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화. 아쉬움은 있지만
“파울.”
날카로운 타구가 3루 베이스 옆을 살짝 비켜 지나갔다. 3루수 테일러가 손을 뻗어 봤지만 조금 못 미쳤다. 백스와의 홈 3연전 중 두 번째 게임이다.
‘빌어먹을… 이게 운이 좋은 거야 나쁜 거야?’
라인 안으로 들어왔으면 잡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나간 상황을 되돌릴 수는 없다.
‘그런 타구를 맞은 내가 잘못이지. 타자가 정타 비슷하게 맞히긴 했잖아. 이 정도면 거의 정타라고 봐야…’
오늘 게임이 팀의 올 시즌 152번째 경기다. 우리 팀은 현재 109승 42패. 매직넘버 1이다. 다저스가 오늘 이겨 99승이 된다고 하더라도 오늘 우리 팀이 승리해 110승이 되면 그것과 상관없이 지구 우승이 확정된다.
‘다저스가 남은 게임을 다 이기고 우리가 잔여 게임에서 전패를 하더라도 결과가 바뀌지 않는다는 뜻이지.’
산술적으로나마 남아 있던 가능성마저 0으로 만들어 버릴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올 정규시즌 마지막 등판이라는 통고를 받았다. 왜 그런 말이 나왔는지 이유는 충분히 이해하지만 아주 조금의 아쉬움은 있다.
‘쩝! 19승일 때는 20승만 하면 좋을 것 같더니 지금은 이왕이면 다승왕이 하고 싶다는…’
현재 21승으로 다승 1위인 카디널스의 잭 플라티니와 동률이지만 그는 아마 두 번은 더 등판할 것 같은데 내가 등판할 수 없다면 다승왕 경쟁은 패배로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
카디널스는 중부지구에서 여유를 부릴 형편이 아니다. 지구 우승을 한다고 해도 승률 2위와 3위의 처지는 하늘과 땅 만큼 차이가 있다. 승률 1위와 2위는 디비전 시리즈로 직행을 하지만 3위는 와일드카드 3위와 3전 2선승제의 시리즈를 한 번 더 거쳐야 한다. 중부 지구의 선두 카디널스와 동부지구의 메츠는 피 말리는 승률 경쟁 중이다.
‘우리로서는 아주 좋은 일이지. 전력을 다해 신나게 싸우길 기대한다고.’
어쨌든 이 정도라도 사이영상은 수상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주변에서 그러긴 하는데 작년의 경험이 있어서인지 좀 불안한 느낌은 있다.
‘트리플 크라운은 꿈도 못 꾸네. 결국 평균자책은 나, 다승은 플라디니, 탈삼진은 존슨이 타이틀을 하나씩 나눠 가지게 되는 건가?’
다 조금씩 모자란다. 가까운 곳에 새끼 호랑이가 자라고 있었다. 존슨이 잘할 줄은 알았어도 이 정도까지 해낼 줄은 몰랐는데 풀타임의 경험을 갖게 되는 내년 시즌은 더 무서울 것 같다. 완급조절이 좀 더 능숙해지면 잡아먹힐지도 모르겠다. 올 시즌 양학에는 능숙한데 탑클래스 타자들에게 좀 밀리는 경향이 있었다.
‘시즌 300탈삼진 페이스였지. 물론 그에는 못 미쳤지만, 다음 시즌엔 모를 일이지. 탈삼진 타이틀은 올해가 마지막 기회였던 것 같은데…’
시즌 300탈삼진은 2002년의 랜디 존슨 이후로 맥이 끊어졌다. 사실은 퍼펙트게임보다 시즌 300탈삼진을 한 투수가 더 적다. 메이저리그 1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고작 12명만이 가능했던 기록이다. 투수 개인 능력의 저하라기보다는 시대의 흐름상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
1980년대 이후 선발 투수의 4인 로테이션이 5인 로테이션으로 바뀌고 전문 불펜 투수들을 운용하는 전술의 일반화로 선발 투수들이 소화할 수 있는 이닝 자체가 대폭 줄어들었다. 9이닝당 13개의 삼진을 잡는다고 가정하면 300탈삼진을 하기 위해서 최소 200이닝 이상은 던져야 한다. 동시에 둘을 하기는 몹시 어렵다. 올 시즌 존슨의 소화 이닝은 200이닝에 미치지 못했다.
‘어쩌면 내년에는 올 시즌 정도 성적을 유지한다고 해도 존슨에 밀릴 가능성이 있겠어. 하지만, 아직은 아니지.’
존슨은 올 시즌 10승을 겨우 넘겼고 평균자책 3점대 중반이다. 기복이 너무 심했다.
7회 말 2사 1루 4:1로 리드 중이다. 볼 카운트는 2볼 2스트라이크.
‘자! 하나만 잡고 깨끗하게 끝내는 거야. 이만하면 시즌 잘 보냈잖아.’
생각은 길었지만 그것이 현실의 시간과 꼭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주마등처럼 펼쳐지는 감회를 끊고 나의 올 정규시즌 마지막 공일 수도 있는 위닝샷을 던졌다.
‘그래. 이거야.’
타자의 배트가 끌려나왔고 나의 공은 떠올랐다.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에구구. 끝났네.’
나의 정규시즌은 막을 내렸다. 왠지 모를 상실감이 밀려온다.
“So. 수고했어. 이젠 푹 쉬라고. 이제 곧 더 큰 일이 남았잖아.”
“예.”
감독은 기운차게 말했지만 내심은 좀 아쉬워하고 있을 것 같다. 이대로라면 그의 커리어 최고 업적이 될 수 있는 단일 시즌 최다승 감독을 놓치게 될지도 모른다.
소르카는 어제로 정규 시즌을 끝냈다. 우리 둘을 먼저 쉬게 하고 다음 로테이션이 끝나면 로저스와 존슨을 빼낸다. 결국 마지막까지 로테이션을 지키는 건 드로이넨뿐이다. 마지막 시리즈는 확장 로스터로 올라온 투수들로 치러내는 것으로 알고 있다.
“설마 타자들까지 빼지는 않겠지.”
“그렇게까지야 하겠어? 더군다나 베그웰 같은 경우는 아직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야.”
무심결에 혼잣말이라고 한 게 입 밖으로 튀어 나가고 말았다. 소르카의 대답을 듣고 나서야 내 실수를 깨달았다.
“아! 그런 뜻은 아니었어요. 조금 염려스러워서…”
“타자들이 좀 분전해 준다면 내 생각에 최다승이 불가능할 것 같진 않아. 신참들이 나가서 질 거 같다는 생각보다 좀 긍정적으로…”
아무리 긍정적으로 생각을 하려 해도 그나마 쓸 만했던 즉전감 투수들을 카스트로와의 트레이드로 다 소모해버려서 지금 올라와 있는 투수들을 보고 있자면 한숨이 날 지경이었다.
야구는 통계의 스포츠다. 선발로 AA나 AAA에서 평균자책 3점대를 찍은 투수가 빅리그에서 그보다 자책점이 올라갔으면 갔지 떨어질 리가 없다. 그나마 바라는 건 콜업 버프를 받아 한두 게임 미쳐달라는 기대밖에 없다.
***
“마지막 타자의 삼진으로 7회 초가 끝났습니다. 지금 스코어는 4:1입니다. 2030시즌 종료까지 11게임이 남은 오늘 매직넘버는 1이고 이 게임을 승리한다면 0이 됩니다. 드디어 시즌 우승이 눈앞에 왔습니다.”
“언제나 한결같은 So의 호투였네요. 오늘도 98구 3피안타 무볼넷 1자책으로 백스의 타선을 7회까지 꽁꽁 묶었습니다. 투구 수로 봐서 오늘은 여기까지인 것 같습니다. 다음 회부터는 애덤과 체이스로 이어지는 필승 계투진이 나오겠죠. 승부의 추는 99% 기울었습니다.”
해설자 윌리엄은 낙관하고 있었다.
“사실 상당히 전부터 우승은 거의 확정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다만 하루빨리 결정을 짓고 팀 전체가 편한 마음으로 포스트 시즌을 준비하는 것이 좋겠지요.”
우승이라는 건 별로 새로운 사실이 아니었다. 자이언츠는 시즌 내내 특별한 부침 없이 독주했었다. 상반기가 조금 지나고 나서부터는 새로운 팀 최다승 기록이 나오느냐가 관심을 끌었을 뿐 그 누구도 자이언츠의 우승을 의심하지 않았었다.
“경기 전 우승이 확정된다면 포스트 시즌 시작 전까지 주전선수에게 휴식 시간을 주겠다는 구단의 공식적인 발표가 있었죠. 아마 이 게임이 올 정규 시즌 So의 마지막 등판이 될 것 같습니다. 포스트 시즌 전망에 앞서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해설자께서는 So의 사이영상 수상 가능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만약 오늘 이 경기가 이대로 끝난다면 So의 올 시즌 최종 기록은 총 202이닝 21승 3패 ERA 1.76이 됩니다. 현재 카디널스의 잭 플래티니 선수가 21승과 평균자책 2.34를 기록하고 있긴 하지만 그 정도로 So의 사이영상 수상을 저지하기는 무리일 것 같습니다. 1, 2승 정도의 승수를 추가할 가능성이 있긴 하지만 평균자책과 WAR(대체선수 대비 승리 기여도)에서의 격차가 상당합니다. 저는 So가 확실히 수상할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투표권을 가지지도 않은 분이 너무 확정적으로 말씀하시는 것 아닙니까? 기자분들의 생각은 다를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것도 어느 정도 비슷한 비교 대상이 있을 때나 다를 수 있는 거지 올해는 So와 비교할만한 투수가 없습니다. 만약 So가 수상하지 못한다면 제도에 문제가 있는 것이겠지요.”
캐스터 그래엄은 좀 놀랐다. 경우에 따라 논란이 될 만한 발언이었다. 언제나 신중한 태도를 지켜오던 해설자 윌리엄이 방송에서 이런 식으로 말하는 경우는 처음인 것 같았다.
“그렇군요. So의 경우는 확정적이라고 생각하고 마음을 놓아도 될 것 같군요. 그렇다면 베그웰은 어떨까요? 그에게 MVP 수상 가능성이 있을까요?”
“개인적으로는 그가 당연히 MVP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012년 버스터 포지의 커리어 하이 시즌과 비교할만하다고 봅니다. 그해 포지의 WAR은 7.7이었습니다. 올 시즌 베그웰은 7.3입니다. 적은 홈런 수 때문에 OPS가 조금 떨어지긴 합니다만 포수라는 포지션을 생각한다면 충분히 이해해줘야 할 수치죠. 그의 MVP는…”
오늘의 윌리엄 해설위원은 자이언츠에 일방적인 애정을 쏟아붓고 있었다.
“다저스 에디 레오날드의 WAR이 8.7이지 않습니까? 타자로서의 능력을 종합적으로 판단하면 베그웰이 좋은 타자인 것은 맞지만 최고라고 말하긴 어렵겠지요. 그 선수 외에도…”
캐스터의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관점의 차이가 있을 수 있지요. 난 미국야구기자협회(BBWAA)가 상식이 있다면 포수로서의 팀 공헌도를 고려해 줄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들은 제대로 평가해줄 겁니다.”
그래엄은 웃음이 터져 나올 것 같았다. 언제나 냉정하고 이성적인 말을 하던 해설자의 변신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많이 곤란했다. 오랫동안 눌려 있던 욕구가 자이언츠의 정규 시즌 우승을 눈앞에 두고 폭발하고 있었다.
“아주 자이언츠 팬다운 말씀을 주시는군요.”
“객관적인 스탯에 근거한 제 의견을 가감 없이 말씀드린 거죠.”
“하핫. 그렇다면 이제 우리 팀의 최다승은 어려워진 걸까요?”
“그건 아직 희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5경기에서 우리 팀 팀타율은 2할 5푼을 조금 넘겼습니다. 그전 5경기는 2할 3푼대였었죠. 저는 이걸 전체적인 타격감이 상승하고 있다는 신호로 봅니다. 물론 주력 투수들이 빠진 공백은 크겠지만 대체 투수진이 아주 망가지지만 않는다면 한 번 해볼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타율 타이틀을 향한 베그웰의 분투라는 플러스 요인도 있죠. 이 부분을 주목하셔도 재미있을 겁니다. 지금 0.334로 타율 1위와 2리 차이입니다. 남은 10경기에서 그 정도는 충분히 뒤집을 수 있지 않을까요?”
아직 경기는 한창 진행 중이었지만, 두 사람은 경기 내용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의 관심사는 이제 포스트 시즌을 향해 있었다. 모든 코멘트가 그것에게로 집중되었다. 기‧승‧전‧포스트 시즌이었다.
“9회 올해 새로운 수호신으로 자리 잡은 체이스가 팀의 우승을 결정짓기 위해 마운드로 향하고 있습니다. 진짜 이제 결정의 순간이 다가왔습니다. 스코어는 4:1이 유지되고 있습니다. 우린 이제 우승합니다. 가자! 자이언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