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각성한 이레귤러의 커브가 드러남-159화 (159/200)

159화. 샴페인을 터트렸지만

따다다다 딴- 따다다다 딴-

어디선가 흘러나오는 운명의 선율이 마음을 뒤흔든다. 이게 어디서 나는 소리인지 모르겠다. 멈칫하다 곧 정신이 돌아왔다.

‘전화가 어디서?’

폰에서 아주 오랜만에 나오는 소리라서 잠시 헷갈렸다. 보통은 통화를 하더라도 메신저의 음성 통화 기능을 사용하거나 해서 전화가 오는 경우는 상당히 드물었다. 요즘은 구단에서 연락할 때도 메신저를 사용한다. 메신저의 알림음은 운명이 아니다.

‘누구지? 기자에게 내 번호가 노출되었나?’

그런 생각밖에 안 든다. 구단에서도 내 전화번호는 특별히 관리하는데 지독한 기자분들의 집념이라면 혹시 모를 일이다. 전화할 사람이 없는데 이렇게 전화가 오는 건 기자 아니면 잘못 걸린 전화다. 받지 말까 하다가 연결 버튼을 눌렀다.

‘혹시 만에 하나라는 게 있으니까.’

꼭 필요한 통화인데 다른 요인 때문에 못 받아서 내 삶의 방향이 달라질 수도 있다.

‘그렇지. 일테면 케이트라든지…’

환경문제인지 뭔지 때문에 그린란드에 빙하를 촬영하러 간다고 하더니 그 뒤부터 연락 두절이다. 사실 지금 어디 있는지도 모르겠다. 6개월 이상을 목소리 한 번 못 들어 봤다.

‘받았다가 기자면 바로 끊으면 되고… 그리고 전화번호를 바꾸면… 아! 그럼 케이트는 바뀐 번호를 모를 텐데…’

묘한 딜레마를 느끼며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소영수 선수. 맞지요?”

딱딱한 중년 남성이 연상되는 목소리다. 순간 통화 종료 버튼을 바로 누르고 싶었지만, 필사적으로 참았다. 이왕 이렇게 되어버렸다면 기본적인 예의는 갖춰서 최대한 정중하게 끊어야 한다. 그게 사회생활이다.

‘거절도 잘해야 돼. 말로 마음에 앙금을 남기면 바로 잠재적 적군이 만들어지는 거야.’

적어도 그러지는 말아야 한다.

“그렇습니다만…”

“메이저리그 사무국입니다. 2030시즌 내셔널 리그의…”

“헉!”

그 뒤로 좀 더 긴말이 이어졌지만 정확한 내용은 잘 모르겠다. 내 이성적 사고는 사이영상이란 말을 듣는 순간 딱 멎어 버렸다.

올해는 당연히 받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긴 했었다. 그렇지만 이렇게 직접 수상을 확인받고 나니 느낌이 많이 새롭다. 불과 만 3년 전까지만 해도 제대하고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할지 애매한 처지였는데 정말 사람 팔자 알 수 없는 것 같다.

예전 어른들이 사람은 다 때가 있는 거라고 하시던 말씀이 무슨 뜻인지 이제야 가슴에 와 닿는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의 파도가 덮쳐왔다. 갑자기 울컥한다.

‘에구구, 뭐 하는 짓이야? 나이 서른이나 먹어 가지고…’

겨우겨우 참아냈다.

“감사합니다.”

간신히 이 말로 통화를 마칠 수 있었다. 이런 표현이 상황에 합당한 말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머리가 하얘져 생각을 하면서 대화를 이어나갈 수가 없었다. 전화를 끊고 나서야 머리가 다시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한다.

‘말도 제대로 못하고 참 나도 한심한… 헐! 이렇게 통보를 해주는 거였어?’

이런 절차가 있는 줄 몰랐다. 그냥 어느 적당한 날 사무국에서 언론에 보도 자료를 내고 수상자를 발표하면서 수상이 공식화되는 건 줄로만 알았다.

이틀 전 알버트의 올해의 신인상(Rookie of the Year Award) 확정 소식은 인터넷을 통해 확인했었다. 메신저로 베그웰이 먼저 알려줬는데 바로 기사를 검색해 봐도 관련된 보도 내용이 없길래 어디서 확인 가능하냐고 다시 물어봤었다.

‘메이저리그 공식 홈페이지에 나온다고 해서 사이영상 수상도 알게 되는 경로가 마찬가지려니 하고 생각했었지.’

이렇게 사전에 수상자에게 미리 통보한다는 말은 어느 누구에게도 들어보지 못했다. 그냥 통상적으로 신인상 발표를 하고 며칠 후에 사이영상 발표가 있다. 이 정도만 알고 있었다. 그래서 조만간 메이저리그 사이트에 들어가 볼 마음이었다.

10월 27일 월드시리즈를 결정 지은 6차전이 마무리되었는데 그 뒤로 약 이 주 간은 월드시리즈를 치르던 때보다 더 바빴다.

우승 축하와 관련된 공식적인 행사 참석 요구가 끊임없이 이어졌고 때를 가리지 않는 엄청난 취재 열기에 시달렸다. 개인적으로 그런 것을 별로 좋아하진 않았지만, 우승을 했다. 영광이 있으면 당연히 반대급부도 생기는 것이라 생각하고 참았다.

겨우 요즘 들어서야 그 열기가 좀 식었다. 조금 한가해져 며칠째 몰아쉬면서 쌓인 피로와 긴장을 풀고 있는 중이었다. 지금 이런 시기에 이런 기습공격을 당할 줄은 몰랐다.

‘음. 이런 깜짝 이벤트는 나쁘지 않네. 크크큭. 결국 받긴 받았어. 하아! 조금 찌릿하네.’

올 시즌 내 성적은 작년에 비해 지표가 크게 상승한 건 없었다. 오히려 큰 임펙트는 적다 싶었지만, 지난 시즌과 가장 큰 차이점은 이렇다 할 경쟁자가 없었다.

‘좋은 시즌이었어. 정신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마음 편하게 경기에 집중할 수 있었고, 팀 전력도 작년보다 더 나은 면이 많았지.’

작년에 누군가 꾸준하게 성적을 내면 자연스럽게 수상하게 될 것이라고 덕담을 해줬었는데 그래도 그날이 바로 다음 시즌이 될 줄은 몰랐다.

‘음… 그런데 좀 전에 통화하면서 뭐라고 한참 한 것 같은데 뭐였지?’

놀랐던 가슴이 좀 진정되면서 점점 정상적 사고가 가능해지고 있었다.

‘전화 온 번호로 다시 전화해서 물어볼까? 아니야. 그건 좀 곤란할 것 같은데… 에잇, 일단 검색이나 해보고…’

요즘 세상의 모든 답은 인터넷 세상에 있다. 현실에서 일어난 물음의 답을 가상공간에서 찾는다는 건 어떻게 생각하면 모순적인 일일 수도 있지만, 그것이 당연해진 현실이다.

‘통화 때 별다른 말은 없었던 것 같은데 꼭 필요한 뭐가 있었으면 구단에서라도 연락 오겠지.’

일단 메이저리그 공식 홈페이지를 찾아 들어갔다.

사무국의 공식 오피셜이 떠 있었다. 올린 시간이 바로 직전이었다. 일단 좀 전에 받았던 전화가 내 상상의 산물은 아니었음을 확인했다. 통화 내용이 기억나지 않아서 조금 불안하던 마음이 싹 가셨다.

“흐흣. 그렇지.”

괜히 흐뭇해져서 검색창에 So의 사이영상과 같은 검색어를 써넣게 된다.

‘아직 관련 기사는 안 나왔네. 뭐! 이제 곧 올리기 시작하겠지. 시간은 많으니까 천천히…’

기사를 기다리고 있는데 기사보다 축하 메세지가 먼저 들어오기 시작했다.

‘내가 아는 사람이 이렇게 많았나? 이것 참!’

드륵드륵-

진동으로 세팅해놓은 게 후회스러울 정도로 메시지 알림이 연속적으로 들어오고 있다.

‘하긴 우리 팀 선수만 해도… 일단 감사 인사는 해야겠지?’

무난한 문구를 써 단체 메시지 발송으로 간단히 해결했다.

‘역시 사람은 머리를 써야…’

탕탕-

“영수야! 영수야!”

갑자기 방문을 두들기는 거친 소리와 함께 다급하게 나를 부르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예.”

방문이 벌컥 열리면서 상기된 표정의 아버지가 방 안으로 들어오셨다.

“그냥 들어오시면 되지 무슨 노크를…”

“너… 너어…”

아버지가 굉장히 급해 보이는 얼굴로 제대로 된 말을 잇지 못하고 있다.

“왜요? 무슨 일 있어요?”

무슨 일인가 싶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너… 사이영 상을…”

‘에고, 벌써 보셨나 보네. 오피셜 뜬 지 10분 좀 넘었는데 아버지가 어떻게…’

솔직히 아버지께 알려드려야겠다는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다. 인터넷도 잘 안 하시는 분이 어떻게 이리도 일찍 아셨는지 모르겠다. 일이 꼬였다.

“그거요? 아! 죄송해요. 저도 조금 전에 연락받아 알게 되었는데 바로 나가서 알려드리려던 참에 여기저기에서 갑자기 축하한다는 메세지가 많이 들어왔어요. 그거 보고 바로 감사 인사를 보내느라고 말씀드리는 게 늦었네요. 이제 대충 다 보내서 막 나가려고…”

이럴 땐 정직한 것이 답이 아니다. 이제는 그 정도를 알 나이가 되었다.

“당연히 그게 맞지. 잘했다. 가족이야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건데… 아무려면 어떠냐. 흐흐흑. 니가 사이영 상을 이렇게… 니 엄마가 이걸 봤어야 하는 건데…”

미치겠다. 어떤 심정이실지 충분히 이해는 되지만, 이런 신파는 나에게 아주 어렵다.

“음. 저 위에서 엄마도 좋아하실 거예요. 너무 그렇게…”

“내가 너 메시지 보낸 걸 보고 얼마나 놀랐는지 아직도 가슴 뛰는 게 가라앉질 않는구나.”

‘헉!’

단체 메시지를 보낸다는 게 메신저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다 보낸 것 같다. 아무래도 아직 난 제정신이 아니다.

‘사서 일을 만들었어. 축하 메세지 안 보낸 사람들도 감사 인사를 다 받았겠네. 무슨 일을 이렇게 황당하게 하냐. 나도 참!’

난 아직 멀었다. 흥분을 하면 정신을 못 차린다. 야구 할 때는 베그웰이라는 든든한 조력자가 그 틈을 메꿔주지만, 현실에선 그냥 어딘가 빈 구석이 너무 많은 바보 비슷한 사람이다.

어이없는 실수를 자책하랴. 혹시 서운해할 수도 있는 아버지를 달래드리랴. 혼이 다 달아나는 것 같다. 그래도 어떻게 얼렁뚱땅 어색한 장면이 나올 뻔했던 걸 넘겼다.

‘에구구, 확실히 세상살이가 야구보단 어려워.’

진이 다 빠진다. 아버지도 축하한다는 말씀과 함께 돌아가시고 겨우 혼자만의 시간을 다시 가질 수 있었다.

‘아직 시즌 치른 피로가 안 풀려서 그래. 좀 더 쉬면 괜찮아질 거야. 일단 이달은 쉬고 12월에 플로리다를 다시…’

침대가 나를 부른다. 만사가 귀찮아지고 온몸이 늘어진다.

‘뭘 또 빠트린 것 같은데… 뭘 하려고 했었지?’

침대를 향하면서도 마음이 개운치 않다.

‘아! 그렇지. 검색. 귀찮은데 나중에 할까? 아니야. 혹시 사무국과의 통화 내용이 기억날 수도 있으니까. 지금 봐두는 게 낫겠지. 그래야 혹시 누가 연락해 묻더라도…’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고 싶지는 않다. 많이 귀찮았지만 침대로 향하던 발길을 돌려 의자에 앉았다. 침대에 누워 핸드폰을 조작하다가는 그냥 잠들지도 모른다.

‘데스크 탑이라도 하나 사야겠네.’

갑자기 휴대폰의 작은 화면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왜 컴퓨터를 마련해야겠다는 생각을 그동안 한 번도 안 했는지 모르겠다. 야구선수로는 몰라도 생활인으로는 모자라는 게 너무 많다.

‘어디 보자. 기사가 제법 올라왔네.’

얼마 안 되는 시간이 지났는데도 양이 좀 된다. 일단 아무거나 하나 열었다.

‘어? 1위 표 17장, 2위 표 11장, 3위 표 2장으로 169점? 이게 뭐야?’

미국야구기자협회(BBWAA) 회원의 투표로 결정되는 사이영상은 1위 표 7점, 2위에서 5위 표가 각각 4, 3, 2, 1점으로 계산된다. 내가 놀란 이유는 생각했던 것보다 점수가 너무 작다. 경쟁상대가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2위가 1위 표 10장, 2위 표 17장, 3위 표 3장으로 147점을 받고 있었다.

‘만장일치는 아니더라도 그 비슷하게는 나와야 할 거 아냐. 이건… 허어! 3위가 101점? 1위 표 3장, 2위 표 2장, 3위 표 23장이라고?’

치밀어 오른 분노에 잠이 싹 달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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