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화. 누구든 약점은 있다
‘어이, 반갑구만. 오늘 자주 보게 되네.’
9회 원아웃 다시 디-백스의 2번 타자를 만났다. 스코어는 1:0 이기기에 아주 적당한 차이다.
‘어제 2:0 오늘 1:0이면 쟤네들 맛이 좀 가려나?’
기분이 매우 상쾌하다. 모처럼 만의 완봉승을 눈앞에 두고 있다. 올 시즌 들어 처음이다. 거기에 타자는 오늘 호구 잡은 디-백스의 신참.
이대로 이 경기를 나 혼자 끝내게 되면 우리 팀 필승조는 연투를 피하게 된다.
‘그럼 내일 경기도··· 흐흣. 스윕이 보이는구나.’
딱 하나 못마땅한 건 우리 타선이 이틀 연속 흐느적거리고 있다라는 것인데 그거야 이러다가도 어느 순간 다시 감이 돌아오리라 믿는다.
‘어쨌든 오늘 8회에 이길 점수는 뽑아줬잖아. 좀 억지스럽긴 했어도 그래도 점수는 점수지.’
4번, 5번이 외야플라이를 하나 못 날리고 쩔쩔매다가 투아웃 이후 6번 테일러의 내야안타로 겨우 점수를 뽑아냈다. 안타로 기록되었지만, 상대 3루수인 지금 상대 타자의 보이지 않는 실책성 플레이가 있었다. 상대 내야진이 우리 내야진 같았으면 어림없는 점수였다.
‘저놈이 오늘 삼진 하나에 병살타 두 개 치더니 정신을 못 차리고··· 그래 가지고 디-백스에서 자리 잡겠니? 좀 잘해봐.’
참 걱정이다. 저런 만만한 타자가 주전으로 계속 나와야 나도 선수 생활이 좀 수월할 텐데 오늘 플레이하는 꼴을 보니 내가 감독이면 벌써 잘랐다.
같은 지구에 이런 호구 하나 있기가 쉬운 일이 아닌데 제발 좀 다음 경기부터라도 잘하길 정화수라도 떠 놓고 빌어야 할 것 같다.
타석에 들어서면서도 계속 구시렁거리는 것이 보인다.
‘타자는 방망이로 말을 해야지. 입으로 공을 칠래?’
하는 짓을 보니까 앞으로 잘하긴 틀렸다.
‘형이 잘해 줄게. 똑바로 보고 하나 쳐 봐.’
“스트라익.”
몸만 꿈찔거리고 배트를 내진 못한다.
‘타이밍이 잘 안 맞아? 너도 어지간하네. 그래 가지고 어떻게 빅리그까지 올라왔어?’
내 싱커가 좀 예리하긴 해도 커트를 못할 정도는 아니다. 커트가 안 될 정도라면 내야 땅볼이 그렇게 많이 나오지도 않는다. 병살타 두 개 치더니 주눅이 들어 버린 것 같다.
‘이것 참! 이러다가는 저놈 타격 슬럼프가 올 것 같은데··· 그럼 안 되지. 동업자끼리는 상생해야 하는 게 아니겠어. 형이 아주 느린 거 하나 줄 테니까 천천히 보고 잘 생각해서 진짜 하나 쳐야 해.’
“스트라익.”
몸에 힘이 빡 들어간 건 보이는데 그 힘이 배트를 통해 배출되지는 못하고 있다.
‘너··· 이름이··· 뭐였더라? 암튼 너. 2번 타자면 중심 타선인데 그러다 진짜 잘린다. 좋은 공 줄 때 잘해라.’
아무래도 느린 볼은 쟤 취향이 아닌 것 같다. 얼굴에 핏기가 없어지는 것이 정신적 쇼크가 좀 있어 보이는데 이러다가 애 하나 잡을지도 모르겠다.
‘빠른 걸로 하나 줄게. 사람은 역시 자기가 잘하는 걸 해야지. 형이 많이 생각해 주는 거야. 앞으로 인사 잘하고.’
“스트라익. 배터 아웃.”
이번에는 폭발적 스윙이 이뤄졌다. 스윙은 날카로웠다. 공만 맞혔다면 장타가 되었을 것 같은 스윙이었다. 내 공은 빠르게 솟아올랐다.
보통은 하이 패스트볼을 목적구 삼아 하나 먼저 보여주고 비슷한 코스로 던지는데 지금쯤이면 저 둔한 녀석도 내가 같은 구질을 연속해서 던지지 않는다는 걸 알아차렸을 것 같아 그냥 무턱대고 던져봤다.
오늘 투구 수도 적고 안 쳐도 그만이라 생각하긴 했었지만, 진짜 이렇게 헛스윙을 해 줄지는 몰랐다. 참 고마운 녀석이다. 어떻게든 잘되어야 할 텐데 하는 꼴을 보니 그러기가 어려울 것 같아 매우 안타깝다.
주자 없는 9회말 투아웃. 아주 상쾌하다.
‘애리조나의 5월이 이렇게 시원해도 되는 건가? 어! 여기 돔구장이었지. 음. 에어컨 바람이 빵빵해서 아주 좋아. 왜 벌써들 일어나세요? 아직 한 타자 남았잖아요. 성질도 급하시네.’
이미 관중들은 포기한 것 같다. 여기서 게임이 끝날 거라 저들도 믿고 있다. 팬들의 믿음에 보답하는 것은 프로 선수로서 갖추어야 할 당연한 의무다.
“스트라익.”
디-백스 3번 타자의 무시무시한 스윙에서 일어난 바람이 마운드까지 밀려오는 듯하다.
‘관중도 포기했는데 니가 위대한 팬들의 뜻과 어긋나게 행동해서는 곤란하지 않겠니?’
타자의 의지는 가상하지만, 세상에 의지만으로 되는 일은 많지 않다.
‘빨리 꺼져. 완봉이···’
딱-
“악!”
청명하고 영롱한 소리다. 등활지옥 옥졸의 쇠몽둥이가 내 머리통을 때린다면 저런 소리가 날 것 같다.
‘하아! 설레발은···’
그런데 조금 이상하다.
‘응? 각도가··· 이거 잘하면···’
다행히 돔 천정에는 맞지 않았다.
‘떨어져!’
유려했던 포물선의 마지막이 급격하게 꺾이고 있었다. 중견수 레블론은 이미 펜스에 붙어있다.
‘아아아! 잡았다. 잡았어. 에구구! 마지막에 오히려 내가 맛 갈 뻔했네.’
레블론이 마지막에 가벼운 점프까지 해서 잡았으니 많이 위험했다. 웬만한 사이즈의 구장 같으면 넘어갔을 거다. 거기 좌중간 펜스까지가 126m였다. 게다가 그쪽은 펜스가 낮다.
‘돔구장이라서 거기까지 날아간 거야. 다른 구장 같으면 거기까지 어림도 없었다고···’
126m짜리라도 외야 플라이는 아웃이 룰이다.
“많이 놀랐어? 얼굴이 허옇게 떴는데···”
베그웰이 어느새 마운드에 다가와 있었다.
“놀라긴··· 이럴 때도 있고 저럴 때도 있는 거지.”
억지로 참았다. 정말 베그웰만 아니었으면 한소리 할 뻔했다.
‘아이! 정말! 타자 놈들아! 사람 살 떨리게 만들지 말고 한 게임에 두 점씩은 내라. 계속 이러면 살 떨려서 어떻게 던지겠어. 에라이, 접시 물에 코 박고··· 3루타 친 베그웰 넌 빼고.’
***
“오늘도 이겼네요.”
“So가 선발이었는데 지면 이상한 일이죠.”
근 10년 내에 팀이 이렇게 잘 나갔던 적이 없었다. 6할대 승률을 한 번 올려보는 게 소원이었는데 이번 시즌은 지금까지 7할 이상의 승률을 유지하고 있었다.
“요즘 타선이 가라앉은 게 좀 마음에 걸리기는 하는데··· 곧 다시 올라오겠죠?”
“글쎄요. 그건 장담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윌리스 단장의 태도는 너무 진지했다. 해리스 사장은 자신이 뭘 놓친 건지 생각을 더듬었다.
“예? 일시적인 부진이 아니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타격감은 그 사이클이···”
“말씀하시는 그런 면이 분명히 있겠습니다만, 다른 부분을 무시하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해리스 사장으로서는 이렇다 할 이유가 생각나지 않았다. 상당히 오랜 기간 자이언츠 구단에서 일하면서 여러 공부를 했었는데 아직도 단장의 오랜 경험에 의지해야 할 때가 가끔 있었다. 지금이 그때이다.
“좀 풀어서 말씀을 주시죠. 저도 좀 알아야 대처 방안을 좀 생각해 볼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말씀을 드리려고 했는데 시기가 애매해서··· 일단 우리 팀 타선은 약점이 있습니다. 그에 대해서는 이미 알고 계셨을 테고···”
“상하위 타선의 불균형을 말씀하시는 거라면 알고 있죠. 그것에 대해 당장 해결하기 어렵다는 것도 알고···”
“그렇죠. 불균형의 근본적인 원인이 내야수들에 있는 거라서 팀 컬러를 바꾸기 전에는 해결될 일이 아니죠. 그것에 대해서는 일장일단이 있다고밖에 말씀을 못 드리겠네요.”
수비력을 우선으로 내야진을 구성한 것에는 분명히 득 보는 점이 있었다. 평균적인 팀 내야진에 비해 평균 실점이 1점 정도는 낮아졌다. 물론 그 내야진의 타격 덕분에 기대 득점도 함께 그 정도는 낮아졌을 것이다.
“WFA(win-factor analysis)니 하는 수비 능력을 나타내는 복잡한 계산식 같은 걸로 득실을 따져볼 수 있긴 하지만 지금 그것이 중요한 건 아니고, 팀 현실이 그렇고 당장 개선이 안 된다는 점이 핵심이죠.”
“그거야···”
“그래서 상위 타선의 역할이 중요했었죠. 그 전초병의 역할을 이번 시즌 알버트와 베그웰이 맡았습니다. 지난 4월은 아주 좋았습니다. 무려 23승 3패를 해냈으니까요. 그 기간 그들의 타율은 4할이 넘기도 했었죠. 이달은 어떻습니까? 그들의 타율은 1할 정도가 떨어졌고 팀은 17승 11패를 했습니다.”
자이언츠는 여전히 메이저리그 전체 승률 1위를 질주하고 있었지만 4월과 같은 절대적 강함의 느낌을 주지는 못하고 있었다.
“알버트와 베그웰의 부진이 팀 전체로 이어졌다 이런 말씀이신 건가요?”
“그걸 부진이라고 말할 수는 없죠. 그 둘은 이달에도 3할에 육박하는 고타율을 유지하고 있으니까요. 다만, 지난달 같지는 않다라는 거죠. 지난달이 특별했던 겁니다. 그런 특별함을 다른 팀이 알아차리고 견제에 들어간 결과가 이달의 성적인 거고.”
“그 두 타자의 예봉이 꺾이면서 자연스럽게 4번과 5번의 득점 생산력이 낮아졌다라고 생각하시는 거군요.”
“그렇습니다. 통상적으로는 한두 타자의 타격이 침체된다고 해서 전체 타선에서 크게 두드러지진 않지만, 우리 팀 같은 경우에는 득점 생산력이 상위 타순에 집중되어 있어 바로 드러난 거죠. 그래서 타격 컨디션이 돌아온다고 해도 4월과 같진 않을 거라는 겁니다.”
이야기의 결론이 예전부터 논의해오던 타선 보강에 대한 쪽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지금 우리 팀 페이롤이 리그에서 열 번째 정도 됩니다. 사치세 기준까지는 약 8,000만 달러 정도의 여유가 있습니다. 올 시즌 이 추세라면 구단 수익은 큰 폭으로 증가할 겁니다. 당장 입장권 판매 수익부터 달라지지 않았습니까?”
구단주의 대리인 같은 존재가 페이롤을 늘리자는 이야기를 너무 당당하게 하고 있었다. 해리스는 쓰게 웃었다. 뭔가 입장이 반대가 된 것 같아 황당한 기분이었다.
“진심이신 겁니까? 지금 그 말씀은 제가 이 사안에 대해 결재를 올리면 지원하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될까요?”
“물론이죠. 물 들어왔을 때 노 저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현재 자이언츠의 페이롤은 약 1억 8천 5백만 달러. 사치세 기준은 2억 6천만 달러다. 애덤과 재계약을 하면서 연봉을 낮춰 내년 페이롤을 줄이기는 했지만. 추가적인 타자 영입 자금이 모자라 고민 중이었다.
“3,000만 불 증액을 건의해 보겠습니다. 그 정도를 애덤의 연봉 감소분과 합하면 쓸 만한 타자 하나쯤은 감당해 내겠지요. 영입 조건이 까다롭겠네요. 구한다면 내야 자원을 구해야 할 것 아닙니까. 수비 되는 FA급 타자라··· 그것참!”
“그런 타자가 있다면 좋기는 하겠지만 너무 거기 집착 안 하셔도 됩니다. 1루 자원이나 아니면 지명타자도 괜찮겠지요. 이럴 땐 우리 리그에 지명타자 제도가 생겨 편해졌군요.”
단장은 잘 돌아가고 있는 내야진을 건드릴 생각이 없었다.
“어정쩡한 수비를 하는 타자는 오히려 팀 전력에 마이너스 요인이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열심히 찾아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