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화. 결국은 재능의 영역
야구를 열심히 해야 한다. 본업에 충실해야 한다. 전적으로 내 생각은 아니다. 고 감독은 늘 이렇게 이야기했었다.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다 맞다고 할 수도 없다. 대부분과 전부는 다르다.
보통 사람은 그게 그거 아니냐고 하겠지만 내게는 완전히 다른 말이다. 난 야구를 사랑하지만, 야구선수 이전에 인간이다.
‘야구선수로 태어난 건 아니지. 필요에 의해 후천적으로 야구선수가 된 거라구.’
하는 게 즐거워서 야구를 시작한 거지 야구를 하기 위해 사는 것은 아니다. 야구가 내 삶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지만,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고 싶어서 해야 능률이 오른다. 그걸 알면서도 지금 움직이지 않으려 하는 몸을 억지로 움직여 지탱하는 내 모습이 서글프다.
“헉헉…”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두고 봐라. 내가 계약 기간만 끝나면…’
지금처럼 몸이 괴로울 땐 딴생각이라도 해야 한다. 미래에 대한 희망은 달콤하지만, 거기에 이르는 과정은 너무 힘들고 괴롭다.
“무슨 생각하는 거야? 발 못 맞추지.”
고 감독이 아침부터 사람을 쥐어짜고 있었다. 어디서 유래되었는지 알고 싶지도 않은 그 대열 맞추기를 하면서.
‘뒤도 안 돌아보고 어떻게 아는 거야?’
후다닥 대열이 다시 맞춰졌다. 체력이란 개인차가 있기 마련인데 아무리 야구가 단체종목이라지만 하면서도 이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올해도 고 감독은 늘 타던 그 전동카를 타고 선두에서 달린다. 그 뒤를 따라 전동차의 속도에 맞춰 뛴다. 어째 작년에 비해 전동차의 최고속도가 더 빨라진 것 같다.
‘저건 고장도 안 나나? 가만 저거 수리기사를 섭외해서 최고속도를 낮추면… 어휴! 그런 생각 말자. 고장 나면 더 빨리 달리는 걸 사올지도 몰라.’
운동을 편하게 할 수는 없다. 몸의 한계를 극복하면 어느 순간 편해질 것 같지만, 안주하는 순간 운동 효과가 떨어진다. 그래서 한계에 도달하면 다시 운동 강도를 올린다. 그래야 운동이 된다. 운동은 할수록 더 힘들다. 운동선수를 계속하는 한 이 고리를 결코 벗어날 수 없다.
기술이 모자라도 체력이 뒷받침되면 미래를 향해 나갈 수 있지만, 기술만 있고 체력이 모자라면 선수 생활을 이어갈 수 없다.
“소영수. 너도 이제 만 서른이야. 예전보다 한 발 더 뛴다는 마음으로….”
나도 안다. 이제 체력의 총량이 줄어들면 줄어들었지. 더 좋아질 일은 없다. 그런 건 십대 때나 가능한 거다. 그렇게 길러진 체력을 바탕으로 이십 대에 꽃을 피우고 삼십 대는 유지 관리하며 은퇴를 준비한다.
‘내가 꽃을 너무 늦게 피웠어.’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지금의 모습을 1년이라도 더 가져갈 수 있도록 애쓰고 있다.
‘애쓴다고 다 되는 건 아닌데 난 다행스러운 건가? 아무래도 좀 오래가는 몸뚱이를 타고 난 것 같은데…’
목적지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허어헉…”
이제 바로 눈앞까지 왔다.
‘조금만 더 가면 끝…’
고 감독의 구령에 맞추어 마지막 피치를 올린다.
“하나, 둘… 왜 이렇게 뛰는 게 시원찮아. 도착 후 느린 걸음으로 속도 바꿔서 한 번 더 간다.”
“우아악!”
저 인간이 아침부터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 비명이 사방에서 터진다.
‘말만 느린 걸음이지 숨이 다시 돌아오면 다시 속도를 높일 거면서… 에고, 좀 살겠네.’
올해도 훈련 스케쥴은 마찬가지다. 뛰고 또 뛴다. 토가 나올 것 같다. 내가 이 고생을 사서 왜 하는지 모르겠다.
정상적인 교육을 받고 합리적인 사고를 가진 피지컬 코치를 고용해서 구태와 악습을 타파하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악! 악!”
다시 속도는 점점 올라가고 옆에서 뛰는 로저스와 알버트에게서 마치 고함처럼 들리는 구령 소리가 흘러나왔다.
‘몸이 안 되면 그냥 엎어지라고. 뭘 그렇게 죽을듯한 얼굴을 하고 억지로 뛰는 거야!’
두 명이 탈진했는데 이 훈련이 계속 지속될 리가 없다.
‘그냥 포기하라고. 좀 쉬게 해줘.’
체력이 한계에 달해서 달리는 모습이 넘어질 만한데도 끝끝내 이탈하지 않으려고 한다. 이래서 광신이 위험하다.
‘알버트. 넌 월드시리즈 MVP에 올해의 신인상까지 받았잖아. 무슨 영광을 더 누리겠다고 이러는 거야? 정규시즌 MVP라도 하고 싶니? 아직 어린애가 벌써부터 이러면 안 된다. 좀 쉬어가면서 해.’
그래도 알버트는 이해되는 부분이 있다. 작년 이 훈련에 참가해 펀치력도 좋아지고 어찌 되었든 타격 각 부문에 걸쳐 지표상승을 이루어 냈으니까. 정작 이해가 안 되는 놈은 로저스다. 그의 성적은 재작년이나 작년이나 별 차이가 없었다. 그런데 여기 왜 매달리듯 보이는지 모르겠다.
‘누구나 한다고 존슨처럼 되는 게 아니야. 개인차가 있어서 다 다른 건데… 될 놈만 되는 거라고. 용쓴다고 안 될 놈이 되는… 야! 좀 천천히 뛰어.’
얘들이 이렇게 설쳐대면서 분위기가 작년보다 더 살벌해졌다. 고 감독이 뭘 하라고 하면 미친 듯 날뛴다.
겨우겨우 오전 훈련을 마쳤다. 예정된 기간이 앞으로 한 달이 더 남았는데 어떻게 버틸지 몹시 걱정이다.
스쳐 가는 바람이 몹시 상쾌하다. 작년에 비해 이것 하나 좋아졌다. 햇볕이 내리쬐는 맑은 날이지만 1월 플로리다의 기후는 그것이 따갑게 느껴질 정도가 아니다. 보통 섭씨 20도 내외의 습도가 적은 쾌적한 환경. 경치 좋은 곳에 피크닉이라도 가고 싶은 마음이 드는 환경이다.
점심 식사 후 필라테스를 하고 잠시 쉬었다가 자전거를 이용해 이웃 도시로 향한다. 거리는 왕복 70마일(약 112km)쯤 된다. 서울서 천안까지보다 좀 멀고 대전까지보다는 좀 가깝다.
단시간에 너무 많이 뛰면 관절과 근육에 무리가 간다면서 오후엔 자전거를 타라 해서 내심 기뻤다. 도로가 위험하니 어쩌니 하면서 조금 싫은 척을 내며 연막을 뿌렸다. 사실 미국의 이런 시골 도로는 차 자체가 잘 안 다닌다. 고 감독이 동행하지 않는다니 타다가 힘들면 적당히 하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
‘하! 장을 보고 오라고 할 줄이야 몰랐지. 아무튼 잔머리는…’
도시에서 식료품을 사 배낭에 넣고 다시 골프장으로 돌아간다. 갈 때보다 돌아올 때 채워진 배낭의 무게만큼 더 힘들다. 한 세 시간쯤 걸린다. 처음엔 그랬다.
어느 날부터인가 속도 경쟁이 시작되었다. 걸린 부상은 정말 소소한 거다. 도시에서 음료수 값을 내는 정도. 연간 천만 달러 이상 받는 프로 선수가 그 정도쯤이야 하겠지만 그게 그렇지가 않다. 그놈의 경쟁의식이 사람을 잡는다.
마이너 리그를 거치면서 경쟁에서 이겨 위로 오를 때의 쾌감을 알아버렸다. 이겨야 산다라는 게 몸에 배어 그 얼마 안 되는 음료수 값을 내고 나면 짜증스러움에 그날 밤잠을 설쳤다. 날이 지날수록 주행 거리는 그대로인데 주행 시간이 줄어들고 있었다.
저 멀리 표지판이 나타났다. 마을까지 3마일 남았단다. 페달 밟는 발에 힘이 더 들어간다. 자전거의 속도가 쭉쭉 오른다.
‘이때를 위해 힘을 비축했다고. 오늘은 내가 이긴다.’
그동안 1등을 한 번도 못 해봤다. 사실 내기가 시작된 이후 거의 5위였다. 5명 중에 5등은 꼴찌다. 최고 순위는 3위. 현 메이저리그 최고 투수. 올 시즌 내셔널 리그 사이영상에 빛나는 내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결과다.
“헉. 헉. 이제 거의 다 왔네. So. 오늘따라 왜 이래.”
자전거 타면서 말 거는 건 반칙이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 내 옆으로 따라붙은 베그웰이 수작을 부린다.
“얼마 안 남았잖아. 평소 하던 것처럼 하자구! 오늘 음료수 값 내가 낼게. 서로 힘들게 이럴 거 뭐 있어.”
말은 그렇게 하면서 베드웰도 악착같이 페달을 밟고 있다.
‘그깟 음료수… 내가 필요하면 마트를 통째로 살 수도 있는 사람이야. 날 뭘로 보고… 좀 세게 불러봐. 너도 연봉 1,000만 달러 받으면서 쪼잔하게…’
숨도 차오르고 솔직히 죽겠다. 막판 스퍼트를 하던 발에 힘을 풀고 쉬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힘들면 쉬고 싶은 게 본능이다. 본능에 따르라는 충동이 몰려왔지만, 이를 악물고 그런 마음을 억눌렀다.
목적지로 삼은 도시 외곽에 위치한 마트가 눈에 들어온다. 유혹을 극복한 자신이 스스로 대견스럽다.
‘이 속도를 유지하면…’
바닥을 향한 내 시선에 검은 그림자 두 개가 홀연히 나타났다. 곧 내 그림자와 합쳐졌다 분리되어 점점 앞으로 멀어지고 있다.
‘아! 이런… 누가…’
온몸에 힘이 쭉 빠졌다. 순간 다시 두 개의 형체가 나를 지나쳐 간다.
에이, 오늘도…
자전거의 속도를 천천히 줄였다. 이렇게 된 이상 스퍼트는 무의미했다. 손을 뻗어 자전거에 달려 있는 물통을 집어 들었다. 미지근해진 물맛이 너무 쓰다.
천천히 페달을 밟아 마트 주차장에 이르렀다. 일행 넷이 자전거에 기대어 쉬면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So. 오늘은 좀 다른 것 같더니…”
“사람이 하루아침에 그렇게 바뀔 수는 없잖아. 의욕만으로 다 이루어지면 마이너에 있을 놈 하나 없지.”
“그건 그래.”
놀리는 상대들에게 짜증이 나기보다는 이게 뭐 하는 짓인가 하는 자괴감이 먼저 다가온다. 장갑을 벗고, 헬멧과 팔꿈치 보호대도 벗었다. 몸에 걸리적거리는 게 너무 많다. 그래도 갑갑하다.
‘아! 고글.’
자전거 안장에 벗은 것을 얹어놓고 털썩 주저앉았다. 무리했는지 팔과 다리가 덜덜 떨리고 있다.
“어이쿠, 노인네 다 되셨네.”
“페이스 유지가 중요하잖아. 잘 알면서 몸에 맞춰 하라고.”
우리 일행은 이런 면에서 거침없다. 약함을 드러내면 더 심하게 놀린다.
“나이는 베그웰이 나보다 더 많잖아. 그리고 내가 증량 때문에 몸을 불리지만 않았으면 이길 수 있었는데 아직 체중에 적응이 안 되어서… 니들 운 좋을 줄 알아.”
과장만은 아니다. 시즌을 진행하다 보면 투수의 체중은 서서히 줄어든다. 그것에 대비한 증량도 동계훈련 프로그램 속에 들어있었다. 그 근육량이 많으면 폭발적인 힘을 내기에는 좋지만 오래 유지하는 지구력은 줄어들 수가 있다.
‘투수 중 살집이 은근히 많은 체형이 많이 보이는 게 그 때문… 에구, 이젠 별 이유를 다 끌어대네.’
정말 지는 것은 무엇이 되었든 싫다. 그리고 원래 공정한 경쟁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가지고 태어나는 조건이 다른데 어떤 기준으로 공정을 논할 수 있을까.
메이저리그에서도 대부분 출발점인 드래프트에서부터 달라진다. 같은 마이너리거라고 해서 다 같지 않다. 누군가는 넉넉한 계약금을 받은 보너스 베이비로 여유자금으로 개인 트레이너를 고용하고, 메카닉 전문가와 상담을 하며 시즌 준비를 한다. 어떤 누군가는 기본 생활이 안 되어 시즌 종료 후 파트타임으로 일을 하면서 생활비를 벌어야 한다.
‘누가 유리하겠어?’
그뿐만이 아니다. 경제적인 문제는 2차적인 문제다. 태어날 때부터 다른 몸을 가지고 태어나는 건 정말 어쩔 수 없다. 같은 시간을 투자하더라도 더 뛰어난 운동 성과를 보이는 사람들이 현실에 존재한다. 얼마나 집중하고 노력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물론 그런 애들이 보너스 베이비가 되는 거지만, 그러고 보면 드래프트 후순위로 메이저리그에 올라오는 애들은 대단한 거야.’
나같이 그런 몸을 타고 나지 못했으면 무엇인가 동기부여가 필요했다. 그것을 지도라고 생각하면 그 내용이 충실할수록 목적지를 더 잘 찾을 수 있다. 난 구체적인 목적이 있을 때 운동이 더 잘 되었다.
‘나도 지금 자리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