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각성한 이레귤러의 커브가 드러남-140화 (140/200)

140화. 출정전야(出征前夜)

『자이언츠는 강했다. 10월 20일 오라클 파크에서 벌어진 2030 월드시리즈 1차전은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예상한 것처럼 자이언츠의 일방적 승리로 끝났다.

1회부터 애스트로스를 두들긴 자이언츠의 타선은 3점을 선취해 내며 승리의 디딤돌을 놓았다. 경기 선발이 이번 포스트 시즌 3번의 등판에서 ERA 2.35를 기록한 앨런 소르카임을 감안한다면 그 장면에서 실질적으로 승패가 결정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패색이 짙었던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양키즈를 극적으로 누르고 기사회생한 애스트로스의 기세도 자이언츠의 원투펀치를 감당해내기엔 역부족이었다.

자이언츠의 선발 앨런 소르카는 7이닝을 2실점으로 막아내는 역투를 했고, 타선은 도합 8점을 뽑아내며 애스트로스의 추격 의지를 꺾었다. 애스트로스는 공격이 풀리지 않자 대타 카드를 연이어 쓰며 분위기 반전을 노렸지만, 피로한 주전들에게 휴식을 준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전문가들은 챔피언십 6, 7전의 선전이 결과적으로는 투수진 운영에 부하를 가져왔으며 그 후유증이 첫 경기의 승패에 그대로 반영된 경기 결과였다고 분석했다. 애스트로스는 챔피언십 6차전에서 연장까지 하며 9명의 투수를 쏟아부었었고 7차전의 승리를 위해서도 5명의 투수가 필요했다.

그에 반해 자이언츠는 챔피언십을 4승 1패로 빠르게 통과해 이틀간의 휴식을 더 가질 수 있었고 포스트 시즌 경기를 치르는 내내 불펜 소모를 최소화해 왔다. 그 결과 시리즈 초반 애스트로스에 비해 투수진의 질과 양 모두 월등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경기 후반 애스트로스는 새로운 투수 투입을 자제하며 다음 경기를 대비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그 처방이 과연 다음 경기에서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지 팬들의 우려를 사고 있다. 상대 선발 소르카가 마운드에서 내려온 이후에도 애스트로스의 타선은 자이언츠의 불펜을 제대로 공략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시리즈 시작 전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투수력에서 자이언츠의 월등한 우세를 말하면서도 타격은 근소하게나마 애스트로스가 나을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무딘 창은 견고한 방패를 뚫어내지 못했다.

자이언츠의 2번 타자 알버트는 1차전 경기에서 4안타(1홈런)를 쳐내며 존재감을 보여주었고 중심타자들이 모두 1~2개의 안타를 쳐내는 등 활발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곧이어 벌어질 2차전 역시 투타의 비교에서 자이언츠의 절대적 우세가 점쳐진다.』

『알버트. 사이클링 히트에서 3루타 하나가 부족했다.』

『알버트. 기록보다는 승리가 중요. 3루타를 의식한 무리한 베이스러닝을 자제했다고 밝혀….』

- 정말 무리하지 않더라고. 6회였나? 선두타자로 2루타 쳤을 때 억지로라도 3루를 노려볼 만했던 것 같은데 2루 딱 멈추는데 보는 내가 다 가슴이 답답했음.

└그때 애스트로스 감독 가슴에는 찬 바람이 불었을 듯

└그건 그랬을 것 같아. 어린 선수가 실수도 좀 해주고 해야 상대 팀 입장에선 반전의 기회가 생기기도 하고 그런 건데 완전히 정석적인 플레이 그 자체였음. 타격 실력도 마음에 들지만, 그 견실한 마인드가 최고임. 아직 어린데 그 정도라면 몇 년 더 지나고…

└지난 시즌 끝나고 왜 장기계약을 안 한 건지 모르겠어. 투포수들만 챙길 게 아니라 그런 어린 야수라면 무조건 묶었어야지. 풀타임 시즌에 이렇게까지 폭발하면 이제 연장계약은 어려울 것 같네.

└구단에서 계약 제시를 했는데 거절당했다는 말이 있더라고.

└아직은 걱정 없음. 적어도 다섯 시즌은 우리 선수고 그 이후라도 잡으면 돼. 우리 팀이 큰 돈을 잘 안 써서 그렇지. 적어도 돈이 없지는 않잖아. 다 때가 되면 잡을 거야.

└어지간히 잘 그러겠다.

└그렇긴 하지. 구단이 뒷북치는 게 한두 번 있었던 일도 아니고

└자이언츠는 좀 이상한 데서 신중한 경향이 있어.

└……

***

승리의 기록을 살펴보는 건 언제나 기분 좋은 일이다. 경기장에서 야구를 보는 것과 이렇게 보는 건 기분이 또 다르다. 더구나 댓글은 좀 더 생생한 팬들의 반응을 볼 수 있어 좋았다.

‘가공되지 않은 생생한 날것의 느낌이 좋아.’

언론의 논조는 전반적으로 이길만한 팀이 이겼다는 쪽으로 흐르고 있었다. 팬들도 전혀 질 것이라는 생각 자체가 없는 것처럼 승패 예상 따위의 말은 없고 시답지 않은 가십에 더 많은 관심을 쏟는다.

“재미있는 이야기라도 있어? 뭘 보면서 그렇게 히죽거리냐?”

갑자기 나타난 베그웰이 앞자리에 냉큼 앉았다.

“어? 안 쉬고 왜 왔어? 오늘 게임 이야기… 댓글이 재미있네.”

홈경기를 치르고 있지만, 구단에서 구장 근처의 호텔에 임시숙소를 준비했다. 이곳에서 지내야 하는 게 의무사항은 아니지만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대개의 선수들이 이곳에서 경기를 준비하고 있었다.

“너야말로 내일이 등판일인데 쉬어야 하는 것 아니야? 난 아까는 되게 피곤했는데 막상 쉬려고 하니까 눈이 말똥말똥해졌어. 그래서 혹시 누가 여기 있나 싶어서 와 봤지.”

오늘 경기를 끝낸 선수들은 다 방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지만 난 오늘 가벼운 불펜 피칭 이외에 별다른 일이 없었다. 전혀 피곤하지 않았다.

“이런 날 너무 일찍 잠자리에 들면 새벽에 깨더라고. 방에 있으려니까 답답하기도 하고 그래서 라운지로 나왔어. 오늘 경기 소식도 좀 살피면서 말이지.”

솔직히 많이 설렌다. 우승을 하고 싶다는 생각과 의지는 일찍부터 있었지만, 막상 그것이 현실이 되자 오히려 현실감이 없다. 오늘 승리가 확정되는 순간부터 몸과 마음 모두 하늘에 떠다니는 것 같다.

“좀 의외네. 너무 편안해하는 것 같아서… 니 성격에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 이것저것 생각도 많고 그럴 것 같은데…”

이상하게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냥 즐거운 기분뿐이다.

“그거 내가 평소에 소심했다는 뜻이야?”

“소심까지는 아니더라도 내성적인 것은 맞잖아. 활발한 척하지만, 생각 많고 문제가 있으면 속으로 끙끙 앓은 스타일. 자존심은 겁나게 세서 남에게 부탁 같은 것도 못하고.”

베그웰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줄은 몰랐다. 그런 면을 스스로 잘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말을 듣고 나니 좀 찔리는 부분이 있다.

‘음. 전에 그랬을지는 모르겠지만 오늘은 진짜 아무 생각이 없는데… 이걸 뭐라고 대답해야 하는 거지?’

“편안해 보여서 좋았는데 왜 갑자기 인상을 쓰고 그래. 다 늦게 쓸데없는 생각 말고 이거나 마셔.”

베그웰이 불쑥 생수병을 내밀었다. 그러지 않아도 목이 조금 마르기도 했었는데 좋은 타이밍이다. 지금 늦은 시간이라 라운지에서 음료를 구할 방법은 없었고 물 한 병 때문에 방으로 가기는 싫었다.

“아까 해산하고 나서 감독하고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것 같던데… 내일 경기에 대한 이야기였어?”

“응. 내일 등판을 가급적이면 좀 길게 가져가 달라고 요청… 아니, 부탁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그런 말을 하더라고.”

좀 뜻밖이었다. 그동안 내가 고집해 길게 던진 적은 있었지만, 벤치에서 그런 말을 해온 건 처음이었다.

“내 말 오해하지 말고 들어. 그동안 네가 팀을 위해 헌신할 마음이었고 실제로 그렇게 해온 건 알아.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정도가 조금 심했어. 자제가 필요해.”

무슨 말을 하는지 바로 이해가 잘 안 된다.

“내가 보기에 게임당 네 적정 투구 수는 90~100구 정도야. 팀에서도 그 정도를 늘 지켜왔었지. 아마도 대외적으로 밝히지 않는 근거가 있겠지. 그런데 이번 포스트 시즌에서는 너무 많이 던지고 있잖아.”

“뭐? 그 이상 초과했던 게임이 있었어?”

디비전 시리즈부터 지금까지 딱 세 게임 등판했는데 그런 적은 없는 것 같다.

“단순한 투구 수 계산으로는 그렇지만, 전력투구의 수로 생각하면 많이 초과했지. 정규시즌에서 30~40% 정도이던 것이 포스트 시즌 동안 정확하지는 않는데 60% 선은 되는 것 같아.”

그건 맞다. 일단 볼배합 패턴을 바꾸면서 패스트볼 구사가 늘어났고 게임의 중요도 때문인지 하위타선에서 쉬어 간다는 생각을 하기가 쉽지 않았다.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이 상태를 시즌 내내 유지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단기간에 몇 게임 정도는 괜찮으리라 생각했었다.

“걱정해주는 건 고마운데 몇 게임이야 어떻겠어. 그리고 그렇게 해서 불펜 운용에 도움이 된 건 사실이잖아. 그렇다면…”

불펜이 한 번 무리하기 시작하면 컨디션이 무너진 상태로 등판해야 하는 경우가 한 번은 생긴다. 그 상태에서 더 많은 안타를 맞고 더 많은 실점을 하는 건 필연이다. 소화 이닝은 줄어들고 그럼 당연히 더 많은 투수의 더 잦은 등판이 요구된다.

악순환의 연속이다. 이것에 빠지지 않으려면 불펜에 과부하가 걸리는 상태를 예방하는 것이 최선이다. 그래서 조금 길게 던졌다. 그게 에이스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내가 행동해야 가장 효율적일지를 판단해 내린 결론이었다.

“그게 나쁘다는 뜻은 아니었어. 다만 너의 호의가 왜곡되고 있는 것 같아서 하는 말이야.”

“왜곡? 그런 것 잘 모르겠는데…”

“너의 투구 수 관리는 예전부터 철저하게 지켜온 편이었어. 프런트에서 관심을 가지고 길게 가져가야 할 핵심선수라고 판단했던 것 같아. 그래서 자의 반 타의 반이었겠지만 감독도 어쩔 수 없었지.”

“그럼 된 거잖아.”

괜한 시비인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랬었는데 지금 달라졌잖아. 요청인지 부탁인지를 했다며… 감독은 포수 출신이야. 지금 네 상황을 모를까? 네가 애초에 시키지도 않은 부분을 오버해 하는 바람에 감독의 머릿속에서 네 사용 한계치가 늘어난 거야. 단기간 무리해서 크게 나쁘지는 않더라도 장기적으로 좋지는 않을 게 확실하잖아.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걸리는 부분을 모르는 척하고 있다고. 왜냐면 감독은 장기계약자가 아니니까 장기적으로 책임질 필요가 없어.”

틀린 말은 아니지만, 너무 냉정한 말이다.

“어떤 동기로 몸을 혹사시켰는지가 구단에게는 별로 중요하지 않아. 구단에게 선수는 상품이야. 그 상품에 흠집이 나서 상품 가치를 잃으면 왜 그랬는지에 상관없이 그 폐기 과정은 똑같다고. 넌 비즈니스 마인드가 필요해. 우리 프로스포츠에 종사하고 있는 거잖아. 네가 우승을 원하는 건 알아. 하지만, 너의 무리를 전제로 해서 우승이 가능하다면 안 해도 상관없다고 난 생각해. 몸 가는 건 순차적이 아니야. 한 번에 훅 간다.”

“음…”

베그웰이 날 생각해주는 마음이 바탕에 보이고 너무 합리적인 말이라서 반박을 못하겠다.

“잘 생각해봐.”

어떻게 해서라도 우승을 한다면 좋긴 할 것 같다. 팬들도 좋아하고, 우승 투수라는 커리어도 생긴다. 하지만 무리로 인한 급격한 기량 하락이라는 위험을 감수하는 것은 다른 문제인 것 같다,

장기계약을 했기 때문에 일정 기간까지 강제 은퇴와 같은 위험은 없지만, 기량 떨어진 운동선수가 제대로 된 선수 생활을 할 수는 없다. 돈도 중요하다. 그리고 그 못지않게 선수 생활을 가급적 길게 가지고 가는 것도 내 개인적으로는 아주 중요한 일이다.

“니 몸은 니 스스로 챙겨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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