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화. 이길 수만 있다면
『So, 쿠어스필드에서 시즌 19승째.
9월 10일 콜로라도 덴버의 쿠어스필드에서 벌어진 자이언츠와 로키스 간의 2030시즌 16번째 경기에서 자이언츠의 투수 소영수는 9이닝 동안 102구를 던지며 1피안타 무볼넷 18K 무실점의 경악스러운 피칭을 선보였다. 쿠어스필드에서 기록된 역대 15번째의 완봉승이었으며 경기 초반에 나온 빗맞은 안타 하나가 아니었다면 역대 두 번째 노히트노런이 될 수도 있었던 경기였다. 타자 친화형의 구장으로 악명 높은 쿠어스필드는… So가 시즌 종료까지 3~4차례 더 등판한다면 20승 고지는 무난히 넘을 것으로 예상되며 올 시즌 내셔널리그 사이영상의 가장 강력한 후보로서… 현재 자이언츠는 20경기를 남겨두고 있으며 현재까지 104승 38패 7할 3푼 2리의 승률을 기록하고 있다. 매리너스가 2001년 달성한 시즌 최다승 기록인 116승에…』
[SANO : 짝수 해의 자이언츠는 무적이야.}
{rain : 2010년에는 그랬지. 2030년에는 글쎄!]
[star2020 : 우리도 10년 전 이야기는 안 한다. 20년 된 이야기를 오래도 우려먹네.]
[bumbum : 단축 시즌 우승은 함량 미달임]
[bigdaddy : 올 투수 삼관왕은 So가 확정된 것이나 다름없어.]
[P1234 : 왕조의 시작이야. 우린 젊은 팀이라고. 적어도 앞으로 5년은 무적. 경배하라. 이 글은 성지가 될 것이다.]
……
자이언츠의 단장 윌리스 크로포드가 출근하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은 뉴스 검색이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세상의 흐름과 자신과의 괴리를 줄이는 방법으로 그것이 최고였다. 오랫동안 해온 루틴과도 같은 일이었다. 종이 신문에서 인터넷으로 그 사용수단은 바뀌었지만, 본질은 동일했다.
이제 2010년의 기억은 희미해졌다. 그때도 분명히 뉴스를 살피긴 했었을 텐데 그것이 종이 신문이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어쨌든, 올 시즌은 다르다. 지난 20년 가까이 일을 하기 위해 해야만 했던 뉴스 검색이 요즘 들어 아주 즐거워지고 있었다.
똑똑-
이른 시간부터 사장이 사무실을 찾았다.
“일찍 나오셨군요. 잠시 브레이크 타임을 가져도 괜찮을까요?”
“그럼요. 잠시 뉴스를 보고 있었습니다. 아직 일과 시작 전입니다.”
“이것 한번 봐주시겠습니까?”
사장이 들고 온 얇은 파일을 내밀었다.
“리그와 토너먼트 컨디션 사이클의 변화 및 조정? 이게 뭐죠?”
아주 긴 제목이 보였다.
“외주 업체에서 어떤 경위로 저까지 들어온 보고서인데 저도 읽어보다가 판단이 잘 안되어서 단장님의 의견을 들어보고 싶습니다.”
윌리엄은 안경을 꺼내 들었다. 사장이 선수 출신도 아니고 경영을 전공한 사람이라 전문적인 야구 이론과 같은 부분에서는 가끔 이렇게 도움을 청하는 경우가 있었다. 분량이 몇 장밖에 안 된다. 빨리 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어? 이게 뭐죠? 축구 이야기가 여기 왜 나옵니까?”
“그래서… 좀. 축구로 예를 들어서 그렇지 축구 이야기는 아닙니다. 죄송하지만 끝까지 읽으시고 말씀 주셨으면 합니다.”
“허헛. 이거야 원… 야구팀 단장에게 월드컵 이야기라니…”
단장은 어이가 없었지만, 사장의 눈빛이 간절해 보여 일단 끝까지 읽어주는 성의는 보여주기로 했다. 결정적으로 제목은 길었지만, 전체 분량이 네 페이지밖에 되지 않았다. 어려운 일은 아니다.
“응? 음… 이건…”
처음엔 어리둥절하던 단장의 표정이 페이지가 넘어갈수록 심각해져 갔다.
“허… 이것 참!”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고 나서도 단장은 말을 쉽게 꺼내지 못했다.
“이걸 누가 보내왔다구요?”
“이번 시즌에 리버캐츠가 전반적인 트레이닝 시스템을 외주 업체에 맡겼다는데 거기서 올라온 보고서입니다. 거기 구단주가 재미있는 게 있다고 하더니 보내줬어요.”
리버캐츠는 자이언츠 산하 AAA팀이다.
보고서의 요지는 이러했다. 장기적인 페넌트 레이스와 단기적인 토너먼트의 승리에 대한 접근방식은 달라야 한다. 월드컵 이야기는 리그 후 한 달간 치러지는 토너먼트를 비교하기 위한 장치였다. 한 달이라는 기간 내내 100퍼센트의 컨디션을 끌어올려 유지시킨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개별적인 선수의 컨디션을 일치시키는 것도 불가능하고 그렇기 때문에 팀 전체의 컨디션도 들쭉날쭉할 수밖에 없다. 모두가 안 된다면 범위를 줄여야 한다. 경기에 미치는 영향력이 가장 크면서도 소수인 선발투수를 관리하는 것이 그래서 중요하다. 토너먼트의 안정적 승리를 위한 열쇠는 선발투수 관리다라고 짧고 굵게 끝을 맺고 있었다.
“전 판단이 잘 안 서는데 이 얘기가 얼마만큼 신빙성이 있는 걸까요? 아무나 다 할 수 있는 말 같기도 하고 뭔가 오묘한 게 숨어 있는 것 같은 생각도 들고 그러네요.”
사장의 말이 윌리엄 단장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었다.
“모르면 물어봐야죠. 이거 작성한 사람이 있을 거잖습니까? 미친 짓 같지만 불러서 자세한 사항을 한번 물어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누군지는 알아보셨을 것 아닙니까?”
무시하기엔 호기심을 끄는 부분이 있는 묘한 글이었다. 결론은 있지만, 그 결론의 과정을 완전히 설명하기에 내용이 너무 적었다.
“외주 업체 트레이너더군요. 유럽에서 온…”
***
“안녕하세요. 에도아르도 피에트로라고 합니다. 그냥 피에라고 부르셔도 됩니다.”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단단한 체격의 소유자였다.
“허헛 안녕하시오.”
리버캐츠의 연고지는 세크라멘토였다. 멀지 않았다. 서둘러 연락을 취해 오후에는 문건의 작성당사자를 바로 만날 수 있었다. 사장과 단장 모두 궁금한 걸 참으며 뒤로 미룰 수 있는 성격이 아니었다.
“미국에 언제 오셨나요? 유럽에서는 무슨 일을 하셨죠?”
해리스 사장이 사전 조사한 그의 인적사항이 적혀 있는 서류를 뒤적이며 입을 열었다. 무작정 불러왔지만, 그로서도 어떻게 대화를 시작해야 할지 갈피를 잡기 힘들었다.
“3년 되었습니다. 그전에는 SS 라치오 산하 유소년팀에서 피지컬 코치로 일을 했었습니다. 어느 순간 삶이 너무 단순해지는 것 같아서 새로운 자극이 있어야겠더군요. 그래서 미국에 왔고 지금은 일과 병행하며 대학에서 운동생리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그랬군요.”
사실 그는 라치오가 어떤 팀인지 이름도 처음 들어봤다.
“지금은 어떤 일을 담당하고 있습니까?”
“투수의 투구량을 점진적으로 늘려가는 체력 적응 프로그램을 운용하고 있습니다. AAA라면 콜업의 바로 전 단계이니까 전체 시즌에 대한 감각을 키우고 컨디션 관리능력을 향상시켜야 할 필요가 있지 않습니까?”
“본인이 만든 프로그램인가요? 어떤 식으로 하는 거죠?”
단장이 관심을 보였다.
“선수의 바이오리듬에 맞춰 개별적인 트레이닝 스케줄을 지정하죠. 보통은 선발 등판 간격 동안 2차례로 나눠 근력 운동을 합니다. 경기 다음 날 다리 쪽 근력 트레이닝을 하고 두 번째 날은 상체 쪽 근력 트레이닝 이런 식이죠. 그 후 이틀간은 휴식을 하면서 다음 등판 일을 기다리죠. 근력 트레이닝 시간은 20분 전후로 짧게 하고 시즌 중에는 되도록 같은 무게를 들도록 합니다.”
“그것뿐인가요? 운동량이 너무 작은 것 같은데…”
“근력 훈련만 그런 거고 러닝 프로그램이 따로 있죠. 경기 당일은 55m 10회 달리기. 경기 종료 후에는 싸이클을 이용한 10분 정도의 유산소 운동. 경기 다음 날은 좀 전에 말씀드린 근력 트레이닝 후 25분 전후의 장거리 달리기를 합니다. 그리고 잇달아 90m 10회 달리기, 상체 훈련을 하는 날에는 pole to pole 10회 정도를 뛰고 75m를 10회 달리죠. 세 번째 휴식일은 가볍게 달리기 15분, 55m 10회 달리기를 합니다, 등판일 전날은 가볍게 달리기 10분과 55m 10회 달리기 등으로 프로그램이 구성되어 있습니다. 운동량은 개인차가 있지만, 기본적으로 많이 하지는 않습니다. 이건 시즌 중 컨디션 조절용 프로그램이니까요.”
상당한 전문가처럼 느껴지는 답변이었다.
“보내준 보고서는 잘 읽었습니다.”
“그건 보고서가 아니었습니다. 포스트 시즌 같은 단기전일 때 컨디션 관리는 어떻게 해야 좋을 것 같냐고 리버캐츠의 로버트 구단주가 물으시길래 유럽 축구계에서 일한 경험을 떠올리며 간단하게 요령과 이유를 작성한 것이었는데 그게 자이언츠로 보내질지는 몰랐습니다. 물론 그래서 나쁘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렇게 절 보고 싶어 하시는 분이 생겼으니…”
피에 트레이너는 상당히 겸손한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관점이 독특해서 재미있었어요. 그런데 하나 물어보죠. 바이오리듬에 근거해서 프로그램을 짠다고 했는데 바이오리듬이라는 자체가 근거 없는 주장 아닌가요?”
“전달이 조금 잘못된 것 같네요. 바이오리듬이라는 표현을 쓰긴 했지만,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뜻은 아니고 인위적으로 그 비슷한 것을 만든다는 의미입니다. 일종의 루틴입니다. 그런 것을 인위적으로 만들고 모아서 컨디션의 사이클을 조절할 수 있습니다. 그걸 원하는 시점에 맞춰 발휘하게 한다는 뜻이었습니다.”
“토너먼트가 벌어지는 시점에 맞춰 컨디션이 상승곡선을 그리게 할 수 있다는 겁니까? 그게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건가요?”
해리스 사장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되물었다.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월드컵을 예로 든 거구요. 월드컵에서 유독 준결승 명승부가 많이 나오는 건 그 시점에 컨디션의 정점을 맞췄기 때문입니다. 월드컵에서는 슬로우 스타터가 우승하는 예가 많지요.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우승을 할 만한 전력의 팀은 예선을 통과하는 시점에 컨디션의 상승곡선이 시작되고 준결승에서 정점을 이루게 하니까요.”
피에는 태연했다.
“음. 그건 그렇다고 칩시다. 내가 잘 모르는 일이니까. 그걸 야구에 응용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겁니까? 축구는 휴식 기간이 길지만, 야구는 거의 매일 해야 하는데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도저히 믿기 힘든 설명인데, 믿고 싶어졌다.
“그러니까 선발투수에게 포인트를 잡는 거죠. 어떤 면에서 더 쉬울 수도 있습니다. 축구는 선수 한두 명의 컨디션 상승으로 팀 전력이 급격하게 올라가기 어렵지만, 야구는 선발투수 한 명이 승부에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이 아주 크지 않습니까? 아! 이건 경기에 꼭 이길 수 있다는 게 아니라 그 시기에 컨디션 상승곡선이 맞춰질 수 있도록 유도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해도 경기에 질 수는 있어요.”
“그건 우리가 알아서 가려들을 테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그건 그렇고 더 쉽다는 게 무슨 뜻이지요?”
그의 말대로라면 이건 신기원이었다.
“축구는 토너먼트에서 한 번 지면 탈락이지만 포스트 시즌 경기는 절반 이상의 승률만 있으면 다음 라운드로 올라가는 거잖습니까? 선발투수들의 컨디션이 정점에 도달하는 사이클을 다르게 조절해서 뒤로 갈수록 두 명, 세 명, 네 명으로 순차적으로 많아지게 하면 되겠지요.”
“흠.”
아주 마음이 끌리는 설명이었다. 포스트 시즌 승률을 단 1%로라도 높일 수 있다면 뭐든 못할까.
“준비 기간이 어느 정도 필요한가요?”
“시간이 넉넉하면 좋지만, 지금 시점 정도 준비하면 챔피언십 시리즈 정도에는 정점에 이르게 만들 수 있을 거 같습니다.”
피에는 자신의 발탁을 당연한 듯 말하고 있었다.
“에도아르도 피에트로 씨. 긴말은 안 하겠습니다. 지원할 테니 해내세요. 당신의 아메리칸 드림은 이뤄질 겁니다.”
사장의 말에 윌리스 단장은 고개를 저었다. 세상이 너무 빨리 바뀌어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