렛이 빈 지명타자 자리를 차지했으면 좋겠다라는 개인적 바람은 있지만, 그렇게 된다고 해도 투수의 입장에서는 사실 별로 달가운 일은 아니다. 내가 보기엔 브렛이 포텐을 다시 터트린다고 하더라도 그 발전의 폭은 한정적일 것 같다.

‘크큿, 펀치력은 거의 타고나는 경우가 많아서… 카스트로급에는 못 미칠 게 거의 확정적이야. 이거야말로 갑갑한 상황이군. 루키가 터지면 좋은데 그걸 당장 이번 시즌에 바라기는 어려울 것 같고…’

브렛의 다음 타자로 그 문제의 루키가 나왔었는데 한눈으로 척 봐도 그의 플레이는 경험 부족이 너무 눈에 들어왔다.

승패를 신경 쓰지 않고 보는 경기라서 그런지 별로 흥이 나지 않는다. 이 경기에서 무엇인가를 보여줘야 하는 루키들은 진지하지만, 경기 자체는 박진감이 없다.

당연히 작전 같은 건 없다. 모든 것은 통상적으로 플레이를 하듯 흘러가고 타자든 투수든 순순한 자기 능력으로 상황을 헤쳐나가야 한다. 과거의 내가 생각나 감회가 새롭다.

‘내가 루키였을 때 어떤 식으로 던졌었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네. 오래된 일도 아닌데 정말 그 새 나도 많이 컸나 봐.’

집요함이 빠진 단순한 공격패턴과 기본적인 수비 상황이 연이어 지나갔다.

‘가만, 내가 지금까지 뭘 생각하고 있었던 거야?’

갑자기 무엇인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곰곰이 해왔던 생각을 더듬었더니 엉뚱한 결론이 나왔다.

‘지금 지명타자 자리가 문제가 아니네. 그건 이대로라면 루키 몫이 될 것 같은데…’

내 생각에 허점이 있었다. 비어버린 지명타자 자리에 눈이 팔려 모든 것을 그것을 위주로 생각하다 보니 생긴 오류였다.

2할 5푼 이상을 치는 내야수는 우리 팀이 오래전부터 찾고 있었다. 물론 단순히 2할 5푼을 치는 것만으로는 안 되고 수준급의 수비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팀 페이롤(팀 전체 연봉)을 고려해야 하니 너무 고연봉의 선수도 곤란했다.

‘잘 치고 수비 좋은 내야수는 있어. 다만 연봉 3,000만 달러 이상을 줘야 하는 게 문제지.’

그런 현실적 문제와 절충해서 나온 것이 현재 우리 팀 내야진이다. 이들의 평균 연봉은 370만 달러다. 메이저리그 평균 연봉이 400만 달러가 넘는데 그에 못 미치는 금액으로 쓰고 있다.

‘홈구장의 특성을 살려 단단한 수비를 우선한…’ 이렇게 포장되어 있지만 모두 다 듣기 좋은 말일 뿐이다.

만일 수비는 좀 떨어져도 3할에 20홈런 치는 타자를 연봉 400만 달러에 쓸 수 있다면 안 쓸 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팀이 바라던 그런 내야수가 나타날 수도 있다. 브렛의 연봉은 200만 달러 정도다. 옵션이 있다고 하는데 출장횟수가 너무 적어 실현된 적이 없다고 한다. FA 후 4+2년 계약을 했고 이제 3년째다. 아마 옵션이 다 실행되어도 400만 달러 미만일 것이다.

‘기존 내야수보단 수비력이 조금 떨어지는 것 같지만 상당히 안정적이기는 하지.’

명색이 수비 전문 유틸리티인데 수비야 그 정도면 무난하다. 3루에서의 송구가 문제가 되면 2루를 맡으면 된다.

‘헉! 2루? 지금 그럼 크로포드가… 어쩐지 너무 열심히 하더라.’

오늘 크로포드는 3루수로 출전하고 있는데 주전이 확보된 선수치고는 아주 공격적으로 플레이하고 있었다.

‘크로포드만 문제가 아니네. 만약 브렛이 2할대 중후반을 쳐내기만 하면 내야수 전체가 다 걸리는 거잖아.’

기존에 3루수로 주로 기용되던 테일러나 유격수 패터슨 모두 내야에서 멀티 포지션이 가능하다. 이런 식이라면 제일 타격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이 밀려날 가능성이 높다.

‘이거 무턱대고 브렛을 응원할 일이 아니었네.’

내야수들과는 상당히 친한 편이었다. 그라운더 볼러로서는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가장 플레이 스타일에 영향을 많이 주고받는 선수들과 불편한 관계라면 스타일을 지켜나가기 어렵다.

‘어휴! 혹시 밀려나더라도 로스터에서 제외되진 않겠지. 그냥 브렛과 자리바꿈 정도?’

갑자기 루즈한 면만 보이던 경기에서 몇몇 선수들의 긴장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경기에 대한 흥미가 일어나고 있다.

***

“어느덧 자이언츠의 켁터스 리그 서른 번째 마지막 경기가 되었네요.”

“그렇습니다. 이 경기 후 자이언츠는 하루 휴식을 가지고 4월 7일 월요일부터 홈 3연전으로 2031시즌을 시작합니다.”

캐스터 그래엄은 작게 한숨을 내 쉬었다. 아무리 컨디션 조절을 위한 시범 경기라지만 자이언츠는 12승 17패로 형편없는 경기력을 보여주었다. 라인업은 거의 매번이다시피 자주 바뀌었고 가장 강점이라고 할 수 있는 투수력조차 들쑥날쑥이었다.

카스트로가 빠진 것 외에는 전력 누수라고 할 만한 부분이 전혀 없는데도 모전문가 그룹에서 예상한 우승확률은 9.9%로 5위, 같은 지구의 다저스 14.8%보다 낮았다.

“해설자께서는 자이언츠의 시즌 전망을 어떻게 보시나요? 얼마 전 발표된 예상은 좀 실망스러운 부분이 많았지요. 지난 시즌 역대 최고 승률을 올린 팀에서 지명타자 한 명이 없다고 그렇게 크게 팀 전력이 떨어질 수 있나요?”

“그 순위는 저도 봤는데 나름 타당성이 있다고 봅니다.”

“1. 2위를 아메리칸 리그 팀이 차지한 건 어느 정도 수긍이 되더군요. 지난 시즌 전력에서 트레이드와 FA영입으로 착실하게 보강을 했으니까. 애스트로스가 20.4% 양키즈가 17.4%였죠. 그러나 3위가 다저스라는 건 도저히 납득이 안 됩니다. 그리고 메츠도 14.2%인데 우리가 5%나 확률이 떨어지는 부분도 이해가 안 돼요. 메츠는 지난 시즌 포스트 시즌에서 우리가 스윕으로 제압했던 팀이지 않습니까?”

시즌 전 예상이 언제나 잘 맞아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별것 아니라고 생각하면 그뿐이지만, 시범 경기에서 보여준 불안한 경기력에 더해져 많이 찜찜하게 느껴진다.

“자이언츠의 문제는 타자 한 명이 빠진 것이라고 하기보다는 그 이후 그 자리를 제대로 채우지 못한 것이 크지요. 자이언츠의 강점은 다들 인정하다시피 막강한 투수력과 견고한 수비죠. 이런 부진 속에서도 여전히 투수력은 양대 리그를 통틀어 2위로 평가받고 있지요.”

“그러니까요. 그래서 더더욱 그런 예상이 이해가 안 가는 면이 있습니다. 타자 한 명 빠졌다고…”

“단순히 타자 한 명이 아닙니다. 자이언츠의 팀컬러가 하위타선 즉 내야수 3인방에게는 거의 득점이나 타점의 기대치가 낮지요. 즉 상위타선의 폭발력으로 그 약점을 커버해왔던 셈인데… 9명 중의 하나가 아니고 6명 중의 하나. 그중에서도 가장 믿을 타자 셋 중 하나가 빠진 겁니다. 그리고 현재로 봐서는 그 부분 보강에 실패한 듯 보입니다.”

해설자 윌리엄은 현재 상황에 상당히 비관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 영향이 있을 것 같긴 해요. 하지만 그게 지난 시즌 117승을 한 팀이 107승을 한 팀에 비해서 아래로 평가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엄이 느끼기에는 정말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았다.

“구체적 수치를 들어 설명하자면 이렇습니다. 지난 시즌 리그 선발진의 평균자책은 4점대가 조금 넘습니다. 그에 비해서 자이언츠는 1점 정도가 낮았지요. 카스트로가 영입되기 전 상반기 자이언츠의 경기당 평균 득점은 3.98점 리그 평균자책보다 아래였지요. 이 수치는 카스트로가 영입되고 나서 0.5점 정도 상승합니다. 이건 타자 한 명의 힘이라기보다는 그런 타자가 5번에 버텨줌으로써 기존 타선 타선에 견제가 약해지는 시너지 효과가 났다고 풀이할 수 있습니다.”

“그런가요?”

“지난 시즌 상반기의 자이언츠도 강한 팀이었지만, 카스트로가 가세한 하반기는 그야말로 언터쳐블이었죠. 시즌 후반 포스트 시즌을 대비해 주전 투수들을 대거 쉬게 했음에도 시즌 최고 승률을 달성할 정도로 강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맞춰 놓았던 기계의 톱니바퀴 하나가 이탈한 겁니다. 프런트는 거기에 맞는 부품조달에 실패했구요. 그게 자이언츠가 5위 전력으로 평가받은 이유입니다.”

그래엄으로서도 이렇게 수치를 들이대면서 말을 하는데 딱히 반박이 어려웠다. 그래서 본업에 충실하기로 했다.

“오늘 자이언츠의 선발 라인업입니다. 아마도 이 라인업이 정규시즌 주전일 것 같군요.”

1. 크리스 LF

2. 알버트 RF

3. 베그웰 C

4. 레블론 CF

5. 필 1B

6. 브렛 2B

7. 알폰소 DH

8. 테일러 3B

9. 패터슨 SS

존슨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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