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각성한 이레귤러의 커브가 드러남-45화 (45/200)

45화. 달리고 싶다

“이제 어쩌죠?”

“어떻게라니?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가?”

감독은 모르는 척 딴청을 부린다.

“불펜 핵심 자원이 저렇게 해내면 곤란한 것 아닌가요? 트레이드 목적도···”

그건 프런트에서 걱정할 일이다. 투수 코치의 말은 선을 넘었다. 라드 감독은 일단 모르는 척 넘기고 말을 이어나갔다.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

“선발 가능성을 보이면 불펜보다야 선발이 낫지 뭘 그러나. 지금까지 잘해 왔잖아. 세 게임 10이닝에서 맞은 안타가 단 3개밖에 안 되잖아. 이런데 어떻게 탈락을 시켜? 선수가 납득할 수 없는 일을 억지로 밀어붙이면 분란밖에 일어날 게 없어.”

“그건 그렇지만··· 프런트에서···”

두 번째도 그냥 넘겼다. 인간은 잦은 실수를 한다.

“삼진만 잘 잡는 줄 알았더니 그라운드 볼러의 자질도 훌륭해. 좀 더 시험해보면···”

“그러다 마지막까지 가서 결정하면 계획되었던 투수진 구상에 문제가 생기지 않습니까? 선수들 컨디션 조절도 생각해야 하고···”

세 번은 안 된다.

“그 계획을 꼭 따라야 하나? 프런트의 기본 구상을 존중해야 하는 건 맞지. 그렇지만 특별한 사정이 생겼다면 계획 수정은 당연히 이뤄져야 하는 것 아닌가? 그 수정을 담당하는 게 자네 일이고··· 그게 원칙이야. 나는 말을 뱉었고 원칙을 지킬 생각이야. 자네 의견은 다른가?”

“아! 아닙니다. 그냥 걱정스러워서 드린 말씀입니다.”

투수 코치가 한발 물러섰다.

“시범 경기에서 두 번 정도 더 등판이 가능하겠지?”

“선발 후보에 계속 남길 생각이시라면 그렇게 해야겠죠,”

리우드 투수 코치는 내키지 않았지만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그 두 번 중 한 번은 타순이 두 바퀴 돌 때까지 맡겨볼 생각이야. 그때도 지금 같은 성적이 나온다면 어쩔 수 없지 않겠나?”

“그거야. 그렇죠. 존슨도 잘 던졌는데···”

지금 선발 후보 중 웹 로저스, 데니스 존스, 에릭 프럿코 이 셋은 팜에서 올라온 선수들이다. 리우드는 자신의 열정과 노력이 지금의 그들을 만들었다 자부하고 있었다. 원래는 넷이었다. 한계를 노출한 엔서니는 So의 트레이드 상대로 버려졌다.

가급적 팜 출신의 젊은 선수들에게 기회를 주고 싶은 게 리우드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들은 열정이 있었다.

“그는 아직 젊어. 설혹 지금 잘 안 풀린다고 해도 여섯 번째 선발로서의 기회가 있을 수도 있지. 노장들이 언제 퍼질지 알 수가 없지 않나. 잘 다독이게. So가 만약 선발이 되면 클로저를 욕심내던 체이스는 좋아하겠군.”

감독이 마지막 말에 농담을 섞었지만 리우드는 웃고 싶지 않았다.

“예.”

“만약 So가 끝까지 남게 된다면, 프런트에서 따로 생각하고 있는 일이 있으니까 불펜 문제는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야.”

감독은 프런트와 어떤 교감이 있었다는 듯 말하고 있었다. 프런트가 지금 이 일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건 어떻게 생각하면 당연한 일일 수도 있다.

“프런트에서 So를 캐빈과 애덤의 대체자로 생각하고 있는 건가요?”

그들의 계약은 올해와 내년까지였다.

“그거야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지. 일단은 So의 기량이 따라줘야 할 문제이지만 만약 선발 경쟁에서 승리하고 올해 어떤 성과를 보여준다면 그렇게 될 수도 있겠지. 그들과의 계약이 끝나면 누군가 데려와야 하는데 그것보다는 쓸 만한 불펜 투수 하나 데려오는 게 쉽지 않겠어?”

‘시장 가격이 많이 싸겠지요.’ 리우드는 나오려 하던 말을 억지로 참았다.

“좀 두고 보세나. 우리 입장도 이 시점에서 좋은 선발을 하나 얻을 수 있다면 나쁘지 않잖아.”

***

“윌. 어떻게 되어 갑니까?”

“오늘도 4이닝 던졌는데 2안타 무실점입니다. 삼진은 다섯 개지만 나머지 아웃 카운터를 다 땅볼로 잡아냈습니다. 외야로 거의 공이 날아가질 않습니다. 2루타 하나를 맞기는 했는데 정타는 아니었고 코스가 좋았죠. 수비 문제도 좀 있었고···”

해리스 사장은 짜릿한 희열을 느꼈다. 자신의 선택이 옳았다. 수비 문제는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대체 선수를 시험하기도 하는 시범 경기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다.

“그럼 결정된 건가요?”

“라스 감독은 한 번 더 등판을 시키겠다고 합니다. 상대 타순을 두 번 상대시켜 보겠다고 하더군요.”

“그게 말이 됩니까? 아직 시즌 시작도 안 했는데 6이닝 투구를 시키겠다니요. 신중한 것도 좋지만 그건 너무 무리한···”

윌리스 단장은 자신이 라스 감독에게 했던 반응이 해리스 사장에게 똑같이 나타나는 게 재미있게 느껴졌다.

“진정하세요. 제가···”

“이게 화를 안 낼 일입니까? 감독의 계획대로라면 So가 시범 경기에서 20이닝을 던지게 되는데 벌써 그런 식의 투수 운용을 하면 어쩌자는 겁니까? 라스 감독은 여름까지만 야구 할 생각이랍니까?”

“하하.”

단장의 웃음에 사장이 마구 눈을 흘긴다. 그는 진짜 화가 많이 난 것 같았다.

“음··· 음. 윌 그렇게 웃어서 될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해리스는 억지로 화를 가라앉혔다. 이게 윌리스 단장에게 화낼 일은 아니었다.

“저 역시 그런 우려를 감독에게 전했습니다. 그런데 라스 감독의 설명이 그럴듯하더군요.”

“그 사람이 뭐라고 했길래···”

“이닝으로 따지면 그렇지만 So는 투구 수 관리가 되고 있다고 하더군요. 불펜 때와 투구 스타일을 바꿔 던져 투구 수로 따지면 선발 투수가 통상적으로 시범 경기에서 던지는 정도밖에 안 된답니다.”

“음. 뭐 그렇다면야···”

해리스의 머릿속에서 어떤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게 혹시 감독이 그가 이닝 이터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 겁니까?”

“아직은 가능성이지만, 그런 의미도 내포되었다고 전 받아들였습니다.”

분명히 좋은 일인데 해리스의 머리가 갑자기 멍해졌다.

“허헛. 이것 참! 제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모르겠군요.”

“옳은 판단을 하신 거죠. 이제 이 일은 도박도 아니고 투자도 아니게 되었습니다. 잃을 가능성이 없는 일을 그렇게 부르지는 않죠. 준비한 그 일을 추진해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 그 일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나요?”

선수들이 스프링 트레이닝에 들어간 이후부터 단장은 주로 내부 일을 관장하고 있었다. 시즌 개막이 코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그 때문에 기존 계획이 엎어졌을 경우를 대비한 출구 전략은 해리스 사장에게 일임되었었다.

“계속 끌고 있어요. 장기 계약이 가능할 것처럼 냄새만 피우고 있죠. 1+1이나 2+1 계약을 제시한 팀은 몇 있는데 그들도 그렇게 적극적이지는 않습니다.”

“조건이 많이 어긋나는 모양이죠?”

“연봉보다는 계약 기간에 대한 이견이 큽니다. 안드레 쪽은 최저 기준이 5년 이상의 다년 계약을 원합니다.”

그동안 해리스가 해왔던 일은 트윈스에 있다. FA 선언을 한 안드레가 다른 팀과 계약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것이었다. 그의 에이전트에게 다년 계약을 해줄 듯이 신호를 계속 보내고 있었다.

“어떻게 하실 생각이신가요?”

“So의 등판 결과를 보고 결정하죠. 만약 So가 해낸다면 안드레를 잡아야겠죠. 그래도 지금 남은 가장 나은 불펜 옵션이니까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다년 계약을 줄 생각은 없습니다.”

“그럼 어떻게?”

“FA 재수를 권유할 생각입니다. 1+1 계약에 연봉을 후하게 책정해야겠죠. 우리도 체이스라는 어린 불펜 자원이 있지 않습니까. 그에게 시간이 좀 주어진다면 더 발전할 여지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충분히 가능한 계획이라고 단장은 생각했다. 내년과 내후년에 팀의 고액 연봉자 둘의 계약이 순차적으로 끝난다. 올해 조금만 무리하면 내년부터 페이롤(Payroll, 한 해 선수들이 받는 총연봉의 합)에 여유가 생긴다.

“웃기는 일이네요. 그들의 계약이 끝나기 전 최대 전력을 만들어볼 생각으로 재작년에 리빌딩을 끝냈는데 일이 이렇게 되다니···”

“하핫. 세상사가 대개 그렇죠. 사장님 좀 더 두고 봅시다.”

현시점에서 팀에 가장 좋은 시나리오는 올해 유망주들이 약진하고 내년에 여유로워진 자금으로 그들을 장기 계약으로 묶는 것이다.

자이언트의 전성기는 항상 그렇게 찾아왔었다. 윈나우(Win-now. 리빌딩의 반대 개념)라고 FA만 사 모으는 것이 아닌 팜 출신 자원들이 약진했을 때. 바로 그때가 전성기였다.

***

“긴장돼?”

“긴장은 무슨··· 그런 건 쟤들이 해야지.”

오늘의 상대 파드리스 덕아웃을 바라보며 씩 웃어 보였다.

마지막까지 살아남았다. 오늘 게임만 잘 넘기면 선발의 한 자리는 차지할 수 있다. 5선발이 유력하던 데니스 존스는 거의 무너지기 직전이다.

‘아직 경험이 모자랐어. 오버페이스를 해버렸지.’

아마 내가 돌출되는 것에 대한 불안감이 원인이었던 것 같은데 상대가 스스로 무너져주면 그것은 그것대로 아주 감사한 일이다.

‘걔는 멘탈부터 다시 잡아야 할 것 같은데··· 뭐! 코칭 스탭이 알아서 하겠지. 이렇게 쉽게 넘어갈 놈이라면 선발로 결정되었어도 어차피 오래 버티지 못했을 거야.’

오늘은 6회까지라는 말을 들었다. 그동안 최고 길게 던진 것이 4이닝이었는데 6회란 건 두 타순을 버텨내라는 뜻이다. 최종 리허설이라고 생각된다.

‘글쎄, 버텨낼까?’

내 걱정이 아니다. 그런 걱정은 파드리스 타자들이 해야 할 것 같은데 감독은 왜 내게 그런 식으로 말을 했는지 모르겠다.

‘아이고! 설레발은··· 흠. 최선을 다해···’

아무리 진지해져 보려고 해도 웃음만 자꾸 난다. 날씨가 너무 화창하다. 섭씨 25도 습도는 37%. 공 던지기에 최적의 날씨다.

하늘도 날 응원하는 것 같은 날이다. 적당히 땀이 나면 근육의 긴장이 풀어지고 이 정도 습도라면 내 손가락은 마술을 부리게 된다.

‘내 경우는 습도가 낮으면 투구 수가 늘어날수록 손가락 끝의 감각이 떨어지더라구. 습도가 너무 높으면 공이 미끄러지는 느낌이 나고···’

내게 이런 날씨는 날개를 달아준 것이나 마찬가지다. 불펜에서 몸을 풀 때부터 싱커의 각이 심상치 않았다.

주심의 플레이볼 선언에 첫 구를 던졌다. 역시 손가락 끝에 공이 착 감긴다.

‘히힛. 니들 오늘 다 죽었어.’

내 공이 홈플레이트 위에서 춤을 춘다. 아웃코스 존에 공 한 개 만큼 더 떨어트리고 배트가 따라 나오면 하나 더 떨어트린다. 스윙을 자제하면 존을 파고든다. 업슛은 원반처럼 치솟는다.

1이닝을 순삭했다.

“야! 너 오늘 공 미쳤네.”

나도 솔직히 좀 놀랐다. 내 공은 그렇게 움직일 거라 어느 정도 예측하고 있었지만 그런 현란한 움직임을 베그웰이 그렇게 안정적으로 포구해 줄 수 있을지 몰랐다. 정말 프레이밍 하나는 예술이다.

‘오호라. 타타스.’

14년에 3억 4천만 달러를 받은 선수다. 엄청난 운동 능력을 가진 거포지만 유리몸 기질이 있어 몇 년간 성적이 들쑥날쑥했었다.

“너라고 별수 있어. 오늘 난 최고라고···”

타악-

“악!”

역시 강타자는 맞아 나가는 소리부터 틀리다.

‘빌어먹을··· 설레발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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