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각성한 이레귤러의 커브가 드러남-158화 (158/200)

158화. 기쁨은 순간, 희망은 영원하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는 오라클 파크에서 벌어진 월드시리즈 6차전에서 휴스턴 애스트로스를 4대0으로 누르고 시리즈 전적 4승 2패로 통산 9번째의 우승에 성공했다. 자이언츠는 2010, 2012, 2014년 3회 우승하는 등 전성기를 누렸으나 지난 16년 동안 들쑥날쑥한 성적을 보이며 우승에 실패했다. 이번 우승은… 시리즈 MVP로는 월드시리즈 6게임에서 0.384의 고타율과 6차전 1:0의 피 말리는 승부가 펼쳐지던 8회 쐐기 쓰리런 홈런을 작열시킴으로 우승의 향방을 결정지은 조나단 알버트(21) 선수가 선정되었다. 지난 시즌 데뷔했으나 아직 신인 자격을 유지하고 있는 알버트 선수는 내셔널리그 올해의 신인상 수상이 확실시되고 있으며…』

『자이언츠의 왕조는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다. 자이언츠의 단장이 말한다.』

『절정기의 자이언츠, 내년엔 더 강해진다.』

『심층분석. 자이언츠의 우승은 이렇게 이루어졌다.』

『자이언츠 철벽 선발진을 해부하다.』

……

어지러운 내용들이 모니터를 가득 메우고 있다. 제법 공감이 되는 기사도 있었지만, 어이없는 내용이 더 많았다. 그러나, 그 바탕에는 모든 기사를 막론하고 찬양이 깔려있었다. 그래서 계속 이 기사 저 기사 열어보는 것을 멈추지 못하고 있다. 읽으면 읽을수록 흥이 났다.

우승한 지 이틀이 지났지만, 아직도 자이언츠에 대한 기사가 쏟아지고 있었다. 오히려 점점 더 많아지는 것 같다는 생각에 자이언츠 야구부문 사장 해리스는 슬쩍 웃음 지었다.

똑똑-

가벼운 노크 소리에 뒤이어 출입문이 열렸다. 그리고 윌리스 단장이 웃으며 들어왔다.

“하! 바쁘신 분이 어쩐 일이십니까?”

“음. 업무분담을 좀 요구하고 싶어서요. 요즘 어떤 분께서 한가하다고 하던데…”

단장이 말하는 내용은 각이 졌지만, 농담조의 말에 악의는 보이지 않는다.

“허허허. 단장님께서 재미있어 하신다는 말이 직원들 사이에서 돌던데… 벌써 지루해지셨어요? 이제 재미가 좀 덜한가 보죠?”

우승 확정 뒤에도 해리스 사장은 절대 앞에 나서려 하지 않았다. 덕분에 원래 팀에 대한 총괄 업무를 맡고 있던 윌리스 단장이 모든 언론매체를 상대하고 있었다.

“음. 처음엔 좀 신나고 재미있더니 한 이틀 시달렸더니 이제 그만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네요. 한가하신 사장님께서 나눠서 좀 처리해주시죠.”

“하핫. 그동안 잘해 왔지 않습니까? 괜히 말이 두 군데서 나가면 이상하게 번질 수도 있어요. 그냥 해 오셨던 것처럼 단일창구로 알아서 하시는 게 더 합리적이 아닐까요?”

“호홋. 젊은 사장은 우승의 기쁨을 만끽하며 쉬면서 늙은이를 더 부려먹으려고 하시는군요.”

“늙다니요. 아직 현역으로 10년은 더 일하실 것 같으신데…”

해리스는 지금 별로 그러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그의 요즘 관심사는 다른 곳에 있었다. 다른 일에 신경 쓰기 싫었다.

“오랫동안 고생하신 분께서 영광을 누려야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하신 김에 수고 좀 더 해주시죠. 그 왕조 건설이니 하는 그런 이야기가 좋더군요. 전 그런 이야기로 지원이나 가끔 해주시면 만족합니다.”

“지원이라… 살살 좀 하세요. 무슨 일을 또 꾸미려고… 그리고 그 이야기는 2010년대의 영광을 되살리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한 말인데 묘하게 진의가 왜곡되어서 보도가 나간 겁니다. 제가 어떻게 연속우승을 장담하겠습니까? 아무튼 기자 놈들이란…”

우승 직후 있었던 인터뷰에서 했던 말을 다른 언론사에서 인용하며 살을 조금씩 붙이더니 지금은 한때의 양키즈처럼 연속우승을 해내겠다는 식으로 말한 것이 되어 있었다.

“나쁘지 않았습니다. 잘 지르셨습니다. 일단 목표를 확실하게 해 두는 것은 괜찮죠. 그리고 제가 보기엔 현재 우리 전력으로 봐서는 사실 그렇게 불가능해 보이지도 않구요. 우리 구단주가 가장 좋아하는 일이 뭐겠습니까? 잘 안되어도 립 서비스로서 가치는 있고 말대로 되면… 으음. 제 개인적으로는 아주 좋았습니다.”

“저도 비슷한 생각이 들어서 굳이 정정 보도 요청을 하지 않고 내버려 두고 있습니다만, 말을 너무 앞세운다는 비난이 있을 것 같기도 해서… 선악을 잘 모르겠습니다.”

이제까지 농담조로 말하던 윌리스 단장이 신중하게 보수적 입장을 보였다.

“승리가 곧 보증수표입니다. 이기면 선이고 지면 악이 되겠죠. 앞으로 세 시즌 정도는 현재 전력이 크게 나빠질 요인은 없지 않습니까. 현재 이 전력이라면 가능하지 않을까요?”

단장의 말이 허풍으로 끝나더라도 그것의 결과는 다음 시즌 후반기에나 나온다. 그건 그것대로 그때 가서 처리하면 될 일이다. 사장에게는 지금의 이 분위기를 한동안 유지하는 것이 중요했다.

“기본적으로는 동의합니다. 다만 한 가지 불안요인은 급작스러운 돌발사태죠. 선수의 부상이라든가 노쇠화 같은 문제를 100% 컨트롤하기는 어려우니까요.”

“그렇죠.”

그래서 그런 예기치 않은 상황이 닥치더라도 극복하기 위한 지속적인 전력보강은 필수적인데 올 시즌에 자금의 여유 부분을 거의 다 쏟아부었고, 카스트로의 FA 계약 문제로 구단주에게 따로 지원을 받아야 하지 않습니까. 이번 월드시리즈에서 나타났듯 우리 로스트는 아직 얇아요. 주전과 비주전의 실력 차이가 크죠. 이 부분의 보강이 필요하고, 게다가 아직 당장 닥친 일은 아니지만 알버트를 어떻게든 주저앉혀야 하지 않을까요?

시즌이 끝난 지 이제 겨우 이틀 지났을 뿐인데 단장에게서 다음 시즌 계획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하긴 그런 식의 전력보강이라면 한두 시즌이 더 지나면 사치세를 물어야 할 상황에 몰리게 될지도 모르죠. 그런 상황은 피해야겠죠. 지금 그런 여유가 있지도 않고…”

필요한 부분에 대해 한참을 이야기하던 단장이 좀 심한 말이라는 걸 느꼈는지 스스로 한발 후퇴한다.

“아직 오지 않은 현실을 미리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사치세를 내야 할 상황이라면 낼 수도 있죠. 다만 구단주를 설득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있으면 됩니다. 그 양반의 성향은 저보다 더 잘 아시지 않습니까? 한두 시즌만 현재처럼 더 끌고 나가면 구단주에게 지원을 더 요청할 수 있고 받아들여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구단주의 지갑을 열게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구단 평가가치의 상승이다.

메이저리그(MLB)에서 최다 우승 기록을 가진 뉴욕 양키스는 지난 35년간 연속해서 최고의 야구단으로 평가됐었다. 이름난 모 경제 전문지에서 해마다 구단 가치를 평가해 발표하는데 2020년 양키즈의 구단 가치는 약 50억 달러였고 10년 뒤인 2030년 올해는 약 68억 달러가 되었다.

2위인 LA 다저스가 46억 달러로 평가받는 것을 생각하면 비교할 수 없는 부동의 1위다. 구단 가치 순위는 보스턴 레드삭스, 시카고 컵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로 이어진다. 이 순위는 지난 몇십 년 동안 거의 변하지 않았다.

자이언츠는 2030시즌을 앞두고 약 41억 달러로 평가받았다. 자이언츠 뒷순위로 뉴욕 메츠,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필라델피아 필리스가 있다.

30개 구단 중 최하위로 평가받는 마이애미 말린스조차 구단 가치가 약 13억 달러에 이른다. 소위 말하는 스몰 마켓 팀들인 탬파베이 레이스, 캔자스시티 로열스, 시내티 레즈, 오클랜드 애슬레틱스가 말린스와 비슷한 규모로 최하위권을 형성한다.

메이저리그 30개 구단 평균 구단 가치는 약 24억 5천만 달러로 지난 10년간 해마다 평균 3% 이상씩 상승했다.

이 경제지의 가치평가는 2020년 평가액이 약 23억 달러를 조금 상회했던 뉴욕 메츠가 2020년 하반기 24억 2천만 달러에 팔리면서 그 신뢰도가 입증되었다. 그때 메츠의 경영상태는 최악이었다. 2019년 구단 운영손실액이 1억 2천 500만 달러에 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가격을 받을 수 있었다.

인수 확정 소식에 그 경제지의 코멘트는 ‘야구팀을 향한 강력한 수요가 가치를 끌어올렸다.’라고 간단히 평했다.

“우리 구단주가 꽤 합리적인 부분도 있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죠. 수익이 보이면 투자를 주저하지 않는 사람이긴 하지요.”

해리스 사장의 말에 윌리스 단장이 쉽게 동조하며 자본주의의 괴물을 아주 고상한 언어로 묘사한다.

“하나하나 해나가야지요. 일단 올해는 카스트로를 잡아야겠죠. 일단 그 자금은 우승을 해내면서 거의 확정되었습니다. 그의 효용성은 정규시즌에서 입증되었죠. 꼭 잡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건 동의합니다. 그가 합류한 후 타선의 무게감이 달라졌죠. 포스트 시즌에서는 좀 아쉽긴 했지만, 그건 그에게 가졌던 기대치에 못 미쳤다는 거지 평균적인 타자 이상은 해냈지요. 충분히 투자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구단주가 돈의 지출에 관해 까다로운 사람이긴 해도 기본적인 약속을 어기는 사람은 아니었다. 이번 시즌 성과를 내면 해주기로 약속한 일이다.

“일단 그의 장기계약부터 시작하시죠. 다만, 그 계약이 성립되면 다음 시즌에 다른 큰 보강은 어렵습니다. 한두 시즌 정도는 소소하게 해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큰 지출은 어렵다고 봐야겠죠.”

우승했다고 해서 현재 구단의 기본적인 수입구조에서 바로 큰 수익의 발생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결국 당장 목돈을 구하려면 구단주에게서 나와야 하는데 지금 또 다른 지출을 말하기도 어렵고 말한다고 돈이 나올 것 같지도 않았다. 또 다른 투자를 건의하려면 또 다른 성과가 필요했다.

빅쓰리라는 용어는 많은 곳에서 쓰이지만, 미국 프로 스포츠에서 빅쓰리는 과거 구단 가치가 50억 달러 이상이었던 뉴욕 양키스와 미국프로풋볼(NFL) 댈러스 카우보이스, 미국프로농구(NBA)의 뉴욕 닉스를 그렇게 지칭하면서 시작되었다. 지금은 구단 가치가 더 높아졌지만, 빅쓰리는 현재도 유지되고 있었다.

“우리가 한두 시즌 성적을 더 낼 수 있다면 적어도 빅포에 진입할 수 있는 가능성은 생기겠죠. 그런 비전을 보여준다면 구단주의 성격상 투자하지 않고는 못 배길 겁니다. 어렵겠지만 현재 전력을 유지하면서 한두 시즌만 더 끌고 나가 주십시오. 그렇게만 된다면 추가 전력 보강을 위한 자금은 어떻게든 만들어 오겠습니다.”

“아주 긍정적으로 생각하시는군요. 만약, 그렇게 된다면… 으음. 물갈이 타이밍이 거의 맞아지겠군요. 두 시즌이면 아마 고참들 중에서 폼이 떨어지는 선수가 틀림없이 나올 겁니다. 슬프지만 자연스러운 거죠.”

낮이 지나 밤이 되고 다시 아침이 오는 건 자연의 이치다. 영원한 젊음은 없다.

“구체적으로 누가 그럴 가능성이 높을 것 같은가요?”

“미리 예상하기는 힘들지만, 1루수 필이나 내야수들 중에서 나올 거라고 생각합니다.”

노쇠는 일단 시작되면 급격하게 진행된다.

“그것참!”

“영원한 건 없죠. 갈 사람은 가야죠. 그래야 뒷사람이 설 자리가 있지요. 그렇게 한 텀만 돌면 황폐해진 우리 팜에도 새로운 종자가 싹을 틔우고 묘목으로 자라날 겁니다.”

냉엄한 현실의 대화가 결국엔 희망으로 끝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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