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화. 고인물은 억울하다 (2)
윌리스 단장의 길어지는 생각을 못 견디겠다는 듯 마일리가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경영진에서 그런 과제를 전력분석실에 주는 순간부터 서로에게 아주 많이 곤란한 일이 생기게 되죠. 해결하지 못하는 일을 상사에게 못 한다 말하기 어려운 부서의 처지도 그렇고, 해결될지 안 될지 짐작할 수 없는 일을 단장님께서는 무작정 기다리셔야 하잖아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겁니까?”
“조금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현실을 인정하면 되죠. 부서에서 자체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는 안 시키면 됩니다. 지금 조직이 나름대로 기능하고 있는데 경영진이 그걸 인정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어지죠.”
‘문제 제기를 하지 않으면 문제가 없다’라는 건 윌리스로서는 생각해본 적 없는 논리였다. 문제가 발생하면 어떻게든 해결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게 그의 상식이었다. 해결이 되든 안 되든 그런 과정 속에 조직의 발전이 있다고 믿어왔었다.
“지금 So의 투구 패턴이 노출된 일은 어떻게 하고? 당장은 그냥 내버려 둬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건가요?”
답답한 듯 질문이 바로 튀어나왔다.
“제가 알고 있기로는 현재 자이언츠의 전력분석실은 그런 일을 해결할 만한 준비가 되어있는 조직이 아닙니다.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영상자료들을 반복해서 돌려보는 것 정도밖에 할 수 없을 텐데 그렇게 비생산적으로 시간을 쓰는 건 많이 곤란한 것 아닌가요? 그런 식으로 문제를 발견할 수 있는 가능성은 희박해요.”
윌리스 단장에게는 얼핏 이해가 잘 안 되는 말이었다. 그의 사고영역에 그것 외 방법은 없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어떻게 찾을 수 있죠?”
“영상 데이터를 가공해야죠. 일단 투구 동작 시 So의 행동 패턴을 세분해서 나눕니다. 그리고 상대 타자가 던져진 공에 대해 반응했을 때와 반응하지 않았을 때의 행동 패턴을 구분해서 하나씩 지워갑니다.”
“음. 그래서요.”
“예를 들어 모든 경우의 수가 10이었다면 타자가 반응했을 때의 패턴은 훨씬 적겠지요. 그런 식으로 볼과 스트라이크일 경우를 나누고 구종별로 나누고, 이러다 보면 최종적으로 남는 어떤 패턴이 생기겠죠. 그게 하나일지 다수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범위를 축소시켜 놓고 찾는다면 발견할 수 있는 시간과 가능성이 대폭 높아지게 되죠.”
윌리스 단장에게 마일리의 설명이 구체적으로 잘 이해되지는 않았지만 어떤 식으로 작업해야 하는지의 얼개는 대충 귀에 들어왔다.
빅데이터의 활용은 어슬레틱스의 단장 빌리 빈이 리그 전체 25위의 페이롤이라는 최소비용으로 최대효과를 거둔 2000년대 초반 머니볼 이론이라 불리며 각광받았다. 경기 데이터를 기존의 관점과 다르게 가공해 그 기준으로 선수를 영입하고 승률을 높였다.
“빌리 빈 이후 데이터 활용의 모범 사례로는 2010년대의 애스트로스를 꼽을 수 있죠. 그들은 2017년에 우승을 했지만, 제프 러나우(Jeff Luhnow)가 단장이 된 건 2011년부터였었죠. 그들의 우승을 두고 갖가지 논란이 있었지만, 분석기법에 전혀 관심이 없었던 구단의 시스템을 개혁한 단장의 노력이 그 바탕에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당시 애스트로스 선수들의 연봉 총액은 메이저리그 30개 구단 중 18위였다. 월드시리즈에서 맞붙은 다저스가 연봉 총액 1위였는데 그것의 약 50%인 1억 1,000만 달러로 이룬 성과였었다.
윌리스 단장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우리가 전력분석실을 독립시키고 규모를 확대시켜 나간 것은 그때 애스트로스의 약진에 영향을 받아서였어요. 우리 말고도 대부분의 구단이 다 그랬을 겁니다.”
“그때부터 10년이 넘게 지났습니다. 지금 상황은 그때와 또 다릅니다. 기술은 진보해 더 많은 부분에서 카메라 기술과 결합되었습니다. 더욱 정교한 데이터의 수집과 분류가 가능해졌습니다. 투구의 궤적 및 투수의 그립, 타구 방향, 야수의 움직임 등의 기존 정형 데이터뿐만 아니라 다양한 비정형 데이터를 가공해 활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만, 그것을 이용해 결정을 내려야 하는 대부분의 사람은 10년 전과 별로 변하지 않았죠.”
“하아! 그것참…”
“너무 신랄한 말이네요. 사실이라는 게 더 슬프군요. 좋습니다. 지금까지 해온 우리의 방법에 문제가 있었다면, 지금이라도 우리 조직을 옳은 방향으로 바꿔나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한숨을 내쉰 후 입을 다문 윌리스 단장에 이어서 쓴웃음을 지으며 해리스 사장이 나섰다.
“외부자인 제가 구체적으로 말할만한 사안이 아닌 것 같은데…”
물러서려는 마일리의 말에 짜증을 느끼면서도 해리스 사장은 평탄한 어조와 기분과는 다른 표정으로 다음 말을 이어나갔다.
“하핫. 이제까지 사람을 그렇게 들이받았으면 답 정도를 알려주셔야 맞지 않겠습니까? 구단 밖에서 보는 시선이 때론 더 정확할 수도 있겠지요. 조언 한 말씀 해주시죠.”
마일리가 고 감독을 슬쩍 바라본 후 할 수 없다는 듯 다시 입을 열었다.
“지금 자이언츠의 상황은 애스트로스와는 많이 다르죠. 바닥에서 시작해야 하는 거라면 대대적인 개편이 필요하겠지만, 지금 그럴 필요가 있을까요? 제가 말한 방식과는 다르지만, 현재 강팀을 만드는 데 성공하지 않았습니까? 제가 모르는 현재 시스템의 장점도 분명히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구단에는 코치부터 스카우터, 일반 직원 계약을 맺은 수백 명의 선수까지 수많은 인력이 있다. 모든 조직은 변화를 수용하는 데 보수적이다. 더군다나 현재 팀이 잘 나가고 있는 상황에서 개혁은 더 어렵다.
“만약 변화가 꼭 필요하다 느끼셨다면 마이너리그에서부터 천천히 시도해야겠죠. 예전 애스트로스는 리그별로 코치를 한 명씩 더 뽑았습니다. 훈련용 펑고를 칠 줄 알고 타격용 공도 던질 수 있어야 한다는 채용조건은 기존과 같았지만, SQL(관계형 데이터베이스 관리 시스템의 데이터를 관리하기 위해 설계된 특수 목적의 프로그래밍 언어) 프로그램을 다룰 수 있어야 한다는 추가 조건이 붙었죠.”
“그런 일이 있었나요? 야구판에 그런 사람을 쉽게 구하기가 어려웠을 것 같은데…”
해리스 사장은 처음 듣는 실무 차원의 이야기였다.
“쉽지는 않았겠지만, 애스트로스는 결국 해냈습니다. 대학 리그와 마이너리그 경험을 가진 선수 출신 중에 기술적 배경과 분석기법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하더군요.”
“그래요?”
“그래서 그들을 통해 기존 인식의 변화를 이끌어냈죠. 의외로 이런 변화에 가장 보수적이었던 건 선수들이었으니까. 그들부터 시작했죠. 그 코치들이 경기 전이나 후에 선수들과 컴퓨터 앞에 함께 앉아 그들의 타격이나 스윙에 대해 다양한 자료를 가지고 세부적으로 분석하면서 거부감을 조금씩 없애 간 거죠.”
“그런 말을 왜 나는 들어본 일이 없을까요?”
해리스 사장에게는 조금 미심쩍은 부분이 있는 이야기였다.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되는 일에 대해 경영진의 결정은 의외로 쉽게 내려지지요. 사실 아주 큰 돈 드는 일은 아니니까요.”
“그렇기는 하죠.”
“야구 외에 미식축구나 농구, 축구 같은 다른 스포츠에서도 비슷한 방법이 드물지 않게 시도되었지만 대부분 2~3년 정도 지나면 거의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뚜렷한 성과가 보이지 않는 일에 오랜 시간을 기다려 줄 경영진은 극히 드물었나 봅니다. 그래서 어렵죠. 잠깐의 붐이 그렇게 지나고 나서는 시도 자체가 없어졌습니다.”
“장기간의 환경조성이라… 그것참!”
성적을 못 내면서 그렇게 장기간 자리를 유지할 수 있는 단장이나 사장은 극히 드물다. 해리스 사장에게 그런 일은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메이저리그 야구는 제로섬 게임입니다. 누군가 유리해지면 다른 누군가는 불리해지죠. 이 업계 종사자는 모두 아는 사실입니다. 분석으로 얻어진 통찰력이 경기의 승패에 큰 영향력을 미친다는 건 이제 모두 알지만, 그것을 조직에 뿌리내리게 한다는 건 다른 차원의 이야기입니다.”
전문직 여성으로 경험한 보수적인 야구판 이야기는 상당한 설득력으로 해리스 사장에게 다가왔다.
“새로운 기술을 가장 빨리 응용해 사용할 수 있다면 다른 팀이 가지지 못하는 경쟁력을 가질 수 있겠지만, 그 과정에서 많은 시행착오도 생기겠죠. 기술의 공격적 활용이란 그런 속성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것을 피하기 위해서 이점이 분명해질 때까지 기다리면 다른 팀에 대한 비교우위가 생기기는 어렵겠죠.”
“패스트 팔로어가 되는 게 효과적일 수도 있다는 뜻인가요?”
“그런 부분도 있습니다만, 진짜 큰 이익은 퍼스트 무버가 되어야 나오겠지요. 장단점이 다 있는 거라면 선택해야 할 길은 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마일리의 말에는 모순이 있었다.
“말씀대로라면 우리 팀은 이미 늦은 것 아닌가요? 컵스가 상당히 오래전부터 구단운영에 새로운 기법을 도입했다는 말은 들었는데 오늘 사건을 직접 보고 나니까 그쪽이 빅데이터 활용과 같은 새로운 기술을 동원해 일으킨 일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아마도 생각하신 것이 맞을 겁니다. 하지만 게임은 우리 팀이 이겼죠. 분석 기술의 우위가 승리의 확률을 높일 뿐이지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승리의 조건은 훨씬 다양하죠. 우리 팀은 다른 부분에서 우위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사장님과 단장님의 개인적 통찰력과 같은 수치화하기 어려운 영역이겠죠. 현재의 시스템은 그것을 받치는 최적의 조직일 테구요.”
“풋. 욕을 실컷 하시더니 왜 갑자기 마음이 변하신 건가요? 하다 보니 좀 미안해 졌나요?”
한동안 자리를 양보하고 나오는 말을 듣기만 하던 윌리스 단장이 농담조의 말로 다시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런 건 아니고 냉정한 현실 판단을 하는 겁니다. 노골적으로 말하면 새로운 기술이 도입되기 전이나 후나 메이저리그 전체 팀의 승률과 같은 통계에 큰 변화는 없었습니다. 모든 팀이 같은 지식을 공유해 비교우위가 없어진 건 아닌 것 같고 야구란 게임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방증이겠죠.”
야구가 직관적으로 답이 나오는 게임이었다면 긴 세월 동안 대중에게 사랑받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리고, 현재 시스템에서 유능한 인력이라고 하더라도 바뀐 시스템에서도 그러리라 보장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 위험을 감수할 바에는 해결 가능한 현실적 대안을 찾는 것이 현명하지 않을까요?”
“그 대안이 뭔지 모르니까 지금까지 이 긴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잖소.”
윌리스 단장의 퉁명스러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마일리가 말을 받았다.
“기존의 시스템을 유지하면서 특수한 경우가 발생하면 외주를 줄 수도 있죠. 저희가 에이전트 일을 하지만 야구에 특화된 데이터 가공과 분석 같은 분야로 사업영역을 넓히려고 하는데 제 이력은 잘 알고 계시듯이…”
지난 10년간 전 세계 빅데이터와 비즈니스 분석 시장 매출은 연평균 13% 정도의 성장을 거듭해 왔으며 2030년 현재 약 7,000억 달러 규모로 추산된다.
“……”
고 감독에게는 이 모든 일이 흐뭇하게만 느껴졌다. 아주 좋은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