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각성한 이레귤러의 커브가 드러남-52화 (52/200)

52화. 천적 (1)

요즘 컨디션은 하늘을 날아보라고 해도 날 수 있을 것 같다. 원정의 피로 그런 건 문제되지 않는다. 잘 자고 잘 먹고 마음이 편안하니까 피곤하지도 않다.

경제적 문제도 완전히 해결되었고, 거슬리는 일도 없었다.

타악-

‘하아!’

금방 하나 생겼다.

‘가끔 홈런 맞는 거야 어쩌겠어. 그게 하필이면 저놈이라서 문제지.’

브레이브스의 구리엘 카스트로. 정말 빌어먹은 놈이다. 쌍욕을 박고 싶은데 이제 나도 소셜 포지션을 의식해야 할 처지라 그럴 수도 없고 스트레스만 쌓인다.

이름도 X같고 성도 마찬가지다. 하는 짓거리까지 똑같다.

작년엔 리그가 달라서 딱 두 번 만났다. 두 타석이다. 결과는 2타수 2안타였다. 그중 하나는 홈런, 2루타 한 개.

그래서 오늘 단단히 준비했었다. 첫 타석은 외야 플라이로 그럭저럭 넘어갔다.

‘사실은 그 타구도 맞긴 잘 맞았지. 코스가 야수 정면으로 가서···’

두 번째 타석 역시 조심조심 승부했다. 잘 치는 것이 반복되면 반드시 원인이 있다. 메이저리그가 우연이 반복되는 그런 무른 곳이 아니다. 세계 제일의···

정면으로 붙기엔 찝찝한 타자여서 유인구를 섞어가며 최선을 다했다. 그랬는데도 이 꼴이 났다. 방금은 존에서 공 한 개가 아니고 두 개쯤 빠지는 공이었다. 다음 공을 위한 목적구로 잘 들어갔다 싶었는데 그걸 냅다 후려쳐 담장을 넘겨버렸다.

완전히 빠지는 볼을 쳐서 담장을 넘기면. 이놈에게는 볼 배합이 무의미하다. 도대체 뭘 어떻게 던지라고 이렇게···

우리 홈이 아니라서 관중들이 엄청나게 좋아한다.

‘기분 더럽네. X발. 빨리 안 뛰냐. 신경 건드리면 다음 타석에 확 맞춰버리는 수가 있어.’

베이스 도는 것도 겁나게 느리다.

‘적당히 좀 하시지. 으이구!’

정말 짜증 나는 놈이다.

‘아니, 재수 없는 놈인가? 어쩔 수 없잖아. 상대가 잘 치는 거야 어쩌겠어. 그것도 빠지는 볼을 그렇게 쳐내는데···’

지금까지 네 타석에서 3안타를 처맞았다. 두 개가 홈런이고. 통계를 생각할 만큼 표본이 쌓이진 않았지만, 단순히 생각하면 7할 5푼이다.

‘느낌적인 느낌이라고나 할까. 감이 너무 안 좋아.’

앞으로 어떻게 상대해야 할는지 각이 안 나온다.

‘무슨 그런 헛생각을 하냐? 한 게임에 두 번 상대하는 것도 처음이잖아. 다음 타석에서 상대해보면 또 느낌이 다를 수도 있고···’

자책은 의미 없다. 일이 벌어지기 전에 준비해야지 벌어지고 나서 이래 봐야 결과가 바뀌지는 않는다.

내가 제일 싫은 타자 유형이 방금 생겼다. 3할을 치는 배드볼 히터.

‘참 지랄 같은 놈이네. 이놈은 팔도 길어 배팅 스피드도 좋아. 심지어 발도 빠르고··· 어떻게라도 공 맞히는 능력이 탁월해. 같은 지구가 아니라서 조금 낫기는 한데···’

작년엔 리그가 달라서 거의 만날 일이 없었는데 올해는 사정이 조금 달라졌다.

‘이놈은 아메리칸 리그로 안 가나? 빨간 양말이나 하얀 양말 팀 정도로 꺼져 주면 정말 좋겠는데···’

이놈은 아웃라이어다. 통계에 그 능력치가 반영되지 않는 부분이 많다. 선구안이 나쁘면 잘 못치는 것이 당연한데 그 상식을 깨는 놈이다.

‘가끔 있어서 다행이지 다 이런 놈들이면··· 어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그렇지만 인정할 건 인정한다. 나 같은 놈이 있으면 저런 놈도 있을 수 있다. 강 대 강으로 억지로 부딪칠 필요 없다. 잡아먹을 초식 동물은 널리고 널렸다.

억지로 상대를 꼭 해야 할 이유가 없다. 다음 타석이 돌아왔을 때 기분이 찝찝하면 상대 안 하면 된다. 맞춰버려도 되고.

‘처음보다는 두 번째가 마음에 드네.’

팀 스포츠의 최종 목적은 우리 팀의 승리다. 4회 현재 스코어 2:1 이런 뜬금포에 신경 쓸 것 없다. 리드하고 있고 이대로 끝까지 갈 거다.

‘그만큼 잘 치면 클린업트리오 좋잖아. 하필이면 왜 2번으로 나와서 이 난리냐고. 뜬금포 같으면 신경도 안 써. 그게 아닌 것 같으니까 이러지.’

2번 타순이면 한 게임에 적어도 세 번 이상은 거의 만나게 된다.

4월에 총 39이닝 4승 1패 ERA 0.92로 내셔널리그 이달의 투수상을 받았다. 1패가 있긴 했지만, 평균자책과 특히 퍼펙트게임의 임펙트가 컸다. 내가 받을 만했다.

‘무패 투수가 있었지만, 어딜 나한테 비기겠어?’

이달도 순항 중이었다. 원정과 홈경기 가리지 않고 이겼다. 총 22이닝을 던져 2승 무패 이 기간 중 ERA 1.22다. 노 디시전(NO Decison)이 한 게임 있어 조금 아쉽긴 하지만 아직까지 괜찮다.

‘상대 5선발이랑 붙을 때는 타자들이 펑펑 때려줘서 편하더니 이번 게임은···’

팀 내에서 선발 투수로서의 내 위상은 아직 양에 안 찬다. 저번 주부터 선발 로테이션에 변화가 있었다. 내 로테이션 순서가 세 번째가 되었다. 로저스 자식을 내 뒤로 밀어냈다, 속이 다 시원했다. 지금은 세 번째지만 모두 알 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실질적 1선발이라는 걸. 그렇다면 이 정도는 헤쳐 나가줘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6승 1패에 ERA가 0.88이야. 소화 이닝도 내가 제일 많아. 현시점에서 난 팀 내 아니, 리그 최고의 선발 투수라고.’

오늘 홈런을 하나 맞기는 했지만, 그거 포함해서 산발 2안타밖에 안 맞았다.

굼벵이 카스트로가 드디어 베이스를 다 돌았다. 내 마음은 이미 가다듬어졌다. 이제 다시 날을 세워야 할 때다. 이제 4회일 뿐이다.

“스트라익.”

‘다음 타석에서는 카스트로 그놈을··· 아이고! 이제 그만 하자.’

천천히 아웃 카운터를 하나씩 늘여갔다.

“아우, 거기서···”

등판 중일 때 덕아웃에서는 최대한 감정 표현을 자제하려고 하지만 참지 못하고 실망 섞인 말을 순간적으로 흘리고 말았다.

1사 1, 3루에서 5번 타자 레브론의 강한 타구가 2루수 정면으로 날아가 다이렉트로 잡혔다.

스타트를 끊었던 1루 주자가 역동작에 걸려 미처 귀루하지 못하고 포스아웃(Force Out). 순식간에 더블 아웃으로 공격 기회가 사라져 버렸다, 정말 게임 안 풀린다.

6회 현재 아직도 게임은 2:1로 이기고 있지만, 그 타구가 빠졌다면 결정적 우위를 가져올 수 있었는데 많이 아쉽다.

***

[6회말 브레이브스의 공격은 9번 타자부터 시작됩니다. 9번 포수 윌리엄스 현재 타율 0.232 홈런이 2개 있습니다. 오늘 불의의 홈런을 하나 맞긴 했습니다만 So는 늘 그래왔듯 안정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데이빗이 보시기에 오늘 So의 컨디션은 어떤 것 같은가요?]

[언제나 편안하게 볼 수 있는 투수죠. 오늘도 지금까지 55구를 던졌으니까 투구 수 조절은 잘 되고 있습니다. 7회 정도까지는 무난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So의 투구 수 90구 제한은 언제까지 지속된다고 하던가요? 데이빗의 휴민트를 통한 특별한 소식은 없나요?]

[팀의 입장은 상반기까지 유지하는 건 확정이고 그 이후는 아직 미정이라는데, 제 개인적인 생각은 올 시즌 정도는 이대로 가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자이언츠의 성적이 5할 승률을 맞추고는 있지만, 지구에서 확실히 치고 나가지는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지금 So의 페이스로 보면 투구 수 제한만 푼다면 평균 한 이닝은 충분히 더 감당할 거라는 의견이 많지요. 여력이 있는 투수가 그렇게 이닝을 먹어주면···]

[요즘 그런 의견이 있는 건 알고 있습니다만, 그건 무리예요. So는 현재도 평균 7이닝을 던져주고 있고 그건 선발 투수로서 충분하게 자기 역할을 한 것입니다.]

[윌리암스 2구를 당겨쳤지만 평범한 유격수 앞 땅볼로 물러납니다. So가 확실히 땅볼 비율이 높군요.]

[그 부분에서는 독보적이죠. 리그 선발의 땅볼 비율은 작년 기준으로 평균 45% 정도 됩니다. 그라운드 볼러라고 말하려면 최소 50%는 넘겨야 하는데 So는 70%입니다. 그 비율이 두 번째로 높은 선수가 60%이니 So가 얼마나 탁월한지 수치로 증명이 됩니다. 사실 50%를 넘긴 선수도 리그 전체에 15명밖에 안 되지요. 70%라는 건 불펜투수에서나 가끔 나오는 수치입니다. 단연코 So 이전에 선발로 이런 선수를 저는 본 일이 없어요.]

[그렇군요. 그럼 그런 장점으로 이닝 소화를 더 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요?]

[음. So가 저번 시즌을 거의 풀타임으로 뛰긴 했죠. 불펜으로요. 이번 시즌이 So에게는 선발로 치르는 첫 풀타임 시즌입니다. 말하자면 So에게는 루키 시즌이나 마찬가지인 거죠. 체력 안배나 여러 가지 면에서 배워나가야 할 것이 많은 시기입니다. So는 조금의 인내심을 가지면 미래의 에이스가 될 수도 있는 선수입니다. 저는 그런 식의 소모가 지금 부적절하다고 봅니다.]

[자이언츠의 레전드 선수로서 좋은 말씀을 주셨네요. 경기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1번 휘툴러 볼을 잘 골라내고 있습니다. 현재 투볼 원 스트라이크입니다. 3구가 존에 들어온 듯 보였지만 주심의 손이 올라가지 않았습니다.]

[아깝지만 어쩔 수 없지요. 스트라이크 판정은 주심의 고유 권한이니까.]

[4구 스트··· 아! 다시 주심의 손이 올라가지 않습니다. 분명히 지난 회까지는 저 코스를 잡아줬던 것 같은데 갑자기 존이 좁아진 것 같습니다. 데이빗 어떻게 보셨습니까?]

[3구의 판정이 지금 공에 영향을 미친 것 같네요. 구속과 구종은 달랐지만 비슷한 코스였죠. 앞 공과··· 판정의 일관성이 이상한 곳에서 나타난 것 같네요. So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저런 건 심리적인 압박이 심하게 됩니다.]

[이런 문제 때문에 기계식 판정을 도입하자는··· 어? 말씀드리던 순간 던져진 5구가 존에 들어간 것 같은데 다시 주심의 손이 올라가지 않습니다. 볼넷입니다. 지금 말이 안 되는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라드 감독이 뛰쳐나옵니다.]

[고집과 고집이 부딪쳤네요. So에게 3구가 스트라이크라는 확신이 있었나 봅니다. 3구가 볼 판정을 받자 비슷하게 하나 더 넣고 이번에는 조금 더 안쪽으로 붙인 것 같습니다. 놀라운 커맨드네요. 아웃코스 존에 대한 이런 섬세한 컨트롤은 글래빈 이후에 처음 보는 것 같습니다. 이런 상황에 주심이 자존심이 상한 겁니다. 그 코스는 볼인데 왜 자꾸 던지는 거야. 내가 틀렸다는 건가? 아니야 내가 맞아. 이렇게 된 거죠.]

[라드 감독 잠깐의 어필 끝에 물러납니다. 경기 속행됩니다. 2번. 문제의 타자가 나오고 말았네요. 구리엘 카스트로.]

[아주 꺼림칙한 상황에서 최악의 타자를 만났어요. 이제까지 So와 네 번 만나서 세 개의 안타. 두 개가 홈런이었습니다. So와 상성이 아주 안 좋아 보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흥미롭기도 하군요. 1사 1루를 아주 위기 상황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So는 이런 상황조차 잘 나오는 투수가 아니라서 어떤 대처를 보여줄지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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