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화. 인생 한 방
경매는 잘 마무리되었다. 난 약 100만 불 이상의 기부 액수를 기록하게 되었고, 그것으로 소득 공제도 받게 된다. 존경을 사고 현실적인 이득을 챙겼다.
‘처음 생각처럼 되진 않았지만, 세상일이 내 생각대로 다 되었으면 지금 여기 있지도 않았겠지.’
경매도 중간에 웬 중국인이 갑자기 나타나서 66번과 88번 99번 세 개를 낙찰받았다. 좋은 중국 사람은 옛날 어디서 다 죽었다고 하던데 아직도 살아남은 사람이 있었던 것 같다. 덕분에 100만이라는 내 연봉을 뛰어넘는 액수를 기부할 수 있게 되었으니 만족한다. 변수가 꼭 나쁘게만 작용하는 건 아닌가 보다.
일정을 마치고 뒤풀이 겸 해서 저녁 식사 자리를 가졌다. 즐거웠다. 속이 다 시원하다.
“그 중국 사람이 왜 세 개만 샀을까요? 다른 건 쳐다보지도 않던데···”
좋은 사람을 하나 알게 되어서 지금 상황에 만족한다. 버나드 변호사는 모르는 게 없는 사람이었다.
“특정 숫자를 그렇게 수집했다는 건 아마 선물용이겠죠.”
“예?”
“이 바닥에서 차이나 머니는 한 축이죠. 세계 2대 경매 회사인 크리스티와 소더비가 본격적으로 중국 시장에 진출한 게 2013년부터입니다. 현지에서 직접 경매를 진행하고 있죠. 보통은 거래 물품이 예술품이지만 이런 수집품 시장이라고 내버려둘 리가 있겠습니까?”
신뢰할 만한 답변이 바로 나온다.
“숫자 이야기는 뭔가요?”
“6은 순조롭다라는 의미라고 합니다. 8은 돈을 번다는 광둥어 사투리와 발음이 같아서 행운의 의미가 있구요. 9는 길다라는 뜻의 중국어와 발음이 비슷해서 장수를 기원하는 식으로 해석된다고 합니다. 아마 98번이 나왔으면 그것도 낙찰가가 높았을 거예요. 98은 오래 돈을 번다는 의미라서···”
들을수록 오묘한 세계다.
“만약에 6, 8, 9가 경매에 나왔으면 더 가격이 높았을 수도 있겠네요?”
“그건 그렇지 않았을 겁니다. 중국인들은 하나는 불안하고 짝을 이루는 둘은 안정감이 있다고 여겨서 홀수보다 짝수를 좋아합니다. 쌍을 이루는 건 더 좋아하죠. 이런 것을 종합적으로 생각해볼 때 관시(關係)를 위한 선물용이라는 결론이 나오죠.”
왜 그런 결론이 나오는지 이해는 잘 안 되지만 그가 그렇다니 꼭 그런 것만 같다.
“시계 회사와 계약 내용 중에 같은 해에 퍼펙트를 한 번 더 하면 내년에 재계약을 하고 계약 규모를 현 계약에서 1000% 올린다는 조항이···”
얌전하게 밥 잘 먹던 마일리가 느닷없이 폭탄을 던졌다.
“뭐라고요?”
내일이라도 계약서를 직접 한번 살펴봐야 할 것 같다.
“오호! 그거 재미있네요. 마일리 양이 한 제안이었나요? 계약 기간은 어떻게 되나요?”
“5년으로 했죠. 그런 일이 진짜 일어난다면 서로에게 득이 되는 일이잖아요. 그래서 계약서에 한 줄 넣었죠. 그거 말고도 재계약 조건은···”
마일리와 버나드의 대화가 제대로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헐! 열 배? 그리고 5년? 이건 전성기 때 골프 황제나 맺을 법한 계약이잖아.’
우즈는 한 스포츠용품 회사와 처음엔 5년간 4000만 달러에 후원 계약을 했고 2011년에는 5년간 1억 달러의 재계약을 맺었다고 알고 있다.
“야구 역사상 없던 일을 풀타임 첫해에 해내는 거니까 당연히 레전드가 되는 건데 그 정도는 받아야 하지 않겠어요? 그때 단년 계약 규모를 너무 낮게 하는 것 같아서 배팅을 한번 해본 거였죠.”
고마운 말이긴 한데 마일리는 내 능력을 너무 과대평가하는 것 같다.
‘나도 정말 할 수 있으면 좋겠네요.’
“그렇죠. 첫해에 만일 그 정도라면 추후 성적이야 자연스럽게 나오겠죠. 그 회사도 손해 보는 조항은 아닌 것 같네요. 퍼펙트나 노히트 노런을 특별한 투수만 해내는 건 아니죠. 하지만 퍼펙트 두 번이라면 확실한 보장이 될 수 있겠지요. 그 비슷한 기록은 전성기의 할러데이 급에서나 나왔으니···”
한 시즌 퍼펙트 두 번, 그 비슷한 기록은 로이 할러데이가 2010년 시즌에 만들어냈다, 퍼펙트 1회와 노히트 노런 1회다. 그 시즌에 할러데이는 21승 10패 ERA 2.44 219K의 성적을 만들어냈다.
‘그 기록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는 그해 정규 시즌만 250.2이닝을 던졌고 완투 9번, 완봉 4번을 했지. 포스트 시즌까지 포함하면··· 사람이 아니었어. 거기에 날 비교한다고?’
워낙 대단한 기록이라서 뚜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밥 먹다 체할 것 같다.
한 시즌 노히트 노런 두 번은 제법 있었다. 할러데이를 제외하면 5명이다. MLB에서 300번 가깝게 나온 기록이니 있을 법한 일이다. 50년대 이후로 보면 라이언, 슈어저 단 두 명이다. 이름만 들어도 대단한 투수들이다
‘가만, 그거 한 시즌 두 번은 보증 수표 같은 건가?’
그러고 보니 현대 야구에서 그걸 한 시즌에 두 번 한 투수 중에 레전드가 아닌 선수가 없다. 만일 그걸 해낸다면 스스로의 능력을 신뢰해도 될 것 같다. 그동안 가끔은 불안한 생각이 들기도 했었다.
‘스티브 블래스 증후군이니 하는 것 있잖아. 스트라이크를 던지지 못하는 병. 내가 그런 것 없이 롱런하려면 스트레스가 적어야 해.’
내가 후반기에 그거 한 방을 터트린다면 수백억이 보장된다. 그것만 해내면 서비스 타임, FA. 뭐고 간에 금전적으로는 바로 아주 큰 자유를 누리게 된다. 즉, 생활에서 벌어질 수 있는 스트레스가 대폭 줄어든다.
‘빌어먹을··· 인생 한 방이지. 뭐 있어? 엄마도 투자 한 방에 성공했다는데 나도··· 이건 로우 리스크 하이 리턴이잖아. 못 해낸다 해도 별 손해는 없어.’
포스트 시즌은 어떻게 될지 장담 못하지만 후반기 12~13번의 등판 기회가 있다.
‘나에게는 아직 13척의 배가 남아 있다 이건가?’
별생각 없었는데 꼭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만 해내면 인생이 바뀔지도 모른다, 라이언, 할러데이 생각을 좀 했더니 간이 많이 커진 것 같다.
***
휴식을 해야 하는데 가슴이 두근거려 제대로 쉬지도 못했다. 내일 등판을 위한 가벼운 불펜 피칭 중이다. 후반기 나의 등판 순서가 다시 당겨졌다. 2번째다.
우리 팀 부동의 1선발은 앨런 소르카다. FA 후 7년에 총액 2억 천만 달러에 달하는 계약을 한 거물급 투수다. 이번 시즌도 상반기 9승을 해냈다.
‘물론 내가 승수는 10승으로 팀 내 최다승이긴 하지만 솔직히 아직 그를 밀어내기엔 좀···’
그에 이은 2선발 애덤 산체스는 작년에 16승을 했고 빅리그 10년 동안 선발 120승을 해낸 거물급 투수였다. 연봉도 2천만 불을 훌쩍 넘는다.
‘그랬었지만 삼십 대 중반이면 한 해 한 해가 다르지. 어디 지는 해를 떠오르는 나에게 비교하겠어. 당연히 내가 두 번째를 맡아야 그게 순리지. 그가 그럭저럭 상반기 7승을 하긴 했지만 뭐 그 정도로 평균자책 1위인 나와 비교될 수 있겠어?’
3선발이던 케빈 데스클레니는 올 시즌 시작하고 얼마 안 되어 퍼져버렸다. 덕분에 내가 일찍 3선발 노릇을 할 수 있었다. FA 계약 마지막 해이기도 하고 우리 팀에서 나이도 제일 많다, 별 의욕이 없어 보였다. 아마 후반기 푹 쉬다가 은퇴할 것 같다.
4선발은 웹 로저스가 시즌 시작부터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상반기에 7승을 해냈다. 어린놈이 싸가지가 없긴 해도 실력은 괜찮다. 팀에서 애지중지할만하다.
5선발이 문제였다. 이 자리를 길게 차지한 선수가 없었다. 내가 3선발로 올라간 후 나와 선발 경쟁을 벌이던 여러 명이 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실패했다. 다 도토리 키 재기였다. 결국 후반기에 데니스 존슨이 한 번 더 기회를 얻었다. 정말 나이가 깡패다. 다들 고만고만할 때 어리다는 건 엄청난 장점이었다.
‘걔도 잘해야 될 텐데 빠른 시간 내에 가능성을 보여주지 못하면 프론트에서 그럴듯한 선수를 하나 사 와서 밀어 넣을지도 모른다구. 빅마켓은 인내심이··· 음. 내 앞가림이나 잘하면 되지 남 걱정할 때가 아니야.’
상반기에 91게임을 치른 우리 팀 성적은 47승 44패다. 포스트 시즌 직행은 어림없고 와일드카드를 노려야 할 상황인데 작년 커트라인이 88승이었다. 지금 승수에서 41승을 더해야 한다.
‘71게임에서 41승이면 57.7% 정도의 승률을 올리면 된다는 건데···’
머리 아프게 이런 계산 할 것 없이 그냥 정규 시즌에서 한 번 더 하면 깔끔한데 혹시 모를 일이다. 할러데이의 1+1도 포스트 시즌에서 나왔다.
포스트 시즌에서 퍼펙트 기록은 한 번 있다. 할 수 있다는 비전을 보여주는 선례는 존재했다.
‘좀 오래된 일이긴 하지. 1956년 월드시리즈에서 나온 일이니까.’
유일하지만 그래도 절대 불가능하지 않다는 건 그것으로 증명되었다.
‘돈 라슨이 했다면 나도 할 수 있어. 까짓거 같은 사람인데 왜 못하겠어.’
아무튼 우리 팀이 이런 어중간한 성적인 건 5선발이 가장 큰 문제다. 마무리는 이번 시즌 영입된 안드레가 최고는 아니지만, 그에 근접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고 허리에서는 체이스라는 팜 출신의 신예가 마당쇠 노릇을 잘하고 있다.
1~4 선발이 33승 거기다 데스클레니가 3승을 했다. 총 36승이다. 이런데 총 승수가 47승이란 건 말이 안 된다. 5선발만 좀 받쳐주면 후반기에 뭔가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은데 참 답답한 노릇이다.
“So. 왜 어디가 안 좋아?”
투구 중 어느 순간 나만의 세계로 혼이 나가버렸다. 베그웰이 걱정되었는지 마운드까지 근처까지 다가와 있었다.
“아니, 갑자기 뭐가 좀 생각나서··· 아픈 곳은 없어.”
바로 어제 모션 캡쳐 머신을 이용해서 밸런스 조정을 했다. 내 투구 폼에 큰 문제는 없었다. 그렇다는 건 내 몸에도 문제가 없다는 뜻이다. 검진에 잘 나타나지 않는 미세한 이상이라도 투구 폼에는 바로 영향을 미친다.
사람 몸이란 게 아주 예민해서 조금이라도 불편하면 무의식적으로 그쪽 근육을 안 쓰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원래 투구 폼이란 게 아주 과격한 동작이다. 근육을 비틀고 꼬고 순간적으로 한계 이상으로 관절을 꺾기도 한다. 아주 몸에 해로운 동작이다.
투수의 부상은 그런 것들이 누적되어 생긴다. 허리가 불편하면 평소 와이드업 동작보다 자연스럽게 동작이 작아진다. 그러면 허리는 어느 정도 보호가 되지만 모자라는 힘을 보충하기 위해 어깨와 팔꿈치 같은 다른 쪽에 과부하가 걸리기 마련이다.
난 수시로 에이전트의 트레이닝장을 이용해 그런 밸런스의 미세한 틀어짐을 체크하고 조정할 수 있다. 정말 그 기계는 돈값 한다.
“내 문제는 없는데 우리 5선발 말이야. 존슨이 버틸 수 있을까?”
“음. 글쎄 모르지. 불펜에서 공은 괜찮고 올라가서 곧잘 던지기도 하는데 한 번 삐끗하면 와르르 무너지는 스타일이라··· 내가 보기엔 힘과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마인드 문제인 것 같더라. 한두 게임 더 지켜보다 안 되면 아마 프론트에서···”
“모두를 위해 잘해야 할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