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각성한 이레귤러의 커브가 드러남-143화 (143/200)

143화. 월드 시리즈 (3)

타악-

‘그래. 이거… 에구구, 저게 또…’

정타를 피해 내야에 잘 굴렸다 싶었는데 타구가 다시 묘한 코스로 흐른다. 3루수가 대시해 봤지만 아슬아슬한 차이로 빠져나간다. 3루수를 지나친 타구를 유격수가 잡았지만 역동작에 걸렸다. 1루 송구는 이루어지지 못했다.

BABIP(Batting Average on Balls In Play)이라는 스탯이 있다. 간단히 말하면 인플레이 된 타구가 안타가 될 확률이다. 기본적으로 이것은 페어 지역에 떨어지는 공이 안타가 되고 안 되고의 확률은 모든 투수들에게 동일하게 적용된다는 생각에 기초하고 있다.

‘빌어먹을… 몇 개째 이러는 거야?’

7회 초 투 아웃 상황에서 오늘 6개째 안타를 맞았다. 맞은 안타 중 절반은 이런 식의 내야 안타였다.

전통적인 견해는 뛰어난 투수는 인플레이 타구가 나오더라도 안타가 될 확률이 낮다는 것이었다. 놀란 라이언의 위력적인 패스트볼은 타자가 친다고 해도 빗맞고 힘없는 타구가 될 확률이 높다. 그에 따라 아웃이 될 가능성 역시 높아지지만, 아마추어 투수의 상대적으로 느린 패스트볼은 정타가 될 확률이 높고 그러면 대개는 안타성 타구가 된다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이었다. 야구를 투수놀음이라고 부르는 논리가 여기서 출발했다.

2001년, 이에 관해 천동설에 반대하는 지동설과 같은 견해가 나왔다.

야구는 투수와 타자가 대결하는 게임이 아니라 9명이 팀을 이뤄 하는 단체 종목이라는 관점의 등장이었다. 언제나 모든 타자를 삼진으로 처리할 수 있는 투수는 없다. 그리고 어떤 타자도 모든 타석에서 홈런을 칠 수는 없다. 이런 가능성은 확률상으로만 존재할 뿐이다. 메이저리그 100여 년의 역사 동안 수십만 명이 실제로 플레이했지만 한 시즌이라도 그런 기록이 나온 적은 없었다.

‘이상은 이상으로만 존재해. 현실은 많이 다를 수 있지.’

투수가 던지고 타자가 치면, 그 이후부터는 수비가 관여하게 되고 행운이 끼어든다. 결과에 대한 추론이 정확하기 위해서는 기초 자료의 신뢰성이 확보되어야 하는데, 기본적으로 투수는 자기가 원하는 곳에 한 치의 오차 없이 정확하게 공을 던질 수가 없고, 투구된 공을 정확하게 받아쳐 원하는 곳으로 보낼 수 있는 타자도 없다. 그런 건 게임 속에만 존재한다.

투수는 공을 던진 후, 스트라이크가 되거나 배트에 맞더라도 타구가 수비수 앞으로 날아가기를 기대할 수 있을 뿐이다. 잘 맞은 타구가 수비수에게 잡히거나 조금 전 상황처럼 빗맞은 타구가 수비수를 비껴가 안타가 되는 건 정말 운의 영역이다. 그런 것이 야구다.

그런 불확실함이 사람들을 열광하게 만든다. 모든 경기가 예상한 대로 진행된다면 흥미 유발의 요소는 적어진다. 강자가 늘 이기는 엔딩은 재미없다.

‘물론 오늘 경기를 바라보는 홈팬들은 다르겠지만…’

지금 우리 팀 상황은 이기면 본전이다. 팬들의 믿음이 큰 만큼 기대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을 경우 감당해야 할 후폭풍은 상상조차 하기 싫다.

지난 10년간 메이저리그의 BABIP 평균은 3할대 초반 정도였다. 타자가 타격을 하여 인플레이 타구가 만들어지면 약 1/3이 안타가 되었고 2/3는 아웃이 되었다. 그런데 오늘의 내 경우는 안타가 되는 확률이 5할은 되는 것 같다.

‘아이, 정말… 재수가 없으려니까. 한 이닝 더 던져볼까 했더니 이러면 좀 어려워졌나?’

보통은 팀 수비수의 능력과 행운의 보살핌, 개인의 변화가 스탯에 영향을 끼친다고 되어있는데 정말 그런지는 의심스럽다. 왜냐하면 리그 평균이 그렇다고 해서 각 투수마다 BABIP이 비슷하게 나타나지는 않는다. 확실히 레전드급이라고 불리던 투수들의 BABIP은 리그 평균보다는 낮았다.

‘매덕스가 최전성기 0.250~0.270을 꾸준히 찍었다는데 나도 작년과 올해 계산해보니까 그보다 낮게 나오더라고.’

이게 순수한 내 능력인지 우리 수비진이 유능함이 합쳐진 수치인지 정확하게 알긴 어렵지만 굳이 확인하고 싶지는 않다.

‘그걸 알아보겠다고 이적 같은 걸 한다는 건 좀 이상하잖아.’

이제 총 투구 수가 딱 90개가 되었다. 벌써 공이 조금 날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아직 힘이 떨어진 것 같지는 않지만 체력이란 게 10에서 20, 이렇게 점진적으로 고갈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천천히 떨어지며 유지되고 있다가 한 번에 70에서 20, 이런 식으로 훅 떨어진다.

“스트라익.”

“와아아…”

짝짝짝-

출루를 허용하고 난 후 다음 타자에게 바로 초구 스트라이크를 잡았더니 관중석에서 함성과 박수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하핫! 이것 참!’

괜히 어깨가 으쓱해진다. 관중들도 이게 내 오늘 등판의 마지막 이닝이라고 생각하고 있나 보다. 이닝을 마치고 내려갈 때 박수받아 본 적은 있었지만, 경기 중에 이런 응원은 처음 있는 일인 것 같다.

‘이래서 홈경기가 좋은 건가?’

뭔가 보상받는 느낌이다.

따악-

“파울.”

상당히 강한 타구가 1루 쪽 파울라인의 바깥쪽을 갈랐다. 20~30cm쯤 벗어난 것 같은데 꽤 위험했다.

‘에고, 너무 힘으로 밀어붙였나? 기분에 너무 취했나 보네. 천천히…’

4만 명의 응원을 한 몸에 받고 있는데 흥분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을까?

“So. So…”

관중들이 이젠 내 이름을 연호한다. 2:0으로 이기고는 있지만 아직 7회일 뿐인데 오라클파크의 분위기가 마치 게임의 마지막을 앞둔 것처럼 달아올랐다.

1루 주자의 리드 폭이 좀 커진 것 같았지만 지금에 와서 실랑이를 벌이고 싶지 않았다. 타자에 집중하고 싶었다. 스트라이크를 하나만 더 찔러 넣는다면 이닝을 끝낼 수 있다.

‘최고의 공 하나면 돼. 최고의 유인구…’

마음 같아서는 한가운데 패스트볼을 꽂아 넣고 싶지만, 내 패스트볼은 최고가 아니다. 아무리 긍정적인 인간형인 나지만, 조금 전 타구의 기억을 잊기에는 지난 시간이 너무 짧았다. 나는 피네스 피처다.

스트라이크 존의 위쪽 가장자리 끝을 보며 가장 자신 있어 하는 구종을 힘껏 뿌렸다.

“스트라이크. 배터아웃.”

하이 패스트볼을 가장한 업슛으로 가볍게 헛스윙을 끌어냈다.

“우와와!”

관중의 열화와 같은 환호를 받으며 천천히 더그아웃으로 향했다. 오늘 내 할 일은 여기까지인 것 같다. 7이닝 6피안타 1볼넷 무실점. 93구를 던졌다.

“음. 수고했네.”

감독은 가볍게 웃으며 오늘 등판의 끝을 말했지만, 지금 솔직한 심정으로는 한 이닝을 더 던지고 싶었다. 애초에 90구 안쪽으로 7이닝을 마무리하면 한 이닝을 더 던지기로 되어있었는데 예정 투구 수를 살짝 넘겼을 뿐이다.

“오늘 좀 힘드네요. 안타도 많이 맞았고… 아! 샘 코치님이 오셨군요. 아이싱 하겠습니다.”

마음과 다른 말을 하려니 뭐라고 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괜히 횡설수설하게 된다. 마침 컨디셔닝 코치가 보여 얼렁뚱땅 불편한 자리를 피할 수 있었다.

‘나도 아직 멀었네.’

아직 지금처럼 사람 대하는 것이 힘들 때가 있다.

* * *

서둘러 아이싱을 받고 얼음주머니를 두른 채로 더그아웃으로 나왔다. 어제에 이어 우리 불펜의 필승 카드인 프라이머리 셋업맨 애덤 산체스가 8회 마운드에 올라 분투하고 있다. 이번 포스트시즌에서 처음 나오는 2연투다.

‘이거 뭐야. 무사 1, 3루? 한 이닝 더 던진다고 할 걸 그랬나?’

다행히 아직 실점하지는 않았지만, 등판하자마자 이런 상황이 된 걸 보면 마흔 살에 가까운 애덤에게 2연투는 무리였나 보다.

“어떻게 된 거야?”

급하게 주변을 돌아보며 물었다.

“어떻게 되긴 연속으로 2안타를 맞은 거지.”

‘하아!’

억지로라도 내가 한 이닝을 더 던져 막아냈다면 최소한 애덤의 연투는 피할 수 있었다. 지금 상황으로는 어쩌면 클로저인 체이스가 조기 투입될지도 모르겠다.

‘아! 안 되는데 여기서 이렇게 꼬이면…’

후회스러움이 밀려온다. 너무 일찍 내려온 것 같다. 오늘로 우리 홈경기가 끝나고 이동일 휴식이 하루 주어진다. 3차전은 모레다. 그래서 하루 휴식이 있기에 오늘 불펜의 연투는 괜찮을 것 같았다. 시즌 때도 애덤의 2연투는 가끔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이런 일이…

‘그냥 던질 걸 그랬나?’

지금 상황이 마치 내 잘못인 것처럼 느껴진다. 진정하려 해도 숨이 거칠어지는 것을 참을 수가 없다. 벤치는 아직 조용하다.

‘넋 놓고 있을 때가 아니잖아. 어떻게 대책을 세워야 할 거잖아. 감독님 뭐 하는 겁니까?’

감독은 팔짱을 낀 채 서서 묵묵히 그라운드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태평하게…’

따악-

날카로운 타구가 투수 옆을 스쳐 2루 방면으로 날아갔다. 좌완인 애덤의 몸이 움직이는 반대편이라 애덤으로서는 반응할 수 없는 방향이었다.

“악! 잡아. 그렇지.”

유격수 패터슨이 몸을 날려 중견수 방면으로 빠져나가려는 타구를 잡아냈다. 다행이다.

“더블 플레이를… 악! 이게 뭐야.”

자연스러운 연계 동작으로 2루 베이스를 짚고 1루 주자의 슬라이딩을 피하며 송구하려던 패터슨을 그대로 1루 주자의 강력한 슬라이딩이 덮쳤다. 패터슨의 1루 송구는 어이없이 빗나가 1루수가 베이스를 벗어나 잡아야 하는 방향으로 날아갔다. 뒤로 빠트리지 않은 게 다행이다.

3루 주자는 홈인, 타자주자는 당연히 1루에서 살았다. 패터슨은 쓰러져 일어나지 못하고 있다.

“어!”

곧바로 태클을 한 주자의 퇴장과 타자주자의 아웃이 선언되었다. 그랬다는 건 주자의 슬라이딩이 주루의 진행 방향을 벗어나 야수에게 향한 고의성이 인정되었다는 뜻이다.

이미 몇몇 코치가 2루 방면에 쓰러진 패터슨을 향해 뛰어가고 있었다. 당연히 벤치 클리어링이 일어날 만한 상황이었지만 야수들이 쓰러진 패터슨을 살피는 사이 태클의 당사자가 슬며시 사라져 버렸다.

“이거 뭐야?”

이제야 정신이 돌아온 야수들이 사고를 벌인 범인을 찾았지만 화를 낼 타이밍도 지나버렸고 당사자가 보이질 않으니 유야무야되는 것처럼 보였다. 뛰쳐나간 감독과 코치들도 사건이 확대되는 걸 바라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상황은 곧 정리되었다. 3루 주자의 득점은 인정. 주자는 다 없어지며 투아웃이다. 패터슨의 빈자리는 3루수 테일러가 포지션 이동을 했고 3루에 대체 선수가 투입되었다.

어깨를 감싼 아이싱 패드가 갑자기 몹시 불편해졌다.

“이거야 원…”

“진정하고 오늘 경기 마무리부터 하는 게 먼저야. 아직 시리즈가 많이 남았잖아. 이 일을 갚아줄 시간은 충분해.”

코치진은 선수들 다독이기 바쁘다.

어수선한 상태에서 경기가 속행되었다. 애덤은 더 이상 출루를 허용하지 않고 나머지 한 타자를 잡아냈다. 아직 2:1 우리가 이기고 있다.

‘왜 손해 본 기분이 드는 거지? 패터슨은 괜찮은 건가?’

우리 팀의 클로저 체이스가 9회를 말끔하게 막아내 1점 차 신승을 거두었지만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기에는 어딘가 석연치 않은 승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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