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각성한 이레귤러의 커브가 드러남-108화 (108/200)

108화. 유능한 목수는 연장을 탓하지 않는다.

“90승이 이제 눈앞이네요. 이렇게까지 해내다니…”

해리스 사장의 목소리가 흔들리고 있었다. 로키스와의 원정 시리즈 두 번째 경기가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7회 말 상대 공격을 막아낸 현재 스코어는 7:3로 자이언츠가 리드 중이다. 1선발 소르카의 퀄리티 스타트 플러스의 호투였다.

“지난 시즌엔 90승으로 와일드카드를 겨우 얻어냈는데…”

이번 시즌은 125번째 경기에서 작년 승수에 거의 도달하기 직전이었다. 해리스는 네 점 차이가 뒤집힐 수 있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고 있었다. 애덤 산체스가 등판하는 8회와 클로저 체이스의 9회는 올 시즌 철벽이었다. 그들이 이 정도 점수 차이를 못 지킬 리가 없다.

“오늘 이기면 90승 35패, 승률이 딱 7할 2푼이 되는군요.”

해리스는 애써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맞이한 현실을 생각하려고 노력했다. 억지스러운 집중으로 울컥하고 올라온 감정의 소용돌이를 힘겹게 벗어났다.

“하핫. 벌써 그렇게 감상적이면 곤란한데요. 이러다 최다승 우승이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럽니까?”

윌리스 단장은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지금 일어난 일을 마치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 정도 사건이라면 경기장에서 제가 울먹여도 누구 하나 이상하게 보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제발 좀 그런 일이 일어났으면 좋겠네요.”

해리스 사장의 말에서는 진심이 묻어났다.

“계산 좀 해볼까요? 오늘 경기를 제외하면 이제 37경기 남았고 여기서 27승을 하면 최다승이네요.”

윌리스 단장이 슬쩍 화제를 돌렸다.

“예. 약 7할 3푼 정도 승률이 필요하니까 지금까지의 추세대로 이겨나간다면 아마도 할 수 있겠죠. 물론 꼭 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가능성은 충분합니다.”

몹시 들뜬 목소리였다. 최다승 우승이라면 해리스 사장의 커리어에서 최대 업적이 될 만한 일이다. 구단 역사에 영원히 기록될 대사건이다.

“제가 자이언츠에 40년을 일했지만, 이 정도 성적을 꿈꿨던 시즌은 없었어요. 올 시즌도 100승 언저리 정도 예상했을 뿐입니다. 초반의 기세가 좋았지만, 시즌은 기니까 곧 위기가 올 것 같았죠. 어느 팀이 치고 올라올 수도 있고. 이렇게 순탄하게 마지막까지 기세가 이어질 줄이야…”

“그러고 보니 이렇다 할 경쟁자도 없었네요, 하긴 이 페이스를 따라올 팀이 있을 리가…”

아직 안심하긴 좀 이른 듯했지만, 지구 우승은 거의 확정적이었다. 현재 2위 다저스와의 승차는 7게임이다. 올 시즌 맞대결이 3연전 한 번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에 산술적인 가능성만 남았을 뿐 현실적으로 이를 뒤집기는 거의 불가능했다.

“다저스의 올 시즌 페이스는 나쁘지 않았지만, 잘해도 더 잘하는 놈이 있으면 다 그렇게 되는 거죠. 다저스가 2021년에 106승을 하고 107승의 우리에게 지구 우승을 내주고 와일드카드로 밀렸던 적이 있었습니다. 올 시즌도 그 재판이 될 것 같네요. 지금 다저스가 83승 42패인데 이 승률을 유지한다면 106승이나 107승으로 시즌을 마치겠죠.”

106승은 역대 최다승수 와일드카드였다. 윌리스 단장은 다저스의 기록경신을 기대하고 있었다. 지구 라이벌에게 일어난 안타까운 일은 때로 상대에게 기쁨을 준다. 이모저모로 즐거운 시즌이었다.

“모두들 정말 훌륭하게 제 역할을 해주었어요. 선수들뿐만이 아니라 코칭 스탭과 구단 직원들까지…”

“허헛. 그거 본인이 잘 이끌어서 그렇다고 말하고 싶은 건가요?”

단장의 놀림에도 사장은 태연하게 말을 받았다.

“음. 그런 면이 전혀 없지는 않지요. 하핫. 농담인 것 아시죠? 행운이 깃든 시즌이었던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한편으론 100여 년 자이언츠 역사에 이런 해가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조용했던 시즌이었다.

“운이라… 전력의 손실이 일어날 만한 사건 사고가 없긴 했었지요. 주전 선수들의 부상도 없었고 사건이라고 해봐야 여름에 벤치 클리어링이 가장 큰 사건이었는데 그 일도 잘 처리되었고. 그러고 보니 다시없을 것 같은 시즌이었네요.”

“굳이 어려웠을 때를 찾자면 그나마 그때가 가장 위기였던 것 같긴 합니다. So는 벌금 좀 내고 말았지만, 카스트로가 5경기 출장정지를 받아서…”

상당히 큰 위기 상황을 맞았었다. 그 주 6경기에서 2패나 했었다. 두 번의 연속된 위닝 시리즈가 스윕을 못해 위기라고 느껴질 경도로 평탄했던 시즌이었다.

“이제 월드시리즈만 차지하면 다 가지는군요.”

“그게 다가 아닐 수도 있죠. 신인상, MVP, 사이영상까지 우리 선수들이 다 차지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존슨의 신인상은 확정적이고 So도 무난할 것 같은데… 베그웰만 좀 치고 나가 준다면 좋겠어요. 타율과 최다안타 1위 정도는 해야… 그러지 않으면 임펙트가 부족해요.”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는 사장의 말이었다.

“허헛. 이젠 타율 3할을 넘기는 포수를 임펙트가 부족하다고 하시는군요. 너무 포지와 비교하시는 것 아닌가요? 저는 우리 팀에서 거의 20년 만에 포수 MVP가 다시 나올 거 같아요. 베그웰은 포지와는 좀 다른 유형의 선수지요. 지금 정도 성적으로도 MVP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포지가 MVP가 되었을 때도 타격왕 타이틀은 있었죠. 그리고 그는 홈런을 24개 쳤어요. 홈런 수가 많이 모자라는 베그웰로서는 타율과 최다안타 1위가 꼭 필요해요.”

해리스는 자신이 발탁한 두 선수가 사이영상과 MVP를 나란히 수상하는 그림을 꼭 보고 싶었다. 그 트레이드를 주도한 건 누가 뭐래도 자신이었다.

***

오랜만의 낮 경기다. 기온이 높아지면서 대부분의 게임이 야간경기로 치러지면서 몸이 그에 맞춰졌었는데 오후의 투구는 좀 어색하다.

‘주말이라고 관중도 겁나 많이 오고.’

메이저리그 전체 구장 중 5만 이상의 관중 수용 능력을 가진 곳은 4군데가 있다. 각 리그마다 두 군데씩. 내셔널 리그에서는 다저 스타디움과 쿠어스필드가 그렇다.

5만 6천 명의 관중이 입장 가능한 다저 스타디움이 세계에서 가장 많은 관중을 수용할 수 있는 야구장이라는데 느낌으로는 여기도 그에 못지않은 것 같았다.

‘두 번째로 큰 곳? 쿠바에 있는 무슨 야구장이라는데 이름은 잘 몰라. 원래 세상은 2등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고.’

그동안 쿠어스필드에서 자주 등판하지 않았었다. 공의 회전이 일반구장과 달라지는 환경 때문에 커맨드와 공의 무브먼트를 중시하는 나 같은 유형의 투수에게 불리할 것이라는 염려 때문이었다.

‘내가 걱정했던 건 아니고 전력분석팀이랑 코칭 스탭이 짝짜꿍이 되어서 등판을 막더라고. 작년 첫 등판 때가 문제였어.’

그날 내 성적은 6이닝 3실점. 홈런 2개로 3실점 했다. 그때만 하더라도 피홈런이 많다라는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 때였다. 마침 그런 일이 벌어지니까 쿠어스필드 원정경기에서는 어떻게든 내 등판을 빼려고 하는 분위기로 흘러갔다. 그런 분위기가 계속 이어져서 이번 시즌에도 쿠어스필드에서는 거의 등판하지 않았었다.

많이 알려진 대로 이곳은 1,600m 대의 고지대에 위치해 공기가 건조하고 밀도가 낮다. 그래서 이 구장에서는 다른 곳에 비해 타구의 비거리가 늘어난다.

연구에 따르면 고도가 100m 높아질 때마다 타구의 비거리는 0.7m 늘어난다고 하는데, 같은 타구가 평지의 구장에 비해 이곳에서는 14m 정도 더 날아간다는 뜻이다. 다른 구장에서 좀 깊은 외야플라이가 이곳에서는 홈런이 된다.

이 문제를 곰곰이 생각하다가 답을 얻었다.

‘과거라면 몰라도 지금의 난 별로 상관없을 것 같더라고. 일단 외야플라이가 잘 안 나오는데 왜 외야플라이를 걱정해야 할까란 의문이…’

이곳도 예전과는 달라졌다. 휴미더를 사용하고 난 다음부터 타구의 비거리 차이가 그 정도까지는 나지 않는다.

그다음 단계의 생각은 어떻게 내야 땅볼을 만드느냐는 것이었다. 아무리 휴미터를 이용해 공의 온도와 습도를 조절한다고 해도 밀도가 낮은 공기는 어쩔 수 없다. 그 때문에 투구된 공은 공기와의 마찰이 적어지게 된다. 그것의 좋은 점은 구속이 좀 더 나온다는 것이지만, 마찰력이 적어지면 회전에 의해 만들어지는 무브먼트도 줄어든다. 이건 브레이킹 볼의 위력이 떨어진다는 뜻이다.

투구된 모든 공은 크든 작든 무브먼트가 있다. 너클볼을 제외하면 회전 없이 날아가는 공은 없다. 이것이 이제껏 나의 쿠어스필드 등판을 막았던 쪽의 논리였다. 제한된 무브먼트로 내가 땅볼을 만들어내기 어려울 거란 예측이었다.

‘그 생각에 동조했던 내가 미친놈이었어.’

내가 첫 등판에 부진했던 이유는…

‘6이닝 3실점이면 퀄리티 스타트인데 부진이 맞나? 뭐! 평균 자책으로 따지면 4.5니까 평소보다 두 배 이상 부진했던 게 맞긴 하지.’

작년의 나는 선발투수로 막 시작한 단계였었다. 일테면 차량의 성능에 의지해 운전하던 초보운전자와 같았다.

‘지금은 작년 같지 않지.’

특히나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다저스전 이후로 구속과 무브먼트가 평소 같지 않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나름대로의 깨달음이 있었다.

‘생각해보니까 그때와 상황이 똑같은 거더라고. 물론 환경에 의해서 그런 것과 내 컨디션 문제로 그런 것이냐의 차이는 있지만, 컨디션이 나쁜 날이라고 생각하면 비슷해지는 것 아니겠느냐라는 생각이 들었지.’

그래서 이번엔 피하지 않았다. 우리 타자들이 1회부터 힘을 내 점수도 넉넉하게 내주었다. 3점의 리드를 가지고 올라왔다.

‘욕심 버리고 편안하게 두 점 정도는 준다 생각하면 되잖아.’

“스트라익.”

쿠어스필드에서는 역대 단 한 번의 노히트노런이 있었고 14번의 완봉승이 나왔다. 유일하게 두 번의 완봉승을 해낸 투수가 톰 글래빈이다.

‘증명이 된 거잖아. 여기선 구속이 느려도 괜찮다고. 글래빈의 구속이 늘어봤자 90마일을 넘기진 못했을 거야.’

느린 공과 더 느린 공의 콤비네이션이다. 그리고 가끔 평소보다 더 빠른 공으로…

“스트라익. 배터아웃.”

1회를 순삭해 버렸다.

‘이거 땅볼 만들려고 던진 공이었는데 왜 삼진이 나오지? 노모처럼 던진 건가?’

쿠어스필드의 유일한 노히트노런의 주인공은 노모였다. 그 역시 메이저리그 기준으로는 구속이 빠른 투수는 아니었다. 90마일이 채 안 되는 평속을 가지고 있었고 독특한 투구 폼에서 나오는 디셉션과 낙차 큰 브레이킹 볼에 강점을 가진 투수였다.

“So. 오늘 괜찮은데… 연구 많이 했나 봐.”

덕아웃에서 리우드 투수 코치가 반갑게 맞아준다. 이런저런 사건을 겪으면서 등판 일에도 무던해졌다. 덕아웃에서 대기할 때 굳이 인상 쓰고 말 가리는 그런 짓 안 한다.

“연구라기보다는 경험이 좀 쌓여가는 거죠. 저도 이제 빅리그 3년 차잖아요. 쿠어스필드에서 성적이 좋았던 투수들의 스타일을 흉내 좀 내본 거예요. 아직 몰라요. 이제 한 이닝 던졌는데…”

“자네도 이제 관록이 붙어가는 거야.”

코치의 덕담에 겸손을 가장한 가식을 떨었지만, 솔직히 나도 오늘 투구가 이렇게 잘될 줄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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