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각성한 이레귤러의 커브가 드러남-68화 (68/200)

68화. 이상과 현실

『광란의 질주 자이언츠.』

『와일드카드는 어느 팀?』

『집중 분석. 자이언츠의 승리 요인은···』

······

모니터 안의 세계에선 자이언츠 찬양 기사가 넘쳐나고 있었다. 폴 해리스 자이언츠 야구 부문 사장은 기사를 읽을수록 마음이 가라앉았다. 잘 모른다. 그로서는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되었다는 표현밖에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9월도 이제 끝나간다. 156게임을 치러냈다. 이번 시즌 이제 6게임이 남았을 뿐이다.

자이언츠는 이달 어제까지 27게임을 했다. 거기서 17승을 해냈다. 승률 6할 2푼 9리. 언론에서 광란의 질주 운운하는 건 과장이다. 우리 팀에게 미친 기세의 긴 연승 같은 건 없었다. 연패를 최소화하며 위닝 시리즈를 꾸준히 만들어냈다.

4연승이 한 번 있었다. 유일한 스윕이 그때 한 번 나왔었다. 지난달의 계산대로라면 지금은 휘파람을 불고 있어야 할 때지만 현 상황은 그다지 녹록지 않았다.

자이언츠는 지금 85승 71패로 와일드카드 순위 5위다. 이게 문제다. 작년엔 88승 팀이 와일드카드 3위를 했었는데 올해는 그걸로 안 될 것 같다.

이번 시즌 서부 지구 팀들이 미쳐 버렸다. 모든 팀이 156경기를 치른 현재 서부 지구 1위는 다저스가 100승 고지에 오르면서 일찌감치 확정을 지었고 백스와 파드리스가 와일드카드 순위 상위권을 점하고 있었다.

1위 백스 89승 67패 승률 0.571 잔여 경기 자이언츠 로키스

2위 파드리스 88승 68패 승률 0.564 잔여 경기 로키스, 컵스

3위 필리스 87승 69패 승률 0.558 잔여 경기 메츠, 자이언츠

4위 컵스 86승 70패 승률 0.551 잔여 경기 카디널즈, 파드리스

5위 자이언츠 85승 71패 승률 0.545 잔여 경기 백스, 필리스

“윌. 보고만 있어도 가슴이 답답하네요.”

“끝까지 가야 할 것 같아요. 필리스와의 3연전이 승부처겠죠. 거기서 3연승을 할 수 있다면··· 필리스에게는 좋은 기억이 있지 않습니까? 그들에게 거둔 두 번의 역전승을 발판으로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잘될 겁니다.”

잘되든 잘 안되든 돌이킬 수 없는 일이라면 잘되기를 기원이라도 해야 한다. 책임을 지는 자리는 약함을 내색할 수 없는 자리다. 본인 스스로 확신이 있어야 사람들을 끌고 갈 수 있다.

단장에게는 사장이 가끔 보여주는 이런 면모가 거북하지 않았다. 보이지 말아야 하는 모습을 자신에게만 이런 식으로 내보이는 것이 자신에 대한 인간적 신뢰가 그 밑바탕에 있는 것 같아 오히려 기꺼웠다.

“내일 경기 로테이션이 2선발부터 돌아가니까 다음 3연전 마지막 경기에 So를 다시 투입할 수 있습니다. 소르카와 So라면 마지막 시리즈에 최소 2승은 거둘 수 있을 겁니다.”

윌리스 단장도 그렇게 믿고 있었다.

“그럼 내일 백스와의 시리즈에 2, 3, 4 선발이 등판하게 되는 겁니까?”

“예. So, 애덤, 드로이넨 순으로 등판합니다.”

“역시 승리의 관건은 타격이 되겠군요.”

올 시즌 현재까지 내셔널 리그 팀의 경기당 평균 득점은 4.71점이었지만 자이언츠는 경기당 4점을 조금 안 되는 리그 최하위권이었다. 그에 반해 선발 투수들의 평균 자책은 3.55 기록에 나타나듯 자이언츠는 전형적인 선발 투수의 호투에 의존하는 야구를 하는 팀이다.

선발 투수와 수비력을 우선으로 팀을 만들다 보니 타자 보강이 싶지 않았다. 수비가 안되는 타자는 지명 타자 하나로 충분했다. 그런데 올 시즌은 그 지명 타자마저 별로였다. 수비가 안 좋은 타자를 쓰면 자연히 선발 투수진의 실점은 올라간다. 그 균형을 맞추기가 너무 까다로웠다.

“그러면 필리스전은 로저스, 소르카, So 이렇게 되겠군요. 이건 이겨도 머리가 아파질 것 같은데 정작 플레이오프에 가면 가장 믿을 수 있는 선발 둘을 쓸 수 없다는 거잖습니까?”

“내일부터 4연승을 해서 와일드카드 확정이 된다면 소르카나 So의 등판이 플레이오프로 미뤄질 수도 있죠. 그게 최선이지만 결판이 안 나면··· 일단 와일드카드 3위 안에는 들고 나서 생각해야 할 문제겠지요.”

단장의 말은 합리적이었지만 해리스 사장에게는 아쉬움이 남았다.

“라드 감독의 말에 따르면 만약 이 로테이션대로 진행되어 와일드카드를 얻게 된다면 플레이오프 1차전은 케빈을···”

“케빈 데스클레니를 말하는 겁니까? 몸이야 나을 때가 되긴 했지만, 그게 다가 아니지 않습니까? 그가 등판 가능할 컨디션이 될까요? 거의 한 시즌을 다 쉬었는데···”

생각보다 투수는 예민하다. 체력적인 부분이 투구를 할 수 있는 기본 요건이기는 하지만 호투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지난주부터 본격적인 몸만들기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본인의 등판 의지가 대단하다고 들었습니다. 한 게임 5~6이닝 정도는 가능할 것 같다는 라드 감독의 의견이 있습니다.”

“시즌 종료 후 은퇴하려 한다고 그러지 않았나요? 어차피 계약도 마지막 해고··· 그래서 신경 안 쓰고 있었는데 무슨 바람이 불었답니까? 어느 팀 오퍼라도 들어와서···”

“라드 감독 말에 의하면 시즌 후 은퇴하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지만, 은퇴 시즌 뭔가를 보여주고 끝내고 싶어 한다고 하더군요. 케빈은 우리 팀이 무조건 플레이오프에 나갈 것이라고 생각한답니다.”

좋은 소식이긴 한데 해리스에게는 너무 뜬금없는 일처럼 느껴졌다.

“그건 그때 가서 다시 생각해보죠. 아직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니까 미리 결정 안 해도 괜찮을 것 같네요. 혹시 압니까? 우리가 4연승으로 와일드카드를 따낼지··· 그보다는··· 음.”

무슨 말인가 하려던 해리스 사장이 말끝을 흐렸다.

“폴. 다른 생각이 있으신 겁니까?”

“남은 게임이야 라드 감독이 알아서 해야지요. 지금 와서 우리가 뭘 하려고 해봐야 혼선만 일어날 겁니다. 그냥 맡기면 되겠죠. 그 일이 아니고 혹시 이번 시즌 끝나고 So를 연장 계약으로 묶어야겠다는 생각은 안 해 보셨습니까?”

“장기 계약이라··· 하긴 했었죠. 그런데 그 일이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아서···”

프런트의 생각은 다 비슷하게 돌아가는 모양이라고 해리스는 내심 쓴웃음을 지었다.

“나이 문제가 가장 걸리던가요?”

“그것도 그렇고 언더스로우 투수라는 것도 감안해야 하고··· 계약 기간과 금액 산출하기가 너무 애매해요.”

So는 올해 만 29세, 내년이면 30세가 된다. 서비스 타임이 끝나면 34세 시즌이다.

“So는 더군다나 언더스로우 투수죠. 그가 30대 중반 이후까지 지금 구위를 유지할 수 있을까요? 통상적으로 동양인은 에이징 커브가 빠릅니다. 제 생각에 긴 계약은 모험입니다. 그것도 실패할 가능성이 큰···”

단장은 연장 계약이 그리 당기지 않았다.

“그럼 그냥 남은 서비스 타임 기간 동안 쓰고 그게 끝나면 다시 생각해보자 이렇게 결론을 내리신 겁니까?”

“제가 결론을 내릴 위치에 있지는 않지요. 다만 쿠에토의 계약을 생각해보세요. 그가 6년 계약을 맺은 시점이 만 30세 시즌이었습니다. 그런 과오를 되풀이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자이언츠는 2016년 조니 쿠에토에게 6년 총액 1억3천만 달러의 계약을 안겨 주었다. 그는 계약 첫해 18승을 하며 활약했었지만, 그 후 5년간 연평균 80이닝과 ERA 4.30을 기록했다. 단축 시즌이었던 2020년을 제외하고는 한 번도 풀시즌을 뛰지 못했다.

“음···”

아픈 기억이다.

“쿠에토와 So는 스타일이 완전히 다른 투수지만 같은 것이 하나 있죠. 신체 사이즈가 작은 투수라는 겁니다. 그런 유형은 신체 능력이 떨어지는 순간 급격하게 성적이 하락합니다. 장기 계약은 너무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So가 현재 성적 정도를 유지한다는 가정하에 연봉 조정 자격이 생기는 내후년부터는 얼마를 줘야 할까요?”

“그가 내년 시즌에도 지금 정도 성적을 유지한다면 조정 신청 첫해엔 최소 1천 5백만 달러, 두 번째 해애는 2천 5백만 달러, 세 번째 해는 3천 5백만 달러는 줘야 하겠죠. 그래도 그건 성적이 나온 다음에 주는 거니까 충분히 감수할 수 있습니다.”

2020년 이전까지 서비스 타임 내 연봉 조정 자격 1년 차 최고액은 코디 벨린저의 1,150만 달러. 2년 차는 무키 베츠의 2,000만 달러. 3년 차 기록도 무키 베츠의 2,700만 달러였다.

10년이면 세상이 바뀌어도 아주 많이 바뀐다. 윌리스 단장의 추정액은 최소치일 뿐이다. 해리스 사장의 판단은 단장의 생각과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윌. 전 좀 다르게 생각합니다.”

해리스가 책상 서랍에서 한 장의 서류를 꺼내 윌리스 단장에게 건넸다.

“이게 뭐지요?”

“그건 대외비입니다. 윌만 알고 계세요. 후반기 So의 그 사건이 있었을 때 입원했던 메모리얼 병원에 손을 좀 써 두었지요. 그래서 각종 검사와 테스트를 추가로 진행했고 그렇게 얻은 자료를 So가 트윈스 입단할 때 한 메디컬 테스트 자료와 비교를 좀 해봤지요.”

선수 개인의 의료 정보를 그런 식으로 수집하는 것은 불법의 소지가 있다. 윌리스 단장은 가슴이 섬뜩해졌다.

“팀 내에서도 선수의 부상과 컨디션 관리를 위해 수시로 검사를 시행하지만. 그건 너무 약식이라 참고가 어려웠죠.”

“허헛. 그 병원 자료야 그렇다 치고 트윈스 자료는 어떻게 입수한 겁니까?”

단장은 어이가 없었다. 그때 뜻밖의 사건에 힘들어하던 사장을 위로하기도 했었는데 순진한 척하던 사장은 뒤로 딴 일을 꾸미고 있었다.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뭐··· 그냥 어떻게 얻어내었네요. 별로 떳떳한 방법은 아니었습니다. 지금 입수 경위가 중요한 건 아니지 않습니까? 그건 그냥 넘어가시죠.”

단장으로서도 그걸 꼭 알아야 할 이유는 없었다. 이걸로 문제가 생긴다고 해도 그런 일 벌인 사람이 책임지는 것이 맞다.

“그건 그렇죠. 이런 서류를 제가 봐서 아나요. 전문가들이 잘 분석했겠죠. 말씀하시려는 결론이 뭡니까?”

단장의 뾰로통한 반응에 조금 민망한 표정을 지어 보이던 사장은 이내 설명을 이어나갔다.

“요즘 AI 기술이 의료 분야에도 많이 응용되고 있습니다. 신체에서 일어난 2년간의 기초대사량과 호르몬 분비의 변화를 바탕으로 앞으로 10년간의 변화를 시뮬레이션 해봤습니다. 정확도는 90% 정도라고 하더군요. 원래는 발병 시기를 예측하기 위한 기술이었다는데···”

“제가 그런 걸 알아듣기엔 너무 구식 사람이라서요. 그게 정확하게 뭘 뜻하는 겁니까?”

윌리스에게는 사장의 말이 외국어처럼 들렸다.

“So의 신체적 능력 하강은 특별한 사고가 없는 한 36세 이후부터 일어날 거라는 게 그 서류에 써진 결론입니다.”

이제야 윌리스 단장이 뚫어지게 서류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음. 이런 예상이 정확할까요? 저로서는 이해가 잘···”

“그거야 저도 확신할 수는 없죠. 하지만, 90%의 확률이라니까 이런 확률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단장도 그건 그렇다고 내심 동의했다.

“폴. 뭘 하고 싶은 거죠?”

“좀 진지하게 7년 계약을 준비하면 어떨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아주 이른 서비스 타임에 시작하는 계약이니까 디스카운트를 상당히 할 수 있겠지요.”

“음.”

“생각해보세요. 어차피 So가 FA가 되기 전 4년간 줘야 하는 예상 연봉만 8천만 불은 되잖아요. 7년에 총액 1억 달러쯤 준다고 하면 So가 혹하지 않을까요? 2천만으로 3년 더 쓰는 겁니다. 좀 더 줘도 되겠지만, 일단 이 정도로 에이전트와 대화를 시작해보면 어떨까요?”

윌리스는 점점 설득되어 가는 자신을 추스르려 애를 써 봤지만, 사장의 말은 점점 더 달콤하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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