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화. 야구 이외의 삶도 있다
“좀 얼떨떨하긴 하군요.”
고 감독에게 연락을 받고 에이전트 사무실로 오는 택시 안에서 기사 내용을 대충 훑어봤었다. 고려 스포츠발 특집 기사가 한창 인터넷을 달구고 있었다.
『소영수는 지금 행복하다.』
『야구 이외에 다른 부분을 신경 쓰기 싫다.』
메츠에게 2연패를 하고 어제는 정신없이 잤다. 기분이 좋지 않아서 잠이 안 올 것 같았는데 방으로 들어가자마자 쓰러져 잠들었다. 이래저래 몸과 마음이 많이 피곤했었나 보다. 승패가 결정 나자 급작스럽게 몸이 늘어졌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팀의 전원이 비슷했다.
느지막하게 일어나서 아침이나 먹어볼까 하다가 메시지 확인을 하고··· 뉴욕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 긴 시간의 비행 끝에 겨우 도착했는데 바로 사무실로 달려와야 하는 내 신세가 처량하다.
“세 번에 나눠 게재한다고 하니까 좀 더 기다려봐야 하지 않을까요? 특별하게 이상한 것 같지는 않은데···”
나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바닥에 깔고 쓴 기사 같아 읽기가 좀 불편했지만, 과거에 워낙 심한 이야기를 많이 들어봐서인지 별 감흥이 일지 않았다.
“논조가 틀려먹었잖아. 니가 한국에서 뭐라 하던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고, 별 신경 쓰지 않는다라는 걸 바탕에 깔고 기사를 썼잖아. 이걸 읽는 사람들에게 어떤 생각이 제일 먼저 들겠어?”
“사실이 그렇잖아요. 그동안 한국에서의 이미지 신경 쓰면서 산 것도 아닌데 왜 그러세요. 본인 이야기 좀 나온 거 때문에 그러시는 거예요? 악당끼리의 야합 이런 식으로 사람들이 생각할까 봐?”
기사에 직접적으로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한국에서 발붙일 곳 없는 고 감독의 미국행은 당연한 것이었다라는 내용이 죄에 대한 사회의 당연한 응징이었던 것처럼 아주 자연스럽게 은유적으로 잘 표현되어 있었다.
“명문이네요. 법적으로 처벌받지는 않았지만, 도덕적으로 하자 있는 같은 처지의 악당끼리 뭉쳐 대중에 대한 악의를 숨기지 않고 살고 있다라는 내용을 누구나 알 수 있게 돌려서 아주 잘 썼어요.”
이 정도면 인터뷰했던 그 최 머시기라는 기자 상당히 유능한 것 같다.
‘기사는 다른 사람이 썼을 수도 있지만, 그놈이 그놈이지 뭐!’
“넌 기분 나쁘지도 않니? 1부가 이 정도면 2부 3부엔 더 심한 내용이 나올 게 확실하잖아.”
고 감독은 열이 바싹 올라 있었다.
‘생각보다 내성이 없네. 하긴 한창 시끄러울 때 이 양반은 기사를 볼 수 없는 환경에 있었었지. 그렇게 생각하면 영어(囹圄)의 생활도 아주 나쁜 것만은 아니었나 봐.’
아마 그곳을 나온 뒤에도 관련 기사를 전혀 찾아보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어쩌자구요.”
“그게···”
“분풀이를 하고 싶으신 거예요? 누구에게 할까요? 신문사? 악플 단 사람들? 뭘 원하시는 건가요?”
내 생각에는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예전에 별생각을 다 해봤었다. 이것저것 알아보기도 했다. 하지만 관련 지식을 쌓아갈수록 답 없는 일이란 걸 알게 되었다.
“아버지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내가 뭐 할 말이 있겠니. 다 내 잘못이야. 내가 너무 앞뒤 안 가리고 서투르게···”
아버지가 왜 이 자리에 있는지도 알 수 없다. 현실 감각이 많이 떨어지는 분이시고 기자와의 인연을 더듬어봐야 특별히 나올 게 있을 것 같지도 않다. 아버지는 언제나 선량한 분이셨다. 그런 분에게 문제 해결 능력이 있을 리 없다.
‘어휴! 감독님. 급해도 가릴 건 가려야죠. 이 사람 저 사람 다 부른다고 답이 나오겠어요?’
“넌 어쩌고 싶은데?”
고 감독에게는 내 반응이 좀 뜻밖이었던 것 같다. 난 달라졌다. 예전의 철없던 소영수가 아니다.
“아까 말씀드렸잖아요. 일단 뭐라고 하는지 기사를 다 봐야죠. 그 때문에 우리에게 실질적인 피해가 있을지 확인이 되어야 다음 생각을 하죠. 별 피해 없으면 그냥 무시해야죠. 사실 별로 대응할 방법이 마땅치 않아요. 그게 실질적으로 제일 빨리 조용해질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고.”
“참 태평하게 말하는구나. 언제부터 이렇게 마음이 비단결이 된 거냐?”
경험에서 배우지 못하는 사람은 성장하지 못한다. 성공도 경험이고 실패도 경험이다. 누군가 좌절과 부정적인 잔소리보다는 작더라도 성공 경험이나 긍정적인 칭찬이 사람을 실질적으로 성장하게 한다고 했다는데 그건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긍정의 힘 좋지. 긍정 피드백이 효과가 좋다? 부정적 피드백보다 아예 피드백이 없는 게 학습 효과가 더 높다란 말도 들어봤지.’
난 그렇게 한가하게 배우지 못했다. 그래서 속성으로 배웠다. 아주 큰 실패를 겪는다면 가장 빨리 행동 방식이 바뀌고 많은 깨달음을 한 번에 가질 수 있게 된다. 확실하다. 내가 몸으로 느꼈다.
‘아버지 경우를 보면 꼭 그런 건 아닌 것 같긴 하지만 대개는 그렇게 되지 않겠어? 세상에 예외 없는 법칙은 없다잖아.’
“So의 의견은 이렇다고 합니다. 저기 변호사 양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마일리는 생각나는 것 없어?”
내 동조를 얻는 데 실패한 고 감독이 자신의 동조자를 찾아 나섰다. 오늘 이 자리에 언젠가 인연이 있었던 버나드라는 변호사까지 불러들였다. 정말 못 말리겠다.
“Go, 당신 너무 감정적인 것 아니에요? 제 생각엔 So가 정확하게 판단한 것 같은데 지금 우리 행동 방향을 결론 내리긴 너무 일러요.”
신중한 마일리. 마음에 든다.
“고 코치가 하고 싶은 것이 법률적 수단을 통한 응징 같은 거라면 충분히 가능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실질적인 문제 해결이나 So의 이익에 도움이 될 것이냐는 것에는 아니라고 말할 수밖에 없군요.”
버나드 씨도 괜찮다. 아주 이성적인 사람들이다. 역시 내가 사람 보는 눈이 있다.
“내가 알기로는 그 징벌적 배상 제도 이런 것도 있고 하니까 악의적인 보도를 일삼는 신문사 정도는 문 닫게 할 수 있는 것 아닌가요?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겠지만 이제 그 정도는 부담할 수 있고···”
고 감독이 막 나가려 하고 있다.
“음. 세상에 수많은 법률이 있지요. 대부분 성문법이라 책에 그 내용이 다 쓰여 있죠. 그것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하는 책이 따로 있을 정도지요. 그런데 왜 사람들 사이에 분쟁이 생기고 소송을 하게 될까요? 법이라는 명확한 기준이 있는데···”
“으음.”
“그것을 해석하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이지요. 같은 말을 이 사람은 이렇게 저 사람은 저렇게 생각하니까 문제가 생기고 분란이 발생합니다. 그래서 이 기사에 대한 다른 사람의 관점도 중요합니다. 전 지금은 좀 더 상황을 살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나중에 법률적 수단에 의지하게 되더라도 대중에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일방적 주장이 재판부에게 받아들여지기는 어렵죠.”
“허 참! 이런 과장과 허위 기사를 바로 응징해야 하는 건데···”
팩트는 변하지 않지만, 해석은 달라질 수 있다. 대다수의 대중이 팩트가 기사 바탕에 있다고 인정하면 과장과 허위라는 주장은 고 감독이라는 개인의 소수 의견이 된다.
“제가 여기 오기 전 한국계 변호사에게 자문을 좀 구했는데 결론을 말씀드리자면 이 일로 소송을 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미국 법정에서 하기는 어렵습니다. 한국에서는 이겨도 실질적 이득을 기대하기 어렵지요. 한국 법은 징벌적 배상을 인정하지 않으니까요.”
이건 좀 흥미 있는 이야기다.
“왜 그렇습니까?”
“일단 So가 미국에서 일을 하고는 있지만, 한국 국적이고 그 신문사는 국제판을 내지 않고 한국어로 된 한국 국내에서만 통용되는 기사를 씁니다. 즉 사건의 당사자도 외국인이고 사건이 벌어진 장소도 외국인데 재판 관할권을 주장하기가 어렵습니다.”
고 감독의 현실 감각을 키워주기 위해서 계속 물음을 이어갔다.
“그 문제뿐인가요?”
“그 단계를 어떤 수단을 부려서 넘어선다고 해도 우리가 그 신문사를 우리 법정에 세울 강제력을 발휘하기가 어렵습니다. 그 신문사가 출석 요구에 불응하는 것이 손해라고 느껴야 하는데 무엇으로 그렇게 할 수 있을지 당장은 생각나는 것이 없습니다.”
“만약 어떻게든 미국 법정에 세운다면 소송에 이길 수는 있을까요?”
과거에 내가 알아본 바에 의하면 가능성은 있지만 낮고 아주 오래 걸린다. 한국에서는 이긴다고 하더라도 최대 몇백만 원 정도의 배상과 정정 기사 한 줄 실릴 뿐이다. 한 10년 뒤에 그 정정 기사를 보고 내 사건을 떠올릴 사람이나 있을까?
소송 초창기에는 결과에 상관없이 소송 그 자체가 사람들의 흥밋거리가 되어 또 다른 기사를 양산하는 창구가 된다. 악순환이다.
“기사의 진실을 따지는 건 더 어렵지요. 그게 쉬웠다면 미국의 타블로이드 언론은 이미 없어졌겠죠.”
고 감독의 얼굴이 벌게졌다. 나름 상당히 억울한 것 같다.
실패라는 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회피하고 싶은 경험이다. 나의 자존감은 낮아지고 타인들이 가지던 나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는 날아가 버린다. 위험하고 가급적이면 마주하고 싶지 않은 순간이다.
그 실패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때로는 그것이 몸과 정신을 갉아먹는다. 고 감독이 어떤 선택을 하든지 도울 생각이다. 하지만 그 과정 중에 스스로 감내해야 하는 불안과 우울 등의 후폭풍에 괴로워하는 것을 보고 싶지는 않다.
나는 긍정적인 자아를 잃지 않고 성장해 살아남았지만, 그가 가능할지는 잘 모르겠다.
“그렇다면 쓸데없는 댓글 다는 사람들을 어떻게 할 수 없나요? 난 한국에 부모 형제가 다 있다구요. 나야 이제 한국에 안 가면 그뿐이라지만 그들의 삶은 한국에 있다고 그런데··· 어휴!”
답답하긴 할 것 같다. 난 이제 아버지도 오셨고 한국에 딱히 걸릴만한 것이 남지 않았지만, 고 감독은 살아온 세월만큼이나 연이 닿는 곳이 적지 않을 텐데 이런 식으로 이미지가 고착되어 지인들에게 피해를 주게 된다면 굉장히 괴로울 것 같긴 하다.
“한국의 경우는 확인해 봐야겠지만 대개의 경우 악플러 같은 개인 다수를 상대로 한 민사소송이 어렵지는 않지요. 하지만 그것이 논란을 가라앉힐 목적이라면 그 목적 달성은 어렵습니다. 사회적 강자가 약자를 괴롭힌다는 이미지가 덧씌워지기 쉽지요.”
내 생각도 그렇다. 굳이 내가 적대적인 상대와 어울려줘야 할 이유는 없다. 손바닥도 마주쳐 주는 상대가 있어야 박수로 변해 소리가 난다. 난 소리 나는 게 싫다.
“그건 버나드 씨 말이 맞아요. 제가 예전에 알아보기로는 아마 그런 사람들을 충동질하고 후원해서 논란을 키우려는 황색 언론이 있을 수도 있어요. 조심해야 해요.”
이럴 때는 아주 냉정하게 이해득실을 따져봐야 한다.
“그럼 앉아서 상대가 때리면 때리는 대로 그냥 다 맞자는 말이야?”
고 감독은 이야기가 깊어질수록 점점 분이 더 차오르는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