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각성한 이레귤러의 커브가 드러남-169화 (169/200)

169화. 경쟁은 계속된다 (1)

시범 경기 일정이 절반 이상 지났는데도 선수 영입에 대한 소식이 없었다. 대신에 영입 실패에 대한 대비 때문인지 요즘 우리 팀 타선에 루키들의 등장이 잦아졌다고 한다.

원래 시범 경기란 주전선수들은 컨디션 체크 정도의 의미를 두지만, 루키들에게는 로스터에 들기 위한 경쟁의 장이란 성격이 있다. 올 시즌은 그 경쟁이 특히 더 심한 것 같다. 그들도 분위기를 느끼고 있었다. 지명타자 자리가 비었다는 것을…

어떻게든 잘해서 지명타자 자리를 꿰차고 싶어 하는 루키들의 열망이 그라운드에 넘실거린다. 더그아웃에서부터 비장한 분위기를 풍기는 선수가 여럿 있었다.

‘어느 정도 타격만 보여주면 콜업될 것 같아? 그게 생각처럼 쉽지가 않아요.’

코치진도 모든 선수에게 기회를 주겠다는 생각인지 거의 매 경기 라인업이 바뀌고 있다고 한다. 루키들은 단두대에 선 기분일 것이다. 담장 바로 너머에 마이너의 세계가 있다. 잘못하면 당장 내일이라도 그쪽으로 가게 될 수 있다.

“타자 구하기가 만만하지 않은가 보지?”

모처럼 더그아웃에 소르카와 나란히 앉았다. 스코츠데일 스타디움에서 브루어스와 펼쳐지는 우리 팀의 켁터스리그 15번째 경기다.

“당연히 어렵지. 검증이 필요 없는 수준의 선수들은 이미 소속팀을 다 구했을 테고 지금 미계약으로 남아 있는 선수들 중에 그나마 가능성 있은 선수는 아무래도 부상이든 뭐든 어딘가 하자가 있었던 선수들이라서 긴 관찰이 필요하잖아. 간단히 구해질 리가 없지.”

소르카는 현재 상황을 상당히 비관적으로 보고 있었다.

“아마 이번 시즌은 그냥 이대로 가는 것도 각오해야 될 거야, 카스트로나 좀 잘 챙겼으면… 어휴!”

소르카도 카스트로의 공백을 아쉬워하는 것 같다. 타선의 약화는 어쩌면 투수들에게 더 민감한 사항일 수도 있다. 1득점 더하고 못하고에 승패가 뒤바뀔 수도 있다.

“할 수 없지. 그래야 한다면 하는 거지. 뭐! 어쩌겠어. 그런데 말이야. 요즘 경기 좀 봤어?”

등판 예정이 없는 날은 개인훈련으로 컨디션 조절을 했고 등판한 날도 제일 많이 던진 날이 3이닝이었다. 등판 후에는 바로 실전 투구 분석을 하느라 요사이 경기를 제대로 본 적이 거의 없었다.

“아니, 몸 상태 올리기도 바쁜데 그런 데 신경 쓰고 싶지 않아서… 시범 경기까지 봐야 할 이유가 있나? 왜? 요즘 우리 팀이 많이 진다는 이야기라도 들은 거야?”

“나도 몰라. 경기 결과가 궁금한 건 아니고, 혹시 가능성을 좀 보이는 선수가 있나 싶어서…”

“글쎄, 그런 이야기는 못 들었는데… 누가 두각을 나타냈다면 분명히 말이 나왔을 텐데 다들 고만고만했으니까… 음.”

소르카가 주위를 슬쩍 둘러보면서 소곤거렸다.

“웬만큼 해서 카스트로 자리가 메워지겠어? 그냥 가능성 정도만 보여도 괜찮을 텐데… 알버트처럼 갑자기 튀어나올 수도 있잖아.”

올해의 신인으로 뽑힌 알버트도 마이너리그에 있을 때는 유망주 순위가 그렇게 높지 않았다고 들었다.

미국 내 고등학교와 대학, 일본과 마이너리그 등 다양한 관점에서 야구를 다루는 스포츠 잡지에서 매해 미국의 유망주 선수들의 순위를 매긴 것이 유망주 랭킹의 시초다. 그 뒤 세이버메트릭스적인 관점에서 야구 기록 등을 제공하는 야구 분석 사이트가 자체 평가한 순위를 발표하기 시작해 지금은 대개의 야구 전문 잡지 등에서 유망주 랭킹을 선정한다.

대부분 매 시즌을 앞두고 상위 100명을 뽑으며, 각 구단별로 유망주 순위를 선정하는 곳도 있다. 이제는 특정 선수가 다수 매체의 유망주 순위에서 상위권이라면 누구도 A급 유망주임을 의심하지 않는다.

“알버트? 그래도 그 친구는 말석이지만 랭킹에 이름이 나오는 선수였지. 올 시즌 우리 팜에는 랭킹에 이름을 올린 선수가 없어. 작년에 카스트로를 트레이드하면서 모조리 넘겨 버렸지. 팜을 초토화시키면서 데려온 선수였는데 한 시즌도 제대로 못 쓰고 이렇게 보내? 프런트에서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정말 좀 물어보고 싶다고.”

소르가가 말을 하다 갑자기 열을 낸다. 이야기하다 잊어버리려 했던 일이 다시 떠올랐나 보다.

“워어. 진정하라고… 화나는 건 알겠는데 지금 그런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고… 흠흠. 난 사실 유망주 랭킹이란 것에 대해 좀 회의적이거든.”

급하게 화제를 돌렸다. 해결책도 없이 나도 덩달아 화내고 싶지 않았다.

“으음. 그래? 좀 생각 밖이네. 통계 좋아하는 거 아니었어? 툭하면 세이버메트릭스가 어쩌고 하더니 이건 또 그런 성향하고 다른 건가?”

난 원래 통계 같은 것을 좋아할 만한 성향이 아니다. 머리도 안 되고 성격도 안 된다. 한때 하도 야구를 못해서 경기운영에 도움이 될 것 같아 공부를 좀 했을 뿐이다.

“그건… 음. 그것과는 상관없어. 사실 싱글 A급 선수만 되어도 야구선수 중에는 초엘리트급 자질을 가졌다고 봐야 하는 거잖아. 아마추어로 시작해 거기까지 갈 수 있는 선수도 1% 미만인데 그 정도만 되어도 기본적인 것은 다 가지고 있다고 봐야 하지 않겠어? 가능성이 그것만으로 끝날지 개화를 이루어낼지는 알 수가 없는 거잖아.”

“그 말도 일리가 있는데 굳이 따지자면 랭킹에 올라간 선수가 개화할 가능성이 많이 높긴 하겠지. 어느 순간 갑자기 튀어나오는 너 같은 존재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흔한 일은 아니야. 역시 기본적으로 탑재된 게 다르다고 봐야겠지.”

개화할 가능성이 높다고는 하지만 제일 먼저 랭킹을 선정했고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잡지 기준으로도 역대 랭킹 10위 안에 있었던 선수들의 절반 이상이 메이저리그에서 실패했다. 물론 그 아래쪽 순위에서는 개화하지 못한 선수들이 더 넘쳐난다.

“내 개인적 경험으로는 인내심이 가장 문제일 것 같아. 꽃도 종류마다 개화 시기가 다르잖아. 봄에 피는 꽃도 있고 가을에 피는 꽃도 있지. 일찍 꽃망울을 터트리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참고 인내하며 계속 기량을 키워야 하는데 대개 이십 대 중반이 넘으면 포기하잖아.”

더블 A 이상이면 마이너 선수라도 기량이 메이저리거에 비해 큰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차이점은 넘어야 할 마지막 단계가 있는데 그게 아주 많이 어렵다.

스님들이 각자 가지고 있다는 화두(話頭)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 느낌 한 번으로 그것을 넘어서기도 하고 그 한 발자국을 못 나가 대개는 마이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네 말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해. 그렇게 인내인지 고집인지 부려서 개화를 보는 선수가 얼마나 될까? 너무 나이가 많이 들어 사회에 나가면 스며들기가 어렵다고.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네 경험을 너무 일반화시키면 곤란하지.”

맞는 말이라고는 생각하지만, 결코 동의할 수는 없다. 그것에 동의하면 나와 베그웰은 이상한 사람이 된다.

‘내가 포기했으면 이 자리에 없었겠지. 내가 싱글 A에 갔을 때가 27살이었어. 그때를 생각하면… 음. 쟤들 다 잘되었으면 좋겠어.’

눈앞에 사력을 다해 몸을 날리는 선수들이 보인다. 저 중에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할 수 있는 선수는 극소수다.

‘아예 없을 수도 있고…’

그래서 그 사실이 더 슬프다.

타악-

깨끗한 우전 안타가 터졌다. 브렛이 8번 타자로 나와 두 번째 타석에서 패스트볼을 받아쳤다.

“결국 브렛이 차지하게 되나?”

“글쎄, 그렇게 될까? 많이 애매한 성적이고 아직 투수들 몸이 완전히 올라온 건 아니잖아. 이제 시범 경기 일정의 반 정도 지난 건데 아직은 몰라. 그리고 브렛은 유틸리티 플레이어로 자기 입지가 원래도 조금은 있었잖아. 월드 시리즈에서 뛰기도 했고 루키들과는 처지가 다르지.”

그렇기는 하다. 꼭 지명타자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더라도 로스터에 오를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수비 전문 대체선수의 입지와 지명타자의 입지는 아주 다르다.

‘말이 좋아 유틸리티지, 가령 이번에 팀에서 타자를 구했는데 포지션이 2루수야. 이런 경우가 생기면 기존 2루수인 크로포드가 유틸리티 역할을 할 것이 확정적이야.’

그럼 브렛의 자리는 없어진다. 크로포드 보다 수비력이 우위라고 말하기는 어려우니까. 유틸리티란 그런 위치다. 하지만, 브렛이 타선에 자기 자리를 확보할 수만 있으면 경우에 따라 1루수로 뛸 수도 있다.

‘필이 지명타자로 가면 돼. 나이도 있는데 수비 부담을 덜어주는 게 좋지.’

내야수로서 그는 안정적이기는 하지만 최상급의 수비 능력을 가졌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대체선수로 밀렸다. 하지만, 타격 능력이 올라오면 기존의 내야수 중 하나를 밀어낼 수도 있다. 물론 이것은 내가 바라는 시나리오는 아니다. 난 우리 팀 내야수들이 너무 좋다.

‘타격이… 한 2할 5푼 정도면 될까? 아니 펀치력이 모자라니까 출루율이나 타율이 좀 더 높아야겠지.’

브렛 때문에 나도 월드시리즈에서 울고 웃었지만, 본인만큼 마음고생이 심하긴 했을까? 그 중요한 게임에서 연속 에러를 범했다. 물론 기록상으로는 하나만 에러 처리되었지만, 코칭 스탭의 기억 속에는 두 개다.

아마도 그들은 그 장면을 영원히 기억할 것이다. 브렛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안정된 수비의 유틸리티 플레이어란 이미지를 계속 가지고 가기는 어렵다. 그도 자신의 틀을 깨야 한다. 아니면 밀린다. 영광의 시간은 지나갔다.

“시범 경기에서 지금까지 브렛 기록이 어떻게 되는 거야?”

“난들 알겠어?”

소르카가 어깨를 으쓱한다.

“지금까지 10게임 출장에 34타석 31타수 9안타 3볼넷 타율 0.290에 출루율 0..352이야.”

베그웰이 갑자기 나타나 브렛의 기록을 불러준다. 그는 오늘 경기에 출장해서 선발투수였던 존슨에 이어 4회부터 마운드에 오른 루키를 달래느라 아주 많이 바빴다.

“애 보느라 정신없더니 왜 왔어?”

내 농담에 고개를 숙이더니 슬쩍 웃는다.

“살살 말해, 혹시 들릴라. 응. 다음 회 교체야. 만약 이번 공격에서 내 타석이 돌아오면 대타를 내겠다고 하더라고.”

“수고했네. 좀 쉬어야지.”

“괜찮아. 겨울에 체력훈련이 괜찮았던 건지 과했던 건지 몸이 일찍 올라왔나 봐. 너무 멀쩡해서 나도 좀 이상해.”

베그웰이 옆자리에 슬쩍 앉았다.

“그래? 그럼 네 생각에는 브렛이 지명타자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 것 같아? 특별한 영입이 없다고 전제를 하면…”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해. 브렛이 좀 달라졌어. 기술적으로 향상이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타석에서 아주 냉정해졌어. 수싸움도 잘하고. 여유가 있다고나 할까.”

월드시리즈 그 아수라장을 버텨냈는데 확실히 멘탈이 좋아질 만한 이유는 있다.

“잘되었네. 시범 경기 초반임을 감안해야겠지만, 타율도 그만하면 괜찮고…”

“아직은 미지수야. 이제부터라고 생각해. 지금까지 브렛이 루키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기회를 많이 받았지. 포지션별로 수비 점검도 해야 하니까 출장기회가 많았어. 투수들 몸이 올라오고 빠질만한 친구들 다 빠진 지금부터가 진짜 시험대라고 생각해야겠지.”

말에 신중을 기한다기보다는 뭔가 할 말이 더 있는데 안 하는 눈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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