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화. 이해타산
“해리스. 너무 퍼 주신 것 아닙니까?”
“천만에요. 윌. 그들은 So를 제대로 쓰고 있지 못했어요. 시즌이 기다려지네요. 트윈스가 뒤돌아서 흘릴 눈물을 생각하면··· 아주 기대가 됩니다.”
자이언츠의 야구 부문 사장 폴 해리스는 날아갈 듯 상쾌했다. 7월부터 추진해온 일이 이제야 해결됐다. 출혈이 조금 있기는 했지만, 지켜야 할 유망주는 다 지키고 어떻게든 처분하려던 잉여 전력을 덜어냈다. 아주 만족스러운 거래였다.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군요. 4대 2 트레이드라고는 하지만 베그웰은 구색 맞추기 용밖에 안 되고 실제로는 4대 1이지 않습니까? 즉전감 선수 셋에 유망주까지 하나 끼워서 주다니 이것 참··· 불펜 투수 하나 데리고 오는데 이래서야···”
윌리스 크로포드 단장으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을 사장이 끝내 해버렸다. 그에게 이런 트레이드는 듣도 보도 못한 일이었다.
현 사장이 단장일 때 보여준 능력은 인정하지만 아무래도 승진 후 넘치는 의욕이 이런 사고를 불러일으킨 것 같았다.
사장이 하도 강권을 해서 이 트레이드 건에 대해 사장에게 일임하고 손을 놓아버렸지만,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그 역시 단장이었던 사장과 함께 내부 승진으로 오랜 스카우터 생활을 끝내고 단장에 취임했다. 되도록 오래 이 자리를 지키고 싶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하필이면 왜 베그웰을 끼워 넣은 겁니까? 차라리 그보다는 유망주를 받아 오는 게 더 낫지 않습니까? 베그웰이 우리에게 아픈 손가락이긴 하지만 그는 이미 다 드러나··· 그에게는 더 이상 뭘 기대할 수 없어요.”
여름에 2대 1 트레이드로 시작된 논의였다. 여기까지는 윌도 딱히 반대하지 않았었다. 한계를 노출한 선발 자원 하나와 후순위 유망주 하나를 묶어 데뷔 첫해부터 상당한 성적을 보여주는 불펜 투수와 바꿀 수 있다면 남는 장사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 이야기가 여름이 지나면서 다른 팀에 가면 즉전감이 될 수 있는 내야수 하나를 더 붙여 3대 1이 되어버렸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참아주려고 했었다.
급기야 트윈스의 단장이 미쳐버렸는지 거기에 유틸리티 플레이어로 쏠쏠하게 잘 쓰고 있는 닉 코스비까지 요구했을 때 차라리 잘됐다 싶었다. 그런 트레이드가 이루어질 리 없을 테니까. 물론 그쪽에서 후순위 유망주를 하나 넣어 4대 2로 어느 정도 구색을 맞추긴 했지만, 의미 없는 일이었다. 그 정도 선수는 우리 팜에도 넘쳐났다.
아무리 긍정적으로 봐주려고 해도 말이 안 되는 일이었는데 사장은 한술 더 떠 주겠다는 유망주 대신 예전에 우리가 포기하고 넘겨버렸던 베그웰로 대상을 바꿔버렸다. 그가 정신을 차리고 반대하려 했을 땐 이미 순식간에 진행된 트레이드가 끝난 후였다.
“윌의 걱정은 충분히 이해합니다만, 기분에 이끌려 한 일이 아닙니다. 충분한 검토와 고려가 있었습니다. 이건 우리 팀이 크리스티 매튜슨을 얻은 이후 최고의 트레이드가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1900년 자이언츠는 당시 460경기 246승 173패 평균자책점 3.04를 기록한 28세의 에이스 아모스 루시를 레즈에 내주고, 6경기 승리 없이 3패 평균자책점 5.08을 기록한 1년 차 투수 20세의 크리스티 매튜슨을 데려왔다.
누가 봐도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숨은 내막이 있긴 했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팬들의 거센 반발과 관계자들의 비웃음으로 처참한 모양새의 트레이드였지만 결과는 자이언츠의 완벽한 승리로 끝났다.
루시는 레즈에서 3경기 출장하고 은퇴했다. 매튜슨은 자이언츠에서 투수 삼관왕 두 번과 첫 월드시리즈 우승(1905년)의 중추적 역할을 해냈다. 자이언츠에서만 372승 188패 평균자책점 2.12를 기록하고 전설이 되었다.
“그런 터무니없는··· 허헛. 1년 차 투수이긴 하군요. 아무리 그래도 그것 빼고는 공통점이 없지 않습니까?”
“직접적인 비교는 어렵지요. 하지만 실질적인 도움은 확실히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So가 불펜 투수로 유능하다는 것에는 윌리스도 이견이 없었다. 하지만 그 비교 대상이 매튜슨이라니 그건 너무 많이 갔다.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일이었지만,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윌리스는 이 일을 꼼꼼히 짚고 넘어 가야겠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28세. 6월에 올라와서 약 4개월간 34게임 53이닝을 던져서 ERA 2.79 아주 훌륭해요. 평균 3일에 한 번은 빠짐없이 등판했었고 연투도 가능하지요. 내구성이 어떤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앞으로 2~3시즌 정도는 괜찮으리라고 봅니다.”
“그거보다는 실링을 좀 더 높게 잡아도 되지 않을까요.”
확실히 사장이 꽂히긴 꽂힌 모양이다. 윌리스는 더 후하게 평가를 상승시켰다.
“경험이 쌓여 피홈런을 제어하는 데 성공하고 내구성 문제만 증명한다면 마무리를 시켜도 되겠지요. 이건 아주 긍정적으로 봤을 때 그렇다는 거죠. 대부분의 경우 비극으로 끝나겠지만.”
사장이 기다렸다는 듯 치고 나왔다.
“그 통계에는 보이지 않는 오류가 있습니다. 일반적 지표가 그의 능력을 정확하게 보여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폴 해리스 사장은 UCLA에서 경제학을 전공했고 노스웨스턴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그의 현란한 통계학에 대한 지식은 존중하지만, 월리스에게는 편하게 소통하기 어려운 사람이었다.
그는 요즘 젊은 사람들이 말하는 옛날 방식으로 평생을 살았고 지금 와서 그 방식을 바꿀 생각이 없었다.
“새로운 세이버메트릭스 공식을 만들어 낸 건가요? 전 이미 그런 것을 이해하기에는 너무 늙어버렸어요. 제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설명을 부탁합니다.”
“하하하. 웬만한 건 다 아시잖아요. 엄살 부리시기는···”
해리스에게 이 나이 많은 단장은 구단주 측에서 심은 자신의 감시역일 수도 있지만, 그다지 싫지 않았다. 그의 노련함에서 때로 안정감을 느끼기도 했다. 모나지 않은 처세와 부드러운 말투 배울 것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거야 워낙 요즘 그런 용어가 많이 쓰이니까 자꾸 보다 보니 자연스럽게 알게 된 거죠. 보고서는 읽어야 할 것 아닙니까?”
겸손하게 말을 했지만, 윌리스는 자신의 말보다 훨씬 유능한 사람이었다. 남을 평가할 때는 관대하고 자신에게는 엄격한 신사였다.
“그럼 ERA로 말씀드리죠. 그의 ERA를 게임당 아웃카운트 세 개로 한정해서 계산하면 1.65가 됩니다. 1이 넘게 떨어지지요. 그리고 베그웰이 포수였을 때는 0.92가 됩니다. 트윈스는 그를 완전히 잘못 사용하고 있었던 거죠.”
“그래요? 그거 새로운 관점이군요. 하긴 스몰마켓 팀에서 계투 자원을 섬세하게 운영하긴 어렵지요. 그래서 그를 1이닝 한정으로 사용하고 전담 포수를 두기 위해 베그웰을 영입했다? 그럴듯해요.”
짧은 설명이었지만 윌리스에게도 솔깃하게 들리는 이야기였다. 만약 그를 그런 식으로 사용할 것이라면 베그웰도 충분히 가치가 있었다. 이기고 있는 경기에서 특별한 공격력이 필요한 건 아니니까.
“그렇게 계산하면 피안타율, 피출루율 등등 모든 지표가 리그 최상위권에 위치합니다. 피홈런도 별로 높은 수준이 아니지요.”
갑작스러운 침묵이 찾아왔다. 윌리스의 이마가 잔뜩 찌푸려져 있었다.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정보의 유입으로 그의 머릿속이 헝클어져 버렸다.
“그의 투구 패턴은 이 리그에서 굉장히 이질적입니다. 타자들이 타이밍을 가늠할 수 있는 시간이 짧으면 짧을수록 거의 언터쳐블이 될 겁니다.”
달콤한 상상이 윌리스의 머릿속에서 자라나기 시작했다.
“실링의 끝이 지금이라 해도 최소 2~3년간은 이 지구에서 타자들이 상대하기 가장 거북한 투수 중의 하나일 것이고, 발전이 좀 더 이루어진다면 제 2의 리베라가 될지도 모르지요.”
리베라가 있었을 때 양키즈는 월드시리즈를 다섯 번 제패했었다. 리베라라면 매튜슨과 비교할만하다.
“최종적으로는 클로저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일단은 프라이머리 셋업맨(주로 마무리 투수 앞 8회를 담당하는 투수)으로 시즌을 시작해 몇 게임 던지게 하고···”
“그렇지. 그렇게 적응을 시켜야 나가야 맞아. 그럼 이번 시즌 추가적인 영입은···”
침묵하던 단장의 입이 다시 열렸다. 그의 눈은 먼 곳을 향하고 있었다.
***
“이게 뭐예요? 이건 마치···”
“창고처럼 보인다고? 맞아. 그렇게 썼다고 하더라고.”
이적 통보를 받고 나서 바빴다. 가방 하나 달랑 들고 미국에 왔었는데 몇 개월간 한곳에 머물렀다고 생각보다 짐이 많았다. 샌프란시스코에 집을 구하는 문제를 고 감독과 마일리에게 맡기고 베그웰과 미네소타로 넘어가 정리해서 다시 돌아왔는데···
“이런 데서 어떻게 살아요. 이건 아니잖아요.”
“여기 집값이 많이 비싸더라구. 미네소타하고는 많이 다르더라. 주거 공간이 우리 식으로 한 육십 평만 되어도 투 밀리언이래.”
“그런 집을 구하면···”
‘아! 잊었네.’
보통 집으론 안 된다. 모션 캡쳐 시스템을 설치해야 한다. 그것만 최소 140㎡가 필요했다. 그래도 이건 너무하다. 운동선수에게 휴식은 아주 중요하다. 이런 곳에서 그런 중요한 휴식이 제대로 될 것 같지 않았다.
“너보고 살라고 하진 않을 테니까 걱정하지 마. 요기서 차 타고 십 분만 가면 호텔이 하나 있는데···”
그건 아주 다행스럽다. 그럼 여기는 그냥 연습장으로··· 무언가를 놓친 게 있는 것 같다.
“저기 그럼 여기는 그냥 시스템 설치해 놓고 가끔 사용하는 용도인가요?”
“아니, 비싼 장비 설치해 놓고 비워 놓을 수는 없지. 여기 에이전트 사무실을 내고 나도 여기서 살 생각인데··· 지금은 이렇지만, 우리가 플로리다에서 훈련하고 돌아오면 많이 달라져 있을 거야. 우리 없는 사이에 마일리가 알아서 수리하고···”
‘하아! 가슴이 답답하네.’
이적하고 나서 자이언츠에 인사를 하러 갔었다. 도와줄 것 없냐고 묻길래 집을 살 계획이라고 했더니 거래 은행을 소개시켜 줬다. 거기서 주택 담보 대출과 신용 대출을 이용해 도합 이백만 불을 만들었다. 그래서 그 정도 예산으로 집을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었는데···
지금 고 감독 말대로라면 난 이백만 불을 투자해 에이전트 사무실과 주거 시설 및 실내 훈련장을 만들어주고 호텔에 산다라는 말이 된다. 거기에 내 작년 연봉은 구경도 못하고 고스란히 장비 구입 비용으로 지출되었다.
현 상황에 대해 도대체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리고 고 감독은 지금 정상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저기··· 감독님. 이런 말씀은 죄송하지만, 사모님을 생각하시고···”
“뭐?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내가 그런 게 어디 있냐.”
부인한다고 해결되는 일이 아니다. 이성을 찾아서···
‘그러고 보니 한 번도 본 일이 없긴 하네.’
고 감독과 함께한 시간이 꽤 길었는데 생각을 아무리 해봐도 가족 이야기를 들은 적조차 없는 것 같다.
‘설마···’