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각성한 이레귤러의 커브가 드러남-131화 (131/200)

131화. 챔피언쉽 시리즈 (4)

‘뭐가 이렇게 싱겁게 끝나?

벤치클리어링은 빠르게 끝났다. 코칭 스탭들이 빠르게 카스트로를 둘러싸 현장에서 빼내 왔고 팀 내 고참들이 나서 흥분하려는 젊은 선수들을 진정시켰다.

손뼉은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 일이 이렇게 흘러가자 달려 나왔던 메츠 선수들이 머쓱해졌다.

순간적으로 열이 올랐던 한순간이 지나자 내 머리도 자연스럽게 조금 전의 상황을 거슬러 올라가며 생각해보게 된다.

‘에이든의 의도적인 도발이었던 건가?’

일단 사건의 시발점이 카스트로였던 건 맞다. 이 게임의 승부를 결정할 수도 있는 중요한 시점에 그런 타구가 잡혀 아쉬움이 폭발했다.

그런 거친 표현을 큰 소리로 내뱉은 건 분명히 잘한 행동은 아니었지만, 에이든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그 원인이 자기 팀 수비의 파인플레이였다. 사람은 좋은 일이 생기면 대개 너그러워진다.

‘그 욕이 에이든에게 향한 것도 아니었지. 그런데 거기서 그렇게 갑툭튀를 해?’

에이든이라는 선수를 개인적으로 잘 아는 건 아니지만, 이제껏 에이든이 특별하게 인성에 문제가 있다든가 하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노린 거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네.’

보통 이런 건 지고 있는 팀에서 분위기 전환을 위해 시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 팀이 이기고 있지 않은데도 그랬다는 건 좀 생각해볼 문제다.

‘이기고 있어도 그걸 이용할 만큼 마음의 여유가 없었나? 아니면 메츠 내부 분위기 단속용?’

목적한 이유가 무엇인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생각할 수 있는 이유는 많았다. 사건이 확대되어 에이든과 카스트로가 동시에 퇴장을 당했다고 생각하면 아찔하다.

오늘 거의 7이닝을 던지고 5일이 지난 이후에나 나올 투수와 매일 경기에 나와야 하는 중심타자가 동시에 징계를 당하면 우리 쪽이 무조건 손해다. 우리 코치 스텝이 왜 그렇게 서둘러 말려야만 했는지 알 것 같다.

“So. 너 왜 이렇게 변했냐?”

소르카에게서 생각지도 못한 질문이 나왔다. 무슨 뜻으로 이렇게 묻는 것인지 짐작을 못하겠다.

“내가 달라져? 뭘 보고 그러는 거야?”

살짝 열이 오르려는 것 같았지만, 원래 그런 건 본인은 잘 느끼지 못한다. 소르카가 이렇게까지 말한다면 그 나름대로의 이유는 있을 것 같았다.

“원래 굉장히 이성적인 사람이었잖아. 왜 갈수록 감정적이 되어가는 거야? 이런 시시한 도발에 왜 그렇게 열을 내고 그래?”

“응?”

내가 그런 식으로 보일 줄은 몰랐다. 그리고 원래부터 난 그렇게 이성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주어진 상황이 감정표현을 노골적으로 하기엔 좀 어려웠지. 자제했을 뿐이야.’

고등학교와 대학을 거치면서 내 생활의 대부분은 야구가 차지했었다. 솔직한 감정을 드러내기에는 이것저것 걸리는 것이 너무 많았다.

‘그게 다 잘하지도 못하는 야구를 계속하느라고 그랬었던 거지.’

야구판에 살면서 야구를 못하는데 불만을 이야기하는 캐릭터는 상상하기 어렵다.

‘그 이후엔 야구를 하고 싶은 마음을 받쳐주지 못하는 현실에 적응하기 위해 그랬던 거고, 그리고…’

지금과는 상황이 많이 달랐다.

‘지금이야말로 가장 내 본모습에 가까운 것이 아닐까?’

난 지금이 좋다. 다시는 내 감정을 억지로 감추며 살고 싶지 않다. 물론 지금도 그래야 하는 경우가 생기긴 하지만 선택의 여지 없이 꼭 해야만 하는 것과 내 의지로 선택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틀리다.

상황이 대충 종료되었는지 뛰쳐나갔던 선수들과 스탭들이 우르르 더그아웃으로 다시 들어왔다.

경기가 중단되었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지만, 분명히 경기의 흐름은 끊어졌었다. 이것이 이제부터 어떻게 작용할지 짐작을 못하겠다.

스코어는 1대 0. 아직은 1사 1, 2루의 득점 찬스가 이어지고 있다.

***

“내셔널리그 챔피언십 시리즈, 오라클 파크에서 벌어지고 있는 뉴욕 메츠와의 2번째 경기입니다. 잠시 경기가 중단되고 있는데 이제 곧 속행될 것 같습니다.”

“벤치클리어링이라고 해야 할 상황까지 번지지는 않았네요. 벤치에서 현실적 판단을 내린 것 같습니다. 저 역시 그 생각에 동의합니다. 우리가 굳이 상대의 의도대로 움직일 필요는 없겠죠.”

캐스터 그래엄에게 해설자 데이빗의 표현은 상당한 논란의 소지가 있는 것처럼 들렸다.

“메츠의 계획적인 행동이었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데이빗에게 슬쩍 눈짓을 하며 추가 설명을 요구했다.

“그렇지는 않습니다. 어쩌면 메츠의 투수 에이든의 머릿속에 그런 즉흥적 의도가 떠올랐을 수도 있었겠지만, 의도한다고 모두 죄가 되는 건 아니지요. 누군들 알겠습니까? 아마 에이든 본인도 잘 모를 겁니다.”

얼핏 잘 이해가 되지 않는 이상한 해명이었지만, 그래엄은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지금 그것이 중요한 일은 아니었다. 고의성에 대한 부분은 모르겠다는 명확한 표현이 있는 것만으로 만족했다.

“어제 시리즈 1차전을 15대 3이라는 큰 차이로 이길 때까지만 하더라도 자이언츠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일 줄 알았는데 오늘 상황으로 봐서는 메츠가 만만찮은 반격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 같군요.”

“승리가 쉬울 리가 없죠. 팬 여러분들도 느끼셨겠지만, 어제 경기가 일반적이 아니었던 거죠. 전 메츠가 낼 수 있는 전력의 한 60%를 내서 경기를 일부러 던진 느낌이었습니다. 태업까지는 아니었지만, 한 경기의 승패보다 시리즈 전체를 운용하려는 의지가 앞선 경기였다고 봅니다.”

오늘 경기 내용으로 판단한다면 메츠의 선택은 성공했다. 디비전 시리즈 최종전까지 치른 후유증을 한 경기를 던짐으로써 해소하겠다는 계획은 성공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시리즈는 현재 1:0으로 자이언츠가 이기고 있었지만, 오늘 메츠가 승리한다면 그 승차는 없어지는 것과 마찬가지다. 오히려 뉴욕에서 치러지는 3, 4차전에선 1선발을 투입할 수 있는 메츠가 유리해질 가능성도 있었다.

“자이언츠가 우세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는 오늘 게임을 뒤집어야 합니다. 아직 기회는 있습니다. 지금 겨우 한 점 차이예요.”

어떻게 생각해보면 오늘 이런 상황은 충분히 예견됐던 결과였다. 어제 메츠는 별다른 전력의 소모를 하지 않고 주력선수들에게 휴식을 주면서 잘 졌다. 메츠의 입장에서는 패배 가운데에서 실리를 챙긴 경기였다. 월드시리즈 2연패가 그냥 이루어지진 않는다.

“그라운드 정리가 시간이 조금 걸리고 있네요. 이미 선수들은 각자의 더그아웃으로 모두 복귀해 경기 재개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조금 여유가 있을 것 같은데 일단 오늘 경기는 잠시 접어두고 뉴욕에서 벌어질 3, 4차전 예상을 조금 해 볼까요?”

“경기의 승패를 정확하게 예측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그 경기에 맞설 선발 투수를 비교해보면 대략적인 전체 경기 상황을 시뮬레이션해 볼 수는 있죠. 어쨌든 야구는 투수놀음이니 말입니다. 자이언츠에서 3차전 선발로는 로저스가 예정되어 있고 4차전 선발은 아직 발표되지 않았지만 드로이넨이 나올 것으로 생각합니다.”

“존슨 선수의 선발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요? 실제로 디비전 시리즈 4차전 선발로는 존슨 선수가 예고되기도 했지 않습니까? 디비전 시리즈 3차전에서 존슨을 계투로 썼다고 계속 그러리란 보장은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왜 그런 예상을 하는지는 그래엄도 짐작이 되지만, 그는 존슨이 선발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여러 가지 의견이 있을 수 있죠. 저 역시 개인적으로는 존슨 선수의 선발을 지지합니다. 하지만, 자이언츠라는 팀 자체가 전통적으로 신인에게 중요한 역할을 잘 맡기지는 않았죠. 그리고 시즌 전체 지표로 본다면 드로이넨보다 존슨이 특별히 앞선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신입보다는 경력직을 쓸 것이라고 예상하는 거군요.”

“아무래도 이런 단기 토너먼트 형식의 게임에서는 안정적인 걸 우선하게 되죠. 잘해서 이기는 경우보다는 예기치 않은 실수 하나가 승패를 가르는 경우가 많죠, 그리고 존슨 선수도 나름대로의 역할은 있을 겁니다.”

엄밀하게 3, 4차전의 선발을 비교하면 1선발이 3차전에 나올 것으로 예상되는 메츠가 앞서지만, 양에 있어서는 자이언츠도 뒤질 것이 없었다.

“3, 4차전 역시 5:5 승부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늘 경기가 중요하지요. 만일 오늘 뒤집을 수 있다면 시리즈 전체에서 확고한 우위를 가져갈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앞일을 장담하기는 어렵습니다.”

“이제 경기 속행됩니다. 자이언츠의 6번 타자 브렛 필이 타석에 들어섰습니다. 투수는 교체될 수도 있을 않을까 생각했습니다만, 에이든 그대로 마운드에 올랐습니다.”

“아직 80구도 안 던졌는데 벌써 내릴 리가 없죠. 바꾼다고 올라온 불펜투수가 에이든 선수만큼 던질 거라는 보장도 없는 것이고.”

경기 중단에서 재개까지 10여 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긴장감이 넘쳐흐르던 분위기가 아직은 정돈되지 않고 어수선하다.

“보통은 이런 순간 집중력을 유지하기가 어렵습니다. 경험이 많은 필 선수이니만큼 잘 대처하리라고 생각하지만…”

“초구는 볼입니다. 홈플레이트에 거의 맞을 정도로 낮게 공이 들어왔습니다. 하마터면 포일이 나올 수도 있었던 공이었습니다. 긴장한 것일까요?”

“아마도 반대가 아닐까요. 이렇게 인위적으로 흐름이 끊어진 게임에서는 다시 집중하는 데 시간이 조금 걸리지요. 긴장감 없이 마음이 느슨해지면 집중력을 끌어올릴 수가 없습니다. 필 선수 지금이 중요합니다. 하나 노려야 해요.”

바뀐 투수의 초구를 노리라는 말처럼 들린다. 물론 투수가 바뀐 것은 아니지만 지금은 그와 유사한 상황이라고 캐스터 그래엄은 생각했다.

“아! 2구 역시 볼입니다. 이번엔 바깥쪽으로 많이 빗나갑니다. 에이든 투수 갑자기 왜 이러는 걸까요?”

“연속적으로 볼이 나오는 이유를 설명하긴 어렵지만, 의도적인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필 선수에게 찬스가 올 확률이 점점 올라갑니다. 투 볼 노 스트라이크. 여기서는 무조건 스트라이크를 던질 수밖에 없지요. 필 선수! 패스트볼을 노려야 합니다. 제구가 안 되는 상황에서 브레이킹볼을 존에 넣는 선택을 하기는 어렵습니다.”

“포수가 타임 요청을 하고 마운드로 올라가는군요.”

어느 사이 그라운드에 다시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

“볼넷. 스트레이트 볼넷이 나왔습니다. 데이빗. 이게 어찌 된 일이죠?”

“뒤에 던진 볼 두 개는 최대한 코너워크를 의식한 것 같은데 조금씩 빠졌군요. 이런 상황에서 의도적으로 볼넷을 주지는 않았을 것 같긴 합니다만, 뒤 타자를 생각하면 전혀 그럴 의도가 없었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아마도 최대한 좋은 공을 주지 않기 위해 하다 보니 이런 상황이 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볼넷이 아주 엉뚱한 시점에 나왔다. 자이언츠의 7번 타자 3루수 테일러의 시즌 타율은 1할 9푼 4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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