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각성한 이레귤러의 커브가 드러남-139화 (139/200)

139화. 승리를 위하여

“올 시즌 최강팀은 어디지?”

아주 이상한 질문이었다. 메이저리그 역대 최고 승률 팀이 나온 시즌이었는데 답이 너무 뻔하다.

“우리 팀이죠.”

“자이언츠를 제외하면 다 난쟁이들이죠. 어떻게 비교가 되겠어요.”

“감독님. 물음이 너무 진부한 것 같습니다만…”

라드 감독의 질문에 선수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그렇지. 우리 같은 팀은 지난 100년 간 우리밖에 없었어. 메이저리그 역사를 새로 쓴 팀이자 앞으로도 써나갈 팀이야. 지금 전력으로 우리가 어떻게 질 수 있겠나. 그렇지 않아?”

월드시리즈 첫 시합을 앞두고 락커에서 좀 그럴듯한 출정연설을 기대했는데 이건 좀 아닌 것 같다.

“그건 그렇죠.”

“4연승 혹은 4승 1패 정도 예상합니다.”

마지못해 하는 것 같은 선수들의 무성의한 대답들이 이어졌다.

나 역시 아직 시작하지도 않은 경기를 가지고 너무 낙관적인 대답을 하기엔 좀 찜찜했지만, 사실 우리 팀이 진다면 대이변이다. 그 누구도 그런 예상은 하지 않는다. 진짜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아마 언론에선 언더독의 반란쯤으로 기사 내용이 채워질 것이 틀림없다.

“우리 팀의 승리는 아주 당연한 것이고 숨 쉬듯 자연스러운 거야. 그런데 스포츠에서는 당연히 이겨야 할 것 같은 강자가 지는 일이 가끔 생기지. 왜 그럴까?”

‘방심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하려는 건가?’

“원정 가다 비행기가 추락하지 않는 이상 그럴 일은 없을 것 같은데요.”

“푸하하. 그거 그럴듯하네.”

별 끔찍한 이야기가 다 나온다. 다른 스포츠에서 실제로 그런 일이 있기는 했었지만, 우리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기를 바란다. 아무리 승리가 좋아도 목숨 걸고 하고 싶지는 않다.

‘맨유의 사고는 유명하잖아.’

좀 오래된 일이긴 해도 이륙하다가 비행기가 전복되어서 스물 몇 명인가 죽었다.

‘전력을 회복하는 데 10년 이상 걸렸지.’

어쨌든 그런 천재지변에 준하는 사건이 아니라면 우리가 질 일은 없을 것 같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바로 그거야. 우린 어떻게든 이기게 되어 있어. 의심하지 마. 그러니까 잘하려고 할 필요가 없다고. 누군가가 특별히 잘하지 않아도 우리 팀은 강해. 딱 평소에 하던 대로만 하면 돼.”

“음. 잘하라는 말씀을 상당히 어렵게 하시네요.”

“크큭. 여기 머리 굳은 애들이 좀 있어서 그렇게 돌려서 말하면 잘 못 알아들어요.”

고참 선수들이 농담처럼 감독의 말을 받았다.

“허헛. 필. 자네가 알아들었으면 다 알아들었겠군. 난 자네가 제일 걱정이었어.”

감독이 농담처럼 고참 선수들의 대답을 흘리고 말을 이어나갔다.

“모험적인 플레이를 하고 싶고… 가끔은 그런 마음이 생기기도 할 거야. 그럴 땐 최대한 안정적으로 플레이를 가져가게. 몸이 먼저 반응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최대한 생각하고 플레이해줬으면 해. 우리에게 승리를 위한 모험은 필요하지 않아. 그런 것 하지 않아도 우린 팀으로 절대적으로 강해.”

“옙!”

“우린 단체경기를 하는 거야. 이겨도 팀이 이기는 거고 여기에 개인이 빛날 자리는 없어. 뭐든지 괜찮아. 하지만, 기분에 젖어 기본을 벗어난 플레이를 하는 선수가 나오면 교체를 주저하지 않을 거야. 이해했나?”

“옙!”

주된 이야기가 본헤드 플레이를 경계하고 개인적으로 튀어 팀 케미를 해치지 말라는 내용인데 감독이 이렇게 승리에 자신 있어 하는지 미처 몰랐었다.

“우린 양키즈가 아닙니다.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양키즈는 챔피언십에서 다 잡았던 6차전을 연장 끝에 내어주고 7차전에서 허무하게 무너졌다. 정말 어이없는 결과였다.

“자! 이제 나가서 애스트로스 놈들의 엉덩이를 걷어차야 할 시간이야.”

“우와와!”

“걱정 마십쇼. 애스트로스는 오늘 우리 상대가 못 됩니다. 개막전은 우리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자! 나가자.”

로저스가 분위기를 잡았다. 선수들이 우르르 경기장으로 몰려나갔다. 나도 그 사이에 천천히 끼어들었다.

“야! 로저스. 넌 오늘 출전하는 날도 아니잖아. 오늘 승리에 니가 할 일이 뭐가 있다고…”

경기장으로 향하는 통로에서 로저스에게 슬쩍 속삭였다. 선수가 경기에 자신감 있게 임하는 건 정말 좋은 일이다. 하지만 지금 그 말을 로저스가 하는 건 아무래도 좀 이상하다. 오늘 경기 선발은 소르카고, 로저스는 3차전 선발이 예정되어 있었다.

“이해력이 안 좋은 거야? 우린 단체경기를 하는 거잖아. 팀의 승리는 나의 승리지. 내가 더그아웃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팀에 기여하는 거야. 왜? 의견이 달라?”

갑자기 말문이 막힌다. 뭔가 좀 이상한 것 같은데 바로 잘못된 부분을 지적할 수가 없다.

“하하핫. 그렇지. 다 같이 이기는 게 맞을 것…”

대충 얼버무리는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우리들의 첫 월드시리즈가 시작되었다.

***

"요즘 힘드시지 않나요? 기자들 응대하시기 장난이 아닐 텐데…"

"계속 이겨서 생기는 일인데 얼마든지 가능하죠. 그런 관심이라면 얼마든지 좋지요. 즐거운 마음으로 하고 있습니다."

자이언츠는 빅마켓 구단이었지만 마지막 우승이 2014년이었다. 지난 15년간 참아왔던 취재 열기가 한 번에 터져 별별 사소한 것까지 기삿거리가 되고 있었다. 실질적 구단 운영의 책임자인 단장에게 늘 한 무더기의 기자들이 따라다녔다.

“이제 한 주일이면 됩니다. 잘해 오셨지만 조금만 더 부탁드립니다.”

“음. 한 주일입니까? 한 주일 내에 끝나면 어웨이 경기에서 우승이 결정될 수밖에 없는데 전 이왕이면 홈에서 결정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밝은 어조로 희망을 이야기하는 윌리스 단장의 웃음이 패배에 대한 걱정 따위 털끝만큼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도 좋겠지만 그렇게까지 시리즈가 길어지면 내 심장이 못 견딜 것 같아서요. 4연승이면 제일 좋을 것 같습니다. 적어도 그 사이에는 조용해야겠죠.”

“그렇게 될 겁니다. 월드시리즈 결과가 확정되기 전까지는… 하지만 그 후에는 좀…”

그동안의 언론 대응의 첫 번째 원칙은 선수들의 컨디션에 지장이 갈만한 기사들을 최대한 억제하고 배제시키는 것이었다. 기자들은 언제나 자극적인 소재와 내용을 원하고 그것이 중요한 게임 중인 선수들에게 심리적 압박으로 작용하는 것을 막아야 했다.

“그 후라도 특별히 문제될 만한 일이 있나요?”

“지금까지는 어떻게든 잘 억눌러 왔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긴 하죠. 아마 월드시리즈가 끝나고 나면 더 이상 누르고 있기는 어려울 겁니다. 대중의 관심이 폭발하면 어떤 수단도 언론에 잘 먹히지 않겠죠. 특히 So에 대한 건은 좀…”

해리스 사장에게는 상당히 의외의 일처럼 느껴졌다.

“So에게 무슨 특별한 일이 있었나요? 그의 성향상 언론과 얽힐만한 일이 없을 것 같은데…경기 전후에 있는 공식적인 인터뷰 이외에는 일체 접촉 자체가 없지 않습니까? 사생활 측면에서도 그렇게 조용한 선수가 어디 있어요?”

“그래서 문제가 되었죠.”

“그게 왜 문제라는 겁니까?”

운동선수가 열심히 훈련에만 몰두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면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문제가 없을 수 있는지 해리스 사장에게는 상상이 되지 않았다.

“So의 나이가 이제 거의 30살이 되었죠.”

“그렇죠. 거의 그쯤 되었죠.”

“정상적인 남자라면 그렇게 살 수가 없다는 겁니다.”

“뭐라구요? 그럼 정상적… 음. 진짜 그런가요? 성적 취향이야 존중되어야 하고…”

그게 뭐 어쨌다는 건지 해리스 사장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야구판이 좀 보수적이기 하지만, 실제로 그렇다고 하더라도 지금은 2030년이다. 중세시대도 아니고 사생활의 영역으로 존중받아야 할 부분이다.

“성적 취향을 공개적으로 밝혀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누가 그렇게 생각하더라도 그냥 무대응이 답이지요. 그래서…”

“너무 많이 가셨군요. 알아본 바에 의하면 So는 전통적 관념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성의식을 가진 것 같습니다. 다만 그동안 너무 수도사처럼 살았더군요.”

사장은 단장의 말을 더 이해하기 어려워졌다.

“그럼 거기서 도대체 뭐가 문제라는 겁니까?”

“무엇이 진실은 그건 황색언론의 관심사가 아닙니다. 팩트는 몇 년간 So가 이성과의 별다른 접촉 없이 살았다는 거죠. 그 정도 팩트가 있다면 살을 붙이는 건 아주 쉽지요. 대중이 가진 상상력의 영역을 자극하면 조회 수가 오르니까 그들에게는 충분한 동기가 되지요. 더군다나 So는 누가 뭐라고 떠들든 간에 대응 자체를 안 하니까 다루기가 더 쉽죠. 사장님 말씀이 일리는 있지만, 소문 자체는 무성해질 겁니다.”

단장의 말은 황당했지만 그럴듯하게는 들렸다.

“실제로 그런 기사가 나온 적이 있습니까?”

“예. 우리 언론대응팀이 기사를 내리게도 했는데도 지금도 몇 개 정도는 있습니다. 조회 수는 아주 미미하지요. 그래서 아직은 수면 아래에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우승해 팀과 선수에 대한 관심도가 올라가면 부상하리라고 예상하고 있습니다.”

“참나! 시즌 끝나고 So에게 데이트 앱이라도 깔아줘야 하는 것 아닌지 모르겠네요. 결혼이라도 하면 그런 말은 안 나오겠죠.”

해리스 사장은 어이가 없는 듯 아예 농담조로 말을 건네고 있었다.

“그것도 일리 있는 말씀인 것 같네요. 듣기로는 누가 있다는 얘기는 있던데 그것도 문제인 게 일방통행이라고 하더라구요. 어쨌거나 시즌 끝나고 TV 대담 프로그램이라도 내보내서 사람들에게 모습을 좀 드러내는 방안을 연구 중입니다. 사생활이 너무 베일에 싸여 있어서 그런 것이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참 어렵네요. 너무 드러내도 문제고 너무 몰라도 문제라니… 그런 식이라면 문제 안 될 선수가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좀 어렵죠. 고소를 해봐야 기사를 인용하는 식으로 처리한다든지 해서 빠져나갈 길은 얼마든지 있고 오히려 과한 대응은 찔리는 구석이 있어서 그렇다는 식의 논리를 주게 되어서 기사의 신빙성을 높이는 경우도 있고…”

“그럼 이제까지 어떻게 처리를 해 오신 겁니까?”

이제껏 단장의 업무영역을 침범하는 것 같아 구체적 내용을 물어보지는 않았었는데 별안간 해리슨 사장에게 궁금증이 생겼다.

“음. 북풍은 옷깃을 여미게 하지만 햇살은 옷을 벗게 만들죠. 이 정도로밖에 답을 못하겠네요.”

“하하핫. 잘 알겠습니다. 이야기되는 다른 선수들은 없나요?”

단장이 굳이 말하지 않는 걸 캐물을 이유는 없다. 책임소재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있어야 일이 잘못되었을 때 문제를 수습할 수 있다.

"기혼자들이 많아서 그런 성적인 가십은 별로 없습니다. 로저스가 리포터 누구하고 만난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젊은이가 멋진 이성에 끌리는 것이야 자연의 이치가 아니겠습니까?"

“그렇지요. 가을이 지나면 겨울이고 다시 봄이 오는 게 섭리지요. 이제 시작하려나 보군요. 이번 주일은 좀 길 거 같습니다.”

오라클 파크 VIP실 관람창 아래로 자이언츠 선수들이 각자의 수비 위치로 이동하는 것이 잡힐 듯 눈에 들어왔다.

“정말 여기까지 왔네요.”

단장의 목소리는 어느 사이 감회에 젖은 듯 축축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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