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화. 음모
“최 기자. 이거 봤어?”
취재원을 만나 점심 잘 얻어먹고 기분 좋게 사무실로 돌아왔는데 부장 한마디에 좋았던 기분이 확 날아가 버렸다. 상사란 존재는 너무 멀면 곤란하지만, 너무 가까이하기에도 부담스러운 존재다.
편집부장이 보고 있던 모니터를 돌렸다.
“그건···”
소영수였다. 외신에 보도된 소영수의 기사였다. 4월과 5월 연속으로 이달의 투수상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꽤 크게 다뤄지고 있었다. 갑자기 속에서 쓴맛이 올라왔다.
사냥꾼이 몇 년 전 잡은 곰은 해마다 자라고 어부가 과거 놓친 고기는 말할 때마다 커진다. 기자는 사냥꾼도 어부도 아니었지만 놓친 먹이에 대한 갈망은 그에 못지않았다.
“이거 한 번 다시 뒤져보면 안 될까?”
부장이 내려썼던 안경을 다시 올리며 물었다.
“소영수 걔는 한국 기자는 전혀 안 만나 준다고 하던데 본인 인터뷰도 하나 없이 기사를 어떻게 쓰겠어요? 어디고 간에 구단 통해서 정식 요청 넣어서 다 거절당했다고 하잖아요.”
“그러니까 가치가 있는 거지. 개나 소나 다 만나고 다니면 그게 무슨··· 음. 아무튼 꼭 본인을 만나야 기사를 쓸 수 있는 건 아니잖아.”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최민용은 이해가 잘되지 않았다. 이곳이 실체 없는 인터넷 삼류 채널도 아니고 인터넷판을 운영하긴 하지만 역사와 전통의 고려 스포츠다.
기사를 쓰려면 최소한이나마 사실에 기반한 무엇인가는 있어야 했다. 그래야 혹시 역풍이 불더라도 대중의 다양한 의견 개진이나 재미를 위한 일부 과장을 핑계 삼아 뭉개고 지나갈 수 있다.
“원래 토끼를 잡으려고 할 땐 무턱대고 쫓는 게 아니야. 덫을 놓거나 굴 앞에서 연기를 피워 스스로 못 견뎌 튀어나오게 만들어야지. 이것도 그렇게 하면 되지 않겠어? 억지로 만난다고 해봐야 소영수 그 자식이 언론에 호의적일 리가 없고··· 조회 수 올리기에는 안티를 모으는 게 빠르잖아.”
최 기자는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부장이 갑자기 이런 식으로 말을 할 때는 항상 무엇인가 내막이 있었다.
“그럼···”
“주변을 좀 뒤져봐. 고 감독이 미국에 같이 있다는군. 재판이 그렇게 되고 나서 바로 간 모양이야. 그리고 소영수 걔 개인사도 있잖아. 사업 실패로 도망간 아버지 같은 거 말이야.”
예전에 그런 부분을 좀 추적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기사화시킬 만한 진전을 이뤄내지는 못했고 곧 소영수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식어버려 기사를 내야 할 타이밍도 맞지 않았다. 그래서 흐지부지된 일이었다.
“지금 타이밍이 아주 괜찮은 거 같아. 야구 관련 인터넷 커뮤니티 같은 곳에서는 알음알음 소영수 미국 소식을 다 알고 지들끼리 싸우기도 하는 모양이더라구. 물론 아직까지는 안티가 훨씬 많지. 이럴 때 다수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기사 한 방이면 조회 수는 보장되지 않겠어?”
“부장님. 누가 타킷이에요? 선수끼리 왜 이러세요.”
최 기자가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직진했다. 아마 누군가 드러나지 않는 저격을 원하는 모양이다.
“허헛. 티 났냐? 내가 오전에 누굴 좀 만났는데 고 감독 재판이 공소 기각으로 그렇게 된 것에는 알려지지 않은 이유가 좀 있더라고.”
부장이 슬그머니 털어놓는다. 타깃은 고하라 감독이었다.
“뭘 받기로 한 겁니까?”
“개인적으로 뭘 받는 건 없어. 이거 회사 일이야.”
“광고?”
부장이 슬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고 감독이 대체 무슨 짓을 했길래 우리에게까지 이런 청탁이 들어오는 겁니까?”
“협박을 했다고 하더군. 사건화된 그 일은 고 감독에게 훗날을 보장해주기로 하고 그 선에서 끊기로 합의를 했었다고 해. 고 감독이 다 안고 들어가기로 한 거였는데 고 감독이 구치소에 있을 때 관계자를 불러서 재판 벌어지면 다 털어놓겠다고 했대. 학교 쪽에서 이를 갈고 있다고 하더군.”
그 정도로는 동기가 약한 듯하지만 사람 감정은 그런 기준으로만 판단할 수 없는 일이다. 최 기자의 생각으로는 말투로 봐서 직접 관계자를 만나지는 않은 것 같았다.
“그럼 그 재판이···”
“그래. 학교 쪽에서 인맥을 총동원해서 그렇게 만들었대. 피해자로 증언하기로 한 사람들에게는 돈으로 보상을 해서 입막음을 하고··· 학교 입장에서 법정에 서면 안 되는 인물이 얽혀 있었나 봐.”
담담하게 부장이 경위를 설명했다.
“그 일이 상당히 위쪽까지 닿아 있었던 모양이죠?”
“그거야 내가 어떻게 알겠어. 이런 일이 생기는 걸 보면 그렇지 않을까 하고 짐작만 하는 거지.”
“고 감독만 박살 내면 되는 건가요? 소영수는 상관없고?”
“잘은 모르지만, 이왕이면 하나보다 둘이 낫지 않을까?”
원한이 꽤 크다. 직접적인 당사자가 아닌 사람까지 그렇게 하는 경우는 흔하지 않았다.
“그렇군요.”
“그게 편하지 않겠어? 아직 소영수가 탑급은 아니잖아. 이달의 선수? 이러다 내리막 타는 한국 선수가 하나둘이었어? 잘나간다고 해도 한때라고··· 지금이 딱 좋아. 더 크면 건드리기 좀 부담스러울 수도 있고, 지금 정도면 기존에 있는 부정적인 여론을 등에 업고 흔들기 딱이야.”
그럴듯한 생각이었다. 나무를 흔들면 열매는 자연히 떨어진다. 그 와중에 고 감독 건도 자연스럽게 처리된다.
소영수의 안티들은 당연히 기사를 인용하면서 조회 수를 올려줄 테고 반박 논리를 가진 이들은 안티들이 그렇게 기사를 물고 빨면 궁금해서라도 보게 된다. 거기서 충돌이 일어나면 이슈는 더 커진다. 인터넷판 조회 수가 목적인 신문사로서는 어느 쪽이든 이득이 되는 일이다.
“재미없는 신문은 죄악이라고 조지프 퓰리처가 말했지. 퓰리처상을 만든 사람이 이렇게 말하다니 웃기지 않아?”
“그가 옐로 저널리즘의 산파였다지 않습니까.”
“만평으로 꼬집기, 사진을 통한 연출, 체육부를 신설해 스포츠 기사의 비중을 늘리고, 흥미와 오락 위주의 일요판 시작. 이 모든 게 그가 시작한 거였지.”
퓰리처의 뉴욕월드 일요일판. 옐로키드(yellow kid)란과 이를 흉내 낸 허스트의 뉴욕저널 사이에 벌어진 선정주의(sensationalism) 경쟁이 소위 말하는 황색 언론의 시초이다.
기자밥 좀 먹었다면 누구나 아는 이야기였지만 최민용은 모르는 척 부장의 말에 장단을 맞췄다.
“그런 사람이었던 주제에 신문은 옳은 것과 그른 것을 가르치는 도덕 교사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는 거야. 그러기 위해서는 독자의 시선을 끌어야 하고 그 수단으로 선정주의를 사용한다는 끝내주는 합리화를 했지.”
“개돼지들이 뭘 알겠어요? 당신이 신문을 읽지 않는다면, 정보가 없는 사람입니다. 만약 당신이 신문을 읽는다면, 잘못된 정보를 받고 있습니다라고 마크 트웨인이 말하기도 했죠. 결국 추구하는 목적이 다른 모두가 다 만족하는 건 없는 거겠죠.”
최진용에게도 기자로서 찬란하게 빛날 수 있는 영광의 시기가 있을 뻔했다. 고교야구 붐에 이어진 한국 프로야구의 출범. 한국 선수들의 메이저리그 진출과 월드컵 4강에 이르기까지. 그때가 스포츠 저널리즘의 전성기였다. 현재 한껏 쪼그라든 스포츠지의 위상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과거다.
백만을 향하던 판매 부수는 몇만이 되었고 그에 따라오는 결과로 광고 수익도 무력화되었다. 그가 입사한 2010년까지는 그래도 영광의 끝자락이 조금 남아 있었지만, 상황은 해마다 악화되고 있었다.
“오호! 꽤 그럴싸한 말인데? 자네도 이제 기자밥을 너무 오래 먹은 거 아니야?”
부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웃는다. 부장이 그 영광을 맛본 마지막 세대였다. 자신은 과거의 허상을 좇아 스포츠지에 입사해 이런 초라한 신세가 되었고 신문사 역시 세상의 변화에 따라 이런 청탁까지 받아야 할 정도로 비루해졌다.
“오래 먹었으니까 이런 말도 하는 거 아니겠어요. 앞으로도 생활인으로 먹고살아야 하니까요. 말하다 보니 제게 아이디어가 하나 떠올랐는데···”
“그래? 뭔데?”
“소영수 아버지를 우리가 한번 찾아보죠.”
“왜? 그 사람과 인터뷰한다고 뭐 특별하게 나올 거리가 있을까? 어릴 적 이야기나 대학 입학 관련 이야기를 재탕하자는 거야?”
부장은 조금 부정적으로 나왔다.
“아니죠. 그 정도로 어떻게 이슈가 되겠어요? 이슈를 따라가는 게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야죠.”
“무슨 이야기야?”
“우리는 휴머니즘에 입각해 소영수 아버지를 찾은 거예요.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이 있잖아요. 사업 실패로 밑바닥에 떨어진 가장을 일으켜 세워 성공한 아들과의 감격적인 상봉을 주선하는 거죠. 휴머니티 넘치는 스토리텔링 아닌가요? 인간미 넘치는 언론사죠.”
조금 흥미가 생긴 듯 부장이 허리를 바로 세웠다. 늘어져 있던 자세가 팽팽해졌다.
“으음. 그래서?”
“소영수의 두 가지 반응이 예상되죠. 원망하는 마음이 커서 아버지를 외면할 수 있죠. 그러면 그것 자체가 좋은 이야깃거리가 되지요. 아마 그런 장면 하나로 부정적인 여론이 다수를 이룰 거라고 생각되네요. 게임 끝이죠. 그렇게 되면 거기서 자연스럽게 기삿거리가 계속 쏟아질 겁니다.”
“만약에 원망을 접고 반갑게 맞아들인다면 좀 곤란해지는 것 아닌가? 인간적인 면모는 소영수가 가져가게 되는 거잖아. 우리 목적을 생각하라고. 그렇게 되면 기사 조회 수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그렇게 되면 안 되는 거라니까. 그 사람들 다 악당이 되어야 해. 사회적으로 매장을 시켜야···”
부장이 원하는 것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말았다.
“대중은 감정적이죠. 그걸 건드리면 되지요. 대중이 싫어하는 대표적인 것들 중 하나가 위선이죠. 악어의 눈물, 패거리 의식, 악당들끼리의 야합 이런 걸로 몰고 가면 되지요.”
“오호!”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인한 피해자도 찾아보면 분명 있을 거고 고 감독이 관여한 그 사건 뒤처리에 불만을 가진 사람도 있겠죠. 소영수는 지금 잘 나가잖아요. 잘난 놈이죠. 그럼 이유도 없이 그 꼴 보기 싫어하는 사람은 분명히 있지요. 이런 팩트가 기사에 얹어지면···”
부장은 진심으로 탄복했다.
“흐흣! 이 악당 같으니라고.”
근사한 계획이었다. 우리는 드러나지 않고 휴머니즘의 그늘에 숨을 수 있다. 후일에 역풍이 불더라도 특정할 수 없는 대상이 되면···
그들이 이번 공격으로 넘어지면 목적 달성이고 설혹 몇 년 뒤 소영수가 건드릴 수 없는 위치에 오르더라도 이 일은 지난 에피소드쯤으로 대중의 기억에 묻힐 것이다.
유명인에 대한 관심은 빨리 타오르고 빨리 식는다. 원죄를 공유하는 사이에선 망각이 미덕이 된다.
“뭘 또 그렇게까지 말씀을···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먹고 살려는 놈의 궁여지책인 거죠.”
최진용이 겸연쩍은 듯 머리를 긁었다.
“소영수 아버지는 찾을 수 있겠나?”
“예전 취재원 중에서 연락이 닿은 사람이 있었어요. 그때는 그냥 흘려버렸는데 다시 찾으려면 찾을 수 있을 겁니다. 다만 이게···”
최 기자의 엄지와 검지가 동그라미를 만들고 있었다.
“취재비는 염려 말아. 공식적인 것 말고도 충분히 지원 가능할 거야. 부탁한 쪽에서 웬만한 건 책임지지 않겠어?”
“알겠습니다. 믿고 진행하겠습니다.”
신문사의 큰 창으로 들어오는 오후의 햇살이 최진용에게는 유난히 붉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