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화. 이래도 선발 경쟁이 없을까?
세상 참 불공평하다. 지난겨울 타고나는 것이 뭔지 확실하게 알아 버렸다.
“그 달코스키라고 있잖아. 알아?”
“알지. 야구 선수. 특히 우리 투수들 중에 그 이름 안 들어본 사람이 있을까?”
스티브 달코스키. 엄청나게 유명한 투수의 이름이다. 아는 사람은 다 안다. 가장 빠른 공을 던졌던 투수. 그의 활동 시기가 스피드 건이 없던 시대여서 정확한 구속은 알 수 없지만, 추정 구속 100마일 이상.
‘110마일이라는 말도 있고 120마일은 될 거라고도 하고··· 빠르긴 겁나게 빨랐나 봐.’
그를 상대해 봤던 동시대 그 어떤 타자나 다 같은 말을 했다. 그보다 공이 빠른 투수는 본 적이 없다고. 그 어떤 타자들에 테드 윌리암스, 칼 립켄 시니어 정도가 포함된다. 하지만 달코스키는 메이저리그에서 단 한 경기도 뛰지 못했다. 마이너에서만 9년을 보냈다. 그는 공만 빠른 투수의 대명사다.
그는 고교 때 18개의 삼진을 잡으며 노히트 노런을 했다. 볼넷도 18개였다. 정말 불가사의하다. 한 게임에 볼넷 18개를 내주면서 한 점도 안 줄 수 있다니. 그에게는 황당한 일화가 많았다. 그는 마이너 경기에서 한 게임에 24개의 삼진을 잡은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 게임은 졌다. 볼넷 18개, 몸에 맞은 공 4개, 6개의 폭투가 나왔다.
“난 이번 겨울 동안 존슨을 보면서 달코스키 생각이 나더라고.”
“뭐? 허! 그것참 큰일이네. 제구가 그렇게 무너졌어?”
소르카가 뭔가 오해를 했다.
“아니 그 반대야. 엄청나게 좋지는 않은데 그럭저럭 스트라이크와 볼을 구분해서 던질 정도는 돼.”
“그래? 그럼 달코스키가 생각났다는 건 뭐야?”
“만약 달코스키가 제구를 잡았다면 존슨 같겠구나 싶더라구.”
“진짜야?”
존슨은 상상을 초월하는 괴물이었다. 정말 타고난 피지컬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었다.
“우리가 맨날 러닝하던 곳이 연못인지 호수인지 아무튼 그 주변을 도는 거였는데 그 중간에 골프 칠 때 호수를 넘겨야 하는 구간이 있었거든 약 100m쯤 되었어. 어느 날인가 로저스가 돌멩이를 집어 들더니 거기로 휙 던지는 거야. 거의 끝까지 날아가긴 했는데 넘어가진 못했지.”
“왜 던졌는데···”
“그거야 나도 모르지. 어쨌든 그렇게 던졌는데 체이스가 막 놀렸어. 그 정도도 못 넘기냐고. 그러더니 자기도 던졌는데 아슬아슬하게 넘어가더라고. 로저스가 열 받았는지 몇 번 더 시도했는데 결국 못 넘겼어. 그러더니 그래. 균일하지 못한 돌멩이로 던져서 그렇다는 거야. 손에 잘 맞는 돌멩이를 체이스가 우연히 잘 골라서 이런 결과가 나왔다는 거지.”
그들은 어려서 그런지 아무것도 아닌 일로 겨울 내내 툭탁거렸다.
“그래서···”
“뭘 그래서야. 러닝 끝나고 균일한 재질의 야구공으로 한 번 더하기로 했어. 그냥 하기는 밋밋했는지 러닝하는 내내 넌 내 상대가 아니다 어쩌구 하다가 결국 1,000달러씩 걸고 하는 걸로 결론을 냈지.”
연장 계약이 좋긴 좋았다. 100달러에 아쉬워하던 애들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아무렇지도 않게 도락에 1,000달러를 지르는 꾼들이 되었다.
“누가 이겼어? 혹시 너도 했냐?”
“나? 난 그런 짓 안 해. 애들 노는 데 내가 낄 수야 없지. 하지만 했다면 분명히 넘기긴 했을 거야. 그 까짓거 별거 아니라고. 아무튼 돈은 쟤가 다 땄지.”
턱 끝으로 마운드 위로 올라가고 있는 존슨을 가리켰다.
“오후에 다시 그곳으로 갔지. 존슨이 나도 참가하고 싶다고 하더군. 기고만장한 애들이 앞뒤 가렸어? 당연히 찬성이었지. 제일 먼저 던졌는데 그 뒤로 아무도 안 던졌어. 너무 비교될 것 같아서 던질 수가 없었겠지.”
“어느 정도나 날아간 거야? 좀 상상이 안 되는 이야기네. 팔팔한 20대 초반의 파워피처들을 기권시킬 정도라는 게 어느 정도 거리인지.”
거짓말 같겠지만 진짜다.
“움. 내 생각에 여기 펜스 중앙에서 던지면 홈플레이트 뒤쪽 철조망 정도는 넘길 수 있을 것 같은데···”
소르카가 펄쩍 뛴다.
“너 제정신 맞아? 뭔가 계산을 잘못한 거 아니야? 펜스 중앙에서 홈플레이트까지 120m에 홈플레이트에서 저 보호망까지 다시 한 10m, 보호망 높이가 얼핏 봐도 7~8m는 되어 보이는데··· 말도 안 되는 소리 좀 그만해. 애초에 그 연못이라는 곳 거리가 정확하지 않았던 것 아니야? 눈대중이었을 테니까 100m가 안 되었겠지.”
눈대중은 맞지만 100%는 아니었다. 일반적으로 골프장에는 야드목이라고 부르는 거리 표시 말뚝이 곳곳에 박혀있다. 우리가 있던 그곳에는 50야드(약 45m)마다 거리 표시가 되어있었다. 오차는 있겠지만 그리 크지 않을 것이다. 그때 그의 공은 야드목 3개를 지났다. 그 뒤로도 더 날아갔을 것 같은데 공을 시선에서 놓쳤다.
존슨의 연습 투구는 점점 속도를 붙여가고 있었다. 몇 구가 지나고 이제 가볍게 던지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소리가 났다.
퍽-
그래도 포구음이 완벽하진 않다, 아직까지 완전히 채지 않고 있다.
“빠르긴 하지만 아주 특별한 속도까지는 아니잖아. 95마일 정도 될까? 저 정도야··· 여기가 공만 빠르다고 견딜 수 있는 리그는 아니지.”
동의는 하는데 저건 의도적으로 오프스피드 피치를 연습하는 거다. 언젠가부터 존슨의 관심사는 더 빠르게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더 느리게 던질 수 있을까였다.
고 감독은 코어 근육의 단련과 유연성 향상의 목적이 구속 증가에 있는 건 아니라고 했었지만 같은 교육이라도 사람마다 얻는 건 다른 것 같았다.
‘저런 몸을 타고 났어야 하는 건데···’
일찍 성장이 멈춰버린 나와 정말 많이 비교되는 녀석이다. 타고난 것이 다른 거라고 스스로 위로를 해봤지만, 설득력이 없었다. 2미터가 넘는 키에 좀 마른 것 같은 느낌이 있는 몸은 외견상 그대로였지만 겨울 동안 그 내용물이 완전히 달라졌다. 코어 근육은 더 단단해지고 질겨졌다.
퍽-
포구음은 점점 더 뚜렷해졌다. 이제 공을 채고 있다. 연습 투구의 구속이 계속 상승하고 있었다.
패스트볼. 투구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구종이다. 변화구 구사율이 해마다 높아진다고 하는 메이저리그도 투수가 던지는 공의 절반은 아직도 패스트볼이다. 그리고 투수들의 패스트볼 평균 구속은 해마다 높아지고 있다.
현재 메이저리그 전체 투수의 패스트볼 평균 구속은 94마일쯤 된다. 선발보다 불펜 투수가 좀 더 빠르지만, 그 차이는 1마일 안쪽이라 그런 차이가 나는 건 투구 수가 다르기 때문이지 패스트볼을 던질 수 있는 능력은 거의 같다고 봐도 괜찮을 것 같다.
패스트볼 구사 비율은 해마다 떨어지는데 평균 구속이 늘어나는 이유는 타자들의 적응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투수가 가장 많이 사용하니까 당연히 타자들이 가장 빨리 익숙해졌다.
메이저리그 타자들의 패스트볼에 대한 평균 타율은 2할 7푼이 넘는다. 어떤 구종보다 높다. 투수들이 가장 많이 던지고 타자들은 가장 잘 치는 구종이 패스트볼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타자들이 가장 잘 치지 못하는 구종이기도 하다.
전체 투수가 아닌 탈삼진 상위 10위 이내의 리그에서 최고 구위를 가졌다고 평가받는 투수들을 대상으로 통계를 내보면 이들의 패스트볼 평균 구속은 리그 평균보다 2마일쯤 더 높다.
타자들은 패스트볼을 가장 잘 친다. 익숙하니까. 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더 빠른 패스트볼은 잘 치지 못했다. 늘 그렇게 리그는 흘러왔고 더 빠르게 더 빠르게가 투수들의 모토가 되었다. 타자들이 익숙하지 못한 스피드를 내기 위해 투수들은 노력해 왔다.
아주 특수한 나 같은 경우를 제외하면 평균 이하의 패스트볼을 가지고 리그에서 살아남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존슨의 패스트볼은 지난겨울 더 빨라졌다. 그의 목표는 투구 밸런스의 향상이었지만 의도한 바와 다르게 그렇게 되어버렸다.
정말 감당하지 못할 짜증이 밀려왔었다. 왕년에 구속 몇킬로 늘여보겠다고 몸 망가지는 걸 외면하며 미친 듯이 노력했던 나였었다. 그런데 누구는 의도하지도 않았는데 구속이 쑥쑥 늘어난다는 게 너무 불공평하게 느껴졌다.
‘원래도 100마일을 던지는 놈이었는데 거기서 더 늘어나는 게 말이 되냐구.’
고 감독이 자제시켰다. 구속이 빠른 것은 분명히 좋은 일이지만 몸이 감당할 수 있냐는 다른 차원의 문제라면서. 100마일이면 충분히 빠르단다.
‘의도적으로 스피드를 줄이다니 나 참! 어이가 없어서···’
메이저리그 역대 선발 투수 중에 패스트볼 평균 구속이 100마일 이상 되었던 투수는 없었다. 당연히 모든 공을 그렇게 던질 수는 없다.
‘디그롬이 평균 99.2 마일을 찍었던 시즌이 있긴 했었지.’
존슨은 더 빠르게가 아니라 더 느리게 가야 한다고 방향을 180도 바꿔버렸다. 밸런스 교정에 힘을 쏟았고 꼬임각을 억지로 크게 하면서 만들어지는 100마일이 아닌 한결 안정감 있는 100마일을 재창조해냈다. 체인지업을 서드피치로 추가시켰다.
‘그래도 다 잘하지는 못하더라구. 저놈은 패스트볼에 특화된 괴물이었던 거야.’
체인지업 장착은 실패했다. 원래 세컨 피치로 던지던 슬라이더도 별로였는데 체인지업의 투구 폼을 패스트볼의 투구 폼과 일치시키지 못했다. 너무 티가 났다. 체인지업을 그렇게 던지면 그건 느린 패스트볼과 다를 바 없다.
‘안 되는 건 깨끗이 포기하고 잘하는 것만 하자고 고 감독이 그러더군.’
그래서 그때부터 존슨은 패스트볼 단일 구종만 던지는 투수가 되었다. 다만, 패스트볼에 구속 변화를 준다.
‘투구 폼에 여유가 생기니까 공 컨트롤이 편해졌고, 강약 조절이 가능해져 버렸지. 되는 놈은 된다더니··· 이래도 되고 저래도 되고···’
같은 패스트볼에 속도 변화를 주는 것은 내가 원조다. 아니 예전에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선배 투수들이 있었겠지만 고 감독에게 그 요령을 가르쳐준 건 나다. 그런데 왜 100마일을 던질 수 있는 놈에게 상의도 없이 그런 비전의 기술까지 가르쳐 괴물을 만드냐 말이다.
‘하긴 저놈이 난 놈은 난 놈이지. 가르친다고 배울 수 있는 게 아닌데···’
“원래도 저 정도는 던졌잖아. 첫 등판 때보다 구속은 좀 올라온 것 같네. 마무리 동작에서 발 딛는 거 달라진 것밖에는 특별히 바뀐 건 잘 모르겠는데··· 브레이킹 볼도 별로고. 저러면···”
소르카는 상당히 부정적이다. 당연하다. 보고 싶은 것만 봤으니까.
“존슨. 쟤 초구 구속이 90마일 초반 정도였잖아. 대략 92마일. 지금은 어느 정도지?”
“뭐야? So. 지금 그 말이 의도적으로 같은 폼을 유지하면서 구속 조절을 했다는 뜻인 건가? 포심 패스트볼 단일 구종을?”
“직접 봐 놓고 뭘 물어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