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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성한 이레귤러의 커브가 드러남-41화 (41/200)

41화. 보는 것과 보이는 것

“에이전트가 아무나 할 수 있는 거였어요?”

“아무나라니··· 여긴 시험도 봐야 한다고 하던데··· 마일리가 재작년에 시험을···”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하겠다. 겸사겸사해서 쉬는 시간에 고 감독에게 베그웰의 계약이 필요함을 슬쩍 내비쳤더니, 그도 자세한 시스템을 잘 모르는 눈치다.

‘시험? 그럼 마일리는 그때부터 벌써 독립 생각을 했던 건가?’

“에이전트 자격이 있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아. 이 업계에 종사하는 젊은 사람들은 거의 다 있다고 보면 돼. 대개 보통 고학력들이 아니거든. 그런 시험쯤 웃으면서 통과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아.”

답 비슷한 건 메이저리그 경력이 오랜 베그웰에게서 나왔다. 그에 의하면 MLB 공인 에이전트가 되기 위해서는 메이저리그 선수협회(MLBPA)가 주관하는 필기시험에 합격해야 하고, 범죄 기록 등이 없어야 한단다. 시험은 1년에 한 번, 뉴욕에서 치러진다고.

“아! 그래?”

“현장에서 일을 하는 에이전트는 제너럴 에이전트와 리미티드 에이전트로 나뉘지. 메이저리거의 연봉 협상이나 광고 계약 같은 걸 하려면 제네럴 에이전트여야만 해. 그들만이 선수 이익과 권리 보호를 위해 종합적으로 일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보면 돼.”

통상적으로 에이전트라고 뭉뚱그려 불러도 누구나 일에 대해 다 같은 권리가 있는 건 아니란 거다.

“제너럴 에이전트 아래에서 일하는 대부분의 직원들이 리미티드 에이전트야. 주로 선수 영입이나 선수 관리 등의 업무를 하지. 이건 웬만한 사람은 다 할 수 있어. 제너럴 에이전트에게 조언하는 엑스퍼트(Expert) 에이전트 어드바이저(Advisor)도 있다는데 그건 어떤 건지 나도 잘 몰라. 말로만 들어봤어.”

“베그웰 아주 잘 아네.”

“제네럴 에이전트의 자격 부여를 받으려면 대리하는 고객 중에 메이저리그 40인 명단에 포함된 선수가 있어야 해. 아마 마일리가 기본 자격은 따 놓고 있다가 이번에 너는 확실하다고 생각하고 창업을 결심한 걸 거야. 내가 좀 애매한 선수이긴 하지만 하나 보다는 둘이 낫지 않겠어.”

솔직히 감탄했다. 서비스 기간 3년이 지나고 연봉 조정 자격을 가지게 되면 저렇게 변하는 모양이다. 냉정한 현실 판단이다. 의리남과 같은 마음이 전혀 없다고 말하기는 어렵겠지만 이 녀석도 내 가능성에 배팅한 것이다. 아주 좋은 명분을 가지고.

“연봉이 얼마나 오를지 모르겠지만 마일리가 잘 해낼 거야. 신경 안 쓰는 척하더니 세심하게 많이 알아봤나 보네.”

진짜로 그렇게 생각한다. 야망녀의 욕망이 폭발하면 어떻게 된다는 건 우리 엄마의 경우를 보고 들으면서 자라다 보니 잘 알게 되었다.

“호! 그렇게 되는 거였나?”

고 감독은 이런 생소한 이야기를 듣고 얼떨떨한 것 같다.

이 양반은 반푼수다. 모르긴 해도 이번 일에 한국에서 있는 거 없는 거 다 가져다가 집어넣을 것이다. 사랑에 눈먼 노총각이 앞뒤 가렸을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그도 그 행동의 중심에는 내 가능성에 대한 확신 비슷한 감정이 있었으리라.

나는 모르는 척 운동만 열심히 하면 된다. 모두 자신의 욕망을 바라보며 전력투구할 것이다.

‘성공하면 나는 큰 덩어리를 가지고··· 음.’

내가 주체다. 내가 망하면 다 같이 망하는 거다. 하지만 그들이 실패한다고 내가 망하지는 않는다.

에이전트 사업이 성공하면 그건 그것대로 괜찮다. 그런 경우가 생긴다면 솔직히 그건 그녀의 능력이 99%다.

좋은 배경을 가졌다고 모든 계획이 성공을 거두지는 않는다. 막강한 재벌이 시도하는 신규 사업도 때때로 망한다. 냉정히 말해 확고한 기존의 강자가 존재하는 시장에서 그녀의 성공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나는 그런 사람에 투자를 한 것이다.

‘나를 등지면 가능성이···’

어떤 식으로 일이 전개되든 나의 영향력은 확고하다.

‘작년과 같은 성적을 2년만 더··· 아니지. 슈퍼 2 조항의 적용을 받을 수 있게 된다면 1년만 참으면 돼. 그럼 연봉 천만 불은··· 좀 무리인가? 클로저를 할 수 있으면 어쩌면 가능할 것도 같은데···’

그 정도만 되어도 이백만 불은 잔돈이다. 주위의 헌신적 도움이 있다면 그 가능성은 점점 높아질 것이다. 그 내막이 욕망이든 뭐든 상관없다. 그건 각자의 선택이다.

‘너무 삭막한 생각이야. 더불어 잘사는 세상이란 게 서로의 선의를 믿고···’

책 속의 지식에는 그 이면이 있다. 현상보다는 본질을 파악해야 한다. 그것이 후세에 전하는 가르침이다. 나는 현실에 살고 있다.

‘에고, 비룡이가 너무 가 버렸네.’

“에이전트 중요해. 나 같은 경우는 친분으로 선택해서 머리만 아팠지. 서로에게 이득이 보장되지 않으면 아무리 친해도 오래가지 않더라구.”

베그웰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운동선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운동이다. 인생에 다른 재미도 많겠지만 그건 선수를 하지 못하게 되고 나서 해도 된다. 운동선수로서 주어진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육체적 전성기라 할 수 있는 짧은 기간 동안 운동에만 전념해 경기력 향상과 꾸준한 컨디션 유지가 이루어진다면 선수의 가치는 더 높아진다. 그렇게 될 수 있다면 선수인 나에게 심리적 안정도 같이 찾아오게 된다. 그동안 너무 힘들었었다.

“왜? 전 에이전트에 문제가 있었어?”

유망한 선수에게는 연봉 협상, 이적, 스폰서쉽이나 광고모델 계약, 마케팅 등 수많은 일이 생긴다. 그뿐 아니라 선수로서의 삶 밖의 부분인 언론 대처, 의료 및 법률 지원, 가족 관리, 팬 관리 등 개인적으로 챙겨야 한다면 머리 아픈 일이 너무너무 많다.

“그도 문제였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나도 문제였지. 에이전트란 게 기본적으로 선수를 통해 수익이 발생해야 지탱해 나갈 수 있는 건데 난 추가적인 수입에 대한 전망이 안 보이는 선수였으니···”

그런 상황이었다면 서로 많이 답답했을 것 같다.

“입단 계약 즈음 다니던 학교 감독 소개로 에이전트 계약을 했는데 그 사람은 전문적인 에이전트가 아니었더라구.”

베그웰의 말에 의하면 미국 내 아마추어 선수와 국제 아마추어 선수의 드래프트 및 마이너리그 계약과 관련된 일의 대리인은 메이저리그 공인 에이전트 자격이 없어도 누구나 가능하다고 한다.

“내 입단 계약은 완전히 합법적이고 정당하게 이루어졌어.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란 걸 한참 뒤에야 알게 되었지. 그래서 지금 에이전트가 없어. 마밀리는 잘하겠지?”

“하핫. 그럼 당연히···”

사실 나도 잘 모른다. 잘되기를 바랄 뿐. 사실은 이 시기만 지나면 어떻게 되어도 별 상관없다.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범위는 점점 더 넓어진다. 한동안 독점적인 서비스라는 혜택을 제공받고, 누리며 날아오르고 나서 다시 생각해 볼 일이다.

‘운동선수에게 가장 중요한 건 실력이지.’

“자! 일어나. 많이 쉬었잖아.”

생각에서 현실로의 전환이 가장 빠른 건 고 감독이었다. 그의 재촉으로 훈련 스케쥴이 다시 시작되었다.

‘나 참! 많이 쉬기는··· 몸만 쉬었지. 정신적 피로감은 회복이 안 되었다고.’

아열대는 겨울도 뜨겁다.

***

“어때 느낌 괜찮아?”

“글쎄요. 잘 모르겠어요.”

2월 초순 샌프란시스코로 돌아왔다. 처음 왔을 때는 이곳 날씨도 쾌적하게 느껴지더니 두 달 넘게 20도 이상에서 생활하던 몸에는 평균 기온 10도가 꽤 쌀쌀하게 느껴진다.

플로리다에서 생활하는 동안 고 감독은 공을 만지지 못하게 했다. 리셋이 필요하다나 어쨌다나···

시즌 후 모션 캡쳐 시스템을 참고해가며 새로운 변화구 연습을 그렇게 시키더니. 그러고 나서 리셋을 한다는 건 순서가 뒤바뀐 게 아닌가 싶은데 선생이 까라면 까야지 어쩌겠는가.

“베그웰. 공 어때?”

“좀 미묘하네요. 변화가 그렇게 크지 않아요.”

“투심 반대쪽으로 움직이는 것 같긴 해?”

“예.”

“음. 그럼 계속 그렇게 몇 구 더 던져봐.”

스피커에서 들리는 고 감독의 목소리에서는 감정을 잘 느낄 수가 없다.

우리가 플로리다에 있던 사이 그 창고 같던 곳이 몰라보게 바뀌어 있었다.

겉모습은 헌 창고가 새 창고처럼 보이는 변화 정도였지만 실내에는 투구 연습장까지 만들어져 있었다.

심지어 고 감독은 내 공을 맨눈으로 살피지도 않는다. 모션 캡쳐 시스템과는 별개라고 하던데 아무튼 여기서는 창문만 보이는 어떤 방에서 카메라로 찍힌 내 공을 분석한다.

‘이거 도대체 돈을 얼마나 쏟아부은 거야?’

“공 안 던지고 뭐 하냐?”

“예.”

이런 첨단 연습장과의 첫 만남이라서 그런지 어리벙벙하다. 이 옆에는 배팅 게이지도 있다.

이제까지 던진 몇 구는 하도 오랜만에 공을 잡아서 적응을 위해서 슬슬 던진 거였다. 본격적으로 피치를 올렸다.

“그만 됐다. 오늘은 20구만.”

몸도 완전히 풀리고 이제 막 흥이 나려고 하는데 그만하란다.

‘거 참! 감이 딱 오려는··· 응? 뭐가 이상했지?’

무엇인가 아주 이질적인 게 있었던 것 같은데 그게 뭔지 모르겠다.

“옆문으로 나가면 바로 샤워실이야. 씻고 이리로 와라.”

“예.”

“베그웰, 장비 조심해서 벗어. 그거 비싼 거다. 되게 민감하다고.”

베그웰이 카메라가 붙어있는 포수 마스크를 벗으려다 멈칫하는 모습이 보인다. 내가 쓰고 있는 모자에도 소형 카메라가 붙어있고 마이크도 달려있다.

‘왜 사람을 기죽이고 그래!’

이렇게까지 해서 얼마나 도움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비싼 거라는데 나도 조심해서 벗어야겠다.

“이게 뭐야?”

희한하게 생긴 샤워 부스였다. 미끄럽지 말라고 바닥이 고무 타일인 것까지는 이해하겠는데 벽에도 완충제 같은 것이 붙어있다. 이걸 세심하다고 해야 할지 어이가 없다.

선수 부상 이유 중에서 샤워하다가 비누 밟고 미끄러져 다쳤다는 이야기를 들어보긴 했다.

‘내가 설마 그럴까. 걱정이 너무 심하네.’

그렇게 희한한 곳에서 샤워를 하다가 문득 알게 되었다. 무엇이 이상했는지.

난 굉장히 빨리 몸이 풀리는 유형의 선수였다. 그런데 오늘은 연습구 몇 구에 정식으로 20구 가까이 던지고 나서야 몸이 풀리는 듯했다. 이것이 의미하는 건 분명하다.

척추동물의 골격근은 수축 속도가 빠른 속근과 느린 지근으로 구분한다. 포유류의 경우 순수한 지근은 아주 적고 대부분이 속근이다. 꾸준한 힘을 내는 지근은 사실 느린 속근 섬유(slow-twitch muscle)다. 상대적으로 강한 힘을 내는 속근은 빠른 속근 섬유(fast-twitch muscle)라고 봐야 한다

‘체력 훈련에서 지근을 주로 키운 건가? 그래서 몸이 기억하는 사이클을 바꿨다? 왜 지금에 와서 선발을 생각하는 거지?’

고 감독이 생각하는 큰 그림의 실체는 분석실이라고 이름 붙여진 방에서 알게 되었다.

‘내가 역시 사람 보는 눈이··· 아니 인복이 좋다고 해야 하나?’

다 조상 덕이다. 엄마는 언제나 틀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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