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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성한 이레귤러의 커브가 드러남-98화 (98/200)

98화. 프런트 고민하다

통상적으로 25인 로스터를 구성할 때는 타자 13명과 투수 12명으로 한다. 투수를 보직별로 구분하면 선발 5명과 클로저, 프라이머리 셋업맨, 스윙맨, 세컨더리 셋업맨, 롱 릴리프, 원 포인트 릴리프, 패전처리 등 7명이 필요하다.

지금 선발이 6명이다. 그래서 문제가 복잡해졌다. 불펜의 질도 떨어지는데 숫자도 하나 적었다. 당장은 개선 방법이 없었다.

“그 문제에 대해서는 감독을 믿고 알아서 처리하라고 하신 것 아니었습니까? 감독은 결정하는 시기를 조금 늦췄고 그래서 6선발 체제를 4월 말까지 유지하기로 한 것이지 않습니까.”

“그럴 필요에 대해서 동의를 했었습니다. 올 시즌 4월 경기 스케줄이 원정으로 계속 이어져 불가피하다고 판단했었죠. 초반이라 선수들 몸이 완전하지 않을 때 시차 적응 문제까지 겹친다면 시즌 전체 운영 계획에 차질이 생길 것 같아서 라드 감독의 의견이 타당하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건 문제의 근본적 해결이 아니라 단순 봉합이었다.

“그런데 그 문제를 왜 지금···”

“일단 현실적으로 대두되는 조건을 모두 무시하고 선발을 결정해야 한다면 사장님은 누가 선발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그거야 바로 답이 나오지 않습니까? 윌도 똑같이 생각하실 것 같은데···”

그건 누구에게 물어봐도 답이 같을 수밖에 없는 문제였다. 팀의 장래를 생각하면 곧 은퇴할 선수가 물러서는 것이 맞다. 하지만 아직 한 명이 그걸 인정하지 않고 있었고, 그가 투수진의 암중 리더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게 문제 해결이 미루어진 가장 큰 이유였다.

메이저리그에서 라이브 볼 시대 이후 단일 시즌 가장 많은 이닝을 던진 투수는 1972년에 나왔다. 화이트삭스의 윌버 우드가 376과 2/3 이닝을 던졌다. 우드가 너클볼 투수라는 특수성이 있었지만, 최다 이닝의 기준이 200이닝인 지금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이닝 소화력이다.

그때 메이저리그는 연간 154게임을 했었고 선발 4인 로테이션이 일반적이었다. 같은 해 다저스에서 새로운 움직임이 나타났다. 최초로 선발 5명으로 시즌을 운영했다. 잠깐의 시행착오는 있었지만 1976년부터 다저스의 5인 선발 체제는 유지되었다.

수많은 비판론이 있었지만, 그 시스템은 리그의 대세가 되었다. 그 뒤 토니 라룻사 감독으로부터 시작된 불펜의 새로운 역할 분담에 영향 아 선발 5명과 불펜 7명은 25인 로스터에서 투수진의 기본적인 구성이었다.

“이왕 이렇게 되었는데 그냥 6인 선발로 계속 가면 어떨까요. 막상 월말이 되었는데 누구 하나 뒤처지지 않아서 선택이 곤란해질 수도 있지 않습니까? 괜한 분란 때문에 한창 좋은 분위기가 영향받으면 곤란해요.”

6인 로테이션은 2010년대 중후반 몇 개 팀에서 시도된 적이 있었다. 그것이 시도된 가장 큰 이유는 선발 투수의 내구성 문제 때문이었다. 메이저리그는 해가 갈수록 선발 투수의 이닝 소화가 줄어들고 있었다.

현재의 30개 팀 체제가 된 1998년 메이저리그는 연간 2,430경기를 치르게 되었고 283명이 선발로 나서 평균 6.06이닝을 던졌다. 이것이 20년 후에는 315명이 평균 5.51이닝을 소화하게 된다.

“이닝 소화가 줄어들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부상 때문이었죠. 1998년 200이닝 이상 던진 투수는 56명이었는데 20년 뒤에는 15명이 되었죠. 적게 던지는데 더 많이 다칩니다. 역으로 생각하면 부상이 빈번해져 더 적게 던지게 된 걸 수도 있습니다. 뭐든 간에 이닝 소화가 줄어든 건 팩트죠.”

윌리스 단장도 6인 로테이션에 대해서는 그렇게 부정적인 입장은 아닌 듯 말하고 있었다.

“그렇게 부상이 잦아진 원인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마도 선발 투수의 평균 구속 증가와 관련이 있을 것 같습니다. 2002년 88.6마일이던 패스트볼 평균 구속이 지난해 94마일이 되었죠. 타격 기술의 발전이 선발 투수에게 몸을 혹사시키지 않으면 버틸 수 없는 환경을 만들었다고밖에는 풀이가 안 돼요.”

“그런 면 때문이라도 우리 팀의 어린 선수들을 보호하고 부드러운 세대교체를 위해 4월 말까지로 되어 있는 6인 로테이션 계획을 좀 장기적으로 가져가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단장님께서도 큰 거부감은 없으신 것 같고···”

단장이 동조했다고 사장은 판단했다. 그는 선발 결정 문제를 여기서 못 박고 싶었다.

“제가 말한 건 원론적인 것이고 현실적 사정을 감안한다면 그렇게 하기가 어렵겠죠. 제 의견을 물으신 거라면 저는 올 시즌 당장 우리 팀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과거 6인 로테이션을 시도했던 몇 개 팀이 지금은 왜 안 하는 가에 대해서 신중하게 검토해볼 필요가 있겠지요.”

나쁘지는 않지만, 현실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곤란하다는 뜻이라고 해리스 사장은 받아들였다.

“지금 말씀하시는 것이 경제적 관점을 고려해야 한다는 뜻이라면 그 정도 각오는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우승을 위해 필요한 비용 지출이라면 못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필요한 투자입니다. 영원히 계속되어야 할 지출도 아니고 올 시즌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정리가 될 것입니다. 일시적으로 효과를 얻었던 전례도 있지 않습니까?”

“허헛. 모르는 척하시더니 연구를 좀 하셨나 보군요.”

해리스 사장이 즉흥적인 생각으로 이런 의견을 낸 것은 아니었다.

“2017년 월드시리즈 우승팀은 애스트로스였습니다. 그해 애스트로스는 규정 이닝을 채운 투수가 한 명도 없었지요. 6인 로테이션이라고 내세우진 않았지만 실제로는 시즌 내내 그렇게 투수진을 운용한 것이나 마찬가지였죠. 그 상대였던 다저스도 규정 이닝을 채운 투수는 커쇼 하나뿐이었고. 우리라고 그렇게 하지 못할 이유가 없지요.”

“규정 이닝을 채운 투수 없이 우승한 것은 딱 한 번 있었던 경우였죠. 그리고 좀 엄밀하게 말하면 중간에 영입한 벌랜더가 있었습니다. 애스트로스에서는 34이닝 정도를 던졌지만 전 소속 팀인 타이거스까지 합하면 170이닝이 넘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우리하고는 경우가 좀 다릅니다.”

윌리스 단장은 자신의 생각을 꺾지 않았다. 차분하게 사장의 논리를 반박해 갔다.

“2018 시즌 에인절스도 6인 로테이션을 가동했었고···”

“그 팀은 오타니의 투타 겸업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었습니다. 그 오타니라는 선수 자체가 투수로서 내구성을 장담하기 어려웠죠. 일본에서 이닝 소화 경험이 160이닝에 불과해 4일 휴식을 주기엔 아무래도 불안했을 겁니다.”

“져주실 마음이 없나 보군요. 좋습니다. 이렇게까지 말씀하실 정도라면 대책이 있으실 것 같은데 터놓고 말씀 좀 해주시죠.”

해리스 사장이 일단 한발 물러섰다.

“요즘 추세는 불펜에 8명을 두는 거죠. 25인 로스터에서 야수를 하나 줄였으면 합니다. 통상적으로는 선발 9명에 백업 4명을 두지만 3명만 둬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백업 포수를 하나만 쓰는 걸로 정리하면 됩니다.”

“그래서 불펜의 양을 늘린다? 그걸로 될까요?”

팜에 쓸 만한 불펜 자원은 없었다. 그게 가능했다면 벌써 불러올렸을 것이다.

“물론 그것만으로는 안 되지요. 지금 콜업할 수 있는 마이너 자원이라고 해봐야 좌완 정도 하나 불러서 원포인트 릴리프 정도로 쓸 수 있는 선수뿐이니까요.”

“그런데 왜?”

“애덤 산체스와 이야기를 해볼 생각입니다. 그러려면 일단 구단에서 최대한 그를 존중한다는 액션이 있어야 할 것 같아서 선발 결정을 한 달 미룬 겁니다. 그도 지금은 자신의 처지를 수긍하기 어렵겠지만 한 달 뒤라면 좀 달라질 수도 있겠지요.”

정말 너구리 같은 영감이라는 생각이 제일 먼저 해리스의 머리를 스쳤다.

“무슨 이야기를 하겠다는 겁니까? 이거 누구 아이디어인가요? 라드 감독 생각이었나요?”

“서로 의견을 주고받은 거죠. 먼저 말씀드리지 않은 건 아무것도 확실한 것이 없어서였습니다. 그냥 생각만 있고 결과가 전혀 예측이 안 되어서··· 어쨌든 만나서 은퇴를 말릴 계획이었습니다.”

“맨입으로는 안 될 것 같고 당근으로는 뭘 주려고 했던 겁니까?”

“불펜 전향을 결심한다면 2+1 정도의 재계약을 해주겠다고 말하려고 했었죠. 답변을 듣고 보고 드릴 생각이었습니다.”

해리스는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그는 애덤이 당연히 은퇴한다고만 생각했었다.

“선발을 여섯 명 둔다면 선수단의 총연봉은 당연히 증가하겠죠. 선발이 불펜에 비해 비싼 건 현실이니까 피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이건 구단의 입장이고 선수의 입장은 어떨까요?”

윌리스 단장이 다시 6인 로테이션 문제로 말을 돌렸다.

“예? 그게 고려해야 할 사항인가요?”

“6선발을 돌리게 되면 선발 투수의 시즌 전체 등판 횟수는 지금에 비해 6회 정도 줄어들게 됩니다. 그럼 구단이 선발 투수에게 지금과 같은 연봉을 책정할 수 있겠습니까? 기존의 선발들은 별로 반기지 않을 결정입니다. 괜한 분란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당장은 아니라지만, 개인의 연봉이 낮아질 수도 있는 결정은 선수도 반기지 않습니다.”

윌리스 단장은 사장이 고려하지 못한 전혀 새로운 관점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잘 던지는 투수가 더 많이 출전해야 더 나은 성적을 기대할 수 있겠지요. 6인 로테이션이라면 오히려 팀 성적이 하락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나온 어떤 데이터도 하루 더 쉰다고 더 나은 지표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개인차는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그렇습니다.”

“그런 통계가 있었나요?”

- “2010년에서 2014년까지 선발 투수의 등판 간격을 조사한 통계 자료가 있습니다. 그것에 의하면 4일 휴식의 경우 평균 6이닝 소화했고 ERA는 4.00이었습니다. 5일 휴식 후에도 평균 6이닝, ERA 4.04으로 의미를 부여할 만한 차이가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6인 로테이션이라는 게 보기만 좋은 떡이라는 건데···”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단장이 또 틀었다. 사장은 헷갈리기 시작했다. 도대체 무엇을 주장하려는 건지 파악하기가 힘들었다.

“로스터의 확대 혹은 선발 투수가 한 명 늘어나서 생기는 페이롤의 증가는 장기적으로 보면 투수 평균 연봉이 낮아지게 되면서 지금과 큰 차이 없는 연봉 체계가 만들어질 확률이 높습니다. 그래서 그것으로 인한 구단의 경제적 손실은 일시적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통계적 문제는 익숙함이 배제된 상태에서 측정된 것이라 무조건 신뢰하기는 어렵습니다.”

“기본적으로 5일 휴식이 보장된 상태에서 통계를 내면 다를 수는 있을 것 같긴 하네요. 4일 휴식 기본에서 가끔 있는 5일 휴식을 표본으로 뽑아낸 것이라면 그렇게 정확하진 않겠군요.”

사장으로서도 맞는 말을 하는데 동의를 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허! 윌리스. 그냥 결론을 말해 주세요. 저로서는 당신이 무엇을 주장하려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네요.”

사장이 모양새 있게 손을 들어줘야 할 시점이 되었다.

“별거 없습니다. 간단합니다. 먼저 하면 손해라는 거죠. 남들 다 하면 그때 따라 하면 됩니다. 리스크 관리는 사업의 기본이 아니겠습니까? 5인 로테이션으로 애덤을 주저앉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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