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각성한 이레귤러의 커브가 드러남-168화 (168/200)

168화. 떠난 자와 남은 자

『구리엘 카스트로 8년 3억 2천만 달러에 다저스와 계약.』

‘많이도 받았네. 내 연봉의 세 배? 카스트로가 그 정도 가치가 있나? 어휴!’

『다저스의 하이재킹. 자이언츠 호를 강타하다.』

‘프런트가 잡을 생각이 없었나? 질질 끌어대는 게 수상하더니 결국…’

『에이스의 천적 라이벌 팀의 품에 안기다.』

‘천적은 무슨… 표본이 얼마 되지도 않는데…’

『자이언츠의 우승 전선에 암운이 드리워…』

‘호들갑은… 그놈 없어도 우승은 전혀 문제없어.’

제목만 훑어보는데도 어질어질하다. 이제 곧 시범 경기를 앞두고 있는데 이게 무슨 날벼락인지 모르겠다. 좀 전에 맛있게 먹었던 저녁 식사가 얹힐 지경이다.

‘빌어먹을 놈 가도 하필이면 다저스에…’

다저스와 자이언츠의 라이벌리는 양키즈와 레드삭스의 관계 못지않게 유명하다. 두 팀 다 비슷한 시기에 뉴욕을 근거지로 하여 만들어졌고, 캘리포니아로 이주한 시기 또한 비슷하다.

캘리포니아주를 대표하는 두 도시를 새로운 연고지로 하면서 지역감정을 등에 업고 같은 지구 소속으로 수십 년간 싸워왔다. 다저스 팬과 자이언츠 팬 사이의 난투극 정도는 특별한 일도 아니다. 그 열기가 넘쳐흘러 사망자가 발생한 일도 있었다.

“배신자로 찍히면 머리 아플 텐데…”

같은 지구의 팀과는 시즌 중 19차례 만나야 한다. 절반은 당연히 원정경기다. 앞으로 8시즌이나 갖은 야유와 욕설을 개인적으로 감당해야 할지도 모른다.

‘신경 안 쓰면 그만이긴 하지만, 굳이 그걸 일부러 만들어낼 필요는 없잖아. 아무리 돈이 좋아도 그렇지.’

카스트로 정도면 대부분의 팀에서 환영하는 선수다. 자이언츠가 제시한 계약조건이 마음에 안 들었으면 마음 편하게 선수 생활할 수 있는 팀을 골라서 가면 그뿐이다. 그게 하필이면 왜 다저스인지 이해를 못하겠다.

다저스와 한 3억2천만 달러 계약이 아주 큰돈이긴 하지만 나 같으면 절대로 그런 선택을 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연 4천만 달러 연봉을 본인이 조금 낮춰주면 갈 수 있는 편한 팀이 널렸는데 8년간 몇천만 불 더 벌자고 라이벌 팀을 선택하다니…’

“뭘 그렇게 중얼거려?”

휴게실에 베그웰이 나타났다.

“아! 그냥 검색 좀 해봤어. 포털이 카스트로가 이적한 기사로 덮여있네.”

“이적? 계약 기간이 만료되어서 새 계약한 건데 이적이라니…”

베그웰은 별로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는듯했다.

“음. 그건 그렇지. 내가 말이 좀 헛나왔어. 카스트로 그 자식이 맨날 자기는 자이언츠에서 은퇴하고 싶다는 둥 그런 소리를 해서 좀 헷갈렸어. 그런 말을 입에 달고 다니던 놈이 다저스라니 좀 웃기지 않아?”

“FA계약 앞두고 그 정도 말을 왜 못하겠어? 난 진짜 그럴 마음이 있었다고 생각하는데… 다만 적절한 보상이 주어지면이란 말이 생략되긴 한 것 같지만. 우리 팀 프런트에서 제시한 조건이 별로였나 보지.”

“그래도 자이언츠에 있다가 바로 다저스로 가는 건 좀 아니지 않아? 프로선수가 이미지 관리도 해야지. 배신자 프레임 안에 스스로 걸어 들어간 꼴이잖아.”

“하핫!”

베그웰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진짜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 너 실리주의자 아니었어? 카스트로가 우리 팜 출신이야? 아니면 팀에 몇 년이라도 있었어? 그는 시즌 중간에 트레이드로 와서 잠시 뛰었을 뿐이야. 그런데 무슨…”

이상하게 과민반응을 보인다.

“네가 그에게 바라는 소속감이나 연대감 기준이 너무 높은 것 같은데… 배신자는 무슨… 너 빼고는 아무도 그렇게 생각 안 할걸?”

“그래도 팬들은 다저스 유니폼 입은 그가 보기 싫을 거잖아.”

“그들도 무턱대고 비난하지는 않는다구. 비난을 한다면 이번 경우엔 그를 못 잡은 프런트가 표적이 되겠지. 정황상 잡은 고기다 싶으니까 연봉 좀 깎아볼까 하고 이리저리 재다가 이렇게 된 것 같은데…”

이제야 베그웰의 본심이 보이는 것 같다.

“선수 입장에서 가릴 건 가려야겠지만, 우선순위가 돈 많이 주는 팀일 수도 있는 거지. 영원히 선수 생활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받을 때 많이 받고 싶어 한다는 게 비난받을 일은 아니잖아. 그리고 자이언츠와 다저스 간의 선수 이동이 전례가 없던 일도 아니고 꺼릴 것도 없지.”

못 들어본 이야기가 나왔다.

“그래? 팬들끼리는 앙숙이어도 선수들은 그렇지 않았다는 거야? 그건 아닌 것 같은데 벤치 클리어링만 해도…”

“순진한 거냐? 그런 척하는 거냐? 프로스포츠는 쇼비즈니스의 요소를 일정 부분 포함할 수밖에 없어. 라이벌의 존재는 흥행에 도움이 된다고… 당장 경기장 입장 인원부터 달라져. 부분만 보지 말고 가끔 전체를 봐. 생각을 많이 하면 뭐 하냐. 늘 보고 싶은 것만 보는데…”

베그웰의 말에 따르면 두 팀에 모두 몸담았던 선수는 최소 수십 명 어쩌면 세 자리가 될지도 모르고, 프런트 간의 자리 이동도 꽤 있었다고 한다. 한때 감독으로 다저스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데이브 로버츠도 선수 시절 양 팀에서 뛴 경력이 있다고 한다.

“다저스의 단장이었던 네드 콜레티의 전 직장은 자이언츠였고, 파르한 자이디는 다저스에서 단장, 자이언츠에서 사장을 역임했지. 자이언츠 감독이었던 게이브 캐플러는 그전에 다저스의 팜 디렉터를 했었고 이런 예는 상당히 많아.”

“그렇군.”

이런 류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확실히 외국인 선수로서의 한계가 느껴진다. 전반적인 배경 지식 자체가 모자라니 메이저리그 문화를 이해하는 폭이 좁아지는 게 당연하다.

“개인적으로는 잘되었다고 생각해. 카스트로를 축하해주고 싶어. 같은 팀에서 계속 함께할 수 있다면 더 좋았겠지만, 상황이 안 따라주는 걸 어쩌겠어, 그나저나 프런트는 전력 유지를 어떻게 할 생각이길래 상황을 이렇게 만들었지?”

“무슨 생각이 있겠지.”

잘 알지는 못하지만 내 경험으로 미루어 생각해보면 우리 팀 프런트는 상당히 유능하다. 분명히 어떤 차선책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음. 그나저나 넌 머리 좀 아프겠다. 카스트로가 너를 상대로 기록한 통산 타율이…”

“그거 타수가 얼마 되지도 않잖아. 만날 기회가 적어서 그랬던 거야. 몰라? 모든 통계는 표본이 많아지면 평균에 수렴하게 된다고. 이제 서로 은퇴할 때까지 부딪쳐야 할 것 같은데 진짜가 드러나게 될 거야.”

“오호! 자신 있어 보여 좋기는 하네.”

***

“구리엘 카스트로의 2030시즌 성적은 타율 0.307, 출루율 0.376, 장타율 0.565 OPS 0.941, 28홈런, 74타점, 75득점, 8도루, wRC+ 152, OPS+ 157), fWAR 4.2이었습니다. 지금 현재로서 이 정도 수준의 타자를 찾는다는 건…”

윌리스 단장은 갑자기 뒷목이 당겨오는 것 같아 허리를 세워 앉은 자세를 바로잡았다. 스카우트 팀이 돌아가면서 하는 이런 식의 이야기를 조금만 더 들으면 없던 고혈압이 생길지도 모른다.

“이 자리에 그거 모르는 사람이 있나?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팀 타선에서 그의 빈자리를 어떻게 메울 것인가에 대한 방법이지 ‘어렵습니다.’ 따위의 말이 아니잖아. 그걸 생각해내는 게 당신들이 구단에서 존재하는 이유야. 난들 어려운 걸 모르겠어? 상황이 아주 어렵지. 하지만 어떻게든 해내야 해. 뭐 없어?”

트레이드가 되었든 주목받지 못해 아직 계약 못한 FA를 찾아 영입하든 어떤 식으로 결론을 만들어내어야 했다. 시즌 개막이 이제 채 한 달도 남지 않았다.

“지금 마땅하게 떠오르는 선수가 없다면 후보군이라도 다시 추려봐.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선수라도 상관없어. 지금 이것저것 가릴 때가 아니잖아. 빨리 영입해서 시범 경기에서 몇 게임 돌려보면 옥석이 가려지겠지.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모르겠지만, 지금 몸값 비싼 선수들은 남아 있지 않잖아.”

회의 참석 인원들의 침묵이 길어지자 윌리스 단장이 참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밀어붙였다. 더 이상은 기다릴 시간이 없었다. 이젠 행동이 필요한 때였다.

“저기…”

누군가 말석에서 손을 들었다.

관리지원팀 소속의 직원이었다. 이 팀이 선수의 계약과 트레이드에 관련된 업무를 담당한다고 되어 있긴 하지만 스카우트 팀의 오더 없이 자의적 판단으로 그 업무를 총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스카우트 팀이 머리라면 지원팀은 몸의 역할을 수행할 뿐이다.

회의에서 좋은 의견이 나와 일이 급진전 될 때를 대비해 관리지원팀이 회의에 참석해 있었다. 그러나 별다른 의견이 없는 회의 상황에 이제껏 내내 침묵모드로 일관해왔다.

“무슨 일인가?”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서요. 적당한 대상자를 추리기도 쉽지 않은 지금 대체선수를 꼭 구해야 합니까?”

“안 구하면 어쩌려고? 현재 있는 자원들 중에 지명타자를 감당할 수 있는 선수가 있나?”

fWAR(대체 수준 대비 승리 기여) 4.2의 선수가 타선에서 빠졌다. 마이너리그에서 바로 콜업한 평균수준의 선수를 경기에 투입하거나 최저 연봉으로 구할 수 있는 수준의 선수를 쓸 경우에 비해 이 선수가 경기에 나와서 뛰면 팀 승수에 4.2승을 더할 수 있는 선수였다.

통상적으로 WAR 2~3 정도가 되어야 각 포지션에서 주전으로서 경쟁력이 있다고 본다. 만일 그런 자원이 있었다면 애초에 머리 아플 일이 없었다. 지금 아쉬운 김에 그런 선수라도 구해야 했다.

“그럴만한 후보군이 마땅하지 않으니 드리는 말씀입니다. 지금 제대로 된 선수를 구하기는 어렵다가 나와 있는 답이지 않습니까. 적당한 선수가 나오려면 포스트 시즌을 포기하는 팀들이 생기는 여름 가까이 되어야 하고… 그러니 여유를 좀 가졌으면 합니다.”

“여유? 이보게 자네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우린 우승을 목표로 하는 팀이야.”

“지난 시즌 우린 117승을 해냈습니다. 그냥 간단히 생각하죠. 거기서 5승이 빠진다고 해도 우리 팀은 우승 전력입니다. 물론 압도적이 아닐 수는 있겠지만.”

“그게 그렇게 단순한 더하기 빼기로 답을 낼 수 없는 일이란 걸 잘 알면서 도대체 무슨 소리를…”

윌리스 단장은 머리를 부여잡았다. 최강팀이 반드시 우승을 하는 것은 아니다. 여유 전력은 많을수록 좋다. 그래야 서로 시너지 효과도 나고 그러는 것이다.

한 선수가 빠진다는 것이 단순히 한 타자의 문제로 그친다면 크게 대수롭지 않을 수도 있지만, 무게감 있는 5번 타자가 빠지면 당장 앞 타자들인 3번과 4번이 영향받는다. 중심타선에 견제가 집중되면 팀 득점이 줄어든다. 이건 투수력에 과부하를 일으켜 두세 명의 투수로 이길 수 있는 경기에 한두 명의 투수를 더 투입해야 하고…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

“단장님. 말씀이 다 맞습니다. 다만, 드리고 싶은 말씀은 너무 급하게 서둘 일은 아니라는 겁니다. 억지로 선수를 구한다고 꼭 좋은 결과가 나온다는 보장이 있는 것도 아니잖습니까.”

“음…”

“일단 상반기 정도는 마이너 계약으로 영입한 선수들이나 우리 팜 유망주들에게 기회를 주면서 보내는 것이 어떨까요? 그게 원래 우리 팀 스타일에 맞는 것 아닙니까? 혹시 그들 중에서 터지는 선수가 있을지도 모를 일이지요. 최소한 그렇게 여유를 가지고 팀 운영을 하는 것처럼 보여야 선수 구하기도 수월해질 겁니다. 지금 이런 식으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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