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각성한 이레귤러의 커브가 드러남-84화 (84/200)

84화. 단위가 생소하다

“7년 1억 150만 달러라구요?”

“예. 연간으로 따지면 평균 1,450만 달러죠.”

‘참! 애매하게도 질렀네.’

조건이 후할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이건 뭔가 좀 모자라는 것처럼 느껴지는 액수다.

“마일리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일단 연장 계약을 하지 않았을 경우 동 기간에 받을 수 있는 연봉을 추산해 봤어요. 다음 시즌은 거의 최저 연봉이나 마찬가지일 거고 연봉 조정 자격을 가지게 되는 4, 5, 6년 차를 현재까지 최고 연봉으로 추산한다고 해도 1150만 + 2000만 + 2700만이면 총 5850만 달러가 되지요.”

“그런 식의 계산은 좀 곤란할 것 같은데 벨린저가 4년 차 최고 연봉을 받았을 때 그는 내셔널리그 MVP였고 5년 차 최고 연봉인 베츠도 아메리칸 리그 MVP였었지. 영수가 내년에 사이영 상이라도 타지 않으면 그 정도 수준의 연봉을 받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워. 한 번 정도라면 몰라도 3년간 연속해서 그 정도 성적을 낼 것이라고 어떻게 장담을 하냐구.”

고 감독이 불쑥 끼어들었다. 좀 거슬리는 말이긴 했지만 틀린 말은 아니다. 더군다나 난 투수다. 매일 경기에 출전하는 타자에 비해 차감 요인이 있다.

“기준을 그렇게 잡자는 거지 꼭 받을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잖아요. 올 시즌 성적을 기준으로 삼아서 비교해 볼 만한 기준점은 있어야 해서 그렇게 잡은 겁니다. 연봉은 해마다 상승 추세이고 서비스 타임 마지막 해가 앞으로 4년 후잖아요. 그 정도 잡아도 큰 오차는 없을 거예요.”

마일리의 말도 설득력이 있었다.

“연장 계약을 하지 않을 때 서비스 타임의 예상 연봉을 그 정도로 잡으면 1억 150만 달러 중 4,300만 달러가 FA 후 3년간의 연봉이 됩니다. 연간 1400만 달러가 조금 넘는 수준인데 좀 적긴 하지요. 하지만 그때가 35, 36, 37세 시즌이라는 걸 감안한다면 오히려 후한 쪽에 가까운 조건이라고 생각해요.”

“만약 서비스 타임 후 FA를 선언하게 되면 어느 정도 수준의 계약이 가능할까요? 그때까지 올 시즌에 준하는 성적을 유지한다고 가정하고요.”

답은 뻔하지만, 물어보고 싶었다.

“장기 계약은 일단 힘들다고 봐야겠죠. 보통은 단년계약에 팀 옵션이 있는 1+1 정도일 테고, 아무리 후해도 2+1 정도겠죠. 그 이상은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단년계약일 경우 연봉은 연간 3000만 달러 정도가 기준이 될 겁니다.”

내 생각과 그렇게 차이 나지 않는 대답이었다.

안정적인 선수 생활을 원한다면 연장 계약을 받아들이는 것이 맞고 한 방을 노리려면 FA를 해야 한다.

“난 솔직히 연장 계약을 하는 쪽이 낫다고 생각해. FA까지 4년 남았고 넌 지금 30살이야. 그사이에 어떤 일이 있을지 몰라. 이건 자이언츠에서 큰 인심 베푼 거야. 무조건 잡아야 해.”

고 감독이 연장 계약을 찬성하고 나섰다.

“마일리 씨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조기 연장 계약의 사례를 들자면 레이스에서 뛰었던 에반 롱고리아를 다들 이야기할 겁니다. 그는 메이저 콜업 첫해인 2008년 서비스 타임 전체를 포함하는 6년과 팀옵션 3년을 추가한 최대 9년 계약을 했죠. 9년 총액 4400만 달러였었죠.”

상당히 논란 많았던 계약으로 기억하고 있다.

“사람에 따라 생각은 엇갈리지만, 전 그 계약이 롱고리아 개인과 구단의 입장에서 서로 윈-윈 이었다고 생각하거든요.”

“왜 그렇게 생각하죠? 그건 구단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계약이었지 않나요?”

“그건 결과론이죠. 그때 롱고리아는 가능성밖에 없었어요. 그 가능성이 꽃 피우게 된 건 장기 계약으로 인한 안정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장기 계약으로 인해 실적 없는 어린 선수였던 그가 주전 경쟁이나 장래에 대한 불안 없이 온전히 운동에만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 거죠.”

그 계약에 대한 일반적인 관점은 아니었다. 일리는 있지만, 구단의 입장에 너무 치우친 생각인 것 같다.

“너무 일방적인 것 아니에요? 가능성 있는 어린 선수에게 구단이 좀 더 쓸 수도 있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은 안 들어요?”

“레이스라는 구단의 입장을 고려해야겠죠. 그 팀은 대표적인 스몰마켓 팀이잖아요. 가령 롱고리아가 양키즈 소속이었다면 그런 기회를 받지 못했을 거예요. 그 팀이라면 가능성 있는 신인 여러 명과 경쟁을 시켰겠죠. 그랬다면 자질이 있는 선수니 결국 성공했겠지만, 빅리그 정착이 많이 늦어졌을 겁니다.”

이 의견도 딱히 틀렸다고 말하기가 어려운 것 같다. 레이스는 항상 메이저리그 팀 전체연봉 순위의 최하위권에 들어가는 팀이다. 그 팀에게 4400만 달러의 가치는 빅마켓 팀의 1억 달러보다 클지도 모른다.

“그렇게 일찍 빅리그에 자리를 잡은 롱고리아는 그 9년 계약이 끝난 2016년에 6년 1억 달러짜리 계약을 한 번 더 할 수 있었죠. 그래서 앞 계약을 윈-윈이라고 표현한 거예요. 구단은 최소 투자로 주전 내야수를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었고, 롱고리아는 자신의 커리어 전체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면서 경제적으로도 일정 수준 이상의 성과를 얻었으니까요.”

마일리도 연장 계약에 대해서는 상당히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내 생각도 마찬가지였지만 마지막으로 억지를 한 번 더 부려보기로 했다.

“제 경우와 롱고리아의 경우는 상당히 다르잖아요. 비교하기가 어려운 것 아니에요? 전 이번 시즌 실적을 냈고···”

덜컹-

느닷없이 출입구가 활짝 열렸다.

“So. 어쩌기로 했어. 연장 계약할 거야?”

‘깜짝이야. 얘는 지금 여기 왜 왔어?’

베그웰이 연락도 없이 사무실에 나타났다. 아무튼 경기 때는 말을 안 해도 알아서 잘하는데 이럴 때는 지지리도 타이밍을 못 맞춘다.

“제가 오면서 연락을 했어요. 미처 말을 못 했네요. 베그웰에게도 연장 계약 제의가 들어와서···”

마일리의 답이 색다르게 들린다.

‘이거 팀에서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이런 식이라면 우리에게만 연장 계약을 제안했을 거 같지는 않은데···’

“혹시 다른 선수들에게도 연장 계약을 하겠다고 하던가요?”

“그런 이야기는 못 들었는데 지금 생각하니까 그럴 가능성이 있을 것 같네요.”

프런트에서 뭔가 큰 그림을 그리려고 하는 것 같다라는 생각이 얼핏 머리를 스친다.

“마일리. 연장 계약을 그렇게 마구 날려도 되는 겁니까? 우리 팀이 돈을 풀기로 한 걸까요? 원래 그렇게 후한 팀은 아닌데···”

베그웰까지 말을 섞으니까 머리가 더 복잡하다.

‘에구, 내가 왜 그런 거까지 생각하려고 하는 거야. 그냥 지금 뭐가 나에게 가장 이익이 될까 그 생각만 하자고.’

“추가로 자금을 투입하지 않아도 지금 페이롤로 어느 정도 돌아갈 것 같네요. 일단 케빈 데스클레니가 이번 시즌으로 계약이 종료되고 안드레와 재계약을 하지 않는다면 거기에서만 4000만 달러 정도 여유가 생깁니다. 내년에는 애덤 산체스와의 계약이 끝나죠. FA 영입도 아니고 연장 계약은 몇 명이라도 감당이 가능할 거예요.”

나에겐 바람직한 일이다.

‘구단이 여유 자금이 많다는 건 연봉 협상에서 어느 정도 무리한 요구도 받아들일 수 있는···’

“난 결정했어요!”

‘아이고, 깜짝이야. 베그웰 넌 또 왜 이러니? 결정은 혼자서 하면 되지 소리는 왜 질러.’

“So가 연장 계약을 하면 나도 같이 할래요. 마일리, So와 계약 기간만 맞춰줘요.”

“야! 그게 무슨 말이야? 넌 나하고 사정이 다르잖아. 이제 FA까지 두 시즌밖에 안 남았어. 지금 연장 계약이라니 그게 말이나 돼? 신중하게 생각해야지.”

그도 2년 후엔 34살이 되지만 투수와 타자는 기준이 다르다. 내년에 규정 타석만 채운다면 3할 치는 포수의 가치는 폭등할 것이 틀림없다.

“조건이 나쁘지 않아. 연간 1500만이나 준다고 해. 그게 7년이면 1억 달러가 넘는 거잖아.”

“어휴! 넌 더 잘해서 2억 달러 3억 달러 계약을 할 생각은 왜 못하냐? 너 내년에 3할에 홈런 10개만 치면 버스터 포지급의 계약도 따낼 수 있다고. 어쩌면 더 큰 규모도···”

버스터 포지는 서비스 타임이 3년 남은 상태에서 8년 1억 6700만 달러의 연장 계약을 따냈었다.

“아! 머리 아파. 작년까지 난 다시 마이너로 쫓겨나지 않을까 고민하던 선수였어. 이제 좀 마음 편하게 운동하고 싶다고. FA로 나가면 더 많이 받을지도 모르겠지만 1억이나 2억이나 나에겐 평생 다 못 쓸 큰돈이야. 난 확실한 1억이 좋아.”

‘하! 자이언츠 프런트 장사 잘하네. 케빈 한 명 정리한 돈으로 우리 둘을 묶으면···’

이럴 때일수록 정신 차려야 한다. 1억 달러면 한국 돈으로 1200억이 넘는다. 너무 쉽게 생소한 단위가 나오니까 숫자 감각이 마비된 것 같다.

“베그웰 진정 좀 해. 아직 결정된 건 아무것도 없다고. 연장 계약하고 싶다든지 이런 말 다른 데서는 하지 마.”

“다 알지. 내가 너보다는 이 동네에 오래 있었다고. 내가 여기서나 편하게 말하지 다른 데서야···”

100% 순도의 진실은 아닌 것 같다. 그도 1억 달러라는 금액에 순간적으로 흥분했던 게 많이 드러났었다.

“마일리 씨. 내 계약은 이런저런 사정을 고려하면 그 정도가 적정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베그웰에게 제시한 금액은 말이 안 되잖아요. 어떻게 조정을 좀 해보세요. FA 2년밖에 안 남았는데 프런트에서 너무 후려치려는 느낌이 확··· 그리고 누구누구가 연장 계약을 제안받았는지 좀 알아봐 주세요.”

“알겠습니다. 일단 이 금액은 최초 제시 금액이라는 의미밖엔 없어요. 아직 정식 협상은 들어가지도 않았고 그렇게 서둘 생각도 없습니다. 오늘 내용을 전달해 드린 이유는 계약에 대해 본인의 의지가 제일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일단은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될까요?”

“그럼요. 저도 안정적인 것 좋아합니다.”

드라마틱한 인생은 이제 피곤하다. 우리 엄마가 좋아하시던 안정적인 삶을 나도 간절히 희망한다.

띠링- 띠링-

갑자기 들려온 알림음에 할 말을 잊어버렸다. 분명히 추가해야 할 말이 있었는데···

‘하아! 난 왜 모든 일이 항상 몰려서 일어날까?’

내 폰에 메신저 어플이 여러 개 깔려 있긴 하지만 고 감독을 제외하고는 정기적으로 연락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왜 하필 이런 중요한 이야기를 하는 시간에 평소에 연락하지도 않던 놈들에게 겹쳐서 메시지가 들어오는지 모르겠다.

띠링- 띠링-

‘아! 이것들이··· 한 번만 보내라구.’

이 세상엔 조급증에 빠진 인간이 너무 많다. 전화기를 꺼야 할 것 같다.

“어? 마일리 씨. 그 연장 계약 제안받은 선수들 확인 안 해도 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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