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각성한 이레귤러의 커브가 드러남-107화 (107/200)

107화. 목표

“어휴! 거기선 브레이킹 볼을 던져야 하는데… 이러니저러니 해도 올스타전에 나올만한 애들은 급이 다르다고.”

베그웰이 답답한 듯 투덜거렸다.

“못 하는 걸 어쩌라구. 쟤가 그런 것까지 할 줄 알았다면 사이영상이고 MVP고 간에 다 쟤가 차지하겠지. 안 되는 걸 굳이 배우기보다는 잘하는 걸 발전시키는 게 빠르잖아.”

존슨의 올스타전 첫 등판이었다. 선수 개인에게는 기념비적 사건이 될 수도 있는 일이다.

“그렇게 답답하면 너도 나가지 그랬어?”

“그게 마음대로 되면 벌써 나갔지. 포수는 고인물들이 많아서 투표로 뽑히긴 틀렸어. 1차 투표 세 명에도 못 들었는데… 난 포기했어. 기회가 되어도 추천 같은 걸로는 안 나갈 거야.”

올스타전 투표는 1차 투표의 상위 3명이 결선투표를 다시 해 최종 선정되는 방식이다. 인기투표라고 말하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실력만으로 되는 것도 아니다. 이 때문에 선수 생활 내내 탁월한 성적을 내었지만, 올스타 경력이 없는 선수도 허다하다.

올해는 소원 성취했다. 상반기가 끝나기도 전에 집에서 휴식모드에 돌입했다. 쉴 때는 쉬어줘야 한다. 그 결과로 올스타전을 집에서 동료와 TV로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TV로 볼 것 같으면 그냥 참가했어도… 난 좀 아쉽구나?”

시즌 중 집에서 이렇게 빈둥거릴 수 있다니 너무 행복한데 모두의 의견이 같을 수는 없나 보다.

“아버지. 저기서 날아다녀 봐야 제가 별로 득 보는 건 없어요. 제게 이번 시즌에서 중요한 건 우리 팀의 우승이에요. 이왕이면 최고 승률 우승 같은 걸 하면 좋겠어요. 그러려면 등판 순서에 빠지지 말아야 하고 그 등판 때의 컨디션 관리도 중요하죠. 저 개인적으로도 그렇고 팀의 입장에서도 안 나가는 게 득이에요.”

“그래도… 나갈 수 있었는데 이건 좀…”

많이 아쉬워하신다. 예전부터 아버지는 올스타, 골든글러브 이런 이름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었다.

“가고 싶어 하는 선수가 갔으면 좋은 거잖아요. 전 작년에도 나갔었고…”

이 정도 말밖에 못 하겠다. 내 의견과 다르다고 아버지 생각이 꼭 틀린 건 아니다. 결국 존슨이 갔다. 소르카도 저런 데 가는 걸 별로 안 좋아한다. 아니, 어쩌면 내 대신이라서 거절했을지도 모른다.

“존슨하고 전화통화를 했는데 얼마나 좋아하던지… 정말 양보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아버지는 그래도 못마땅한 기색이셨다.

“그래도 되는 거냐? 원래 투표로 뽑는 것 아니었어?”

“야수는 그렇게 선발하는 게 맞는데 투수는 추천으로 올스타전에 참여하는 거예요. 우리 팀 몫이 하나 있었는데… 존슨도 올해 잘했잖아요. 갈만하죠.”

이건 사실과는 좀 다르다. 엄밀히 말해 존슨은 우리 팀 선발진에서 네 번째 아니면 다섯 번째다. 그가 성적을 견주어 볼 수 있는 투수는 드로이넨이 유일하다. 로저스조차 각종 지표상으로는 존슨보다 낫다.

그런데도 로저스가 아니라 존슨이 출전하게 된 건 사무국의 입김 때문이었다. 사무국의 목적은 올스타전의 흥행이다. 그런 목적에 로저스보다는 존슨이 좀 더 적합해서 올스타전에 나간 것이다.

로저스는 이번 시즌 아주 안정된 피칭을 하는 좋은 투수로 발전했다. 평균 자책 3점대 중반을 찍는 드로이넨의 상위 버전이라고나 할까? 2점대 중후반의 평균 자책을 유지하면서 선발 출전한 거의 모든 경기에서 퀄리티 스타트 플러스를 해냈다. 팀으로서는 입이 벌어질 만한 성적이었다. 연장계약을 한 보람을 느꼈을 거다.

그런데 임펙트라는 측면에서 판단하면 로저스는 존슨에 뒤졌다. 왼손 장신의 파이어볼러. 기본적인 성적도 상당한데 가끔 미친 듯 엄청난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존슨은 대중이 열광할만한 요소를 많이 갖췄다.

‘이래서 내가 올스타전에 별로 나가고 싶은 마음이 안 생긴다고… 인기면 인기, 실력이면 실력 딱 기준이 명확해야 소위 말하는 명예로운 자리가 되는 거지. 이렇게 선발 기준이 애매하면… 음.’

내가 열 낼 일은 아니다. 메이저리그는 그렇게 흘러왔고 프로 스포츠라는 옷을 입고 있는 이상 앞으로도 바뀌긴 어려울 것이다.

존슨은 사무국이 기대한 대로 100마일의 강속구를 펑펑 꽂으면서 올스타전에서 열심히 던지고 있었다. 2안타를 맞았지만, 아웃 카운트 세 개를 모두 삼진으로 잡았다. 본인 스타일대로 잘 던졌다.

‘우리가 이번 시즌에 이 정도야. 우리 5선발이 저 정도라고.’

보고만 있어도 흐뭇하다.

“내일 결과가 나오지? 출장 정지 이런 거 당하면 안 되는데…”

전반기 내 마지막 등판에서 일어났던 벤치 클리어링에 대한 사무국의 처분이 아직 나오지 않았다.

“나야 뭐! 사무국에서 징계를 때리고 싶어도 뭐 거리가 없잖아. 웃었던 것밖에 없는데 그걸로 뭘 어쩌겠어. 카스트로가 문제지.”

그의 펀치를 맞았던 럭스에게 미세 골절이 발견되었다. 뼈에 금이 갔다는 말이다. 그것도 턱뼈에.

“그 자식도 재수가 없었던 거야. 그러라고 때린 건 아니었을 텐데… 팀 옮기자마자 이런 일이 벌어지고…”

내가 카스트로와의 대화 내용을 공개하지 않았더니 베그웰까지 이런 말을 한다.

‘어휴! 미필적 고의라고 알아? 걘 다 알고 있었다고. 구단과 팬들에게 어필할 계기를 찾고 있었는데 기회가 생기자 우발적인 척 저질러 버린 거라고.’

그날 락커에서 했던 카스트로와의 대화를 후에 생각해봤더니 이런 결론이 나왔다.

‘그 자식이 그 사건의 흑막이야. 다들 그놈에게 속고 있는 거라니까. 카스트로가 일부러 일을 키운 건데… 어휴! 답답해, 어디 대나무 숲이라도 찾아봐야 하나?’

내 입은 무겁다. 이 일에 대해 떠벌릴 생각은 정말 1도 없다. 지금 그런 말 해봐야 아무에게도 득이 되지 않는다. 새로운 논란만 만들 뿐이다.

벤치 클리어링의 뒤끝은 길었다. 그 사건 다음 날부터 내 얼굴이 스포츠면의 제일 상단에 오르내렸다. 붙어 있는 타이틀이 끝내줬다.

『기쁨인가? 경멸인가?』

한국이나 미국이나 신문쟁이들은 똑같다.

‘내가 논란을 만든 게 아니라고. 맨날 왜 나만 억울해야 되는 거야.’

격론이 벌어졌다. 언론이 그렇게 만들었다. 그동안 나는 공식적인 팀 행사나 경기 후 수훈 선수 인터뷰와 같은 것 이외에는 전혀 언론과 접점을 가지지 않았었다. 그래서 유명한데 그 유명세로 인한 인기는 이름값에 못 미치는 독특한 선수였다.

이런 일이 생기자 각 언론사의 요란한 참전 행렬이 이어졌다. 음식 냄새를 맡은 파리 떼처럼.

‘결과적으로 나에겐 아주 좋은 일이 되었지. 덕분에 이런 휴식도 생기고… 역시 우리 팀 프런트가 일을 잘한다니까.’

바로 나의 올스타전 출전을 막아섰다. 내가 이번 사건으로 정신적인 충격을 받았다는 등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면서…

이런 식의 비난에는 이미 트레이닝이 되어 있어 별 신경 안 썼지만, 충격이 전혀 없지는 않았다. 생각지도 않은 일이 생기는 바람에 좀 놀라긴 했다. 다른 면으로

스포츠맨십에 어긋나는 비열한 행동이었다고 욕하는 사람이 한 절반 정도였다. 20%는 별걸 다 시비 건다고 언론 보도의 행태에 욕하는 사람. 나머지 30%가 나의 지지자들이었다. 럭스가 너무 민감하게 반응했다며 그 정도도 못 견디면서 빅리그 생활을 어떻게 해왔냐면서 오히려 그를 조롱했다.

‘거의 절반이 내 편을 들 줄이야.’

반대자를 반대하는 사람은 친구다. 즉, 나를 부정하는 주장을 하는 사람 외의 모든 사람과는 손을 잡을 수 있다.

그 사건을 통해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다. 세상에 정의는 있었다. 나의 팬들이 나의 정의다.

‘조금 문제이긴 해. 한쪽 주장으로 확 쏠리면 활활 타오르다 빨리 꺼지는데 이건 좀 의견이 맞서는 형태라서…’

사건이 일어난 지 며칠이 지났는데 아직도 시끄럽다. 결국 언론이 승자다. 그들의 최대목적은 이슈를 만들어 판매 부수를 늘리고 조회 수를 증가시키는 데 있는데 그들의 목표는 달성되었다.

‘내일 지나서 결론이 내려지면 사람들 관심이 좀 식지 않을까? 아니면 말고…’

어느 쪽이나 내게 별 손해는 없을 것 같다. 오히려 그 사건 이후 지금까지는 내게 득이 많았다. 나의 인지도가 대폭 상승했다. 악명도 영향력을 가진다. 그전까지 난 사람들에게 이름 정도 들어본 그저 그런 선수였는데 지금은 이슈메이커가 되었다. 나쁘지 않은 일이다.

“베그웰. 다 잘될 거야. 그리고 너도 내년엔 저기 나갈 수 있지 않겠어?”

“뭐? 기대 안 한다니까. 나가 봐야 위키 약력에 올스타 포수라는 것 한 줄 더 붙는 것밖에 없잖아. 그렇게 위로 안 해도 돼. 난 지금도 충분히 만족스럽다고.”

올스타전 한 팀 인원은 33명이다. 투수 13명을 제외하면 포지션당 두 명 정도다. 투표로 선발되는 9명을 제외하면 대략 팀당 한 명 정도가 추천으로 나갈 수 있다. 좁은 문이다.

“너무 일찍 포기하지는 마. 이제부터 하루하루가 달라질 테니까. 지금 기준으로 판단할 필요 없어. 우리가 최다승으로 정규시즌 우승하고 월드시리즈까지 제패하고 나면 인지도 자체가 달라질 거야. 팀이 최다승에 다가갈수록 매일매일 네 얼굴이 뉴스에 나오게 된다고. 넌 매일 출전하잖아.”

“그 이야기는 좀 그럴듯하네. 그럼 기대를 좀 가져볼까?”

더 확실한 방법이 있긴 하다.

“사람이 쪼잔하게 목표가 올스타전이 되어서는 안 되는 거잖아.”

“뭐? 그게 작아? 그럼 골든글러브 정도도 수상할 수 있도록 노력해보지.”

그 정도로도 안 된다. 대꾸 없이 계속 베그웰의 눈을 쳐다보자 그가 곤란한 얼굴이 되었다.

“야! So. 더 크게 할 거라곤 MVP밖에 없는데 그건 많이 어렵지. 너도 알다시피 내 타격 스타일상 홈런이 많을 수가 없잖아. MVP는 홈런왕의 트로피야. 난 안 된다고.”

어느 곳이나 예외는 있다. 그리고 난 기억하고 있는 예외가 하나 있었다.

“2001년 매리너스는 116승을 했어. 메이저리그가 162경기 체제로 바뀐 뒤 최다승이지. 그 해 아메리칸 리그 MVP가 누군지 기억해?”

“그거야… 음.”

“아는군. 그래 이치로야. 이치로가 홈런 타자였어? 그해 이치로는 0.350의 타율, 242개의 최다안타, 도루 56개로 1위였었지. 홈런 개수? 8개인가 그랬을걸? WAR이 7.7 정도였을 거야.”

지금 베그웰은 0.333의 타율로 리그 2위 최다안타 3위다.

“만약에 말이야. 우리 팀이 최다승으로 우승을 하고 네가 타율을 조금만 더 올린다면 네가 이치로만 못할 게 뭐가 있어? 넌 이치로보다 홈런도 많고 결정적으로 포수잖아. 내 생각엔 한번 노려볼만한 성적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식으로는 전혀 생각을 못하고 있었네. 하지만 성적이 조금씩 모자라잖아. 너무 큰 욕심은…”

너무 겸손하게 말한다. 정말 일은 세상 물정 모를 때 저질러야 하는 것인가 보다. 너무 잰다.

“물론 이대로는 어렵지. 하지만 너 4월에 4할도 쳤잖아. 그때 가능했다면 지금도 할 수 있어. 목표를 정해. 타율 1위, 최다안타 1위. 이건 마음먹기 따라서 할 수 있다고 생각해. 이것만 해내면 WAR은 확실히 이치로보다 높을 거야. 그러고 나면 명예의 전당도 보이지 않겠어?”

‘니가 그 정도만 해내면 우린 시즌 120승도 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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