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화. 봄맞이
퍽-
“로저스 공이 좀 이상해진 것 같지 않아?”
라드 감독은 뚫어져야 연습 투구 중인 웹 로저스를 주시했다.
“저도 그런 것 같기는 한데 정확하게 뭐가 달라진 건지는 잘 모르겠네요. 그냥 아직 몸이 다 올라오지 않아서 구속이 낮아 그렇게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투수 코치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는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이번 겨울에 So와 같이 체력 훈련을 했다고 하더니 거기서 투구 메커니즘에 변형을 준 것 아닐까? So에게 인스트럭터가 있잖아. 그가 혹시···”
잘나가는 선수가 괜한 욕심으로 폼 수정을 하다가 망가지는 경우를 너무 많이 봐 왔었다.
“그런 부분은 미리 주의를 줬었습니다. 폼 수정을 원하면 미리 상의를 하라고.”
“당연히 그렇게 해야지.”
“겨울에 평년보다 일찍 훈련에 들어갔었다고 해서 어제 이것저것 슬쩍 물어봤는데 플로리다에서 별다른 일은 없었던 것 같더군요. 체력 훈련 위주의 프로그램 외에 특별히 다른 것을 하지는 않았답니다. 고라는 그 코치도 폼에는 전혀 손대려 하진 않았구요.”
그건 확실한 것 같았다.
“그러면 왜 저렇지? 웨이트를 많이 해서 체형이 변한 것도 아니고··· 그런데 체력 훈련 위주로 했다더니 근력 훈련을 한 몸이 아니잖아.”
“겨울 동안 기구를 이용한 웨이트는 전혀 안 했다고 하더군요. 겨울 동안 소화했던 체력 훈련 프로그램이 웨이트 트레이닝 대신 필라테스를 하는 걸로 짜여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
필라테스가 메이저리그에서 많이 이용하는 운동 방식은 아니다. 야구 선수들의 웨이트 트레이닝은 타자와 투수가 확연하게 다른데, 타자의 웨이트는 주로 당기는 운동에 집중되어 있고 투수는 자신의 힘을 밀어내는 형식으로 운동을 한다.
“필라테스라···”
“자넨 동계훈련에서 주로 무슨 운동을 했었지?”
“현역 때 말입니까?”
감독의 물음이 의외라는 듯 리우드 코치의 어깨가 들썩였다.
“그래. 그때···”
“기본은 러닝이죠. 웨이트는 아령을 이용한 체조를 하고 튜빙 운동을 병행하기도 했었죠.”
그 당시 투수들은 대개 그렇게 했었다. 코치의 말에 동의하는 듯 감독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때는 그랬었지. 뒤에 기구를 사용하지 않고 원심력을 이용한 운동이면 된다고 해서 그런 쪽을 하는 선수가 늘어났었고. 기구를 이용하면 유연성을 제한하게 된다나 어쩐다나 그런 말들이 돌았었지. 요즘은 선수들에게 무슨 운동을 하라고 권유하나?”
라드 감독은 자신이 추세를 못 따라가고 있는 것이 아닌지 슬쩍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요즘 대세는 기구 없이 자신의 몸무게를 이용하는 웨이트 트레이닝이죠. 푸시업이나 의자에 앉아서 양팔로 자신의 몸무게를 지탱하는 훈련 뭐 그런 걸 합니다. 유연성을 길러준다는 러닝 체조법도 있구요.”
“투수의 웨이트라는 게 잔근육을 발달시켜서 주로 부상 방지의 효과를 노려야 한다는 주장도 있더니 그게 이제는 필라테스까지 하게 하는군.”
예전 한때 각 스포츠에서 기초 운동으로 필라테스를 도입하려는 움직임이 있기도 했었다. 하지만 접근성의 문제 때문에 필라테스는 대세가 될 수 없었다. 난이도가 너무 높았다. 초보자가 익숙해지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제법 알려진 사실이었지만, 투수 코치는 감독이 모르는 걸 굳이 아는 척하고 싶지 않았다.
“원래 투수의 웨이트에 대해서 찬반논쟁이 있었지 않았습니까. 필라테스를 시켰다는 것도 그 연장 선상에서 이해하면 될 것 같습니다. 제 생각엔 그게 특별히 나쁠 것 같지는 않네요.”
투수에게 웨이트 트레이닝이 필요 없다라는 무용론을 주장하는 근거는 꽤 많다.
근육이 발달하면 유연성을 해칠 가능성이 높다. 단기간에 힘을 넣는 능력을 향상시킨다 해도 그것을 자유롭게 제어할 수 없다면 효과가 떨어진다. 신체 근육을 균형 있게 발달시키기가 어렵다. 일반적으로 하체보다 상체가 더 빨리 발달하기 쉽다 등등.
“웨이트를 특별히 안 시켰다면 고 코치라는 사람이 그런 쪽 의견에 가깝다는 뜻이겠지?”
“그렇겠지요.”
웹 로저스가 스프링 캠프 첫 연습 투구를 마치고 내려갔다.
“나쁘진 않네. 웨이트야 어찌 되었든 간에 기본 체력 운동은 열심히 했나 봐. 별로 힘들어하는 기색도 없고”
곧이어 데이브 존슨이 마운드로 올라왔다. 리우드 투수 코치는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지는 것 같았다. 그의 가장 아픈 손가락의 등장이었다.
6피트 6인치에 이르는 키. 그 키에 비해 체중이 좀 덜 나가는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100마일 이상의 패스트볼을 뿌릴 수 있는 강인한 신체를 가졌다. 호리호리한 체형의 파워피처도 드물지 않게 있었다.
제구가 아주 좋지는 않지만, 볼과 스트라이크를 구분해 던질 수도 있다. 그 정도면 파이어볼러로서는 차고 넘치는 수준이다. 세컨 피치로 쓰는 브레이킹 볼이 조금 약한 흠은 있었지만, 그것마저 좋으면 유망주가 아니다.
“존슨도 So와 같이 훈련했었다지?”
“그랬다는군요.”
“어떻게 생각하면 저 친구도 운이 참 없었던 것 같아. 한창 뻗어 나가야 할 때 경쟁자로 So를 만났으니···”
감독의 그 말에는 동의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So는 풀타임 첫해 드와이트 구든 급의 성적을 낸 괴물이었다. 그는 아직 성숙하지 못한 존슨이 경쟁할 수 없는 상대였다.
“그런 면이 있죠. 그래도 샌드다운 당하고 AA까지 밀렸다가 후반기에 다시 반등한 걸 보면 워크에씩이 아직 떨어지지 않았다는 거죠. 향상심과 투쟁심이 있다면 더 발전할 수 있을 겁니다. 지난 시즌 부진도 멘탈의 문제가 컸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나이도 24살이고 기대해 볼 만합니다.”
팍-
“확실히 패스트볼이··· 응? 저거 뭐야?”
“헛. 그러게요.”
존슨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었던 투구 후 균형을 잃고 1루 쪽으로 심하게 쏠리던 몸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작아져 있었다. 단점을 보완한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안 된다.
“지금 구속이 어떻게 되지?”
“94마일입니다.”
“어허! 이걸 어떻게 생각하나?”
“폼의 변화 때문에 구속이 저하된 것인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습니다. 날씨가 풀릴 때까지 좀 더 두고 봐야···”
감독의 시선이 투수 코치의 눈을 찾았다. 오늘 애리조나의 낮 기온은 섭씨 26도였다.
“그렇지. 기온이 좀 더 올라가면 나아지겠군.”
감독은 리우드 코치의 애절한 눈의 외침을 거부할 수 없었다. 마지못해 억지로 동의해 줬다. 리우드 투수 코치 역시 더 할 말이 없었다. 그저 이 상황이 암울하게만 느껴졌다.
***
『자이언츠는 부동의 에이스 소르카와 지난 시즌 내셔널리그 사이영상 3위였던 So로 이루어진 리그에서 가장 강력할지도 모르는 원투펀치를 갖췄다. 하지만 3선발인 드로이넨은 견실하지만 한계가 뚜렷하고 4선발 애덤 산체스는 작년부터 노쇠화의 기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계약 마지막 해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을지는 미지수. 5선발 웹 로저스는 아직도 보여줘야 할 것이 많이 남았다. 강력해 보이지만 그만큼 불안 요소가 많다. 타선은···』
“우리 선발진을 리그 5위로 평가하다니 좀 많이 박하군요. 제 생각엔 적어도 TOP3 안에는 들어갈 것 같은데···”
해리스 사장은 많이 불만스러웠다. 자이언츠의 팀전력이 우승 후보군까지는 아니더라도 투수력만큼은 다른 팀 부럽지 않게 키워냈다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5위라는 건 납득하기 어려운 순위였다.
“언제 언론이 미리 하는 예상이 맞았던 적이 있었나요? 그들이 그걸 정말 맞힐 수 있었다면 신문사가 아니라 스포츠 도박을 하고 있었겠죠.”
윌리스 단장도 썩 마음에 드는 기사는 아니었는지 냉소적 반응이다.
미국은 라스베이거스가 있는 네바다주를 제외한 모든 주에서 스포츠 베팅이 법으로 금지되었었다. 하지만 2018년 미 연방대법원이 스포츠 도박의 금지가 위헌이라고 판결한 뒤 뉴저지, 펜실베이니아, 인디애나, 일리노이주 등에서 이것을 합법화했다. 지금은 총 16개 주가 이에 동참하고 있었다. 2021년 연간 약 800억 달러였던 베팅 규모는 매년 40%씩 성장해 지금에 이르렀다.
“그건 그렇겠군요. 원래 그 친구들의 관심사는 예상이 정확해야 하고 이런 건 아니죠.”
단장의 서슬 퍼런 기세에 얼른 동조하고 말았다.
“그들이 베팅 업체와 본질적으로 뭐가 다른지 잘 모르겠어요. 그들이 다른 건 베팅에 어떻게 관심을 모을 것인가에 대해 집중하는 것 정도의 차이겠죠. 그들에겐 원칙도 없고 조회 수가 정의죠.”
단장의 호응도가 너무 높다.
“재미있게 표현을 하시는군요. 그렇게 말씀하시면 우린 덜떨어진 도박꾼이 되어버렸네요. 칩을 쌓아 놓고 레이즈(RAISE)를 감당하지 못했으니···”
결국 스토브 기간 동안 타자를 구하지 못했다.
“비전만 가졌는데 판돈을 올리는 건 바보짓이죠. 우리가 바보가 아니었을 뿐이에요. 오픈된 카드만 보고 베팅하는 초보자의 실수를 우리가 범할 수야 없지요.”
도박판에서 초보자가 돈을 따는 경우도 가끔 있다. 초심자의 행운이라고 부르는 그것을 기대하고 상대의 베팅을 받아주기에는 판돈이 너무 컸었다. FA 타자는 많이 비쌌다.
계약 기간만 좀 짧았더라도 미친 척하고 콜 정도는 하려고 했었는데 다른 팀들의 무모한 베팅에 마지막까지 어울려 줄 수가 없었다. 다른 팀 단장들이 한꺼번에 다 미쳐버렸다.
“해마다 선수들 연봉이 오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지금 시장은 너무 과열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반면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질렀어야 하지 않았나라는 후회도 있고.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요. 꼭 이루어지는 플랜은 없지요. 거기에 너무 집착하면 큰 그림이 일그러질 수도 있었습니다. 우린 코어를 만들어냈어요. 급할 것 없습니다. 차선을 찾으면 됩니다. 상반기에 성적을 올리고 여름 이적 시장을 노려서 준비를 할 겁니다.”
“그 말씀대로 된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제시할 수 있는 트레이드 카드가 애매하지 않습니까? 타자를 얻자고 타자 유망주를 줄 수는 없는 노릇이고 결국엔 투수를···”
내 것을 주지 않고 남의 것만 가져올 수 있는 최상의 결과가 현실에 존재하긴 어렵다.
“일단은 좀 두고 보시죠. 다행한 일이라고 말하기는 좀 애매하지만 우리 팜에 투수 유망주는 좀 여유가 있는 편이라 원하는 성적이 나오고 적당한 타자가 있으면 실행하는 것에는 별문제가 없을 겁니다. 존슨도 있고···”
사장에게 데이브 존슨은 좀 아깝다는 생각이 얼핏 머리를 스쳐 갔지만, 마냥 기다려주기엔 작년에 그가 준 실망이 너무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