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각성한 이레귤러의 커브가 드러남-138화 (138/200)

138화. 이전투구를 기대하다

날카로운 타구가 바운드되며 내야를 뚫을 듯 그라운드를 가로질렀다.

“엇!”

“저걸 잡아?”

3루수의 호수비다. 그라운드 안쪽으로 치우쳐 있었는데 라인쪽으로 몸을 비틀어 다이빙해 3루 베이스를 넘어가려는 타구를 잡아냈다.

내야를 빠져나가려는 타구를 잡은 것만으로도 대단한 호수비였는데 벌떡 몸을 일으킨 그는 지체없이 2루수에게 송구했고 공을 받은 2루수는 깔끔한 점핑 스로우로 1루 송구 더블플레이를 완성했다.

"잘 잡았네. 그래도 더블 플레이까지 연결하기엔 타이밍 자체가 좀 늦을 것 같더니 여유 있네."

“수비 좋네요. 시즌 경기 때 저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

“여러 가지 요인이 있는데 트레이드로 내야 보강도 있었고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했던 3루수 펠릭스가 복귀한 게 크지.”

알버트가 좀 아는 듯 이야기를 한다.

“연구 좀 했나 보네.”

“전혀… 그럴 시간도 없고 정신도 없었어. 오늘 오다가 비행기에서 분석 기사를 읽었을 뿐이야.”

메츠와의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승리하고 샌프란시스코에 돌아오자마자 공항에서 우리 집으로 바로 직행해 양키즈와 애스트로스 간의 아메리칸 리그 챔피언십 경기를 보고 있다.

현재 시리즈 전적은 양키즈가 3승 2패로 앞서고 있다. 현재 6차전이 애스트로스의 홈인 미닛 메이드 파크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So. 넌 좀 아는 것 없어? 재작년까지 트윈스에서 뛰었잖아.”

로저스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내게 질문을 던졌다.

“딱 한 시즌 있었을 뿐이야. 풀타임으로 뛴 것도 아니었고… 두 팀 다 같은 지구도 아닌데 어떻게 잘 알겠어. 베그웰이 나보단 많이 알겠지.”

“그렇지. So보다는 베그웰이…”

“나도 잘 몰라. 그때는 팀의 세 번째 포수였는데 거의 게임도 못 뛰었지. 의욕도 지금 같지 않았고… ”

베그웰도 손사래를 쳤다.

"내가 아는 건 펠릭스가 유격수 출신이라는 거야. 리그 3루수 중 수비 범위가 가장 넓다는 말은 들은 적이 있어. 그걸로 추측해보면 복귀전 유격수가 커버하던 일정 구역을 그가 맡아 주면서 유격수의 수비 부담을 줄여 줬다고 생각해.“

넓은 공간을 커버하는 것보다 좁은 공간을 커버하는 게 수비 집중력을 올려주긴 할 것 같다.

“타격은 그저 그러네.”

TV 중계에 펠릭스의 얼굴이 나오며 짧게 자료화면 같은 것이 나왔다.

“그거 작년 기록이라서 그래. 재작년에는 잘 쳤어. 올 시즌 시작부터 하반기까지 출전을 못했는데 작년 시즌부터 부상이 있었다고 봐야 할 것 같아. 내 기억으로 재작년 타율이 2할대 중반 정도였는데 홈런이 많은 타자였어. 그 시즌에 30개 이상 쳤을 거야.”

우리 팀 1루수인 필 정도의 타격을 해냈는데 수비 위치가 3루라면 양키즈의 핵심선수라고 봐야 한다. 그건 그런데 신경 안 써 잘 모른다는 사람치고는 베그웰이 지나치게 많이 안다. 나와 그의 안다라는 기준이 상당히 다를 것 같다.

“다시 봐도 대단하네. 일반적인 수비 위치보다 조금 앞에 서는 것 같은데 저걸 역동작으로 잡아? 송구 스피드 하며…”

중계에서 그 수비 장면을 느린 화면으로 계속 보여주고 있다.

"그거 빠졌으면 애스트로스 승리의 쐐기점이 들어올 수도 있었는데 좀 아쉽긴 해."

경기는 6회 현재 5:3으로 애스트로스가 앞서 있긴 한데 아직 승리를 논하기에는 조금 이른 그런 느낌이었다. 당연히 애스트로스가 이겨서 시리즈 전적이 3:3이 되면 우리에게 유리하다. 그래서인지 내심 애스트로스를 응원하게 된다.

“난 그냥 양키즈가 올라왔으면 좋겠어.”

“왜?”

“뭐라고 할까. 애스트로스는 팀 컬러에 끈끈함이 있어. 상대하면 할수록 조금씩 더 강해지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타선의 파괴력이나 이런 건 양키즈를 따라갈 수 없지만 왠지 잘 무너지지 않잖아. 오늘도 별거 하는 것 없는 것 같은데 이기고 있고…”

지금까지 별 대화 없이 가만히 경기를 보고만 있었는데 그게 좀 지겨워졌는지 다들 마치 품평을 하듯 지금 나온 플레이에 대해 각자의 의견을 풀어놓고 있었다.

“근데 So. 좀 아쉽지 않아?”

로저스에게 난데없는 질문이 나왔다.

“뭐가?”

“이번 시리즈 MVP 말이야. 투수로 2승이나 했는데 못 받다니…”

그것에 대해서는 정말 아무 생각 없었다. 받을 사람이 받았다고 생각한다.

“테일러가 받는 게 맞다고 생각하는데… 내가 2승을 하긴 했지만 별 내용 없었잖아. 무실점 경기를 하면서 어떤 임팩트를 준 것도 아니고 그냥 많이 이기고 있던 경기를 마무리한 것밖에 없잖아. 그에 비하면 테일러가 임팩트가 있었지. 그가 결정적인 두 경기를 잡은 거나 마찬가지잖아.”

그것에 대해 논란이 좀 있는 건 알고 있었다.

“그 임팩트에 대해서는 나도 동의하는데 그 외 경기에서 너무 못 쳤잖아. 5경기에 주전으로 나가서 안타 딱 세 개 치고 MVP라니 좀 그렇잖아. 평균적으로 잘한 너도 있고 타자로는 베그웰이나 카스트로가 가장 기복 없이 좋았다고 난 생각해.”

듣고 보니 그것도 상당한 일리가 있는 의견이다. 난 아니지만, 5경기에서 고르게 활약해 승리의 밑바탕을 깔아준 타자들은 좀 섭섭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나를 언급해준 건 고마운데 난 전혀 그렇게 생각 안 해. 이건 시즌 MVP와는 전혀 다른 개념이야. 이번에 경기해보면서 느낀 건데 이런 단기 시리즈에는 어떤 흐름이 있는 것 같아. 그 흐름을 어떻게 타느냐가 전체 시리즈의 승패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아. 이번에 테일러는 그 물꼬를 두 번이나 터 주었지. 그건 내가 할 수 없었던 일이었어.”

저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말이다. 어제 게임에서의 만루홈런의 임팩트는 대단했다. 어제 경기는 그거 한 방이 나온 시점에서 끝났다고 생각한다.

‘역시 베그웰이 보기보다 생각이 깊어.’

이게 전체를 살펴야 하는 포수라는 포지션 때문에 만들어진 것인지 아니면 원래 그런 품성의 사람이 포수를 하게 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베그웰은 사려 깊은 선수다.

“야! 로저스. 그렇게 삐지면 안 되지.”

그동안 말 한마디 없이 가만히 있던 존슨에게 엉뚱하게 느껴지는 말이 나왔다.

“무슨 소리야? 내가 왜 삐져?”

“테일러가 니 경기에서 무안타라고 너무 그러는 거 아니다. 테일러도 좋게 말하지 않는데 나도 엄청 욕했을 것 같네.”

웃기엔 좀 심각한 이야기인 것 같기도 하고 갈피를 못 잡겠다.

“뭐? 너 지금 그게 나 옹졸하다는 뜻으로 말한 거야?”

“응. 너 솔직히 말해봐. 그 경기 후에 나 욕했어. 안 했어?”

“음…”

뜻밖에도 로저스가 쉽게 대답을 못한다. 얼굴이 점점 붉어지는 것 같다.

‘푸풋. 이거 웃기네. 로저스에게 이런 면이 있었어? 했네. 했어.’

“조금 열을 내긴 했지. 너도 그렇지. 거기서 그렇게 병신같이 홈런을 처맞으면 어떻게 해. 넌 반성해야 돼. 우리가 스윕할 수 있었던 시리즈가 어렵게 갈 뻔했잖아.”

그날 이후 누구도 그것에 대해 존슨과 이야기해본 사람은 없다. 실점하고 싶어서 실점하는 투수는 없다. 본인이 가장 열 받는다. 그렇다고 그걸 어디 하소연도 못한다. 지금 말하는 걸로 봐서는 오랜 친구인 두 사람도 그에 대해 터놓고 말하지는 않은 것 같다.

‘좋은 일이야. 속에 넣어두고 앓으면 트라우마만 생기지. 좀 나아졌나 보네. 이렇게 농담 식으로 이야기할 정도면…’

“넌 친구의 불행에 먼저 가슴 아파해야 하는 거 아니야? 내가 홈런 맞고 싶어 맞았겠냐고. 넌 네 포스트 시즌 첫 승이 내 상처받은 마음보다 중요한 거야?”

“상처는 개뿔. 그렇게 약하게 마음먹으니까 그 꼴이 나지. 너 불운해서 홈런을 맞은 게 아니고 실력이 안되서 맞은 거야. 어디서 두루뭉술 넘어가려고 하는 거야. 넌 반성부터 해야 해. 너 그래 가지고 월드시리즈에서 감독이 등판이나 시키겠니? 잘해라. 너 그러다가 진짜로 패전 처리하러 나가야 할지도 모른다.”

팩폭이 오지다. 갑자기 로저스의 MBTI가 무엇일지 아주 궁금해졌다.

“패전 처리라도 기회를 받았으면 좋겠어. 설마 월드시리즈 라인업에서 제외되지는 않겠지?”

“그러지는 않을 것 같은데… 다음 등판에서는 무조건 잘해야 돼. 마음 독하게 먹어. 또 맞으면 작년처럼 날아가는 수가 있어.”

작년 시즌 존슨은 그렇게 한 게임씩 말아먹다가 마이너에 떨어지기도 했었다.

“아무튼 그날 미안해. 허무하게 게임을 날려버려서…”

“그렇게 다 배워가는 거지. 크큭. 신인 때는 다 그런 거야.”

“허휴! 내가 이 더러운 꼴 보기 싫어서라도 선발 복귀하고 만다.”

살벌한 말들이 오고 가더니 어떻게 훈훈하게 마무리는 된 것 같다. 다행이다. 존슨도 가슴에 묻고 있었던 말을 해버려서인지 얼굴이 아주 좋아 보였다.

우리의 사정과는 상관없이 양키즈와 애스트로스는 사생결단을 내려는 듯 경기 초반 사정없이 전력을 쏟아붓고 있었다.

5:3의 스코어가 5:4로 변하고 다시 6:4가 되었다가 6:5로 애스트로스가 따라붙었다. 그래도 두 팀 다 투수들을 갈아 넣으면서 버티고 있다.

“나이스 플레이.”

“역시 애스트로스가 질기네.”

“지금 투수가 몇 명씩 나온 거야?”

“양키즈가 넷. 애스트로스가 여섯인 것 같은데…”

들을수록 반가운 말이다. 꼭 애스트로스가 역전하길 바란다. 이런 식이라면 내일은 더 치열할 테니까.

심각한 9회말 양키즈가 아껴두었던 마무리투수인 헉슬리 카드를 꺼내 들었다. 올 시즌 38세이브를 하면서 블론이 단 한 번밖에 없었던 철벽 클로저다.

“양키즈의 타격이야 언제나 최상급이지만 이번 시즌은 불펜도 강해.”

“알버트 자료 좀 찾아봤어?”

“아직 정해진 것도 아닌데 왜 벌써 그걸 찾아봐야 해?”

‘응?’

대답이 조금 이상하다.

‘지금 이 정도 상황이면 거의 넘어간 것 같은데… 혹시 알버트가 애스트로스 팬이었나?’

애스트로스는 10여 년 전 쓰레기통이 연관된 그 사건 이후 리그에서 가장 조롱의 대상이 되는 팀이다.

“원 아웃이야.”

확실히 이안 헉슬리의 공이 좋다. 이제 모레면 저 공을 우리 팀 타자들이 쳐내야 한다.

‘게임이 길게 가면 쉽지 않겠네.’

“이제 끝났어. 쓰레기통을 다시 두들기기 전에는 이 상황을 되돌릴 수가 없어.”

애스트로스에 대한 거부감 때문인지 숨은 양키즈 팬이 이 안에 있는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현재 우리 집 시청자의 분위기는 양키즈 응원으로 치우쳐 있다.

“야! 니들 뭔가 잘 못 생각하고 있는 것 아냐?”

“뭘 잘못 생각해?”

“이 게임 애스트로스가 이겨야 우리에게 유리한 거잖아. 어느 팀이든 힘이 더 빠지고 올라와야지.”

“아무래도 상관없어. 양키즈가 올라와도 우리가 이길 수 있어. 난 애스트로스가 이기는 꼴은 보기 싫어.”

아무튼 로저스 이 녀석은 가리는 게 너무 많다. 그리고 일이 터졌다. 애스트로스의 대타가 동점 홈런을 터트렸다. 양키즈가 9회말 1아웃까지 리드하던 경기는 결국 마지막 순간 동점이 되었다.

“헐! 이거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이런 상황이 나왔으면 하고 기대하는 마음이 있었지만,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지고 나니 기쁨보다는 당혹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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